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강선대 원림 - 고요와 음이온으로 이끄는 정원의 생기

고요와 음이온, 한국정원의 치유 미학
고요는 한국정원의 자산이다. 빠르고 늦은 차이일 뿐, 올 것은 반드시 어느 틈에 슬쩍 곁에 와 있다. 다만 어떤 일에 미혹되어 마음 깊게 빠져 있으니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한국정원문화를 공부하다 어느새 커다란 자산이 새롭게 곁에 와 있음을 발견한다. 바로 ‘고요’라는 자산이다. 고요는 정지가 아니다. 주돈이(周敦頤, 1017~1073)는 『태극도설』로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극도에 이르면 고요하게 되는데, 고요하여 음을 낳는다”라고 진술한다. ‘고요’를 음양 설명의 깊숙한 맥락으로 풀었다. 한국정원의 고요는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하다[一動一靜]’는 ‘일동일정’의 우주적 질서를 품는다. 옛 성리학자들은 ‘비어 있으며 고요한 상태[虛靜]’를 뜻하는 ‘허정’을 선호했다. 그러니 고요라는 엄청난 자산을 제쳐 놓고 조경헤리티지를 논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면 딴나라 이론이다. 고요라는 소박한 평온의 자산이 내 곁에 다가와 나를 봐달라고 손내민다.
그러나 이 고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은 『화선실논화(畫禪室論畫)』에서 “인품이 높지 않은데[豈非品高] 어떻게 마음을 한가하고 고요하게 하겠으며, 다른 것들을 좋아하여 얽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則閑靜無他好縈固耶]?”라고 반문했다. 정신이 고요한 사람이 아니면 구름의 변화, 강물의 흐름, 송풍(松風)과 죽풍(竹風)의 소리, 먼 폭포에서 들리는 물방울 튀는 소리를 깊이 다가갈 수 없다. 높은 인품은 마음의 고요를 부른다. 고요한 마음이 원림 경영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미학이다.

고요는 소리의 부재가 아니다. 자연의 섭리를 관조하는 내면의 미학이다. 고요는 세속적인 욕망이나 다른 잡다한 취미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얽매이지 않아야[無他好縈] 도달한다(동기창, 『화선실논화』). 고요하지 않은 사람은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할 수 없다. 장자는 “뜻을 하나로 모으고[若一志],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며[無聽之以耳而聽之以心],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으라[無聽之以心而聽之以氣]”고 한다. 외부의 소란을 차단하고 내면의 고요를 통해 비로소 자연의 섬세한 기운을 감지한다. 이는 곧 ‘心齋(심재)’의 경지로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하는 심적 수양의 본질과 맞닿는다. 고요는 산수 경관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마음의 거울’이다. “고요한 가운데 만물의 이치를 관조할 수 있다[靜中看萬物].”라고 이황(李滉, 1501~1570)은 『도산잡영』에서 ‘정중간만물’을 강조한다. 마음이 고요해야만 거울처럼 맑아져 산수의 참모습을 왜곡 없이 투사한다.
한국정원문화의 또 다른 자산은 음이온이다. 음이온은 자연치유력과 면역력 증진에 효과가 있다. 음이온은 평온함, 행복감, 안정감을 느끼는 세로토닌(serotonin) 분비를 촉진하여 우울감을 해소한다. 음이온의 자산은 한국의 조경헤리티지를 뭉뚱그려 표현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한국의 조경헤리티지는 한결같이 숲과 계곡과 강물과 계류에 위치한다. 바로 이 지점이 한국정원이 단순한 감상 공간을 넘어 치유의 공간이 되는 과학적 근거이다. 한국정원은 금방 빨아 널은 광목이 빳빳하게 마른 정도로 종일 양명하다. 햇살을 피할 길 없다. 몸이 소독될 지경이다. 그럼에도 공기에 음이온이 가득 넘실댄다. 『자연치유』란 책에서는 “폭포 근처의 공기에는 1㎤당 무려 100,000개의 음이온이 존재하나, 꽉 막힌 사무실 공기에는 단지 100개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천상과 지상이 만나는 무대, 강선대 원림의 경관
이러한 고요와 음이온이 극적으로 발현되는 무대가 바로 영동 강선대 원림이다. 강선대 원림은 하늘과 땅이 마주 보는 거울이면서 선조의 덕행이 서린 신령한 정원이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깊은 강물이 소용돌이치며 만난다. 주변의 산수 풍광이 강선대를 향해 절을 하듯 호응한다. 1957년 야은 이필주(李弼周)가 지은 「강선대기」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이 기록에 영동 강선대 원림의 지리적 입지와 승경의 위상이 잘 나타난다. 이필주는 1957년 늦여름에 함양 여씨 문중에 의해 강선대 정자가 중건될 때 문장을 짓는다. 「강선대기」에서 이곳의 경관을 중국의 유명한 누정과 비교한다. 구양수의 『취옹정』에 깃들인 뜻인 “산수를 즐기고 술 마시는 즐거움”을 담고, 범중엄의 『악양루』에서 “나아가고 물러남에 천하를 근심하는 뜻”을 가져온다. 왕희지의 『난정』에서 “옛날을 보듯 오늘을 보는 감회의 뜻”을 담는다. 『난정』은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는 유상곡수의 풍류를 상징한다.

이필주는 「강선대기」에서 이곳의 지형과 분위기를 “옥양에 큰 강이 있고[沃陽有⼤江] 강 위에 선대가 있으니[江上有仙臺], 이는 곧 남쪽 고을의 승지이다[此乃南州勝地也].”라고 광역 입지 개요를 묘사한다. 금강[⼤江]과 그 수면 위에 솟은 바위 절벽[仙臺]이 어우러진 모습은 음이온이 생성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그는 또한 “신선은 떠나고 대는 비었으나[仙去臺空], 그 경계가 마치 섬과 바위가 있는 신령스러운 근원과 같아[⽽境若島⽯靈源] 신선 세계와 거리가 멀지 않다[去神仙不遠].”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표현한다. 기암괴석[島⽯]이 어우러진 풍경이 마치 인간 세상을 벗어난 신령한 근원[靈源] 같아서 신선이 머무는 곳이라 에둘러댄다. 아울러 강선대 원림이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 여러 누정과 승경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음을 기록한다.

주변 누정 건물로 자풍서당과 채하정, 금호루, 함벽정이 그윽하고 한가하게[幽閒], 가까이 잇닿아[逼遄] 있음을 묘사한다. 지형의 묘사도 수려하다. 깊은 연못[⿓沼]과 산[⾶鳳山],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雲天台]을 가져온다. 그리고 끽선루와 후선탑 등, 모두가 강선대 원림을 향해 호응[向應]하여 펼쳐져[鋪置] 있다. ‘향응’은 강선대 원림을 중심으로 질서 있게 배치되어 경관의 구심점을 이룬다는 기록이다. 그러면서 강선대 원림의 조망 경관을 명료하고 세밀하게 정리한다.
‘朝暉夕陰(조휘석음)’은 아침의 밝은 햇살에서 저녁의 그늘진 정취로 이행하며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무궁무진한 경관이다. “사방 경계의 경치가 무궁무진하다”는 표현은 ‘경계가 없고 막힘이 없는’ ‘무경무애(無境無碍)’의 경관을 말한다. 사방[四界]이라는 경계에 ‘무궁’이라는 표현으로 한계를 초월한다. ‘경관을 빌려 온다’는 ‘차경’의 원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무경무애’의 경관으로 뻗어나가는 진취적인 경관 향유의 발상이다. 강선대 원림의 정자는 조망의 플랫폼이자 주변 경관을 독해하는 프레임이다. 한국정원문화의 특징으로 ‘차경’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무경무애’의 경관임을 밝혀야 한다.
登斯臺也 則朝暉夕陰 四界之景 無窮而沙鷗泳鱗 烟雲竹樹 萬千勝狀 目不能窮玩 不得収也 然而覽物之情 無以古今異
이 대에 오르면 아침 햇살과 저녁 그늘[朝暉夕陰] 등 사방 경계의 경치가 무궁무진하고, 모래밭의 갈매기와 헤엄치는 물고기[沙鷗泳鱗], 이내 낀 구름과 대나무와 수풀[烟雲竹樹] 등 수만 가지 빼어난 형상을 눈으로 다 구경할 수 없고 거두어들일 수도 없다. 그러나 사물을 보고 느끼는 정(情)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이필주, 「강선대기」, 정자 현판에서.

또한 다층적 시각에 의한 생태계 인식은 입체적 경관 인식을 대변한다. 수평으로는 모래밭의 갈매기와 헤엄치는 물고기가 생동하고, 수직으로는 이내 낀 구름과 대나무와 수풀이 어우러진다. 경관을 바라봄에 있어 ‘沙鷗泳鱗(사구영린)’의 생동과 ‘烟雲竹樹(연운죽수)’의 변화무쌍한 시경(詩境)을 전개한다. 강물과 숲이 뿜어내는 생기가 순환하는 거대한 에너지의 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경무애’의 경관은 특정 개인의 전유물일 수 없다. ‘목불능궁완 불득수야(目不能窮玩 不得収也)’—눈으로 다 구경할 수 없고 거두어들일 수도 없다는 고백은, 경관에 대한 감각과 소유욕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겸손이다. 소유하지 않고 관조할 때 비로소 치유의 미학이 열린다.
영동 강선대 원림에서 치유를 경험한 백호 임제
고요와 음이온 가득한 원림의 치유력을 일찍이 간파하고 몸소 체험한 이가 바로 백호 임제(林悌, 1549~1587)이다. 그는 영동의 강선대 원림에 머물며 그 고요 속에 깃든 깊은 철학을 시로 남겼다.
환선루북강선대(喚仙樓北降仙臺) 환선루 북쪽에 강선대가 있으니
백옥부용경면개(白玉芙蓉鏡面開) 백옥 같은 연꽃이 거울 같은 수면에 피었다.
안득종유적송자(安得從遊赤松子) 어찌하면 적송자를 따라 노닐 수 있을까
월명기학과강래(月明騎鶴過江來) 달 밝은 밤, 학을 타고 강을 건너온다.
-임제, 「과강선대…」, 『임백호집』 권2, 한국고전종합DB.
임제가 강선대를 지나다가 양산현의 시골집에서 묵는다. 그리고 이곳을 속세와 완전히 다른 ‘참으로 별천지[眞別天地]’라고 제목에 올리고 경관을 묘사한다. 강물은 거울이 되고, 바위는 연꽃이 된다. 강물 위로 솟은 바위가 ‘백옥 연꽃[白玉芙蓉]’처럼 보이려면 강물이 거울 표면[鏡面]의 상태로 고요해야 한다. 달빛은 선명하다. 허공을 미끄러지듯 나는 학의 날갯짓은 고요하다. 거울 같은 강물 위를 소리 없이 가로지르는 상상이다. 강선대를 감싸는 고요한 정적을 존중하고 그 고요함의 깊이를 더한다. 임제가 시를 읊조리던 그 밤, 달빛 아래 강선대 앞을 지나면서 함께 한 벗과 나눌 법한 대화를 상상한다.
| 이보게, 잠시 말 고삐를 늦추게. 저 풍광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면 시인이라 할 수 있겠나.”임제가 탄식하듯 말을 멈추자, 동행하던 벗이 강물을 내려다보며 묻는다.“달빛이 밝기는 하나 그저 강물과 바위일 뿐이지 않은가?”“아닐세. 자세히 보게. 저건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맑게 닦아놓은 거울[鏡面]이야. 그 위에 솟은 바위는 돌덩이가 아니라 막 피어난 백옥 연꽃[白玉芙蓉]이고. 당장이라도 신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가고 싶으나 배가 없으니 어이할꼬. 허허, 오늘 밤엔 내 마음이라도 학을 태워 저 강을 건너보내야겠네. 이토록 고요한 별천지라니, 탁한 속세의 먼지가 단숨에 씻겨 나가는구먼.” |

임제는 엄숙하고 비장해야 할 선조(宣祖) 시대의 권위나 출세 등에서 자유로웠던 ‘인간에 대한 예의와 풍류’를 제대로 알았던 인물이다. 39년의 짧은 생애에서 황진이 무덤에 들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는 시를 읊는 파격을 보인다. 여진족 추장 ‘니탕개의 난(임란 9년 전)’으로 칼바람이 불고, 조정에는 당쟁의 피바람이 불던 시기의 파격이며 돌발 행동이다. 생육신과 사육신을 꿈에서 만나게 하여 현실을 비판하는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이라는 단편소설을 남긴다. 평양 기생 한우(寒雨)의 이름을 활용하여 주고받은 시조인 「한우가」도 널리 오르내리는 작품이다. 임제는 중국에 사대하는 현실을 치욕으로 여긴다. 본인의 임종 때 곡을 하지 말라는 ‘물곡사(勿哭辭)’가 강렬한 유산이다.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은 이런 임제를 “기상이 호방하여, 법도에 얽매이지 않았다.”라고 기록한다.
임제는 소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가을 산사의 고요함에 대한 시를 남긴다. 이는 물리적인 정적뿐만 아니라 임제의 내면이 고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선원불가극(仙源不可極) 신선의 세상 끝까지 갈 수 없어
일장시유심(一杖試幽尋) 지팡이 하나 짚고 그윽한 곳 찾아든다.
소학편추향(小壑偏秋響) 작은 골짜기에는 가을 소리 유독 요란하고
고림역석음(高林易夕陰) 높은 숲에는 저녁 그늘이 쉽게도 진다.
양다욕래우(凉多欲來雨) 서늘한 기운 짙어지니 비가 오려는지
제파이서금(啼罷已栖禽) 울던 새는 그치고 둥지로 깃든다.
귀거선비정(歸去禪扉靜) 돌아오니 절집 문은 고요만 한데
담공좌야심(談空坐夜深) 공(空)을 담론하며 앉은 밤은 깊어만 간다.
-임제, 「차사제자중운…」, 『임백호집』 권1, 한국고전종합DB.
속세와 단절된 선계를 찾아 그윽하고 경개 좋은 곳을 탐승한다. 가을 저녁의 경관을 묘사한다. 작은 골짜기라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크게 들린다. 우거진 숲이라 빠르게 어둑하다. 비 올 듯 서늘한 날씨와 이미 둥지를 찾아 들어가 울음을 멈춘[啼罷] 새를 통해 주변이 고요에 휩싸인 정적을 포착한다. 깊어 가는 밤을 마주 앉아 출세와 명리에 대한 고민 대신, ‘내려놓고 텅 비우는’ 내면의 고요를 담론한다.
임제의 다른 시 「사안도사내방차전최대동상문(謝安道士來訪且傳崔大同相問)」에서도 차원 높은 고요의 미학을 선보인다.
와병인주일(臥病麟州日) 인주(麟州, 강원도 통천) 객사에서 병들어 누워 있던 날
내심학발선(來尋鶴髮仙) 학처럼 머리가 하얀 신선이 나를 찾아왔다.
구전고죽신(口傳孤竹信) 입으로는 고죽(孤竹, 최경창)의 안부를 전해주고
신대만산연(身帶萬山煙) 몸에는 만 겹 산의 기운을 둘렀다.
여사관하유(旅思寬何有) 나그네의 시름을 위로함이 이보다 더한 것이 있으리오.
침아상욕전(沈痾爽欲痊) 깊은 병이 씻은 듯 상쾌해져 병이 회복에 든다.
기군백련사(期君白蓮社) 그대와 훗날 백련사 모임을 기약하니
적막좌담현(寂寞坐談玄) 고요히 앉아 현묘한 도(道)를 이야기함세.
-임제, 「사안도사래방…」, 『임백호집』 권1, 한국고전종합DB.
임제가 인주(강원도 통천) 객사에서 누워 병치레할 때 학처럼 머리가 허연 안도사가 찾아온다. 그것도 깊게 교류하던 최경창(崔慶昌, 1539~1583)의 소식까지 듣는다. 문병 온 친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산속의 맑은 기운, 즉 숲과 강이 주는 음이온 가득한 생기가 병든 몸을 일으켜 세운다. ‘침아상욕전(沈痾爽欲痊)’의 경지에 든다. 속세와 인연을 버리고 결성한 백련사의 모임처럼 벼슬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도를 이야기하며 살자고 제안한다. 세상의 시끄러운 시비와 다툼이 차단된 절대적인 은거의 공간에서 만나자는 약조이다. 내가 병석에서 일어나면 벼슬길을 버리고 고요한 원림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임제의 적막은 쓸쓸하고 외로운 부정의 어감보다 만 겹 산의 기운을 두르고 온 친구와 마주 앉아 누리는 충만의 고요다.
목청 높여 토론하는 게 아니라 담담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그윽한 도의 이치를 나누는 담현(談玄)의 대화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통 한국정원의 치유 특성 중 ‘활동 및 사교’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도츨되었다(황현정·이형숙, 2025). 이는 강선대 원림이 정적 감상의 측면보다 지인과의 교류와 풍류를 통해 활력을 지니는 능동의 치유 장소라는 것을 방증한다. 예나 지금이나, 뜻이 통하는 친구와 충만의 고요로 담현의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풍류일 것이다.
임제가 강선대에서 마주한 것은 흐르는 물과 바위뿐만이 아니다. 세속의 독을 씻어내는 치유의 공간을 발견한 것이다. 한국정원에서 발굴해야 할 무형의 자산으로 임제가 밤이 깊도록 나누었던 ‘충만의 고요’를 천거한다. 이를 한국정원문화의 맥락으로 삼아 원림을 계획하고 향유하며 비평하는 것은 정원의 품격 자산을 더더욱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푸른 침묵을 시각화한 이안눌의 강선대 원림
임제가 강선대 원림의 생기를 몸으로 느꼈다면, 조선 중기의 대문장가 동악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은 강선대의 고요를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유강선대」라는 제목의 연작시 두 수를 읽는다.
문설천선강차대(聞說天仙降此臺) 듣자하니 천상의 신선이 이 대에 내려와서
옥소취철자운회(玉簫吹徹紫雲回) 옥피리 불어 통하니 자색 구름이 감돌았다.
난참일거심무처(鸞驂一去尋無處) 난새가 끄는 수레 한번 가니 찾을 곳 없는데
유견도화만안개(唯見桃花滿岸開) 오직 강 언덕 가득 피어난 복사꽃만 보인다.
백척계두일고대(百尺溪頭一古臺) 백 척 높이 시내 머리에 옛 대가 하나 있는데
청사여설수여태(晴沙如雪水如苔) 맑게 갠 모래는 눈 같고, 물은 이끼처럼 푸르다.
정주화낙춘풍만(汀洲花落春風晩) 물가 모래톱으로 꽃은 지고 봄바람은 저무는데
원방선종도월래(遠訪仙蹤棹月來) 멀리 신선의 자취 찾아 달을 노 저어 온다.
-이안눌, 「유강선대」, 『동악집』 권10 금계록, 한국고전종합DB.
이안눌은 강선대가 위치한 주변 산과 시내가 지극히 아름답다고 전제한다. 신선은 떠나고 복사꽃만 날린다. 천상에서 내려온 신선의 옥피리가 끝까지 울려 퍼지는[玉簫吹徹] ‘옥소취철’로 자색 구름이 감돈다. 강선대를 천계와 지상이 소통하는 매개 공간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신선은 이미 떠났다. 신선이 머문 공간이라는 짙은 여운을 재확인한다. 그 빈자리를 강 언덕 가득 피어난[滿岸開] ‘만안개’의 복사꽃[桃花]으로 채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 이래 복사꽃은 속세를 벗어난 유토피아의 상징이다. 강선대는 복사꽃 가득 핀 무릉도원이다.

이안눌의 「강선대에서 노닐다」 시의 첫 번째 수는 신화와 초월의 전설에 집중하였다면 두 번째 수는 고요한 명상의 시공간으로 전환한다. “백 척 높이 시내 머리에 우뚝 선 옛 대[百尺溪頭一古臺]”는 시간의 무게를 견뎌온 강선대 원림의 시그니처이다. “맑게 갠 모래는 눈처럼 희고[晴沙如雪], 물은 이끼처럼 푸르다[水如苔].” 백사장과 푸른 물의 대비로 경관의 시각적 통일성을 극대화한다. “물가 모래톱에 꽃이 떨어지고 봄바람이 저무는[汀洲花落春風晩]” 늦은 봄의 시간이다. 무상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체념의 미학이다. 하지만 “멀리서 신선의 자취를 찾아 달빛 속에 노를 저어 온다[遠訪仙蹤棹月來]”는 표현과 “달 밝은 밤, 학을 타고 강을 건너온다[月明騎鶴過江來]”는 임제의 시경(詩境)은 정확하게 조응한다.
강선대 원림은 부재(不在)의 존재감을 조용히 타이르듯 대변한다. 신선은 떠났지만, 그래서 더욱 원림 공간에 신성함을 부여한다. 옥피리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자색 구름의 잔상은 남는다. 신선이 등장하는 ‘난새가 끄는 수레’는 보이지 않지만 무릉도원처럼 복사꽃이 그 흔적을 증언하다. 스물두 살이 많은 임제가 강선대 원림에서 ‘백옥부용경면개’를 묘사하여 거울 같은 수면의 고요함을 포착했다면, 이안눌은 ‘청사여설수여태’에서 색채와 질감으로 고요를 시각화한다. 임제와 이안눌은 강선대 원림을 고요한 명상의 공간으로 받아들인다. 천상과 지상을 매개하는 공간이라는 인식도 같다. 이안눌은 신선이 떠난 자리라는 사실보다 눈부신 하얀 모래와 쪽빛 물, 그리고 붉은 복사꽃이 어우러진 현재의 풍경을 즐긴다. 특히 해 질 녘 배를 띄워 ‘달을 노 저어[棹月]’ 강선대로 다가가는 장면은 임제의 고요와 차별되는 장면이다. 이안눌의 유려하고 낭만 가득한 서정을 엿본다. 이안눌이 묘사한 색채의 향연 속으로 들어가, 달을 향해 배를 띄우던[棹月] 순간의 정취를 가상의 대화로 옮겨본다.
| "동악(東岳) 어른, 신선이 떠난 자리가 너무 쓸쓸하지 않습니까? 난새 수레도 옥피리 소리도 없으니 말입니다." 함께 배에 오른 벗이 묻자, 이안눌은 뱃전에 부서지는 달빛을 가리키며 웃는다. "무슨 섭섭한 소리인가. 비워야 채워지는 것이 이치일세. 신선이 떠났기에 저 눈처럼 하얀 모래와 이끼처럼 푸른 물빛이 온전히 우리 차지가 된 것이 아닌가. 봄바람에 복사꽃잎 떨어지는 이 저녁, 우리가 달을 벗 삼아 노를 저어가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네와 내가 곧 신선일세.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이 색채의 향연을 즐기게나. 신선은 없어도 풍류는 여기 꽉 차 있으니." |
임제와 이안눌이 거닐던 강선대의 바위 위에서, 수백 년의 시차를 넘어 필자 또한 그 ‘고요한 생기’를 마주한다. 폭포와 여울이 만들어내는 음이온은 폐부 깊숙이 들어와 묵은 먼지를 씻어내고, 멈춘 듯 흐르는 강물은 소란한 마음을 잠재운다. 옛사람의 시심(詩心)이 닿았던 그 자리에서 오늘의 언어로 강선대의 미학을 읊는다.
푸른 숨결과 여울
온형근
굽이쳐 온 금강 물결이 바위 발등에 채이며
휩쓸리던 강물 강선대를 물굽이로 한 바퀴 맴돌던
그날, 노도와 같던 기세는 흔적만 남아 커다란 소나무만 남긴 채
굴러가지 않는 물길은 돌았던 흔적만으로 태극을 이룬다.
강선대 계단을 타고 내려와 여울목에 이르면
여울은 끊이지 않고 산소를 뿌리면서 얼굴로 부서진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세상의 소란은 숨어들고
비로소 들리는 것은 나의 숨소리뿐
신선이 옥피리 불고 떠난 빈자리에 버티고 선 노송 군락
가지를 늘어뜨린 채 절벽 아래로 소란을 씻어낸다.
보이지 않는 기운이 가득 차오르니 들이마시는 숨마다
숲의 생기가 돈다.
내뱉는 숨마다 묵은 근심이 흩어진다.
푸른 숨결로 다가가되 잡으려 하지 않고
여울로 스며들되 마음에 가두지 않는다.
흐르는 것은 숨결이고 머무는 것은 여울이라
강선대에서 나 또한 한 조각 푸른 침묵의 풍경이다.
앞서 논한 ‘음이온’과 ‘고요’는 생각에서 멈추지 않는다. 강선대 원림을 서성이다 보면 저절로 얻게 되는 실체적 경험이다. ‘부서지는 여울’과 ‘물안개’는 레너드 효과(lenard effect)에 의해 발생하는 풍부한 음이온을 시각화한다. 물방울이 바위에 부딪혀 미세하게 쪼개질 때 방출되는 전자가 숲의 산소와 결합하여 우리 몸의 활성산소를 제거한다. 그 물보라 속에서 세상의 소란을 씻어낸다.
강선대 원림에는 생기가 주는 치유의 힘을 느낀다. 임제가 병석에서 일어나 ‘沈痾爽欲痊(침아상욕전)—깊은 병이 상쾌하게 낫는’이라며 쾌유를 느꼈던 그 생기(生氣)를 얻는다. 신선은 떠났으나[仙去]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텅 빈 공허가 아니다. 오래된 노송에게서 뿜어나오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 가득 차오른다. 소나무와 같은 ‘상징식재’는 한국정원의 문화 정체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방문객에게 안정감을 제공하는 치유 요소로 평가한다(황현정·이형숙, 2025). 들이마시는 숨은 생기가 되고 내뱉는 숨은 묵은 근심을 흩어버린다. 충만한 에너지이다.

푸른 숨결과 여울을 잡아두거나 가두지 않는다. 겸손한 관조의 미학을 계승한다. 잡으려 하지 않고 가두지 않는 온전한 풍경이다. 주객(主客)의 경계는 사라지고 한 번 움직이면 한 번 고요해지는 우주의 질서와 합일한다. 강선대 원림은 과거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문자에게 ‘푸른 침묵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치유 공간이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지속가능한 경관 향유

이 아름다운 치유의 공간이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후손의 정성 덕분이다. 강선대 원림 정자에 걸려 있는 또 하나의 현판은 「찬문병사실(讚文幷事實)」이다. 1956년 봄에 함양 여씨 문중이 모여 의논한다. 선조인 위산 여유길(呂裕吉, 1558~1619)이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뒤, 영동의 옛 지명인 북향(北鄕) 대동리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고 살았음을 상기한다. 여유길이 강선대 원림을 지팡이와 신발을 신고 거닐며[杖履之所] 산수를 즐기며 유람하고 감상하던 땅[游賞之地]으로 삼은 점을 강선대 중건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세월이 지나면서 잊혀질까 두려워 이곳에 정자를 세워 그 뜻을 펼친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때 성재(誠齋) 여원현(呂元鉉)이 부족분을 채워 완성을 본다. “정성이 있으면 재물은 따라온다”는 취지로 추진하고 헌신한 여원현에 대한 공덕을 기리는 찬양 글을 남긴다. 그러니까 강선대 원림은 함양 여씨 선조인 위산 여유길의 유적이면서 후손의 효심이 깃든 장소가 되어 오늘날 강선대 원림의 조경헤리티지로 전해지게 된다.
이필주가 남긴 「강선대기」에서 강선대 원림 경관 완상(玩賞) 방법의 핵심은 심미적 향유와 정신적 교감이다. 산수 자연의 ‘만천승상(萬千勝狀)’—수만 가지 빼어난 형상은 인간의 용량을 초과한다. “그러나 사물을 보고 느끼는 정(情)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면서 공감의 영원성을 두둔한다. 시간을 초월한 감성의 보편성을 선언한다. 강선대 원림에서 느끼는 ‘람물지정(覽物之情)’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체험의 보편적 정서를 정확하게 짚는다. 여전히 강선대 원림에 오를 수 있고, ‘조휘석음—아침 햇살과 저녁 그늘’을 느끼고 ‘사구영린—모래밭의 갈매기와 헤엄치는 물고기’을 목격할 수 있다. 한국정원문화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의 경관을 향유하는 생태적 관조의 역할에 진력한다. 특히 시각 차폐와 공간의 위계를 통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국정원의 ‘신비감(mystery)’은 현대인에게 흥미와 탐색 동기를 부여하여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중요한 치유 기제로 작용한다(황현정·이형숙, 2025).
한국정원은 이처럼 농밀한 생기의 입자로 가득 차 있다. 이는 번잡하고 소란한 도회지를 멀리하고 고요하고 정적인 산수 원림 경영의 요체이다. 잠시만 고개를 돌리거나 발걸음 어슬렁대며 미음완보(微吟緩步) 하자면 이내 가래 끓던 목구멍으로 솨솨 폭포 물줄기가 오르내린다. 개울이나 강가를 걸으면 음이온을 많이 호흡할 수 있어 활력이 충만해지는 이치다. 때로는 시원한 소나무 바람[松風]이 콧구멍으로 들락댄다. 키 큰 대나무 일렁이는 숲에서 대 바람 소리를 듣는다. 폭포 근처를 걷다 보면 매우 힘찬 느낌이 생긴다. 어찌 콧노래 아니 나오겠는가. 고요한 원림은 혼자라고 쓸쓸하지 않다. 한국정원의 생기(生氣)는 정신을 맑게 하고 편안한 활기를 준다. 소박한 평온의 음이온과 따뜻한 감성 에너지가 그득한 치유의 공간이다.

강선대 원림은 함양 여씨의 유적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조경헤리티지다. 인위의 개입이 절제된 산수가 주는 고요와 생기를 향유할 수 있는 생태 관조의 플랫폼이다. 임제가 느꼈던 치유의 음이온과 이안눌이 바라봤던 청명한 고요는 지금도 유효하다. 금강은 여전히 흐르면서 고요를 부르고 강선대 원림은 여전히 고요하다. 살면서 어느날 벅차고 부대끼면 영동을 찾는다. 강선대 원림에서 고요와 음이온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고 푸른 침묵의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영동 시장을 들려 삶의 따뜻한 풍광에 위안을 얻으며 곡주 한 잔 비우는 풍류 또한 놓치지 않는다. 강선대 원림에서의 고요한 구름의 변화와 강물의 흐름을 떠올리면서 산수 자연의 섭리가 어우러지는 신인묘합(神人妙合)의 미의식에 이른다.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대표, 조경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