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북 샵>을 처음 봤던 건 몇 해 전 어느 영화제에서, 그 후로도 몇 번 더 이 영화를 봤지만 금세 잊고 지냈어요. 지난여름 부산에 갔다가 한 책방에서 똑같은 이름의 소설책을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영화의 원작 소설이었고, 영화의 감동을 희미하게 떠올리며 책을 샀지요.
영화를 봤기에 어느 정도 이야기의 흐름을 아는 상태로 읽었지만, 읽을수록 점점 잘 소개해 볼 자신이 없어졌어요. 이야기의 결말이 그다지 밝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영화에서 보여주는 작은 통쾌함마저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요즘의 제가 느끼는 심정과는 매우 가까워서 다시금 이 이야기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주인공 플로렌스는 하드버러에서 살게 된 지 8년이 넘는 해에 바닷가의 낡은 건물을 사 동네 최초로 서점을 엽니다. 그동안 서점이 없었던 그 동네에서 플로렌스는 나름대로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죠. 영화에선 모든 에피소드가 다 나오지 않지만 소설 속에서 플로렌스의 서점은 책을 대여하는 일도 하고, 큰 도시에서 유명해진 책을 서점으로 들여오는 일도 합니다. 하지만 플로렌스의 서점 건물을 호시탐탐 노린 가맛 부인의 여러 공작으로 결국 플로렌스는 서점 문을 닫고 하드버러를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서점을 운영하는 내내 플로렌스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퉁명스러운 것 같지만 서점의 궂은일을 도와준 레이븐, 해양소년단 월리, 어리지만 똘똘한 서점 직원 크리스틴,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준 브런디시 씨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했는데 왜 플로렌스의 서점은 문을 닫아야만 했을까! 저는 속상한 마음에 입술이 비죽 나왔어요. 결국엔 돈, 나쁜 누군가의 욕심과 권력 때문이라고, 그래서 불쌍한 플로렌스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플로렌스가 정말 불쌍하고 실패한 삶을 살았던 것일까, 서점을 닫았지만 그게 무조건 슬퍼하고 분하기만 할 일일까, 만약 이런 결과를 알았더라면 서점을 애초에 열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것이 플로렌스가 ‘스스로에게, 가능하다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으니까요.
나답게 사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보여주는 일이겠지요. 그 누구보다 내가 나답게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을 테니까요. 혹시라도 나답지 않은 선택을 할 때, 그것을 지적해 줄 수 있는 친구를 곁에 둔 사람은 큰 행운을 누리는 사람일 거예요.
나답게 사려는데 세상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아서 괴로운 시간이, 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힘이 들고 괴로워도,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더라도, 그런데도 잃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나로서 사는 일. 끝까지 그것을 지킨 사람을 과연 누가 실패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다움을 지켜내며 오늘 하루를 살아낸 당신에게, 다시금 마음 담은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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