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일잔치를 준비하다 생긴 일
제게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가 있습니다. 어린이집에서는 두 달에 한 번씩 아이들의 생일잔치를 열어줘요. 생일을 맞이한 친구들은 케이크와 간식을 마련하고, 생일이 아닌 친구들은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해 가지요.
아이들을 챙기는 보호자 입장에서는 매번 선물을 준비해 가는 게 퍽 신경 쓰이고 번거롭더라고요. 어느 금액에 맞춰 뭘 넣어야 할지, 일주일 전부터 머리가 아파요.
그래서 저는 1년 치 선물을 왕창 제조해두는 방법을 떠올렸어요. 유레카! 두 아이의 친구들을 모두 합치면 30명 정도. 30개의 똑같은 선물 꾸러미를 한 번에 만드는 것이죠. 생일잔치 공지가 오면 꺼내어 가방에 넣어주기만 하면 끝! 선물 포장용 지퍼백에 미니 블록, 조립식 장난감 연필, 찰흙 한 통 같은 걸 담기로 했습니다.
그중 미니 블록은 <직업 체험 시리즈>라고 이름 붙은 제품을 찾았는데, 성별을 선택해 구입하도록 나뉘어 있더라고요. 우주인, 군인, 소방관, 해경 등 아주 다양한 직군으로 구성된 15종은 남자아이용이었어요. 여자아이용 블록은 4종이 있었는데요, 이러했습니다. 거울 보며 머리 가꾸는 여자, 그네 타는 여자, 티브이 보는 여자, 선 베드에 누워 라디오 듣는 여자.
저는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육성으로 “하!” 탄식을 뱉고 30개를 전부 남자아이용이라 구분된 여러 직군의 블록을 구입했습니다. 그러곤 여자아이들 생일에도 우주인, 군인, 해경 구분 없이 선물을 보내주었습니다.
👶 여성, 남성 그리고 제3의 성
만화가 천계영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미터 이내에 들어서면 알람이 울리는 애플리케이션 ‘좋알람’이 등장합니다. 극의 후반부에서 좋알람의 신기술이 등장하는데, ‘내가 좋아하게 될 사람’과 ‘나를 좋아할 사람’으로 예측을 해주는 서비스가 제공되어요.
그 기능에선 다른 사람에게 공개되는 자신의 프로필을 설정할 수 있는데, 그 컷이 흥미롭습니다. 성별을 체크하는 부분이 여성/남성/기타로 나뉘어 있거든요. 자신이 남성 혹은 여성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제3의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거죠. 가볍게 지나칠 만한 컷이지만 세상의 모든 존재, 그 사랑의 형태에 가능성을 열어둔 천계영 작가의 마음 씀씀이가 보이는 듯해 좋았습니다.
그처럼 열린 시선을 내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줄 수 있을까요? 저 새하얀 도화지 같은 어린이들 말이에요.
📢 아이들은 보고 듣는 대로 말한다는 진리
어린이는 세상 모든 말을 주워듣고 자신의 지식으로 흡수합니다. 어느 날부터는 제가 집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도 밖에서 배워오기 시작했어요.
한번은 첫째 아이가 제게 “치마는 여자들만 입는 거래!” 말하더라고요. 저는 경쾌하게 탁구공 쳐내듯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옷을 자유롭게 입는 거야. 남자도 치마를 입고 싶으면 입어도 돼. 엄마도 바지를 입잖아?”
또 한번은 할머니가 화장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더니 무얼 하는 건지 묻더라고요. 할머니가 “화장하는 건데, 여자들이 얼굴 예쁘게 하는 거야~” 대답해주었고, 저는 샤샤삭 어디선가 나타나 다시 한번 공을 받아 쳤습니다. “아니야, 여자들만 하는 건 아니고 누구나 멋있어지고 싶을 때 얼굴을 꾸미는 거야.”
아이가 왕자님인 자신이 구해줄 테니 저더러 공주님 역할을 하라고 시키면, 저는 요리를 아주 잘하는 요리사를 하겠다며 기어코 위험에 빠진 공주 흉내를 거부합니다. 공주님을 좋아해서 납치했다는 에피소드의 만화를 우연히 보게 된 날이면, 좋아한다고 함부로 대하거나 끌고 가서는 안 된다고 일러줍니다.
30년 넘게 여성으로 살아 견딘 자로서, 불편한 상황이 너무나 많고, 그때마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친구들, 주변 어른들, 티브이 내용과 반대되는 내용을 주장하는 게 엄마로서 지칠 만도 합니다. 그러나 지칠 수 없고 지쳐서도 안 된다고 믿어요. 어린이는 보고 듣는 대로 말하거든요.
그게 곧 그 아이들의 세상이 될 테지요. 그 세상을 바로잡을 때까지 핑퐁핑퐁, ✅핑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 사랑과 가족의 형태, 삶의 모양
어린이는 어른을 비추는 거울이라고들 합니다. 아이들은 그 무엇보다 우리의 사회, 우리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비춰 보여줍니다. 어린이의 말투와 생각은 고스란히 어른에게서 기인합니다.
어떤 날, 아이가 들고 온 교재의 왼쪽 면에는 성인 남성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고, 성인 여성과 아이 둘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빈 자리에 누가 빠졌나요?”라 질문이 되어 있고, 아이들은 “아빠!”를 답하게 교육 받습니다. 교재 오른쪽 면에는 ‘아빠의 물건’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립스틱, 손목시계, 서류가방, 하이힐, 손거울, 노트북 등의 물건이 어지럽게 섞여 있습니다. “아빠의 물건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손목시계, 서류가방, 노트북”에 동그라미를 치도록 배웠다고 합니다.
오늘도 “하!”. 아이가 다시 그 교재를 펼쳐보는 일이 없게끔, 재빨리 종이 분리수거 함에 던져 넣었습니다.
아빠가 없는 가족, 엄마가 없는 가족, 아빠 엄마 다 없는 가족, 엄마가 둘이거나 아빠가 둘인 가족, 아이 없이 동거인끼리만 살고 있는 가족, 혼자가 가족인 가족, 한 사람과 반려동물로 구성된 가족, 본인을 제3의 성으로 선택한 한 사람이 누군가와 이룬 가족... 모든 형태의 삶을 어린이가 배워야 한다고 믿어요. 물건은 그것을 사용하는 성별을 특정할 수 없음을, 아이는 일찌감치 보고 듣고 자라야 합니다.
너무나 무수한 사랑과 가족의 형태, 그 다양한 삶의 모양을 우리는 보여주어야 합니다. 핑퐁, 핑퐁, 구독자 님, 공을 받아칠 준비가 되셨나요?
2023.06.23. 순천에서 민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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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a
어린이 학습지, 동화책을 만드는 회사에서 잠시 일했던 사람으로써 완전 공감하는 글이었습니다! 2023년에 아이들의 색칠공부에 아빠는 회사, 엄마는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모습이 등장하고, 남자 친구에게는 야구모자를 여자친구에게는 치마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에서 사회는 변화하고 있지만 또 아직 많이 변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편러처럼 보일 수 있고,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 차이를 존중하지만, 저부터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모습이 없는 지 되돌아 보게 되네요!
읽고 쓰는 마음
와 그러셨군요. 맞아요, 저도 '나만 불편한가?' 싶어 위축될 때도 있지만, 조금씩이라도 바뀌어가길 바라며 목소리를 보태보았어요. 앞으로 아이들이 크면 어느 정도 아이들과도 충돌하는 면이 생기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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