뉴메타(New Meta)는 특정 게임에서 새롭게 주류가 된 플레이 또는 플레이 방식의 패러다임을 칭하는 말이다. 영단어지만, 사실상 한국 게임 & e스포츠 업계에서 신조어처럼 사용하다 해외로 역수출 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뉴메타 포인트]는 e스포츠 산업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 사건, 인물 또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시리즈물로 기획되었다. / mdk of e스포츠 크리틱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는 게임 방송국으로부터 시작된 콘텐츠 비즈니스였고, 블리자드는 게임 마케팅 측면에서 흥미로운 시선으로 이를 지켜봤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진 않았다. 그러는 사이 게임 방송국 외에도 프로게임단과 그들이 모인 협회 같은 단체들이 탄생했고,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는 상승하는 인기 속에 꾸준히 진입하는 스폰서 등 수익적으로도 매력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프로리그와 팀 리그
<스타크래프트> 대회들이 무르익으면서 두 개의 팀 단위 리그가 탄생했다. 대부분의 대회는 개인전이었지만 효율적인 연습을 위해서는 고정적인 연습 상대가 있는 것이 좋고, <스타크래프트>에는 세 종족이 있었으므로 3명 이상의 선수가 팀을 이룬다면 더 좋은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당시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인 프로게임단이 형성되었지만 프로게임단들은 규모가 커지면서 스타리그나 MSL 같은 개인리그만으로는 팀 운영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호응해 양 방송국인 온게임넷과 MBC게임은 팀이 더 돋보일 수 있는 팀 대회를 운영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엔트리제를 채택한 '온게임넷 프로리그'와 승자연전제를 채택한 'MBC게임 팀리그'이다. 그리고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처럼 팀 단위 리그도 양대리그 시대가 2004년까지 유지가 된다.
KeSPA 주도의 팀 단위 리그 통합
한국e스포츠협회(KeSPA)는 한국프로게임협회(KPGA)가 2003년 이름을 바꾼 단체다. KPGA는 스타크래프트 초창기 여러 대회들이 난립하면서 이를 관리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인데, 프로게이머 정기 소양 교육, 정책 간담회 등 e스포츠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KeSPA는 2005년 2기 협회 출범을 전후로 프로게임단의 이익 추구와 팀 중심의 e스포츠 시스템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두 개의 개인리그, 두 개의 팀 단위 리그 등 경기수가 많고, 이로 인해 시청률이 오히려 더 떨어진다는 의견을 앞세워 프로리그와 팀 리그를 통합했다. 이 때부터 프로리그는 협회가 직접 운영하고, 양 방송국이 반반씩 나눠 중계하는 형태가 된다.
프로게임단을 중심으로 한 협회의 e스포츠 정책은 2006년부터 최고조에 이른다. 회장사인 SK텔레콤의 주도로 협회가 후원사가 없는 팀에게 적극적으로 대기업 후원을 연결해주며 협회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6년은 창단 러시의 해였다. 르까프 오즈(구, 플러스), MBC게임 히어로( 구, POS), CJ엔투스(구, G.O), 온게임넷 스파키즈(구, KOR), 이스트로, STX SouL(구, SouL)까지 모든 팀들이 기업들에게 인수가 되었다. 다들 전보다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졌고, 힘든 시기를 보냈던 선수와 감독들은 금전적으로도 큰 보상을 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협회 구성원들의 유대감과 결속은 더 끈끈해졌고, 공동의 이익 추구라는 목표는 더 강해졌다.
프로리그는 누구의 것인가?
2006년 창단한 이스트로 팀의 모기업 IEG는 에이클라 엔터테인먼트라는 스포츠 중계권 업체의 자회사였다. 에이클라는 이후 스포티비, 스포티비게임즈를 운영하게 된다. 그리고 이스트로를 인수한 IEG는 이렇게 KeSPA 이사사 자격을 얻는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K리그, KBO는 프로야구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 중계권은 리그와 협회의 주수익원이고, 이는 팀에게 배분이 되거나 다양한 부가 사업 및 사무국의 유지에 활용이 된다. 공동의 목표 아래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대회에 참여하는 프로구단은 가입비, 이사회비 등을 납부해야 한다.
KeSPA 역시 이런 모델을 추구했다. 기업에 의해 창단된 프로게임단들은 일정한 이사회비를 납부하고 이사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프로리그를 활용한 수익 사업인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수익 모델은 바로 중계권이었다. 그렇게 프로리그의 실질적인 주인이 된 KeSPA는 양 방송국에게 중계권료를 요구하게 된다
정서적 반감, 양 방송국의 반발
그런데 이 부분에서 다른 스포츠와 e스포츠의 태생이 다르다는 점이 큰 문제를 발생시킨다. 다른 프로 스포츠는 시작부터 협회가 주도적으로 리그를 출범시켰지만, e스포츠에서는 온게임넷과 MBC게임이 각각 자신들의 팀 대회를 출범시켰기 때문이다.
자비로 방송을 제작해 송출하고, 후원사 계약을 통해 상금, 출연료 등을 수급해왔던 방송국들에게 ‘프로리그를 중계하려면 우리에게 중계권료를 납부하라’는 KeSPA의 요구는 그야말로 넌센스였다. 양 방송국은 중계권 사업자 입찰을 반대했지만, 단독 입찰에 나선 IEG가 3년 동안 17억원을 KeSPA에 지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중계권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이후 KeSPA와 IEG 그리고 온게임넷과 MBC게임은 치열한 협상에 돌입했지만, 무려 3번의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 당시 양 측은 ‘협상 때 이렇게 얘기했는데, 발표는 다르게 했다’며 보도자료를 통한 폭로전의 양상도 보였다.
치열했던 언론 플레이
협상 내용이 어땠는지는 당사자들 외에는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양 측의 ‘주장’을 활용한 뉴스들이 많았다.
서로 다른 주장들도 있었지만, IEG는 양 방송국이 3년 동안 각 7.5억씩 15억원을 내고 프로리그를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양 방송국은 3년 7.5억은 과도하고, 3년 3.9억을 주장했다는 내용은 양 측의 입장 발표문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KeSPA의 입장문에 따르면, 양 방송국이 주관방송사로 들어올 경우 연간 10억원 이상의 제작지원을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방송국이 내는 중계권료보다 더 큰 제작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요지. 이에 대해, 방송국은 IEG가 프로리그 VOD를 통해 벌어들이는 매출의 40%와 해설과 중계가 입혀진 콘텐츠를 무상으로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며 반박했다.
협상 태도에 대한 언론 플레이도 치열했는데, 주로 기자단의 지원 사격을 받은 KeSPA에게 유리한 내용이 많았다. 양적으로 KeSPA의 입장이 대변되는 기사들이 많았고, 프로게임단 감독들의 KeSPA 지지 성명까지 있었다.
팬들이 방송국을 지지하고 나선 이유
계속된 협상 결렬과 감독들의 지지 성명, 언론 플레이 등이 이어지면서 프로리그가 제대로 열리지 않으면 어쩌나 우려하는 팬들이 많아졌다. 팬들도 누가 옳다, 그르다며 논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팬들이 KeSPA에게 등을 돌리고, 양방송국을 지지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KeSPA는 양 방송국의 개인리그에 프로게이머들을 출전시키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예고했고, 3차 협상이 결렬되자마자 진행 중이었던 MBC게임 개인리그 예선에서 선수들을 철수시키기에 이른다.
팬들은 이미 KeSPA컵의 파행 운영 때문에 뿔이 나 있었다. 원래는 양 방송국 중 하나가 KeSPA컵을 맡아서 열기로 했지만, 중계권 갈등 상황 KeSPA가 직접 외주 제작사를 구해 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결과는 처참했다.
분노 마일리지가 쌓여있는 상황에서 2007년 3월 17일, 개인리그 보이콧은 팬들에게 그야말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에 분노와 위기 의식을 느낀 팬들은, 바로 다음날 열린 신한은행 마스터즈 경기장에서는 오프라인 시위까지 감행하기도 했다.
봉합된 갈등과 나비효과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고, 상황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에 보다 못한 문화관광부가 팬들의 오프라인 시위가 열린 바로 다음 날인 2007년 3월 19일 중재에 나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중계권료에서만 약간의 조율이 남은 상태에서 KeSPA가 방송사들이 제시했던 안을 대부분 수렴했다는 발표가 나와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결과적으로 이후 프로리그는 순항하게 된다. 협회 주도의 프로리그는 회장사 주도의 안정적인 리그 운영, 공인 심판 육성, 프로게이머 드래프트, 수익 사업 추진 등 e스포츠가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물론, 프로리그가 늘 좋은 평가만을 받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통합 프로리그에 대한 명과 암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후 나비효과의 시작점이 된다. 이 당시 KeSPA는 블리자드가 중계권 도입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일절 부인했지만, 프로리그 중계권 갈등이 일단락 된지 약 3개월 후, 블리자드가 KeSPA에게 경고를 했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경고 시점은 KeSPA와 양방송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2007년 초였는데, 당시 스포츠경향 기사에서 IEG 홍원의 대표는 "블리자드 측에서 자신들에게 중계권이 있다며 (협회와 게임방송사들이 논의 중인) 중계권은 깨끗한 것이 아니라고 전해왔다. 중계권 협상에 대한 경고 메시지였다"며 "블리자드는 한국의 중계권 협상에 있어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경고했고, 자신들에게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이로부터 몇 년 후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2> 출시를 앞두고 KeSPA를 위시한 한국 e스포츠 업계와 이른바 '지적재산권 분쟁'을 벌였다. 그리고 2007년 'IP 소유자'를 철저히 무시한 상태에서 진행된 KeSPA와 방송국들의 중계권 갈등은 블리자드에게 훌륭한 명분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 '지적재산권 분쟁' 이후 e스포츠는 해당 종목의 게임사의 소유권과 관리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고, 블리자드, 라이엇게임즈, 밸브 등 게임사가 직접 e스포츠 대회를 관리 및 운영하는 시대가 열렸다. 블리자드와 KeSPA의 지적재산권 분쟁에 대해서는 '뉴메타 포인트'에서 추후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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