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도서: 7 Strategies, 제로투원, 혁신의 딜레마, 캐즘 마케팅, Category Pirates, Lost and Founder, 경영의 실제, The Cold Start Problem, Why Startups Fail, Levers, 디커플링, 블리츠스케일링
"유니콘이 되는 스타트업 (또는 BM)의 비밀"과 비슷한 제목으로 성공한 사업 아이템의 공통점을 분석하는 글이나 동영상을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내용의 이야기는 행사나 아티클 뿐 아니라 제로투원이나 혁신의 딜레마와 같은 유명 저서들에서도 다뤄지고 있습니다.
사업을 펼쳐나갈 때 단순히 팀원이나 실행력 뿐 아니라 어떤 시장의 아이템을 선택했는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하셨거나 느끼고 있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혁신에도 패턴이 있을까요?
이번 시리즈는 혁신의 패턴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물론, 성공적인 혁신의 패턴이 곧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식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감히 사회의 혁신 전반에 대해 직접 만든 프레임워크를 제공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주변에서 보고 들은 사례들과, 개인의 경험, 그리고 수많은 저서들을 융합해, 스타트업 업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지혜를 성공적인 혁신의 패턴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겠습니다.
혹시 질문이나 더 읽고 싶은 주제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에 남겨주세요. 추후 시리즈로 다뤄보겠습니다!
0. 혁신이 도대체 뭐야
혁신에는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스타트업 업계에서 추구해야하는 혁신은 소비자에게 Order of Magnitude, 즉 10배 더 나은 가치를 주는 급진적인 혁신입니다.
이 때 가치의 기준은 그 제품마다 소비자에게 전달해야하는 핵심 가치로 정의됩니다. 어떤 제품의 경우 10배 낮은 가격일 수도 있고, 어떤 제품(SNS 등)은 10배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가치로 측정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래야만 할까요? 이는 10배 정도의 급진적인 발전이 없을 경우, 소비자들에게 명확한 가치를 체감시켜 기존의 시장을 뒤엎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쟁자가 많을 경우 2배나 4배 정도의 개선으로도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2000년도의 친환경 에너지 회사들의 경우 배터리 효율을 1.5배, 또는 2배 정도 개선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급진적인 혁신을 이루어낸 테슬라를 제외한 나머지는 하나도 빠짐없이 망했습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점진적인 혁신이 아닌 급진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따라서 크고 작은 발전이 모두 혁신이고 기존의 시장을 천천히 개선함으로써 성공적인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창업을 "작게 시작하라"고 합니다. 실제로 조금만 인터넷을 찾아보면 일개 스타트업이 파고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틈새 (niche)를 찾아야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급진적인 혁신을 추구해야한다"는 말과 "작게 시작하라"는 말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둘은 상충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작게 시작하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10배의 가치를 주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상의 크기를 줄이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10배의 가치를 주기는 어렵기 때문에 먼저 우리가 10배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 집중하라는 의미이지, 제공하는 가치의 크기를 줄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즉, 10배 나은 가치를 주는 급진적인 혁신 대신 1.3배 나은 가치를 먼저 추구하는 것은 작게 시작하는 일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스타트업이 추구하는 혁신은 소비자에게 10배 더 나은 가치를 주는 혁신입니다. 초기에는 대상이 작다는 것이지 혁신의 크기가 작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1. 제로투원의 의미
(1) 가장 쉬운 길: 0 to 1
그렇다면 10배 이상의 가치를 가장 쉽게 제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떤 영역이라도 기존의 방식에 비해 10배의 가치를 주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미 10의 가치를 주고 있는 제품을 100의 가치를 주도록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당장 노트북을 10배 더 좋게 만드는 일을 상상해보시면 막막한 것처럼, 엄청난 자원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자원이 극도로 부족한 스타트업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답은 0에서 1, 없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스타트업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1에서 10도 아닌, 0에서 1을 만드는 것이 사실상 유일하면서도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0 에서 1은 이론적으로는 무한한 가치의 상승이 있기 때문입니다.
0에서 1이라는 말의 의미는 기존에 충족되지 않던 니즈를 새롭게 충족시킨다는 뜻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일입니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일은 기존에 충족되지 않는 니즈를 충족시키는 제품을 만들고, 이런 제품이나 서비스에 특정 집단의 수요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위의 정의에 따르면 새로운 시장 (0 to 1)을 만드는 일은 아래의 세가지 요소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1) 해결되지 않은 니즈 2) 이를 해결해주는 제품 3) 특정 대상의 수요 창출
예를 들어, 사막에서 난로 파는 일은 3) 사막 민족의 1) 밤 시간 추위라는 특정 대상의 해결되지 않은 니즈를 2) 사막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기난로라는 제품을 통해 공략하는 것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즉, 하시는 사업에서 위 세가지 요소를 체크해보는 것으로 사업이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일 (스타트업이 이뤄낼 수 있는 혁신)에 집중하는지 여부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2) 스타트업의 혁신은 기술의 발전이다
그런데 스타트업은 자원이 부족합니다. 부족한 자원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말은,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찾아낸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즉,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자원의 효율을 증가시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은 넓은 의미에서 기술과 동일한 말입니다. 기술은 복잡한 기계장치나 코드일 필요는 없습니다. 기술은 원래 자원을 과학을 통해 활용하는 방식을 통틀어 부르는 단어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니즈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제품으로 특정 대상의 수요를 이끌어내려면 자원을 기존보다 더 효율적으로 다루게 되고, 이 사업 방식이 바로 회사의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가치가 0에서 1로 증가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똑같은 자원의 가치가 무한대로 증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타트업은 자원의 부족을 효율적인 사용방법으로 극복해내며 그 과정에서 기술을 발전시켜 사회 전반의 자원 효율을 급진적으로 증가시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타트업이 0 to 1 혁신을 이뤄내면 이는 기존 자원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우는 일이기 때문에, 소수의 스타트업의 성공이 다른 망하는 창업 기업들에 낭비되는 수많은 자금과 노동력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3) 발명하라
즉, 스타트업의 혁신은 이런 새로운 자원 활용법을 만들어내는 일, 발명에서 시작합니다.
발명이란 그 명칭부터 '새로운 이름을 낳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발명은 새롭게 이름 붙일 수 있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카테고리를 마구 만들면 얼마든지 발명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위에서 다룬 "특정 대상의 수요 창출"이라는 조건에서 어긋납니다. 수요가 없으면 이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일이 아닙니다.
혁신으로 이어지는 발명은 주로 다른 사람들이 몰랐거나, 이전에는 불가능했거나, 중요하지 않아서 시도하지 않은 분야에서 이뤄집니다. 즉, 여태껏 니즈가 충족되지 않은 이유가 있는게 정상입니다. 그래서 주로 기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때 성공적인 혁신 기업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자유치를 진행할 때 Why Now, 당사가 하려는 것이 왜 여태까지 불가능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이는 무슨 변화가 있었기에 당사가 이런 혁신을 이뤄낼 수 있게 됐는지에 대한 타이밍과 관련된 질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혹시 제대로 읽어보실 기회가 없으셨다면 이번 챕터에서 설명된 내용이 피터 틸의 저서 '제로투원'의 제목의 의미입니다.
2. 시장 정의 문제
창업을 해보신 분이라면 go-to-market 또는 시장 전략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는 결국 제품에 대한 수요를 갖는 소비자를 어떻게 정의하고 다가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피터 틸은 10배의 가치에 대한 증거를 시장 점유율로 삼았습니다. 이는 그 정도로 우월한 가치를 주면 소비자의 압도적인 선택을 받는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내용입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대안에 비해 우월한 가치를 주면 자연스러운 독점 상태가 되기 때문이죠. 특히 경쟁자가 없고 대안이 없는 상태 (0인 상태)라면 1을 제시하는 유일한 회사가 되는 것으로 자연스레 새로운 카테고리를 독점하게 됩니다.
(1) 작은 시장
스타트업은 자원이 부족한 만큼, 없던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 (0 to 1)이더라도 모든 사람의 니즈를 충족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위에서 설명한 '특정 대상'을 작게 좁힐 필요가 있습니다.
자원의 제약 뿐 아니라, 그만큼 대상이 작아야 아직 기존의 플레이어들이 이미 뛰어들지 않았고 대안이 없는 상태일 확률이 높습니다. 즉, 초기 대상이 작아야 0에서 1로 가는 혁신의 기회를 다른 큰 회사들이 이미 점유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피터 틸은 항상 창업자들에게 '작은 시장의 큰 점유율을 가지고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디커플링이라는 개념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디커플링이란 기업이 소비자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니즈가 충족되지 않는 특정 단계만을 분리해 집중 공략함으로써 혁신을 이뤄내는 일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이동을 위한 자동차의 운전과 소유를 분리해 소유 없는 운전에만 온전히 집중한 비즈니스 모델이 쏘카 같은 렌트카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운전이란 행위와 '자동차를 활용한 이동' 자체를 분리해 이동에만 집중한 모델이 우버와 같은 라이드 헤일링 (이동 수단 호출) 비즈니스입니다. 디커플링이라는 것 자체가, 기업이 전달하는 우월한 가치를 특정 대상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운전하고 싶은 사람)에 한정 짓는 것이죠.
혁신의 딜레마 또한 비슷한 프레임워크를 제시합니다. 혁신의 딜레마란, 대형 기업들이 0에서 1로 가는 발명 자체는 오히려 먼저 선도하지만 결국 이런 발명을 올바른 시장에 적용하는 것은 스타트업이라는 모순을 의미합니다.
혁신의 딜레마에 의하면, 제로투원의 가능성을 품은 기술은 새로운 대상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에 특히 연구실에서 우연히 발견된 경우 기존의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기술이 모든 소비자에게 가치를 줄 때까지 고도화되려면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먼저 이 기술이 충족시킬 수 있는 니즈를 갖고 있는 새로운 대상을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작은 그룹을 거점 시장으로 삼아야합니다. 그런데 그런 거점 시장은 처음에는 그 크기가 너무 작아보이기 때문에 기성 기업들은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작은 크기의 CPU가 처음 나왔을 때 처음에는 대형 제조사들이 이 개발을 선도했습니다. 대형 제조사들의 기존 고객이었던 데스크톱 PC 회사는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대형 CPU 제작사들은 이 기술을 버렸고, 이 기술을 스타트업이 뛰어들어 노트북 제조사에게 공급하면서 차차 기술이 발전하였고 종국에는 데스크톱 PC 회사까지도 이런 스타트업이 납품하는 초소형 CPU를 활용하게 되었죠.
대형 CPU 회사에게는 초기 노트북 시장은 그 규모가 너무 작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노트북 시장이 점점 성장함에 따라 초소형 CPU의 성능도 점점 데스크톱 회사들도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되었고, 결국에는 데스크톱 시장까지 정복해버렸습니다.
(2) 린 스타트업도 결국...
결국 어떤 작은 시장 (소비자 군)을 목표로 할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핵심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시장을 찾는 것입니다. 시장이 너무 크면 이미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 경우가 있고, 그렇다고 너무 작게 줄이면 (ex. 홍대에 있는 영국 음식점) 사실상 수요가 있는 대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느 정도 크기의 시장을 먼저 공략하는 것이 적당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다면 일단은 가장 작은 쪽으로 공략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너무 큰 시장을 공략할 경우 똑같이 실패하더라도 그만큼 자원이 더 많이 소모됩니다. 반면, 너무 작은 시장을 공략할 경우 실패하더라도 훨씬 더 적은 자원으로 실패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제품이 정말 예측한대로 대상의 니즈를 충족해줌으로써 수요를 끌어낼 수 있는지를 작게 실험하면서 낭비되는 자원을 줄이는 창업 방법론이 린 스타트업입니다. 린 스타트업에서는 이를 제품-시장 궁합 (product-market fit)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부릅니다.
3. 확장은 어떻게 해?
이 때, 평생 시장이 작으면 큰 기업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진정으로 사회 전반에 작동하는 큰 혁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즉, 10배 이상의 새로운 가치 (0 to 1)를 작은 대상에게 주는 것에 성공했다면,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도 이 가치를 전달할 때가 되었습니다.
즉, 스타트업의 확장이란 작은 대상에게 우월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 대상의 범위를 늘려가는 과정입니다. 이는 단순히 마케팅이나 영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월한 가치를 더 많은 대상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추가적인 대상의 니즈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제품이나 서비스가 개선되고 고도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초기 시장을 넘어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갈 때 채즘(Chasm; 틈)이 발생합니다.
이는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똑같지 않고, 여러가지 타입으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격차는 새로운 것을 먼저 시도해보는 얼리 어댑터와 인구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실리주의자 사이에 있습니다.
실리주의자들은 수가 많을 뿐더러, 가격에 덜 민감하고 한번 제품을 선택하면 오랜 기간 충성 고객으로 남기 때문에 스타트업에게는 가장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안정적인 제품을 원하며 얼리 어댑터와 다르게 제품이 니즈의 일부만 충족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본인들의 필요 전부를 충족시키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으며, 구매 결정을 내릴 때 얼리 어댑터의 의견보다는 다른 실리주의자들의 추천과 의견을 가장 많이 참고합니다.
따라서, 얼리 어댑터들이 당사의 제품을 좋아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성공적인 혁신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있는 실리주의자들은 시큰둥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한번 선택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실리주의자들 안에서도 하나의 고객 군에 모든 자원을 집중해 작은 그룹을 빠르게 점령하는 것입니다. 마치 6.25 때 인천이라는 하나의 지점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 탈환했던 것과 같은 원리이죠. 즉, 당사의 제품이 공략할 수 있는 고객들 중에서 하나의 고객 군에 집중해, 이들에게 완전한 제품을 전달하기 위해 모든 개발과 판매 노력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의 실리주의자 그룹을 사로잡았다면, 계속해서 하나씩 도미노처럼 가까운 그룹을 공략하게 됩니다. 일단 하나의 그룹만 뚫으면 다른 분야라 할지라도 이미 점령한 분야의 실리주의자들과 연결되어있을 확률이 높고, 실리주의자들끼리의 추천은 구매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영업이나 마케팅이 갈수록 쉬워집니다. 또한, 한 그룹의 니즈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도록 제품을 이미 고도화했다면, 다음 그룹을 위한 추가적인 제품 고도화도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피터 틸은 그래서 작은 시장을 빠르게 점령하고, 인접한 다른 작은 시장을 하나씩 점령하는 것을 스타트업의 올바른 확장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작게 시작해 확장하는 자세한 방법은 아래의 아티클을 확인해주세요.
그런데 독점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단순히 높은 점유율 뿐 아니라, 높은 점유율이 지속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있습니다. 점유율은 순간이지만 독점은 지속되니까요. 그래서 진입장벽이 필요합니다.
4. 이 회사의 해자가 무엇인가요?
장기적으로 특정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려면, 진입장벽이 있어야 합니다. 진입 장벽이 없으면 초기에 잠시 반짝한 뒤, 수많은 경쟁자들에 의해 사라지게 됩니다. 이는 시장의 매력도가 증명됨에 따라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입니다.
(1) 진입장벽 때문에 성장 속도에 미치는 것
위에서 설명한대로 채즘을 건너서 확장을 하려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규모를 키워 진입장벽을 세우려는 목적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정말 스타트업은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 것이죠. 그래서 와이콤비네이터의 창업자 폴 그래햄은 스타트업은 성장을 최우선에 두는 기업이라고 정의합니다.
링크드인의 창업자 리드 호프만이나 페이팔 창업자 피터틸 모두 독점을 하는데 distribution (제품의 판매)가 제품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단 0에서 1을 만들어낸 뒤에는 경쟁자를 이겨낼 때,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1인지 1.3인지는 점유율에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채즘을 건너 규모를 키우려면 제품 자체보다도 마케팅과 영업 등을 통해 알맞은 고객 군을 빠르게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블리츠스케일링이라는 전략도 고객을 빠르게 선점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입니다. 블리츠스케일링이란 효율을 생각하지 않고 거대한 자원을 투입해 기업의 확장 속도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전략입니다. 그 목적은 빠르게 확장해 진입장벽을 세우고 경쟁자를 떨쳐내기 위함입니다.
(2) 5가지의 해자
기업의 독점을 위한 해자 구축에는 위에서 설명한 규모 확장도 중요하지만, 실제 해자의 종류는 더 다양하며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총 5가지가 있습니다.
1) 지적재산권
먼저 지적재산권 (IP)가 있습니다. IP는 법률적으로 보장된 지식, 정보, 기술이나 표현 등에 대한 소유권입니다. 이는 직접적으로 소유권을 제공하기 때문에, 법률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일정 기간 동안 특정 방식에 대한 독점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특허나 저작권으로, 제약 회사의 신약이나 마블의 캐릭터가 지적재산권으로 인정되어 그 독점권을 보호 받습니다. 이 때문에 제약 회사는 특허 등록과 법적 승인에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력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디즈니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지적재산권 침해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무인도에 조난 당했을 때 미키 마우스를 그려두면 디즈니가 잡으러 올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죠.
2) 규모의 경제
규모의 경제란 기업의 생산 규모가 증가할 때, 개당 비용이 줄어드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제품을 100개 만들 때는 개당 원가가 10000원이라면, 똑같은 제품을 십만 개 만들 때는 원가가 3000원으로 줄어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규모의 경제는 고정 비용의 감소와 노하우의 축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면, 처음 공장을 짓는데 100만원이 들었는데, 제품을 100개만 생산한다면 제품 하나 당 만원의 공장 건설 비용이 포함된 셈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100만원으로 공장을 짓고 제품을 100만개 생산한다면, 제품 하나 당 공장 건설 비용은 1원씩 들어간 셈이 됩니다. 이런 원리를 통해 사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제품 당 생산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죠.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런 규모의 경제가 단순히 제조업 뿐 아니라 콘텐츠 사업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가 1000억을 들여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구독자가 10억 명이라면 구독자 당 100원 정도의 원가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근데 만약 구독자가 1억 명 밖에 없는 경쟁사가 똑같이 1000억을 들여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면 구독자 당 원가는 1000원이 됩니다. 이 경우, 구독자가 적은 플랫폼은 똑같은 예산을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하기 굉장히 부담스럽게 됩니다.
즉, 규모의 경제로 인해 일정 규모 이상으로 먼저 확장한 기업에게는 유리한 비용 구조를 활용해 경쟁자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3) 네트워크 효과
네트워크 효과는 추가적인 사용자의 유입이 다른 사용자에게 제품을 더욱 가치있게 만드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배달의 민족에 가게가 하나 추가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어나게 됩니다. 그 경우 소비자에게 가치가 올라가고, 만약 소비자가 이로 인해서 더 가입한다면 다른 가게들에게도 플랫폼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이렇듯 네트워크 효과의 대표적인 예시는 갖가지 플랫폼들입니다. 물론, 플랫폼이 아니라 제조업에도 네트워크 효과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예시로는 휴대전화가 있습니다. 전세계에 휴대전화 사용자가 한 명만 있을 때는 핸드폰이 아무런 가치도 없지만 두 명이 핸드폰을 사용하면, 사용자가 한 명 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머지 두 명 모두에게 가치가 생깁니다. 만약 휴대전화 사용자가 3명이 된다면 단순히 2명에서 3명으로 느는 것이 아니라 소통할 수 있는 조합이 A-B, B-C, C-A 이렇게 3가지가 생깁니다. 즉, 핸드폰을 써서 통화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기존에 A-B 하나의 조합에서 세 개의 조합으로 3배가 되는 것이죠.
네트워크 효과도 마찬가지로 먼저 사용자 수를 늘리는 편이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배달의 민족에 매우 많은 수의 가게와 소비자들이 가입한 상태라면, 새로운 소비자와 가게 모두 신생 플랫폼에 들어갈 이유가 없고, 자연스레 배달의 민족에 가입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물론, 쿠팡이츠처럼 엄청난 비용을 들여 고객을 유치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런 비용이 후발주자에게 굉장히 큰 부담을 주게 됩니다.
4) 전환 비용
전환 비용이란 한 제품에서 경쟁사의 다른 제품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이미 아마존 웹 서버에 모든 데이터와 코드를 보관중이라면 구글의 서버로 이를 옮기는 일은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게 됩니다. 단순히 비용 뿐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리스크까지 있죠. 그래서 한번 아마존 서버를 사용하기 시작한 소비자들은 구글로 잘 갈아타지 않습니다.
이렇듯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새롭게 투자해야 되는 시간이나 비용 때문에 다른 제품으로 갈아타기가 까다로운 제품의 경우 전환 비용이 강력한 진입장벽으로 작동합니다. 서버 이외에 SNS도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한번 SNS에서 친구를 맺고 게시물들을 올리다 보면 이미 오랜 시간을 들여 축적한 게시물과 팔로워를 버리고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환비용이 높은 업계에서는 유저를 선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집니다. 후발주자가 유저를 선점하려면 시간이 오래 지났을수록 굉장히 많은 혜택과 마케팅 비용을 사용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구글이 아마존의 유저를 뺏어오기 위해 1억의 무료 쿠폰을 주고 있는 상황임에도 웹 서버 점유율은 아마존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5) 브랜드
마지막으로 브랜드가 있습니다. 브랜드의 영향력은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설명되기 쉽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상표를 보지 않고는 보세와 명품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명품 브랜드의 옷을 선호하고, 코카콜라와 펩시의 맛 차이를 느끼지 못함에도 무조건 코카콜라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브랜드는 크게 감정적인 가치와 제품의 질에 대한 신뢰, 두 가지를 통해 소비자들을 사로잡습니다. 감정적인 가치는 애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드는 프리미엄한 느낌, 내가 이 제품을 소비한다는 사실만으로 느껴지는 일종의 뿌듯함과 설렘에 가깝습니다. 제품에 대한 신뢰는 애플 제품은 사용하기 편할 것이라는, 제품을 사용하기도 전에 제품의 성능에 대해 갖게 되는 기대를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 효과 모두 기업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고객을 유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샤넬이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신제품이 나오면 소비자들이 매장에 줄 서는 모습이 바로 브랜드의 힘입니다.
브랜드는 단기간에 구축되지 않기 때문에, 일찍부터 우수한 브랜드를 구축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쟁자를 막는 해자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옷을 파는 회사라도 샤넬과 경쟁하는 브랜드가 신생이라면 브랜드를 알리고 신뢰를 쌓는데 훨씬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 됩니다. 심지어 감정적인 가치는 아무리 비용과 시간을 많이 투입해도 소비자에게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 5가지의 진입 장벽은 선두 주자 입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 될 수도 있지만,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불리하게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자리 잡은 경쟁자를 후발주자로서 이겨내려면 이 5가지 진입 장벽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혁신의 패턴에 대해 다뤄봤습니다. "혁신에 정말 패턴이 있을까?"라는 제목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스타트업 고전과 대가들의 가르침에 하나의 흐름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여러 책을 읽으며 느꼈던 이런 흐름을 조합해 스타트업 혁신의 패턴이라는 주제로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혹시 질문이나 더 읽고 싶은 주제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에 남겨주세요. 추후 시리즈로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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