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 미국의 대부분 기업들은 기록적인 이익을 앞세워 주당 순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였다. 버핏은 이를 경계하며, 주식을 사업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이후 40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뼈대가 되는 생각이다.
숫자로보는 1977년
| 시대 | |
|---|---|
| 인플레이션(CPI) | 약 6%대 중반 (이듬해 7%대) |
| 장기국채 수익률 | 약 7%대 - 기회비용 기준 |
| 시장 국면 | 1973~74 폭락 후 저평가 (다우 연말 약 830) |
무위험 수익률 7%와 몇 해 전 ‘니프티 피프티’ 거품이 꺼진 뒤라 저평가 된 사업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는 기회가 공존한 해다.
| 버크셔 해서웨이 | |
|---|---|
| 순영업이익 | $21,904,000 (주당 $22.54) |
| 시작자본 대비 ROE | 19% |
| 주당이익 / 시작자본 증가 | +37% / +24% |
버크셔해서웨이는 아직 거대 복합기업이 아니라 부진한 섬유공장, 무섭게 크는 보험(내셔널 인뎀니티), 작은 은행, 그리고 블루칩을 통해 쥔 시즈 캔디가 묶인 덩어리였다.
| 자산 | 금액 | 부채·자본 | 금액 |
|---|---|---|---|
| 보험이 굴린 투자자산 | 252.8 | 플로트 (가입자에게 무이자로 맡아둔 보험 부채) | 185.8 |
| · 채권·미국채 | 145.9 | · 손해준비금 | 133.6 |
| · 주식 (원가 기준) | 106.9 | · 미경과보험료 | 52.2 |
| 지분법 투자 (블루칩 35.8·은행 25.8·기타 1.6) | 63.2 | 차입·기타 부채 | 51.7 |
| 기타 자산 (매출채권·재고·설비·현금 등) | 63.2 | 자본 (이익잉여금 137.6 중심) | 141.8 |
| 합계 | 379.2 | 합계 | 379.2 |
1977년 말 대차대조표를 '무엇을 소유했나(자산)'와 '무엇으로 마련했나(부채·자본)'로 나눠 보면 표와 같다.(단위: 백만 달러, 반올림이라 세부 합이 총계와 0.1 안팎 다를 수 있다. ·는 세부 항목. 수치는 연차보고서 감사 재무제표 실측.)
여기서 한 줄이 모든 것을 말한다. 플로트 185.8이 자본 141.8보다 크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굴린 투자자산 252.8은 버핏의 돈이 아니라 대부분 보험 가입자에게서 무이자로 맡아둔 남의 돈이다. 보험그룹만 떼어 보면 자본 1억 990만 달러로 투자자산 2억 5,280만 달러, 곧 자본의 2.3배를 굴린다. 이것이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기계의 심장이다. (은행과 블루칩은 지분법이라 그 자산·부채가 버크셔 장부에 통째로 오르지 않아, 위 부채의 대부분이 실제 보험 플로트다.)
1977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서한
1977년 영업이익은 2,190만 4천 달러, 즉 주당 22.54달러로 1년 전 예상보다 다소 나은 실적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주당 1.43달러는 블루칩 스탬프스가 실현한 상당한 자본이익에서 나온 것으로, 그 기업에 대한 우리 지분 비율만큼 영업이익에 포함됩니다.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나 그 보험 자회사가 직접 실현한 자본이익이나 손실은 영업이익 계산에 넣지 않습니다. 어느 한 해의 수치에 지나치게 주목할 필요는 없지만, 길게 보면 누적 자본이익·손실에 관한 기록은 분명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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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이익(사업을 굴려 번 돈)은 성과로 치고, 자본이익(투자를 팔아 남긴 일회성 차익)은 뺀다. 파는 시점을 자기가 고르는 자본이익을 섞으면 성과를 부풀릴 여지가 생기고, "사업이 올해 실제로 얼마나 잘 굴러갔나"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섬유 부문은 예상을 크게 밑돌았고, 일리노이 내셔널 은행의 실적과 블루칩 스탬프스 지분에서 나오는 영업이익은 대체로 예상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보험 부문은 내셔널 인뎀니티의 필 리셰 경영진이 다시 한번 거둔 탁월한 성과에 힘입어 우리의 낙관적인 기대마저 뛰어넘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기록적' 이익을 주당순이익의 사상 최고치로 정의합니다. 그러나 기업은 통상적으로 해마다 자본을 늘려 가므로, 자본이 10% 늘고 주당순이익이 5% 는 경영 성과에서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완전히 잠들어 있는 저축예금조차 복리 덕분에 해마다 이자 수익이 꾸준히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 생각해보기
버핏은 ‘기록적 이익’=EPS 최고치' 대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기업은 매년 자본을 늘리고 그에따라 이익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특수한 경우(예컨대 부채-자본 비율이 유별난 기업이나, 중요한 자산이 비현실적인 장부가로 계상된 기업)를 제외하면, 우리는 경영진의 경제적 성과를 재는 더 적절한 잣대가 자기자본이익률(return on equity capital)이라고 봅니다. 1977년 우리의 시작 자본 대비 영업이익률은 19%로, 전년보다 소폭 높았고 우리 자신의 장기 평균은 물론 미국 산업 전체의 평균도 웃돌았습니다. 다만 주당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37% 늘었어도 시작 자본이 24% 늘었기에, 주당이익의 증가폭은 언뜻 보이는 것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습니다.
💡 생각해보기
성과는 이익(분자)이 아니라 이익÷자본(ROE)으로 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EPS가 37% 늘었지만 자본이 24% 늘었으니 언뜻 보이는 것만큼 인상적이지는 않다."고 말한것도 같은 이유다. 또한, 언제나 예외가 있음을 생각해야한다.(부채-자본 비율이 유별난 기업이나, 중요한 자산이 비현실적인 장부가로 실려 있는 기업)
우리는 다가오는 해에 1977년의 수익률을 따라잡기가 어려우리라 봅니다. 시작 자본이 1년 전보다 23% 늘었고, 보험 언더라이팅 이익률이 연말이 되기 훨씬 전에 하락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교적 괜찮은 한 해를 기대하며, 현재 추정으로는 1978년 주당 영업이익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봅니다. 물론 예측이란 늘 빗나가기 마련이라는 단서는 답니다.
💡 생각해보기
분모(초기 자본 23%증가)의 크기는 커지고 분자(언더라이팅 이익률 하락)의 이익은 작아질 것으로 예상의 근거로 1977년 수익률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판단. 또한, 버핏은 항상 예측의 한계("frailties of forecasts”)를 인정한다.
섬유 사업은 1977년에도 다시 매우 부진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해 모두 실적이 나아지리라 예측했지만 번번이 빗나갔습니다. 이는 우리의 예측 능력이나 섬유 산업의 특성, 혹은 그 둘 다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 주는지도 모릅니다. 온갖 노력에도 마케팅과 제조의 문제는 계속됐습니다. 마케팅에서 겪은 어려움은 대부분 업계 여건 탓이지만, 일부는 우리 스스로 만든 문제였습니다. 일부 주주는 섬유 사업에 계속 남는 것이 현명한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섬유는 다른 많은 사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자본이익률을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남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1) 뉴베드퍼드와 맨체스터의 우리 공장은 각 도시에서 가장 큰 고용주 중 하나로, 평균 연령이 높고 다른 곳으로 옮기기 어려운 기술을 지닌 인력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근로자와 노조는 지속 가능한 운영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비용 구조와 제품 구성을 맞추는 데 남다른 이해와 노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2) 경영진 또한 섬유 문제에 정력적이고 솔직하게 임해 왔습니다. 특히 1965년 경영권이 바뀐 뒤 켄 체이스가 기울인 노력은, 수익성 좋은 보험 사업을 인수하고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섬유 부문에서 만들어 냈습니다. (3) 제조와 마케팅 방식에 부지런함과 약간의 창의력을 더한다면, 앞으로 섬유 부문에서 적어도 소폭의 이익은 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 보험 사업은 1977년에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우리가 이 산업에 발을 들인 것은 1967년 초, 내셔널 인뎀니티와 내셔널 파이어 앤드 마린(자매 기업)을 약 86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였습니다. 그해 두 기업의 보험료 규모는 2,200만 달러였습니다. 1977년 우리의 총 보험료 규모는 1억 5,100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이 성장을 이루는 데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추가로 발행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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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사업이 10년간 약 7배 성장했다.($22M→$151M) 무엇보다 신주를 한 주도 발행하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주를 발행해 성장하면 기존 주주 몫이 희석된다.(주식 수가 늘면 케이크를 더 많은 조각으로 나누는 셈) 버핏은 규모 자체보다 주주 1인당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오히려 이 거의 600%에 이르는 성장은 여러 갈래에서 나왔습니다. 내셔널 인뎀니티의 전통적 배상책임 분야에서의 큰 성장에 더해, 새 기업들을 세우고(1970년 콘허스커 캐주얼티, 1971년 레이크랜드 파이어 앤드 캐주얼티, 1972년 텍사스 유나이티드 인슈어런스, 1973년 아이오와 보험, 1977년 말 캔자스 파이어 앤드 캐주얼티), 다른 보험사를 현금으로 인수하고(1971년 홈 앤드 오토모빌, 1976년 커클링 리인슈어런스 — 현재는 센트럴 파이어 앤드 캐주얼티로 이름을 바꿈, 1977년 말 사이프러스 인슈어런스), 마지막으로 내셔널 인뎀니티 법인 구조 안에서 재보험을 비롯한 상품을 새로 판매하면서 이룬 것입니다.
종합하면 보험 사업은 매우 잘 풀렸습니다. 그러나 늘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상품에서도 인력에서도 큰 실수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우리는 (1) 1969년 시작한 보증보험 사업, (2) 1973년 홈 앤드 오토의 도시 자동차 마케팅을 플로리다 마이애미 지역으로 확장한 것, (3)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항공 '프런팅' 계약, (4) 캘리포니아의 산재보험 사업에서 상당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다만 마지막 산재 사업은 진행 중인 재편이 끝나면 흥미로운 잠재력이 남아 있다고 봅니다. 실수를 몇 번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꽤 만족스러운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 몸담고 있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우리 섬유 사업과 정반대입니다. 섬유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경영진이라도 평균적으로 소폭의 성과밖에 내지 못하니까요. 여러분의 경영진이 배운, 그리고 안타깝게도 때로 다시 배운 교훈 하나는, 역풍이 아니라 순풍이 부는 사업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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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은 여기서 중요한 개념을 하나 알려준다. 사업의 질이 경영 실력보다 더 낫다고 본 것이다. 이는 구조적 관점에서 생각해야함을 말한다.
1977년 보험 언더라이팅에서는 바람이 확실히 우리 등 뒤에서 불어 주었습니다. 1974~75년의 처참한 언더라이팅 실적을 만회하려고 1976년 업계 전반에서 매우 큰 폭의 요율 인상이 단행됐습니다. 그러나 보험 계약은 대개 1년 단위로 체결되고 가격 실수는 갱신 때에야 바로잡을 수 있어서, 그 요율 인상이 이익에 온전히 반영된 것은 1977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이제 진자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위하는 보험 분야의 비용은 매달 1%에 가깝게 오르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이는 사람과 재산을 고치는 비용에 영향을 주는 지속적인 통화 인플레이션에 더해, '사회적 인플레이션' — 사회와 배심원이 보험으로 보상해야 할 범위를 점점 넓게 보는 흐름 —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율이 그에 맞춰 매달 1%씩 오르지 않는 한, 언더라이팅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요율 인상 속도가 급격히 둔화되어, 우리는 하반기부터 언더라이팅 마진이 전반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 생각해보기
언더라이팅 마진이란 결국 요율 인상과 비용 상승의 경주와 같다. 버핏은 보험 분야의 비용을 추정해보고(매달 1%) 그 속도에 맞춰 최소 요율을 올려야 유지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이를 통해 요율 인상 속도에 따른 보업업 상황을 예측한다. 특히, ‘사회적 인플레이션'은 구조적 접근법이다. 비용을 생각할 때 물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업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를 파악한것이다.
1977년 내셔널 인뎀니티의 전통적인 자동차·일반 배상책임 사업에서 이룬 비범한 언더라이팅 성과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필 리셰에게 공을 돌려야 합니다. 언더라이팅의 롤런드 밀러와 클레임의 빌 라이언스도 그를 크게 도왔습니다. 1974~75년 위기 이후 많은 경쟁사가 사업을 줄이거나 철수하면서, 우리는 큰 물량 증가와 함께 우수한 언더라이팅 마진을 거뒀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머지않아 반대로 뒤집힐 것입니다. 그동안 내셔널 인뎀니티의 언더라이팅 수익성은 극적으로 높아졌고, 투자에 쓸 수 있는 자금도 크게 늘었습니다. 시장이 느슨해지고 요율이 부적정해지면, 우리는 다시 물량 줄이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도전에 직면할 것입니다. 남다른 경영 규율이 필요할 텐데, 경쟁자가 — 심지어 터무니없는 가격에 — 사업을 가져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보통의 조직 행동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 생각해보기
개인적으로 버핏의 보험업 언더라팅 규율은 교과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이를 행동으로 잘 보여주는 사람이 버크셔 해서웨이 아지트 자인이다.) 그 규율에 관한 이야기가 이곳에서 시작한다. 어려운 일은 좋은 시장에서 계약을 따는 게 아니라, 나쁜 시장에서 계약을 거절하는 것이다("어리석은 가격에" 물량을 안 좇기).
조지 영이 이끄는 우리 재보험 부서는 1977년 언더라이팅 성과를 개선했습니다. 합산비율(12쪽 정의 참조)는 107.1로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한 해 내내 하락 추세였습니다. 게다가 재보험은 보험료 규모에 견줘 굴릴 수 있는 투자 재원을 유난히 많이 만들어 냅니다.
홈 앤드 오토에서는 존 슈워드가 모든 부문에서 꾸준히 진전을 이뤘습니다. 존은 몇 년 전 홈 앤드 오토의 언더라이팅이 적자에 빠져 기업이 존폐 위기에 몰렸을 때 현장에서 발탁된 인물입니다. 그의 경영 아래 이 기업은 지금 건전하고, 수익도 나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존 링월트의 홈스테이트 사업은 이제 다섯 개 기업으로 이뤄져 있으며, 캔자스 파이어 앤드 캐주얼티가 플로이드 테일러의 지휘 아래 1977년 말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홈스테이트 기업들의 순보험료 규모는 불과 3년 전 550만 달러에서 2,300만 달러로 늘었습니다. 한 해 내내 영업한 네 개 기업 모두 합산비율 100 미만을 기록했고, 그중 콘허스커 캐주얼티가 93.8로 가장 앞섰습니다. 존 링월트는 다른 네 개 홈스테이트 사업을 적극적으로 감독하는 한편, 콘허스커도 직접 경영합니다. 콘허스커는 영업한 만 7년 가운데 여섯 해에 합산비율 100 미만을 기록했고, 1970년 무(無)에서 출발해 전통적인 독립 대리점 방식으로 네브래스카를 이끄는 보험사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짐 스토돌카가 경영하는 레이크랜드 파이어 앤드 캐주얼티는 홈스테이트 기업 가운데 가장 낮은 손해율을 달성해 1977년 회장배(Chairman's Cup)를 받았습니다. 전체적으로 홈스테이트 사업은 계속 훌륭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보험 그룹에 가장 최근 합류한 곳은 캘리포니아 사우스패서디나의 사이프러스 인슈어런스입니다. 이 산재보험사는 1977년 말 며칠 사이에 현금으로 인수되어, 그해의 약 1,250만 달러 물량은 우리 실적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사이프러스와 내셔널 인뎀니티의 기존 캘리포니아 산재 사업은 통합하지 않고, 다소 다른 마케팅 전략으로 따로 운영할 것입니다. 1968년부터 사이프러스 사장을 맡아 온 밀트 손턴은 계약자·대리점·직원·주주 모두를 위해 최고 수준의 사업을 이끕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일하기를 기대합니다.
보험사는 누구나 베낄 수 있는 표준화된 상품을 팝니다. 그들의 유일한 상품은 약속뿐입니다. 인가를 받기가 어렵지 않고, 요율도 공개돼 있습니다. 상표·특허·입지·업력·원자재 공급원 등에서 오는 중요한 우위가 없고, 경쟁에서 지켜 줄 소비자 차별화도 거의 없습니다. 기업 연차보고서에서 '사람이 만드는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그것이 사실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험 사업의 본질상 개별 경영자가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유독 크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이 경영자들을 둔 것은 정말 큰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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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은 보험업의 구조를 냉정히 진단한다: 차별화가 없다. 상품이 '약속'뿐이고 누구나 베낄 수 있으니, 경쟁이 가격을 깎아 초과이윤이 사라지는 산업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개별 경영자의 규율(무모한 가격에 물량을 안 좇는 절제)이 성패를 증폭한다는 역설을 끌어낸다.
지난 2년 동안 원가 기준 보험 투자자산은(계열사 블루칩 스탬프스에 대한 투자는 제외) 1억 3,460만 달러에서 2억 5,280만 달러로 늘었습니다. 보험료 규모가 크게 늘며 불어난 보험 책임준비금과 유보이익이 이 시장성 증권의 증가를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 보험 그룹의 순투자수익은 1975년 세전 840만 달러에서 1977년 세전 1,230만 달러로 개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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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버크셔 해서웨이 엔진의 비밀이 있다. 투자자산이 2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됐는데, 그 돈이 어디서 왔나? "보험 책임준비금 + 유보이익"이다. 책임준비금이 곧 플로트다. 보험료를 먼저 받고 보험금은 나중에 주는 사이 손에 쥔 남의 돈이다. 즉, 버핏은 자기 돈이 아니라 플로트로 투자 실탄을 불린다. 그리고 그 투자자산이 다시 배당·이자($8.4M→$12.3M)를 낳는다. 플로트→투자→수익→다시 투자의 복리 순환이다.
이 배당·이자 수익에 더해, 우리는 세전 690만 달러의 자본이익을 실현했는데, 약 4분의 1은 채권에서, 나머지는 주식에서 나왔습니다. 1977년 말 주식의 미실현 이익은 약 7,400만 달러였지만, 이 수치는 특정 날짜의 여느 수치가 그렇듯(1974년 말에는 반대로 1,700만 달러의 미실현 손실이 있었습니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은 못 됩니다. 우리가 크게 들고 있는 주식 대부분은 여러 해 보유할 것이고, 투자 결정의 성적표는 특정 날의 주가가 아니라 그 기간의 사업 실적으로 매겨질 것입니다. 기업을 통째로 인수할 때 단기 전망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이 어리석듯, 기업의 작은 조각 — 곧 시장성 있는 보통주 — 을 살 때도 가까운 미래의 예상 이익이나 최근 이익 흐름에 홀리는 것은 마찬가지로 온당치 않다고 봅니다.
이 점을 보여 주는 짧은 곁가지가 흥미로울 듯합니다. 버크셔 파인 스피닝 어소시에이츠와 해서웨이 매뉴팩처링은 1955년 합병해 버크셔 해서웨이가 됐습니다. 1948년, 합산 기준으로 두 기업의 세후 이익은 거의 1,800만 달러였고, 뉴잉글랜드 전역 열두 개 대형 공장에서 1만 명을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재계에서 이들은 경제적 강자였습니다. 예컨대 같은 해 IBM의 이익은 2,800만 달러(현재는 27억 달러), 세이프웨이는 1,000만 달러, 미네소타 마이닝(3M)은 1,300만 달러, 타임은 900만 달러였습니다. 그러나 1955년 합병 이후 10년 동안 총매출 5억 9,500만 달러를 올리고도 버크셔 해서웨이는 1,000만 달러의 누적 손실을 냈습니다. 1964년에 이르러 사업은 공장 두 곳으로 줄었고, 순자산은 합병 당시 5,300만 달러에서 2,200만 달러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어느 한 해의 단면이 사업을 제대로 보여 준다고 하기엔 한참 모자랍니다.
💡 생각해보기
1948년, 훗날 버크셔 해서웨이가 되는 섬유 사업(파인 스피닝·해서웨이)은 IBM에 견줄 '경제 강자'처럼 보였지만, 10년 뒤 순자산이 반 토막 났다. 즉 어느 한 시점의 화려함이 사업의 진짜 궤적을 못 보여 준다는 것이다. 버핏이 투자자는 왜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1977년 12월 31일 기준 시가 500만 달러를 넘는 우리 보험 자회사의 주식 보유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위: 천 달러 / 000's omitted)
| No. of Shares | Company | Cost | Market |
|---|---|---|---|
| 220,000 | Capital Cities Communications, Inc. | $10,909 | $13,228 |
| 1,986,953 | Government Employees Insurance Company — Convertible Preferred | 19,417 | 33,033 |
| 1,294,308 | Government Employees Insurance Company — Common Stock | 4,116 | 10,516 |
| 592,650 | The Interpublic Group of Companies, Inc. | 4,531 | 17,187 |
| 324,580 | Kaiser Aluminum & Chemical Corporation | 11,218 | 9,981 |
| 1,305,800 | Kaiser Industries, Inc. | 778 | 6,039 |
| 226,900 | Knight-Ridder Newspapers, Inc. | 7,534 | 8,736 |
| 170,800 | Ogilvy & Mather International, Inc. | 2,762 | 6,960 |
| 934,300 | The Washington Post Company — Class B | 10,628 | 33,401 |
| Total | $71,893 | $139,081 | |
| All Other Holdings | 34,996 | 41,992 | |
| Total Equities | $106,889 | $181,073 |
우리는 시장에서 사는 주식도, 한 기업을 통째로 인수할 때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평가해 고릅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업은 (1)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2) 장기 전망이 밝으며, (3)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경영하고, (4) 매우 매력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단기 주가 흐름을 노리고 주식을 사지는 않습니다.
💡 생각해보기
관점이 정말 중요하다. 버핏은 구조적으로 "in its entirety(통째로)" 라는 프레임을 사용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신호를 받아들이고 소음을 걸러낸다.
사실 그 사업이 계속 우리를 만족시키는 한, 우리가 가진 주식의 시장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오히려 반깁니다. 좋은 것을 더 싼값에 더 살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험으로는, 진정으로 뛰어난 사업의 지분 조각이 기업 전체를 협상으로 사고팔 때 매겨질 값보다 훨씬 크게 할인돼 증권 시장에서 팔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 인수로는 직접 손에 넣을 수 없는 헐값 매물을, 주식 보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값이 적절할 때 우리는 선별한 기업의 지분을 크게 사들일 의향이 있습니다. 경영권을 쥐거나 매각·합병을 노려서가 아니라, 기업들의 뛰어난 실적이 결국 소수주주에게든 대주주에게든 그에 걸맞은 시장 가치와 배당으로 돌아오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 생각해보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시장은 같은 사업의 조각을, 통째 인수 때보다 훨씬 싸게 팔곤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배권 없이도 헐값에 좋은 사업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런 투자는 처음에는 우리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1977년에 캐피털시티즈 커뮤니케이션스에 1,09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우리가 산 주식에 돌아오는 이익은 지난해 약 130만 달러였지만, 영업이익에 잡히는 것은 현재 연 4만 달러인 현금 배당뿐입니다. 캐피털시티즈는 빼어난 자산과 빼어난 경영진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 경영 역량은 사업 운영에서든 자본 운용에서든 똑같이 뛰어납니다. 캐피털시티즈가 가진 것과 같은 자산을 직접 사들이려면 주식 시장을 통한 우리 매입 원가의 두 배쯤 들 텐데, 직접 소유한다고 우리에게 이렇다 할 이점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경영권을 쥐면 사업과 자원을 운영할 기회와 책임이 따라오지만, 우리는 그 어느 쪽도 지금 자리 잡은 경영진만큼 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지배가 아니라 비지배를 통해 더 나은 경영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정통에서 벗어난 견해이지만, 우리는 타당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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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 해서웨이 몫 이익 $1.3M 중 장부엔 배당 $40K만 잡힌다(32분의 1). 회계 숫자와 경제적 실질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통째 인수는 두 배 비싸고, 기존 경영진보다 잘할 자신도 없으니, 시장에서 조각을 싸게 사는 편이 낫다.” 버핏이 항상 기회비용 관점에서 좋은 가격을 고려했음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1977년에도 일리노이 내셔널 은행은 대다수 대형 은행의 약 세 배에 이르는 자산이익률을 이어 갔습니다. 늘 그렇듯 이 성과는 예금자에게 최고 금리를 주면서도 낮은 위험과 뛰어난 유동성을 갖춘 자산 구성을 유지한 채 이룬 것입니다. 진 아베그가 1931년 25만 달러로 이 은행을 세웠고, 영업 첫 만 1년의 이익은 8,782달러였습니다. 그 뒤로 은행에 새 자본이 들어간 적은 없고, 오히려 1969년 우리가 인수한 이래 2,000만 달러의 배당이 지급됐습니다. 1977년 이익은 360만 달러로, 규모가 두세 배인 많은 은행보다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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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성과를 자랑하는 것 같지만, 실은 좋은 사업의 정의를 예시로 보여 준다. 세 가지가 핵심이다. (1) 자산이익률이 업계 3배(같은 자산으로 세 배를 번다 = 질 높은 사업), (2) 그러면서도 낮은 위험·높은 유동성(무리하지 않고 낸 성과), (3) 인수 후 새 자본을 한 푼도 안 넣었는데 오히려 배당 $20M을 뽑아냈다. 즉 , 추가 자본을 넣지 않으면서 현금을 만들어내는 사업이다. 훗날 버핏이 정의하는 '위대한 기업'(높은 자본수익률 + 낮은 재투자 필요)의 초기 표본이다.
지난해 말, 이제 여든이 되었어도 여전히 견줄 이 없는 은행 경영을 이어 가던 진이 후임자를 들이자고 청했습니다. 이에 따라 오마하 아메리칸 내셔널 은행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를 지낸 피터 제프리가 3월 1일자로 일리노이 내셔널 은행 사장 겸 최고경영자로 합류했습니다. 진은 회장으로서 건강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록퍼드 최고의 은행이 앞으로도 성공적으로 운영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블루칩 스탬프스 지분을 다시 늘려 1977년 말 약 36.5%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블루칩은 좋은 한 해를 보내 영업에서 약 1,290만 달러를 벌었고, 여기에 더해 410만 달러의 증권 실현이익을 냈습니다. 블루칩 스탬프스의 80% 자회사인 웨스코 파이낸셜(루이스 빈센티 경영)과 99% 자회사인 시즈 캔디(척 허긴스 경영)도 1977년에 좋은 진전을 이뤘습니다. 1972년 초 블루칩 스탬프스가 시즈를 인수한 이래, 세전 영업이익은 추가 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420만 달러에서 1,260만 달러로 늘었습니다. 시즈는 판매 수량이 사실상 늘지 않는 업계에서 이 기록을 이뤘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는 로버트 버드(Robert H. Bird) 앞으로 요청하면 블루칩 스탬프스의 연차보고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Blue Chip Stamps, 5801 South Eastern Avenue, Los Angeles, California 9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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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 캔디 사업을 보자. 추가 자본을 거의 안 들이고 세전이익이 5년 만에 세 배($4.2M→$12.6M)가 됐다. 판매 수량을 늘리는 것이 아닌 값을 올려서 이뤄낸 것이다. 버핏이 말한 가격 결정력의 힘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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