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 포르투갈에 가본 적 있나요?
저는 2016년 늦여름, 9박 10일 동안 포르투갈의 리스본, 포르투 일대에 머물렀어요. 당시 연애 중이던 현재의 남편이 좋아서 제 나름대로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고, 만약 가정을 이룬다면 그 전에 혼자서 갈 수 있는 만큼 가장 멀리 떠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겁 많고 수줍음도 많은 내향인이 홀로 용기를 냈던 여행이기도 했어요.
돌이켜보니 탁월한 선택이 맞았던 게, 그 여행 이후로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생기고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났던 건 그게 정말 마지막이었거든요. 아무 때나 일어나서 아무 거나 먹고 머물고 싶은 만큼 원하는 곳에 머물기. 그것이 지금의 저에게는 가장 간절한 자유인지라, 오랜만에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영민, 북노마드, 2018)를 펼쳐 들었습니다.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 ✅영민이 독특한 시선으로 기록한 포르투갈 여행 에세이입니다.
사실 이 책은 제가 외주자로서 편집에 참여했던 책이에요. 교정을 보고 표지 카피와 보도자료를 썼지요. 제목도 제가 지었는데요! 이 책에 각별한 애정이 남은 까닭도 바로 제목에 담겨 있어요. 작업하는 동안 영민 작가의 여행 이야기가 자꾸 제게 말을 거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때요?’ 하고요. 그 물음에 답하며 자주 사진첩을 열어보고 책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소중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포르투갈이 어땠느냐 하면, ✅포트와인, 또 포트와인, 다시 포트와인!이라고 할까요. 떠나기 전만 해도 600쪽이 넘는 『불안의 책』(페르난두 페소아, 문학동네, 2015)을 야심차게 가방에 넣었고, 페소아가 살았던 리스본이 과연 어떤지 몸소 겪고 오자며 출판인 나름의 의욕에 차 있었는데요. 워낙에 포트와인의 맛이 달고 좋기도 했거니와, 여타 와인보다 도수가 높은 포트와인에 살짝 취해 있는 느낌이 좋아서 틈날 때마다 계속 들이켰습니다.
여행 중 그나마 멀쩡했던(?) 건 포르투에 머무는 동안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를 집필했다던 ✅마제스틱 카페(Majestic Café)에 들러 긴 시간 글을 쓸 때였어요. 제가 살며 겪었던 이별에 대해 적었고, 그때 쓴 글의 많은 부분이 저의 졸저 『편지할게요』(김민채, 그책, 2021)의 초고가 되었답니다.
여성 여행자 홀로 반쯤 취해 열흘을 보낼 수 있었던 건 포르투갈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어요. 사실 포르투갈에는 관광업 외에 자국민이 종사할 만한 산업이 잘 발달하지 않다고 해요. 식민제국이었던 포르투갈은 종전 이후로도 오랫동안 식민지를 포기하지 못해 정작 자국의 산업 발전에 소홀했기 때문이라 하더라고요. 실제로 많은 건물들이 비어 있고 임대 표시가 곳곳에 걸려 있었죠.
대신 도시를 채운 것은 배낭을 멘 여행자들. 이 도시가 낯설어 헤매는 사람투성이라 저는 그 틈에 끼인 채 안락함을 느꼈어요. 모두가 나와 닮았어! 설렘과 기쁨, 두려움에 찬 저 얼굴! 서로를 해하는 대신 걷다 멈추며 순간을 느끼는 데 골몰할 얼굴들. 아마 포르투갈에서 영민 작가와 마주쳤다면 우리의 얼굴도 닮아 있지 않았을까요?
영민 작가의 시선은 자주 아래로 향하는 듯해요. 직접 그리고 찍은 그림과 사진, 여행지에서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가 책 곳곳에 콜라주되어 있는 이 책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 같답니다. 그가 포르투갈에서 귤이 그려진 사탕 껍질을 주워 수첩에 붙이는 것에서부터 독립출판을 시작했듯, 그의 시선은 자주 길에 떨어진 것, 버려진 것들로 향합니다. 사탕 껍질과 영수증, 트램 티켓, 작은 꽃잎과 나뭇잎 같은 것을 수집하는 마음. 보잘것없어 보이는 데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 기꺼이 허리를 굽혀 자그마한 조각을 모음으로써, 그의 포르투갈은 온전해집니다.
저는 인스타그램에서 ✅정세랑 소설가의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데요. 그의 수집용 해시태그인 ✅‘#사람들이길에두고가는아름다운것들’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껍질 없는 사탕 한 조각, 안경, 신발 한 짝, 팔찌, 참외 한 알, 머플러……. 누군가가 떨어트리고 잃어버린 것들이 사진 속 길 위에 놓여 있지요. 꽤나 뜬금없고 엉뚱한 사물이 등장할 때면, ‘신기하게도, 어쩜 이분 앞에만 이런 풍경이 잘 나타날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말이지요, 세상은 그가 보고자 하는 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 처음 가보는 동네에서 길을 잃어보는 자에게, 천천히 걷고 멈추는 자에게, 아름다움을 찾아 줍고 찍고 기록하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풍경이 있으니까요. 영민 작가의 자그마한 수집 수첩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고 있듯이 말이죠.
그래서 오늘은 조금 천천히, 순간해 골몰해 걸어볼까 합니다. 구독자 님,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
2023년 7월 7일 순천에서 민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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