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수필] 10월 25일

2024.11.01 | 조회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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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편지

춤추는 거북이 무구가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떨릴 게 뭐 있어, 라고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졌다. 오늘 대체 몇 명이 올까? 새로 만든 책을 가지고 독자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 ‘수필집 출간기념 하루 참여 수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행사를 준비했다. 막판에 일정이 살짝 꼬여서 뒤늦게 온라인 홍보를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인천에서도 비슷한 행사를 했을 때 결국 동생들을 잔뜩 동원해서 머릿수를 채웠던 일이 떠올랐다.

행사 며칠 전에 미리 꽃을 종류별로 주문했다. 집 앞으로 배달된 꽃을 꺼내 한 송이씩 잎과 줄기를 다듬고 시원한 물에 꽂아두었다. 이곳저곳 선물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내가 준비한 이날에 꽃이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모든 일정이 끝난 뒤 참여한 사람들에게 작은 꽃 한 송이라도 건네주고 싶었다.

장소를 빌려둔 책방에 가기 전에 잠시 시간이 나서 좋아하는 동네 카페에 들러 푸딩과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한숨 돌렸다. 하루 전날 급하게 사장님께 부탁해서 카페에 홍보 포스터를 붙여둔 터라, 사장님도 오늘 내가 행사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주문한 푸딩 위에 서비스로 아이스크림 한 스쿱이 올라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호의에 달콤한 찰나를 누리고, 시간에 맞춰 카페를 나섰다. 동네 마트에 들러 작은 감귤 한 봉지와 초콜릿 비스킷 두 박스를 샀다. 책방에 도착해 책상과 의자를 옮기고, 빔 프로젝터를 켜서 행사 이미지를 띄우고, 꽃장식과 새 책들을 배치하고, 간식을 준비했다.

시간이 되자 하나둘 사람들이 노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편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 예전에 일했던 센터에서 만난 학생, 그리고 십 년 만에 연락이 닿아 다시 만나게 된 언니가 왔다. 나를 포함해 열 명, 단출하고 소소한 모임이었다.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다.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데 내가 계속 편하게 하라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진행자도 나였고, 작가도 나였고, 기획자도 나였다.

일단 행사가 시작되었으니, 책을 펼쳐 들고 한 편씩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하나의 이야기와 연결된 질문을 꺼내고, 책에는 다 담지 못했던 뒷이야기를 말했다. 총 다섯 편의 글을 낭독한 뒤에는 책 안에 미리 준비했던 질문에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을 불러 한 자리에 모은 것이지만, 참여자들 각각은 서로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주어진 시간 동안 열심히 자기 이야기를 적고 있었고,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기 이야기를 낭독하겠다고 했다.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구겨져 있던 마음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자리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거창하고 대단한 것 아니어도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그래서 그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책을 만들며 바라던 모습이 눈앞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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