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산문_열아홉, 속초의 밤에 열린 성인식

어른이라는 문 앞에 서서

2023.06.30 | 조회 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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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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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채씨
ⓒ민채씨

 

친구들은 한창 베개싸움 중이었다. 숙소에서 맥주 한 캔씩을 비우고 잠자리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분명. “!” 네 사람 중 하나, 누군가가 베개를 던지며 장난이 시작됐다. 베개를 맞은 또 다른 하나가 자기 베개를 빼내어 휘두르며 한밤중의 베개싸움은 본격화된다. 나머지 하나도 신이 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넷 중 하나, 나만은 유독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누워 있었다. 분명 즐거운 여행 중인데, 내 몸은 왜 꽁꽁 얼어붙었나. 이상하리만치 웃음기를 빼고 차갑게 누워만 있던 밤이었다. 날아다니던 베개들도 멈추고, 결국 다른 셋이 모두 잠들 때까지 나는 눈만 끔뻑이며 누워 깊어가는 밤을 받아들였다.

 

*

열아홉 살짜리 우리 네 사람은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속초를 찾아왔다. 넷은 중학교 2학년 때 가까워져 한동네에서 수년을 함께해온 사이였다. 학교에서 떠난 수학여행도 아니었고 부모님이 동행한 여정도 아니었다. 성인이 되는 문턱 앞에 선 우리는 어른이 없는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모았다. 경기 남부 신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속초까지 왔다.

드라마 가을동화촬영지라는 곳에서 손으로 끌어 움직이는 갯배를 타고, 양양의 낙산사로 이어지는 산길을 오래 걸었다. 어른들 없이는 처음으로 횟집에도 들어갔다. 광어회 한 접시에 소주를 곁들이며 우리는 제법 신이 났다. 밤바다에 나가 폭죽놀이를 할 때는 흥이 절정에 달했다.자유로워. 어른 되는 거 좋아!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야!’ 성인이 된다는 기쁨과 설렘에 흠뻑 젖어 하루가 어찌 가는지도 몰랐다.

 

*

한낮의 희열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바다가 보이는 작은 방 안, 곤히 잠든 친구들을 곁에 두고 나는 벽 쪽에 바짝 붙어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이상하게도 조금 가여운 아이. 열아홉 살 나는 두려웠다. 갑자기 주어진 그 며칠의 여정이. 이십 년 가까이 나를 보듬어 키워낸 모부의 품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통제와 규율로 얽혀 있던 학교를 떠나 영영 내 뜻대로 인생을 살아야 하는 매일이.

가야 할 곳도, 먹을 것도, 잘 곳도 스스로 정해야만 하는 그 짧은 여행이 나를 어디론가 밀어내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완전한 자유를 얻는 일은 몸이 단단히 굳어버릴 만큼 긴장되고 어려운 일이었다. 자유가 데리고 온 책임이 나는 너무 무거웠다. 낯선 이불 속에 누워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무렵, 친구들의 베개싸움이 시작되었다.

 

*

아이는 성인의 문 앞에서 엉덩이를 내뺀 채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던 거다. 도망치지도 못하고. 가여워라. 저 문을 열면 몹시도 낯선 세계가 펼쳐질까봐. 사는 게 무서워서. 동그랗게 뜬 눈을 끔뻑이며 쉽사리 잠들지 못하던 아이. 그 밤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가볍게 안아 속삭여주고 싶다.

괜찮아. 문턱을 넘는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저 어린애 같은 너의 날들이 계속될 뿐이지. 서른이 넘어도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니까? 그럼 언제 어른이 되냐고? 몰라!

네 말대로 성인이 되는 건 즐거워. 자유롭지. 선택? 그건 결국 매일 네 힘으로 해야 하지. 두려울 거 없어. 답이 없거든. 어차피 누구도 결말이 어떻게 될지 미리 알지 못해. 그냥 네 맘대로 정해!

그러니 가여운 아이야, 사랑스러운 아이야. 몸도 풀고 맘도 풀어. 고개를 들어봐. 베개를 들고 일어나봐. , 세 친구들이 네가 베개를 들고 자기들 품으로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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