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마을은 뉴스에 날 만한 사건이라곤 벌어지지 않는 조용한 동네였다. 깨끗하고 살기 좋은 우리 A 마을이 갑자기 뉴스에 난 건 생존율 때문이었다.
두 달 전, 치사율이 수십 퍼센트인 변이 바이러스의 인체 감염과 전염을 발견하며 정부가 갑작스럽게 외출을 금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을 저녁 무렵 사이렌이 울리며, TV와 라디오, 각종 온라인 채널과 거리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일방적으로 방송이 송출됐다. 일터, 술집, 거리에 남아 있던 이들도 모두 경찰에 의해 귀가 조치를 당했다. 병원이나 요양원은 통째로 봉쇄되어 문이 닫혔다.
먹거리를 구하러 장을 보러 가는 일조차 불가능했다. 내일 당장 외출을 하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게끔 식량을 비롯한 긴급 구호 물품을 집집마다 보내준다고 공지했던 정부는 이상하게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사람들은 며칠 정도는 괜찮다는 듯 믿고 기다렸다.
일주일쯤 지나니 ‘냉파 메뉴’ 같은 것들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일명 ‘냉장고 파먹기’, 냉동고에 오랫동안 얼려만 두었던 명절 음식과 각종 식재료를 활용한 레시피가 인기였다. 열흘쯤 지나니 불만과 불안이 터져 나왔다. 보통의 가정에서 보관하고 있던 식재료가 동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냉장실 속 신선 재료를 다 먹어치운 뒤부터는, 냉동 식품과 상온 보관 기간이 긴 감자나 고구마 등으로, 나중에는 찬장에 들어 있던 라면 몇 개와 레토르트 식품으로 식탁이 채워졌다.
먹을 게 완전히 떨어져 하는 수 없이 건물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낭설이 SNS에 떠돌았다. 근거가 없으니 그 말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괜히 나갔다가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그나마 집 안에서 다소간의 희망을 품은 채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고 창문을 열어 도움을 요청했다. 배고픈 아이를 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반응도 도움도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따금 거리에 사이렌이 울리며 안전한 집 안에서 정부의 구호를 기다리라는 방송이 나올 뿐이었다. 우리 안에 가두어진 사람들.
정부는 어디서 무얼 하는 걸까? 혹시 그 치명적이라는 바이러스 때문에, 구호 물품을 나눠줄 일을 할 사람이 이미 다 죽어나간 건 아닐까? 전기도 물도 통신도 그대로인데? 아니, 실은 마음먹고 우리를 전부 죽이려는 거 아니야? 죽음으로써 우리를 통제하려고? 거대한 생존 게임을 버틸 수 없는 약자를 이 사회에서 퇴출시키려고? 그 어마어마한 전염병 때문에 집 밖엔 벌써 지구 종말의 상황이라도 닥쳤을까? 어느 영화에서처럼 부자들과 고위 관료들은 거대한 우주선 같은 걸 타고 이미 지구 밖으로 탈출한 게 아닐까? 그들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
먹을 게 넘쳐나는 시절에 기구하게도 아사한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많다고 했다. 다른 도시, 다른 동네에 비해 A 마을엔 유독 살아남은 이들이 많았다. 우리는 햄과 참치 따위의 통조림을 먹고 지냈다. 몇 명의 기자가 A 마을에 주목해 발견한 사실은 그들의 집에 유독 통조림이 넘쳐났다는 점이었다.
그해 여름 두 달 가까이 우리가 우리 안에서 꼼짝없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통조림 덕분이었다. 어떻게 상황을 예견한 듯이 가가호호 모두들 그렇게 많은 통조림을 가지고 있었느냐 묻는다면, 그 점이 우리도 이상할 따름이다.
정부가 사람들을 통제하기 두어 달 전쯤, 유명 B 건설사 사장인 C씨가 자신의 고향이었던 A 마을의 행정 단위 구역에 속한 모든 주민에게 통조림 세트를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다. 현 주민등록 상 그 동네에 살고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조건 없이 선물을 받아갈 수 있었다. 수령을 확인하는 용지에서 본인의 주소지와 이름을 확인하고 자필 서명만 하면 됐다. 공짜로 준다 하니 일단 선물 세트를 양손 무겁게 받아 든 모두가 궁금해했다.
“근데 이건 왜 주는 걸까?”
“혹시 서명한 용지가 바꿔치기 되어서 다른 데 쓰이는 거 아닐까? 무슨 이상한 건물을 짓는 데 대한 동의라든지?”
금의환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통조림 선물 세트는 가난했던 그가 내로라하는 건설사 사장이 되어 고향 사람들에게 돌아와 표한 마음이었다. 자신이 살고 거닐었던 동네의 친절했던 이웃들, 그 모두가 그에게는 친구였고 형제였다. 고마운 마음이 어쩌다 수많은 마을 사람들을 살렸다.
몇십 개의 통조림을 식구들과 조금씩 아껴 먹는 내내 나는 얼굴도 모르는 B 건설사 사장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두 달이 꼬박 흘렀을까, 통제된 그날처럼 예고도 없이 거리에 다시 한번 사이렌이 울렸고, 오늘도 기다리라는 말뿐일까 푸념을 늘어놓는 순간, 변이 바이러스가 더 이상 전파되지 않을 것으로 확인되니 모든 시민이 집 밖으로 나와도 좋다고 녹음된 음성이 건조하게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해방.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와 마주친 이웃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며칠 뒤 우리 마을을 찾아온 한 기자와 맞닥뜨렸을 때, 나는 그들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 처음부터 뭘 알고 있던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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