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PC, 모바일 시청 비중이 높습니다. 그래서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과 e스포츠의 관계는 복잡미묘~~하기도 합니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서로 도움이 되는 공생 관계라고 하기에는 복잡한 사정들이 있거든요.
게임사나 e스포츠 주최사들은 시청자들에게 도달하기 위해 스트리밍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스트리밍 플랫폼도 유저를 유치하며 시청 시간을 늘리기 위해 e스포츠 컨텐츠가 필요하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비용'의 이슈가 발생합니다. e스포츠 리그는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중계권료를 원하지만 스트리밍 플랫폼은 다른 스포츠처럼 막대한 중계권료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비용 이슈로 인해 과감히 컨텐츠 송출을 포기해버리기도 하죠.
그럼, 본격적으로 복잡미묘한 관계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과거로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e스포츠는 스트리밍 플랫폼이 필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부터 아프리카TV가 있었지만, 제 기억으로 온게임넷 스타리그나 MSL이 송출된 적은 없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시대를 지나 <스타크래프트 2>와 <리그 오브 레전드>가 대세 종목이 되면서 네이버,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e스포츠가 송출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해외에서는 Own3d.tv가 2009년, 트위치가 2011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스타크래프트 2> 출시와 함께 MLG, NASL, IEM, 드림핵 등 대회들이 개최되면서 트위치, Own3d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을 본격적으로 활용했는데요. e스포츠에게 스트리밍 플랫폼은 아주 편리하고 유용한 도구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OGN, MBC게임 등 케이블 TV 채널이 있었지만, 유럽과 미국의 e스포츠 주최자들에게는 인터넷을 통한 라이브 스트리밍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습니다.
이들은 스트리밍 플랫폼 덕분에 고화질의 중계를 비용 없이 송출할 수 있었고, 커뮤니티화 된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이미 많은 유저들이 머물러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청자들에게 도달하기에도 용이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e스포츠 대회들이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송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플랫폼에 동시 송출하는 것 역시 당연한 선택이었죠.
스트리밍 플랫폼은 e스포츠가 필요는 하다
스트리밍 플랫폼들에게도 e스포츠 컨텐츠는 매력적이었습니다. 개인방송과 달리 e스포츠 컨텐츠들은 제작 퀄리티가 달랐고, 일부 대형 스트리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트리머들 보다 뷰어십이 훨씬 잘 나왔었죠.
무엇보다 e스포츠 컨텐츠는 특정 게임의 유저들을 모아 커뮤니티를 구축하기에 적합합니다. 스트리머들이 Co-Streaming을 할 경우에는 뷰어십과 바이럴 효과도 극대화되고요. 평소에 스트리밍을 보지 않는 유저들이 대회를 보기 위해 접속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초창기에는 e스포츠 주최사들이 스트리밍 플랫폼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기록적인 뷰어십을 기록하는 e스포츠 대회가 생기면서 역학 관계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또한 스트리밍 플랫폼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독점 송출 경쟁'이 펼쳐집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이 e스포츠 주최사에게 비용을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Twitch와 ESL의 파트너십이 대표적이죠. 모든 컨텐츠를 독점으로 송출하진 않지만, 중요한 몇몇 대회를 부분적으로 독점 송출하는 등 최근까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Own3d.tv, 아주부 등 다른 플랫폼들과의 경쟁이 필수적이었던 시절, 스트리밍 산업의 초창기에 독점적 e스포츠 컨텐츠 확보를 위한 지출은 모험적이었습니다. 결국 이 치킨 게임의 승자는 결국 Twitch였고, Twitch는 2014년 아마존에게 인수되며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업계를 평정합니다.
묘한 공생 관계의 시작
원래 게임 전문 스트리밍 플랫폼과 게임사의 관계는 공생 관계지만 애매한 구석이 있습니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스트리밍되는 게임들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지만, 스트리머들의 방송들이 게임 홍보로 이어지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하진 않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 역시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게임사들에게 파트너십이나 협업을 제안해 판을 키우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트위치 드롭스 같은 서비스가 탄생하게 된 것이죠.
물론, 신작 게임 출시처럼 스트리밍 플랫폼을 활용해 게임을 홍보하고자 하는 게임사들에게는 광고 및 프로모션 비용을 받기도 합니다. 돈을 받고 홈페이지 배너나 인게임 광고를 해주거나, 인기 스트리머들에게 일명 '숙제 방송'을 연결해주기도 하고요.
이런 묘한 관계는 e스포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처음에는 e스포츠가 트위치를 원했으나, 높은 뷰어십을 만드는 e스포츠 대회가 많아지자 트위치가 오히려 이런 컨텐츠를 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e스포츠 대회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중소규모 e스포츠 컨텐츠나 제작사는 트위치가 메인 페이지에 노출시켜줌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뷰어십을 원하거든요. 그리고 트위치는 이 메인 프로모션을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e스포츠를 제작하는 게임사나 주최사는 자신들의 콘텐츠를 돈을 받고 팔고 싶어합니다. 정통 스포츠에서 막대한 금액의 중계권료가 발생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e스포츠는 레거시 미디어의 관심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스트리밍 플랫폼에게 중계권료를 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중계권료에 생각보다 큰 지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라이엇게임즈는 지난 2023년 4월, '라이엇게임즈에서 만들어가는 스포츠의 미래'라는 공식 블로그 글을 통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열악한 수익성
사실 트위치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 사업자들은 생각보다 많은 지출을 합니다. 서버를 구축, 유지해야하고, 회선을 사용할 때마다 각 지역의 네트워크 사업자들에게 비용을 내야하기 때문이죠.
아프리카TV나 치지직의 경우 P2P 방식의 그리드를 활용해 플랫폼의 트래픽 부담을 줄이고, 서드파티 도네이션 대신 자체 후원 기능을 사용하게 한 뒤 환전 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냅니다. 영상, 배너 광고는 물론, 게임사나 광고주와의 직접적인 B2B나, 직접 커머스 등 수익 다각화가 필수인 업종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뷰어십이 많이 나오는 컨텐츠는 별로 환영 받지 못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발생하는 뷰어십을 돈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트위치 코리아는 그걸 못했던거고요. 그리고 대부분의 스트리밍 플랫폼은 이걸 상당히 어려워합니다. 영상 광고 시장에서 스트리밍 플랫폼의 광고 단가가 상당히 낮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e스포츠 콘텐츠는 일정 금액의 중계권료를 주고 사와야 하기 때문에 면밀하게 계산기를 두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뷰어십도 잘나오고, 파트너들도 좋아하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워 콘텐츠 확보를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생기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트위치 코리아의 LCK 중계권 포기입니다.
트위치 코리아의 LCK 중계권 포기
다들 아시는 것처럼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트위치 코리아는 2024년 2월을 끝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철수하기 전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지출 규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2023년 1월에는 그 일환으로 과감히 LCK 중계권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트위치에서 LCK 중계를 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이를 포기했다는 것은 e스포츠 콘텐츠가 수익적으로 큰 도움이 안 됐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러자 재밌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트위치에서 LCK가 없어지자, 일부는 LCK 시청을 포기해버렸기 때문이죠. 실제로 LCK 국내 뷰어십은 전년도에 비해 약 26% 정도가 하락했다는 자료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23 LCK 서머부터 유튜브가 합류하면서 국내 뷰어십이 다시 회복이 되기는 했습니다.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었던 LCK 유튜브 채널이 있었기 때문에 복구가 더 빨랐죠. 스트리밍 플랫폼과 e스포츠 컨텐츠의 묘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과 e스포츠의 묘한 관계
결과적으로 한국은 물론이고 서구권에서도 e스포츠 콘텐츠의 중계권료는 레거시 스포츠에 비해 아주 작은 규모에 그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짜로 틀기에는 애매하기 때문에 스트리밍 플랫폼과 e스포츠는 늘 묘한 힘싸움과 네고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죠.
LCK는 여러 플랫폼에 콘텐츠를 송출하고, 플랫폼들에게는 일정 중계권료를 받습니다. 레거시 스포츠처럼 거대한 중계권료를 받지 못하니, 적더라도 최대한 많은 중계권료를 내기 위해 이 같은 방식을 선택한 것이죠.
그런데 꼭 돈 때문만은 아닙니다. 만약, 어떤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상당히 괜찮은 금액으로 중계권료를 줄테니 독점 계약을 하자고 한다면 어떨까요?
얼핏 '돈 많이 주면 독점해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트위치 코리아의 LCK 포기' 사례처럼, 한 군데 독점 송출은 전체적인 뷰어십의 하락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e스포츠 리그는 중계권료 만으로 수익 사업을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다양한 플랫폼에 방송을 송출하고 높은 뷰어십 수치들을 확보하는게 더 좋을 수도 있는 것이죠. 실제로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트위치네요 😅.
트위치와 블리자드의 빅딜이 남긴 후유증
한 때 트위치는 블리자드와 긴밀한 관계였고, 트위치 프라임 출시에 발 맞춰 블리자드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블리자드 e스포츠 대회를 대부분 독점적으로 송출하고, 가입자들에게는 특별한 인게임 아이템들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트위치는 블리자드가 출범시키는 오버워치 리그의 독점적인 파트너가 됩니다. 이 당시 2년 계약을 한 트위치가 블리자드에게 준 비용은 900만 달러, 한화로 약 1200억원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엄청난 비용이었지만, 트위치는 '올 억세스 패스' 판매를 통해 충분히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트위치는 이 계약으로 크게 휘청거립니다.
더 재밌는 사실은 블리자드의 e스포츠 역시 계약 종료 후 휘청거렸다는 것입니다. 2년이 지나고 트위치는 더 이상 계약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블리자드는 오버워치 리그를 비롯한 e스포츠 콘텐츠의 송출을 유튜브 쪽으로 집중하는 새로운 계약을 맺습니다.
하지만, 트위치 때에 비해 오버워치 리그는 물론 하스스톤 e스포츠 등의 뷰어십이 크게 하락하고 말았습니다. 유튜브로부터 비용은 받았을지 몰라도 리그의 기반인 뷰어십이 흔들리면서, 커뮤니티가 축소되고 결국 e스포츠의 위상 자체가 떨어지고 만 것이죠.
마치며
e스포츠에게 스트리밍 플랫폼과의 긴밀한 관계는 초반 성장을 위해 상당히 중요합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특히, 후발주자라면 e스포츠 컨텐츠 확보가 상당히 매력적인 성장 전략일 수 있습니다.
다만, e스포츠 컨텐츠의 규모가 커질수록 관계가 묘해지기 시작합니다. e스포츠 리그는 돈을 벌어야 하고, 스트리밍 플랫폼 역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두 산업 모두 수익성이 상당히 약합니다. 대부분의 e스포츠 컨텐츠는 시청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고, 스트리밍 플랫폼 역시 기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서로 큰 비용을 주고 받으며 Win-Win 하기 어려운 시장인 것이 현실이죠.
어떤 전문가들은 e스포츠가 OTT 쪽으로 진출하는 것이 어떤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시청하는 e스포츠 컨텐츠를 따라 유료 서비스인 OTT에 가입하려는 팬들이 얼마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시청자들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e스포츠 컨텐츠를 시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e스포츠에서 가장 결여된 수익 모델이 '오프라인 관중 수입'과 '중계권료'이기 때문이죠. 이 주제는 조금 더 고민해서 나중에 따로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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