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반계정 원림 - 반석 위로 흐르는 물을 하염없이 사랑하다
반계정 원림에서 만나는 강산풍월의 정취

반계정 원림은 단장천(丹長川) 기슭에 위치한다. 원림 앞을 흐르는 단장천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을 흐르는 맑은 계곡 하천이다. 밀양댐과 표충사 계곡에서 발원하여 반계정 앞을 지나 밀양강과 합류하며 낙동강 수계에 속한다. 멀리 내다보면 북동쪽에 운문산이, 동쪽에 천황산과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재약산, 남동쪽에 향로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단장천은 비교적 깨끗한 1~2급수에 속하며, 다양한 민물고기(버들치, 피라미, 꺽지 등)가 서식한다. 여름철에는 하천 주변에서 수달이 발견되기도 하며, 물가에는 참개구리, 두꺼비, 도롱뇽 등의 양서류가 많이 서식한다. 하천변 습지에는 가재, 물장군, 소금쟁이 등 다양한 수서 곤충도 볼 수 있다.
반계정 주변은 울창한 소나무 숲과 배롱나무로 둘러싸였다. 여름철이면 배롱나무 꽃이 만개해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갈대, 부들, 창포 등의 습지 식물이 풍부하여 철새들의 서식지 역할을 한다. 정각산 기슭에는 참나무류와 단풍나무, 소나무 등이 주를 이루며, 가을이면 특별한 단풍 명소이다. 내가 다녀간 11월 14일의 단풍도 위의 사진처럼 연두와 노랑이 어울리는 여전히 잔잔한 품격의 그림 같은 풍치를 자아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환경조경·정원플랫폼 라펜트’에 연재한 경주 독락당 계정, 밀양 월연대 원림, 순천 초연정 원림, 풍기 금선대 원림, 강진 백운동 원림, 화순 환산정 원림 등이 밀양 반계정 원림처럼 한결같이 뛰어난 강산풍월의 승경을 지닌 그림이다.


반계정 원림의 주소는 밀양시 단장면 범도리이며 밀양의 동북쪽에 해당한다. 반계정의 배산은 북쪽 산악지형인 정각산(860m)이다. 정각(正覺)이란 경지는 얼마나 다다르기 어려운가. 바르게 되는 깨달음이란 곧 매일이 수행이다. 정각산 남쪽 사면으로 흘러내리는 기운이 단장천 석탄(石灘)과 만나는 기슭의 강변에 반계정 원림이 자리 잡았다. 산수의 아름다움을 일상의 공간으로 구현한 뛰어난 입지를 보여준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지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며 정자 앞을 흐른다. 당시에는 제법 인적 드문 깊은 산중이었겠다. 밀양 시청에서 동북 방향 15㎞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숙은 학문적 교류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선비들과 교류하며 학문을 논할 수 있는 위치를 선택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완전한 은둔이 아닌 "반(半)은둔, 반(半)교류"의 공간으로 볼 수 있다.
고요한 풍경의 관조
반계정을 지나다 길가에서 탄성을 지른다. 산자락 기품 있는 단풍을 흩날리며 살포시 새의 귀소처럼 들어앉았다. 다소곳한 품격으로 절로 빛나는 정체를 찾아 이끌린다. 반계정 원림과의 만남이다. 첫 만남의 들뜸을 다독거리며 시의 풍경을 걷는다.
반석으로 속살대며 흐르다
온형근
깨달음에도 정각이 있어 남사면으로 큰 기운 하나
산림 처사를 잊지 않으려는 듯 물에 잠겼어도 장하다.
새들도 기념하여 수시로 쉬어가며 가족을 보살폈을
그 반석으로 반계정의 초석을 삼았던 게 묘수
산림처사라는 게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듯
백 년의 마음으로 원림을 조영하여 오갔을 시류
그러고도 다시 백 년을 두 번이나 접었으니
정각사의 스님이 석문 나서고 드는 모습도 흩어지고
나무꾼 노래와 산기슭 소울음소리도 잦아들었으나
달은 여전히 단장천을 찾아 곰소에서 뜨고 지며
매봉이 피워 낸 강가의 봄꽃과 정각산의 기품있는 단풍은
추화산성의 낙조로 다가와 범도의 숲에서 선명하게 맑다.
금강이 어디 먼 곳에만 있으랴 도처 선경이고 북벽기암인 것을
단정하여 발걸음 옮길 때마다 풍경은 튀어나오고
상련대에 서 넛 앉아 소박한 풍류를 나눌적에
연꽃은 피어낸 향을 붓끝으로 스미어 남김없이
반계정 누옥을 자랑하지 말라에 방점을 찍는다.
고요하여 탈속이라 쓰고 소박하여 충만이라 긋는다.
반계정 원림에 이르면 고요한 관조의 시선이 풍경을 담는다. 반계의 어원이 된 반석이 물에 걸쳐 잠길 듯 드러나 장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새들도 반석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반석에 근거하여 그 위에 지어진 반계정은 단정하다. 정각산 남사면으로 큰 기운이 달려온다. 깊은 산길을 따라 스님이 오갔을 절경이다. 앞 여울로 달이 뜨고 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 풍광이다. 앞산에서 불어온 꽃바람이 가을 단풍을 예약한다. 맑은 숲이 출렁이는 동안 발걸음마다 튀어나오는 경관은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다. 지금은 세월의 티끌이 쌓여 상련대 바위를 숲으로 덮었으니 거기 앉았던 이들 이름도 묻혔겠다. 두루 둘러 앉아 연못을 바라보며 연꽃을 주제로 맑게 산다는 것을 시로 읊고 술잔에 담았을 숱한 날들이 연못 바닥에 잠겼다. 달은 여전히 단장천을 찾아 곰소에서 뜨고 진다. 시간은 이어지는 것이다. 옛스러움이란 살아가는 규칙과 지속성을 일깨운다.
들리는 소리는 반석 사이를 '속살대며 흐르는' 물소리이다. 옛 나무꾼 흥얼거림이나 목가적 소울음소리를 내면 풍경에 담았다. 사라진 소리조차 옛 생동감을 암시한다. 깨달음에도 정각이 있어 풍경 속에 시간과 역사를 머금고 순환을 응축한다. 고요함과 소박함을 통해 탈속과 충만의 경지에 이른다. 깊은 관조는 평온에 이르고 소박함은 잔잔하고 깊은 울림의 풍류를 부른다. 물에 잠기고 드러나기를 반복했을 저 너른 바위. 문득 백 년의 세월을 견딘 '산림 처사'의 마음이 스친다. 자연에 기대어 정자를 세우고 원림을 가꾸던 그 마음은 어떤 빛깔이었을까. 시간은 많은 것을 지우지만, 달빛만은 변함없이 단장천 푸른 물결 위를 비춘다. 매봉엔 봄꽃이 피고, 정각산엔 단풍이 물들고, 추화산성엔 저녁놀이 드리운다. 숙연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숨어있던 풍경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상련대에 서넛이 도란거렸을 그들의 소박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요하다. 속세를 벗어난 듯 자유롭다. 소박하다. 그래서 부족함 없이 충만하다. 붓끝에 먹을 찍어 조용히 눌러 쓰듯, 마음에 새긴다. 반석 위로 물살은 오늘도 고요한 탈속과 소박한 충만을 속살거리며 흐른다.
기우자 이행을 시조로 한 명문가 반계 이숙

반계정 조영자인 반계(盤溪) 이숙(李潚, 1720~1807)은 본관이 여주이다. 명문가로서 시조가 여말선초 기우자 이행(李行, 1352~1432)이다. 이행의 손부가 양녕대군(1394~1462)의 딸이고, 손서가 한명회(韓明澮, 1415~1487))의 부친인 한기(韓起)이다. 기우자는 고려가 망한 후 울진 평해로 귀양을 갔다. 풍광이 아름다워 달밤에 소 등에 올라 노닐었기에 스스로 호를 기우자(騎牛子)라 하였다. 동갑내기 친구인 권근(權近, 1352~1409)이 「기우설(騎牛說)」을 지었다. 반계정 원림을 둘러볼 때의 마음가짐도 이러해야 할 것 같아 가져온다(권근, 「동문선 제98권」 /설, 『동문선』, 한국고전종합DB.).
산수를 유람하고 볼 때는 ‘오직 마음에 사사로운 얽매임이 없어야 그 후에 그 즐거움을 즐길 수 있다[惟心無私累 然後可以樂其樂也].’ (…) ‘무릇 사물을 바라봄에 있어[凡寓目於物者], 빠르면 거칠고, 느리면 그 묘미를 다 얻을 수 있다[疾則粗, 遅則盡得其妙].’ ‘말은 빠르고 소는 느리나[馬疾牛遅], 소를 타는 것은 그 느림을 원해서이다[騎牛欲其遅也].’ ‘생각해보라, 밝은 달이 하늘에 있고, 산은 높고 물은 넓으며, 위아래가 한 색이 되어, 굽어보고 우러러봐도 끝이 없다[想夫明月在天 山高水闊 上下一色 俯仰無垠].’ ‘만사를 뜬구름과 같이 여기고, 맑은 바람에 높은 휘파람을 의탁하며[等萬事於浮雲 寄高嘯於淸風], 소가 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뜻대로 스스로 술을 따르니, 가슴속이 유연하여, 저절로 그 즐거움이 있다[縱牛所如 隨意自酌 胷次悠然 自有其樂].’
권근은 「기우설」로 친구 이행에 대한 작은 평전을 썼다. 산수 원림 철학에 대한 평론이기도 하다. 달빛 아래 소를 타고 천천히 산수 경관을 유람하는 기우자의 모습을 잘 그렸다. 느린 속도의 경관 감상이 잉태하는 철학적, 미학적 깊이를 알 수 있다. 원림 향유는 외면적 풍경이면서 내면적 평화와 자유에서 진정한 감흥이 일어남을 묘사한다. 경관은 미학적 대상임과 동시에 정서적 해방의 매개이다. 경관을 깊이 음미하려면 소를 타는 행위처럼 느림의 미학으로 다가선다. ‘빠르면 거칠고, 느리면 그 묘미를 다 얻을 수 있다[疾則粗, 遅則盡得其妙].’라면서 경관에서의 ‘이동 속도와 산수 인식’을 강조한다. 경관을 감상하는 속도가 인식의 깊이와 질적인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밝은 달이 하늘에 있어서, 위아래가 한 색이 된다[明月在天 上下一色].’는 달빛이라는 낭만적 경관 요소가 경관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빛에 의한 경관 통합’이다. ‘산은 높고 물은 넓다[山高水闊].’라는 표현은 ‘경관의 수직과 수평의 확장’을 동시에 인식하는 동아시아의 조경적 관점이다. 소를 그 가는 대로 놓아주고 따르며 한가로움을 즐긴다. 정원은 ‘걸어 다니는 그림[行遊圖]’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반계정 원림의 주인인 이숙은, 월연대 원림 주인 이태(李迨, 1483~1536)에게 7대손이고, 금시당 이광진(李光軫, 1513~1566)에게는 6대손이다. 숙종 46년(1720)에 태어나 순조 7년(1807)에 돌아가시니 만 나이로 향년 87세에 돌아가셨다. 관직을 멀리하고 반계정 원림에서 독서와 사색으로 후학을 양성한다. 명예와 권력보다 검소하고 절제된 삶에서 도덕적 완성을 실천하는 가치를 중시하였다. 밀양 반계정 원림의 반계 이숙은 강진 백운동 원림의 이담로(74세), 화순 환산정 원림의 백천 류함(85세) 보다 더 오래인 87세까지 장수하였다(만 나이).
정조 24년(1800)에 80세 이상의 나이에게 주는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서애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후손인 계당(溪堂) 유주목(柳疇睦, 1813~1872)이 지은 「반계이공묘갈명」에는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총명하였으며[幼穎悟] 점차 자라면서 스스로 깨달아 힘써 독서하였다.[稍長能自知刻苦讀書] 효성과 공경은 타고난 본성에서 우러나왔다[孝敬出於至性]”고 하였다. 영조 17년(1741) 부친상에는 “슬퍼하여 상심함이 거의 본성을 잃을[哀毁幾滅性]”정도였다고 한다. 묘소가 집에서 멀었으나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참배를 일찍이 빠뜨린 적이 없았다”라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자발적 학업을 이루었으며 효성 깊은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 치의 흙이나 조각돌도 보탤 것이 없는 반계정 원림
반계정 원림을 묘사한 기문 중 치암(癡菴) 남경희(南景羲, 1748~1812)가 작성한 ‘반계정기’를 중심으로 원림의 원형을 살핀다. 반계천은 응천의 궁벽한 곳에 있으며 이곳은 수려한 산수의 경관으로 이름났다. 주로 ‘명현들이 머무는 곳[名賢棲息之所]’이라 하였으니 교류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반계는 구름과 안개를 뚫고 험한 곳을 건너 하루 종일 힘이 다하여 지친 후에야 도착할 수 있다. 반계정 원림의 원형 경관을 ‘구름 낀 산봉우리를 뚫고 험한 곳을 건너야[穿雲嵐涉險阻]’ 할 정도라고 했다. 당시에는 각오를 다져야 오갈 수 있는 외진 곳이다. 그래서 ‘지극히 좋아하는 자가 아니면 머무를 수 없는 곳[非至篤好者 不可居也]’이다.
정자의 구조와 창호의 배치도 ‘반계정기’에 기록되었다. 정자는 모두 3칸인데, 2칸은 양지쪽으로 방이고, 그 앞에 대청이 있으며, 넓이는 방의 반이다. 방의 동쪽에는 부엌이 있고 부엌의 남쪽에는 또 방장실이 있다. 반계정은 영조 51년(1775)에 창건하여 후손의 중수를 거쳤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지금은 주변에 반계정사와 관리주택이 더해졌다. 지금의 반계정은 자연 반석을 초석으로 사용하였다. 담장의 한 부분을 터서 계곡의 물소리와 경관이 보이게 하였다. 마루에는 들어열개문을 설치하였고 현재 살림집으로 사용 중이다. 남경희의 ‘반계정기’에는 “방 사방에 모두 창이 있다. 동남쪽으로는 산빛과 물빛이 통하고 북쪽으로는 부엌과 통한다. 서쪽으로는 두 칸 방과 통한다. 서쪽 창의 남쪽에는 문을 두어 대청과 통한다”고 하였다.

또한 ‘반계정기’에는 계단과 뜰, 담장과 문을 중심으로 외부 공간 구성을 설명한다. 대청 아래에는 한 자가 넘는 계단이 있고, 계단 아래에는 몇 걸음의 정원이 있다. ‘모두 자연스럽게 깎아진 것이어서[皆自然削成] 한 치의 흙이나 조각돌도 보탤 것이 없으니[不容寸土片石之補]’ 조물주가 의도한 듯하다고 놀란다. 담장을 만들어 뜰을 둘렀는데, 그 높이가 물을 구경하는 데 방해되지 않게 하였고 서쪽에 문을 내었다.

조경 요소로는 상련대를 묘사한다. 서쪽 문으로 굽어 10여 보 가면 돌이 있는데, 돌 곁에는 연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감상할 만하므로 ‘그 돌을 상련대라 이름하였다[故名其石曰賞蓮臺]’고 하였다. 이 서쪽의 ‘상련대의 넓이는 몇 칸의 집을 지을 만하고[臺之廣可置數間屋], 북쪽으로 부른 병풍 같은 절벽을 바라보니[北望蒼屛翠壁]’ 신이 새기고 귀신이 조각한 듯하여 풍악산의 한 면과 맞먹을 만하다고 경관을 조망한다. 너럭바위인 ‘반석’과 계곡의 물이 잘 어울리고 정자는 산의 빛과 물의 색을 사방으로 받아들인다. 거기다가 ‘상련대’와 ‘창병취벽’이 경관의 절정을 이룬다. 경관의 절정을 이루는 상련대 앞의 연꽃 심은 연못은 지금 덮여 있다. ‘창병취벽’은 북벽의 기이한 암석인 ‘북벽기암(北壁奇巖)’과 맥락이 닿아 있다. ‘북벽기암’은 반계정 원림의 차경의 의경을 묘사한 반계정 12경 중 하나이다.
유주목의 묘갈명에서는 “우아한 품격으로 산수를 좋아하여[雅好山水] 각산(覺山) 석탄(石灘) 위에 집을 짓고 반계(盤溪)라 이름하였다[築室覺山石灘上曰盤溪]“고 한다. 이 선언과 같은 문장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밀양 반계정 원림’의 원형 경관의 뼈대이다. 반계 이숙은 ‘산수’라 일컫는 조경 공간을 일상의 공간으로 구현한다. 그 장소가 정각산 줄기 기운이 내려오는 터와 단장천이 흐르는 ‘석탄’이 만나는 지점이다. 큼지막한 암반 기운이 뻗어 여울과 만나고 바위와 여울이 섞이며 서로를 어루만지며 흐른다. 바위와 물이 서로를 쓰다듬는 유연한 묘처에 자리잡았다. 문외한이 보더라도 한눈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느 곳 하나 품어주지 않는 장소가 없다. 이렇게 너럭바위와 만나는 여울을 ‘반계’라 명명하면서 원림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으로 확장한다. 묘갈명에는 흐르는 물을 응천이라고 했다. 응천(凝川)은 국가하천 단장천이 밀양강과 합류하여 남포동까지에 이르는 사행천(蛇行川) 구간이다. 반계정 원림은 단장천의 시작 구간인 밀양댐과 표충사 계곡에서 가깝다. 이곳을 너럭바위가 많은 구간이라 ‘석탄’으로 묘사하였다. 너럭바위와 계곡이 서로 어우러진 '반계'라는 이름은 단순한 장소명이 아니다. 원림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공존의 상징이고, 이숙은 이를 호로 삼는다.
반계정 원림을 장수와 유식의 공간으로 삼는다
이숙은 반계정 원림을 장수(藏修)와 유식(遊息)의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경영한다. ‘장수유식’은 학문을 ‘한 마음’으로 닦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공부할 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쉬며 놀 때에도 공부를 ‘마음속’에 두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원림은 쉬며 놀며 공부하는 효율적인 학습과 인격 완성을 향한 수양이 능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이곳 반계의 동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협곡의 경관은 매우 뛰어난 경승지이다. 생을 마치도록 반계정 원림에서 수양하며 지냈다. 그리고 ”매번 좋은 때마다[每當良辰] 술자리를 마련하고 벗을 불러[治觴命儔], 한가롭고 편안하게 스스로 마음을 풀었다[蕭散而自暢]“고 전한다. 원림에서 ‘매번 좋은 때’는 꽃피고 날리며 새싹과 녹음, 단풍지며 겨울나무로 이어지고 눈내리는 정원의 모든 순간이다. 기막힌 경관을 혼자 향유하기에 너무 아까워서 술자리를 마련하는 ‘치상명주’라는 말이 너무 고급스럽다. ‘술자리를 준비하고 친구를 부른다’는 것이니, 주안상을 갖추고 뜻이 맞는 친구를 좋은 때마다 불러 술을 권하고 교류하는 상황은 오늘날에도 쉽지 않은 절묘한 풍류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유주목은 묘갈명에서 반계정 원림의 경영 목표라 할 수 있는 이숙의 싯구를 인용하였다.
깊고 넓은 바위 거처는 깊음을 싫어하지 않으니 / 窈廓巖居不厭深(요곽암거불염심)
한 구역의 산수에 백년의 마음이 있다. / 一區山水百年心(일구산수백년심)
- 이숙의 시를 인용한 유주목의 ‘반계이공묘갈명’, 「계당선생문집 권13-묘갈명」, 『계당집』,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3. 필자 수정역
‘깊고 넓은 바위 거처’인 ‘요곽’의 깊은 고요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요곽(窈廓)이라는 표현은 공간의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표현한다. 은둔의 공간이 결코 답답하지 않다는 암시이다. 암거(巖居)는 기존 지형과 자연 요소를 최대한 보존하고 활용하는 친환경적 원림 조영 접근법이다. 현대의 생태적 설계(ecological design)와 동일한 맥락이다. 거처지의 은거성을 돋보이게 한다. 불염심(不厭深)은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곳에 있음을 싫어하지 않고 즐긴다는 심경을 드러낸다. 심층적 경험을 중시하는 설계 원리이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의 산수 경관에 세월을 투영한다. 일구(一區)는 한정된 공간을 의미한다. 그 안에 백년심(百年心)이라는 시간적 깊이를 담는다. 이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산수 원림에 대한 인간 정신의 가치를 함축한다. 반계정 원림에서 느끼는 깊은 정신적 만족감과 시간을 초월한 산수 원림과의 교감을 말한다. 비록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중의 바위 거처를 선택했지만, 오히려 백 년의 세월을 품은 듯한 깊은 사색과 정신적 충만함을 경험한다. 원림 경영에 담긴 정신적 깊이는 백 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는 역설이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
이숙은 처음부터 장기적 안목으로 원림 경영 목표를 수립하였다. 지속가능한 원림을 구축하고자는 반계정 원림의 조경 철학이 ‘백년심’이라는 시어에 잘 나타난다. 일시적인 꾸밈이 아니라 세월과 함께 깊어지는 원림을 만들고자 했던 반계의 원림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시경(詩境)이다. 조경적 관점으로 풍광을 읽는다. 반계정 원림으로 들어서니 물소리로 세상의 소리가 희미해진다. 바위가 품은 공간은 예상과 달리 답답하지 않고 깊고 넓은 품을 지녔다. 너럭바위 암반과 그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가 빚어낸 풍경은 세월이 무상하게 펼쳐진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 좁은 길은 때로 넓은 바위 마당으로 이어진다. 암반은 오랜 세월 정성껏 다듬은 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공간을 감싼다. 스며드는 빛은 바위 표면에 미묘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한쪽에서는 작은 물줄기가 바위를 따라 흐르며 경쾌한 소리를 낸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세월의 흔적이 살아난다.
십 년을 경영하여 작은 집을 이루니 / 十載經營小屋成(십재경영소옥성)
난간에 기대 낚시 드리우니 석양 물든다. / 憑欄垂釣夕陽生(빙란수조석양생)
영산에서 약초 개며 신선을 벗으로 부르고 / 靈山埰藥招仙侶(영산채약초선려)
몸 굽혀 근원 이으니 속세의 정을 멀리한다. / 姑躬連源遠俗情(고궁연원원속정)
눈 어두워도 여전히 바둑을 분별하고 / 眼暗猶分棋局道(안암유분기국도)
귀 멀어도 돌 여울 소리 능히 듣는다. / 耳聾能聽石溪聲(이롱능청석계성)
은자여, 계곡과 산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 / 幽人莫說溪山勝(유인막설계산승)
오직 어부와 나무꾼의 삶을 위해 그대와 바꾸지 않는다. / 直爲漁樵不換卿(직위어초불환경)
-이숙, 반계정 원운
여러 해를 매일 같이 들락대며 가꾼 반계정 원림이다. 정성스러움이 돋보이는 소박한 원림의 거점 중심 공간이다. 반석 위에 자리 잡았다. 반석이 계류와 만나는 지점이다.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하면서 정자 난간에 기대어 낚싯대를 드리우니 석양이 아름답다[憑欄垂釣夕陽生]. 지금은 정자 난간과 시내는 떨어져서 낚싯대를 드리우기에 멀다. 축대를 쌓아서 입구를 확보하였을 토목 공사의 흔적을 엿본다. ‘여주이씨 반계공파’ 유사의 일지에 따르면 ‘본소 앞 석축공사(1987.4.25.)’ 기록이 있다. 낚싯대 드리운 물결로 석양의 금빛 물결이 풍광을 자아낸다. 약초를 캐며 신선을 벗한다[埰藥招仙侶]. 세속의 욕망에서 벗어나[遠俗情] 자연의 근원에 몸을 굽혀 다가선다[姑躬連源].
석양이 물둘인 계곡의 붉은 물결, 바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의 반짝임, 저녁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실루엣이 움직임의 풍광으로 가득하다. 반계정 주변의 식생은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는다. 봄에는 연둣빛 새싹으로 들뜬다. 여름에는 짙푸른 잎이 무성하다. 가을에는 연노란 단풍이 품격이다. 겨울에는 단정한 풍치로 의연하다. 나이 들어 시력도 청력도 떨어졌다. 여전히 바둑을 두면서 내 안의 대화를 분별하고[猶分棋局道] 돌 여울의 물소리를 들으며[能聽石溪聲] 내면의 평화와 평온을 지닌다. 그러니 계곡과 산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莫說溪山勝]. 말로 표현되는 순간 그 본질은 이미 반쯤 사라진다. 그저 이곳에서 어부와 나무꾼처럼 소박하게 살아간다. 그게 반계정 원림의 미학인 소박미이다. 높은 관직이나 명예는 세속적이다. 이곳에서의 평온함과 바꿀 수 없다. 소박미와 평온미에 몸을 맡긴다. 비로소 자유롭다는 몸의 기억이 깊어간다.
이숙의 반계정 원운은 당나라 왕유(王維, 701~761)의 「답장오제(答張五弟)」 시적 분위기와 닮았다. 정신적 지향과 시적 이미지에서 은자로서의 삶의 가치를 원림에서 추구하였다. 왕유의 ‘답장오제’ 시를 읽는다.
종남에 초가집 하나 있어 / 終南有茅屋(종남유모옥)
앞으로는 종남산 마주보고 있도다. / 前對終南山(전대종남산)
해가 다가도록 찾는 손님 없어 오래 문이 닫혔고 / 終年無客長閉關(종년무객장폐관)
종일토록 무심하여 언제나 마음이 한가하였도다. / 終日無心長自閒(종일무심장자한)
음주나 낚시에 방해 받지 않으니 / 不妨飮酒復垂釣(불방음주복수조)
다만 그대 찾아와 서로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 君但能來相往還(군단능내상왕환)
-왕유, 답장오제
위 ‘원운’시와 ‘답장오제’의 주요 분위기와 시적 배경을 살핀다. 두 시 모두 거점 중심 공간이 소박하다. 산을 바라보는 곳의 소옥[十載經營小屋成]과 소박한 거처인 초가집[終南有茅屋]으로 세속적 욕망을 내려놓은 무심과 고요의 경지를 공유한다. 이숙은 ‘계곡과 산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幽人莫說溪山勝]’와 왕유의 ‘종일 무심하여 한가하다[終日無心長自閒]’가 어울린다. 낚시와 석양으로 교감하는 방식도 닮았다. ‘난간에 기대어 낚시 드리우니 석양이 떠오르네[憑欄垂釣夕陽生]’와 ‘음주나 낚시에 방해 받지 않으니[不妨飮酒復垂釣]’가 고요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그러면서 은둔과 교류의 갈망에서 이숙은 ‘영산에서 약초를 캐며 신선의 벗을 부르고[靈山埰藥招仙侶]’, 왕유는 ‘다만 그대 찾아와 서로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君但能來相往還]’고 말한다. 이숙이 신선이라는 이상적 존재를, 왕유가 현실적 벗의 왕래를 소통의 가치로 여긴다. 두 시는 고요와 초탈, 소박한 삶의 충만, 절제된 언어의 미학적 공명이라는 뛰어난 시경을 잘 묘사하여 정서적 유사성을 보인다.

반계정 원림의 경관과 의경
반계정 원림의 원형 경관을 「반계12영(盤溪十二詠)」을 통하여 살핀다. 치암 남경희의 문집인 『치암집』에 실렸다. 현판으로도 만날 수 있다. 남경희는 반계정 주인인 이숙보다 28살이 적고 5년을 더 살았다. 거의 동시대인으로 산림처사로 일컫는 이숙과 반계정에서의 교류를 떠올린다. 자신도 돌보지 못하면서 민생이니 세도를 걱정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스스로 치암(癡菴)이라 자호하였다. 반계정에서의 현판에는 지연산인(止淵散人)이라고 썼는데, 이는 경주에서 ‘지연계당(止淵溪堂)’을 지어 생도를 가르치고 강회하면서 유유자적한 자신을 일컫는 또 다른 방식이다. ‘반계12영’은 ‘벼, 바위, 달빛, 낙조, 노래, 연기, 봄꽃, 가을 덩굴, 저녁비, 밤불, 스님, 소’의 12 가지 풍경을 읊었다. 계절과 시간의 흐름을 배경으로 고요하고 소박한 풍경을 섬세하게 그렸다.
남교도향(南郊稻香)은 반계정 앞 들판의 벼를 말한다. 풍요로운 농경지의 생명력을 향기로 맡는 감각적 경관을 차경한다. ‘바람이 움직이니 은은히 향기가 생긴다[風動暗生香]’라는 구절은 바람을 매개로 원거리의 벼 향기를 정자로 끌어들이는 감각적 차경의 예이다. 반계정 원림의 남쪽 교외의 벼 향기를 통해 농경 생활의 풍요로움과 자연의 순환을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남교도향’은 지팡이에 기대어 서서 벼의 향기를 맡으며 풍요로운 수확을 기대하는 한가로운 풍경이다. 감각적인 경관 구성이 돋보인다. ‘남교도향’의 시경은 다음과 같다.
花凝初吐穗(화응초토수): 꽃이 응결하여 처음으로 이삭을 내밀고
風動暗生香(풍동암생향): 바람이 움직이니 은은히 향기가 생긴다.
倚杖時時嗅(의장시시후): 지팡이에 의지해 때때로 향기를 맡으며
幽居樂歲穰(유거락세양): 고요한 거처에서 풍년의 기쁨을 누린다.
북벽기암(北壁奇巖)은 견고하고 독특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정각산의 처매듬(치마바위) 암벽을 비정한다. 이 암벽을 금강산에 비유한 시이다. 급경사의 암벽 사이를 흐르는 정각 폭포와 같은 소규모 폭포 지형도 존재한다. ‘금강산이 문 앞 뜰에 있다[金剛在戶庭]’라는 표현은 먼 금강산을 상징적으로 차경하는 방식이다. 실제 금강산이 아니라 가까운 바위를 금강산으로 상징화함으로써 원거리의 명승을 정신적으로 차경한다. 사계절 변함없는 바위의 특성을 통해 불변성의 철학을 표현한다. ‘북벽기암’이 다른 산들과 구별된다는 점을 내세운다. 시지각적 경관 요소가 두드러진다. ‘북벽기암’의 시경은 다음과 같다.
莫向關東去(막향관동거): 관동으로 가지 말라
金剛在戶庭(금강재호정): 금강산이 문 앞 뜰에 있다.
四時浮一色(사시부일색): 사계절 내내 한 빛깔로 떠 있으니
不與衆山靑(불여중산청): 여러 산들의 푸름과는 다르다.
전계인월(前溪印月)은 반계정 원림 앞을 흐르는 단장천을 배경으로 먼 산에서 떠오르는 달빛을 말한다. ‘북벽기암’처럼 시지각적 경관 요소가 선명하다. 단장천 계곡에 비친 달을 묘사한다. 고요한 물에 비친 달의 완벽한 달그림자를 얼음같이 맑고 깨끗하다고 사색한다. 하늘의 달을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가까이 끌어들이는 차경이다. ‘위아래가 한결같이 둥글다[上下一般圓]’는 표현은 하늘의 달과 물에 비친 달이 동일하게 인식되는 반영의 미학이다. 물결 없는 고요한 상태에서 달의 본체를 온전히 본다. 비로소 본래의 모습을 온전히 본다는 명상적 깨달음의 풍광을 ‘전계인월’에 묘사하였다. ‘전계인월’의 시경을 살핀다.
氷輪自皎㓗(빙륜자교결): 얼음 같은 달은 스스로 맑고 깨끗하여
上下一般圓(상하일반원): 위아래가 한결같이 둥글다.
不許微波動(불허미파동): 미세한 물결의 움직임도 불허하니
方觀本體全(방관본체전): 비로소 본래 모습 온전함을 본다.
고성낙조(古城落照)는 오래된 고성의 낙조를 말한다. 밀양을 지켰던 추화산성을 비정한다. 시지각적 경관 요소를 강조한다. 해질녘 고성(古城)의 모습을 낭만적인 풍광으로 묘사한다. 시간적 요소인 낙조를 차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일시적이고 변화하는 경관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외로운 성은 아직 붉은 빛을 거두지 않았다[孤城未斂紅]’라는 표현은 해질녘의 특정 시간대를 차경하여 경관의 극적인 효과를 강조한다. 어둠에 잠긴 골짜기와 대비되는 붉은 노을을 받은 성벽의 모습을 포착한다. 고요한 풍경에 까마귀가 등장한다. 비로소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은 동적인 멀티미디어의 풍광을 완성한다. ‘고성낙조’의 시경은 다음과 같다.
萬壑皆含黑(만학개함흑): 모든 골짜기는 어둠을 머금고 있으나
孤城未斂紅(고성미렴홍): 외로운 성은 아직 붉은 빛을 거두지 않았다.
寒鴉添物色(한아첨물색): 차가운 까마귀가 풍경에 더해지니
飛入畫圖中(비입화도중): 마치 그림 속으로 날아 들어간다.
각잔초가(覺棧樵歌)는 정각산의 산길을 오가는 나무꾼의 노랫소리를 차경한다. 청각 요소를 경관으로 가져왔다. ‘맑은 노래가 숲 사이에 두고 들린다[淸唱隔林聞]’는 표현에서 소리를 통해 멀리 있는 나무꾼의 존재를 정자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도끼자루가 썩어도 모를 정도로 나무꾼의 행적을 신선놀음에 비교한다. 나무꾼의 노래를 통해 반계정 원림에서의 일상을 신선 세계로 끌어 올린다. 세속을 초월한 듯한 맑은 노래가 자연과 하나 되어 울려 퍼지는 모습을 그리며, 인간계와 신선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각잔초가’의 시경을 읽는다.
爛柯應有興(난가응유흥): 도끼자루가 썩을 정도로 흥취가 있으니
淸唱隔林聞(청창격림문): 맑은 노래가 숲 사이에 두고 들린다.
不似人間語(불사인간어): 인간 세상의 말과 같지 않으니
餘聲繞白雲(여성요백운): 여운 소리는 흰 구름을 감돈다.
범촌취연(泛村炊烟)는 범도리 마을마다에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지각적 경관 요소이다. ‘맑은 노래가 숲 사이에 두고 들린다[淸唱隔林聞]’는 표현에서 소리를 통해 멀리 있는 나무꾼의 존재를 정자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멀리서 한 줄기 연기를 본다[遙看一抹烟]’는 표현은 원거리의 마을 생활을 시각적으로 차경하는 방식이다. 더군다나 공동체의 평화로운 풍광을 통하여 삶의 진정성을 경관에 부여한다.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를 통하여 평화로운 일상을 읽는다. 이러한 안녕을 상징하는 풍경의 지속성이 유토피아이다. 평화로운 일상과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한 줄기 연기는 생명과 생활의 지속성을 상징한다. 경관은 소박한 삶에서 비롯한다. 소박한 삶에 대한 소망이 풍경의 단초로 재창조되는 연유이다. ‘범촌취연’의 시경을 살핀다.
村舍朝晡計(촌사조포계): 마을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생계를 꾸리고
遙看一抹烟(요간일말연): 멀리서 한 줄기 연기를 본다.
願言無斷絶(원언무단절): 이 연기가 끊이지 않기를 바라며
共樂太平年(공락태평년): 함께 태평한 세월을 즐긴다.
응봉춘화(鷹峯春花)는 매봉의 봄꽃을 말한다. 시의 본문에서 앞 봉우리[前峯]라 하였으니 반계정 원림의 단장천 건너로 보이는 산으로 비정한다. 반계정 원림의 터잡기에 매 사냥 이야기가 나온다. ‘비가 지나가니 앞 봉우리가 따뜻해지고[雨過前峯暖]’라는 표현은 계절의 변화를 차경의 대상으로 삼아 시간적 흐름을 공간적으로 포착한다. 앞산 봉우리의 봄 풍경을 통해 순환과 생명력을 묘사한다. 계절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모습이다. 달력 없이도 피고 지는 숲의 변화를 통해 봄을 알아차린다. 세속을 초월한 자유로운 삶의 풍광을 엿본다. ‘응봉춘화’의 시경은 다음과 같다.
雨過前峯暖(우과전봉난): 비가 지나가니 앞 봉우리가 따뜻해지고
深江爛熳開(심강난만개): 깊은 강가에 꽃이 화려하게 핀다.
山家無曆日(산가무력일): 산속 집에는 달력이 없어도
猶自識春來(유자식춘래): 그래도 스스로 봄이 왔음을 안다.
사암추라(舍巖秋蘿)는 반계정 원림의 암벽을 따라 가을의 덩굴이 뻗어나가는 경관을 묘사한다. 반계정 원림을 단장천 건너에서 바라볼 때 가을 단풍 든 풍경이 가장 빼어난 풍경이다. 세부 경관의 묘사로 덩굴의 단풍을 가을 풍경의 완성으로 제시한다. 가을 이끼와 단풍의 모습을 상찬한다. ‘단풍잎이 누구보다 아름답다[楓葉較誰奇]’는 표현은 계절적 변화를 통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차경하는 방식이다. 계절마다의 아름다움은 본질에 갈무리되어 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이다. 겉모습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철학적 사유이다. 담쟁이덩굴 같은 한 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날 때마다 수시로 놀랍다. ‘사암추라’의 시경을 읽는다.
先霜得秋氣(선상득추기): 첫 서리가 가을 기운을 얻어
楓葉較誰奇(풍엽교수기): 단풍잎이 누구보다 아름답다.
外面花相似(외면화상사): 겉으로는 꽃과 비슷하나
中藏不磷姿(중장불린자): 속에는 빛나지 않는 자태를 지녔다.
웅연모우(熊淵暮雨)는 곰소에 쏟아지는 저녁나절의 내리는 비의 풍경이다. 곰소는 반계정 원림 앞을 흐르는 단장천이 깊게 머물면서 형성한 연못같이 넓은 여울이다. 곰소에 저녁 비가 가늘게 내리는 풍경이다. ‘서쪽 계곡에 구름이 자욱하고, 해질녘에 가느다란 비가 내린다[西溪雲漠漠, 落日雨霏霏]’라는 표현은 기상 현상을 차경의 대상으로 삼아 자연의 변화하는 모습을 포착하는 방식이다. 푸른 이끼 낀 길에 앉아 낚시를 한다. 도롱이를 입고 낚시를 하는 노인의 풍경은 그윽하기만 하다. 그라다가 낚시를 멈추고 돌아가는 노인의 풍경 또한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원림에서 소요하는 사람의 모습은 조화로운 공존을 그린다. 푸른 이끼 길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은 비가 내려도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원림에서 여유 있는 삶을 누리는 풍광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웅연모우’의 시경을 살핀다.
西溪雲漠漠(서계운막막): 서쪽 계곡에 구름이 자욱하고
落日雨霏霏(낙일우비비): 해질녘에 가느다란 비가 내린다.
不妨蒼苔路(불방창태로): 푸른 이끼 길을 해치지 않으니
蓑翁罷釣歸(사옹파조귀): 도롱이 입은 노인이 낚시를 멈추고 돌아간다.
어정야화(漁汀夜火) 밤에 불을 지피고 물가에서 고기를 잡은 어부의 풍경을 그렸다. 밤에 이루어지는 어부의 활동이 특히 어울린다[偏宜]고 하였다. ‘차가운 등불이 새벽까지 이어진다[寒燈到五更]’는 표현은 야간 경관을 차경하여 주야의 대비를 통한 경관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등불을 통해 어촌의 밤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불과 멀리서 들려오는 말소리는 고요한 밤의 분위기를 더욱 강조한다. 요즘의 하천에서 이루어지는 연등 행사를 떠올린다. ‘어정야화’의 시경은 다음과 같다.
漁事偏宜夜(어사편의야): 어부의 일은 밤이 더욱 어울리니
寒燈到五更(한등도오경): 차가운 등불이 새벽까지 이어진다.
只看明滅影(지간명멸영): 오직 보이는 것은 밝았다 꺼졌다 하는 그림자뿐
人語隔溪聲(인어격계성): 사람의 말소리가 계곡 소리 너머 들린다.
문암귀승(門巖歸僧)은 반계정 원림의 뒷산인 정각산에 있었다는 ‘정각사’를 비정한다. 커다란 암반이 문처럼 마주보며 입구 역할을 하였을까? ‘아침에 바위 아래에서 보이다가, 저녁에는 지팡이를 짚고 올라가는 것을 본다[朝見從巖下, 暮看扶杖登]’라는 표현은 인물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를 차경한다. 아침에는 문 앞 바위에서 내려오더니 저녁에는 지팡이를 짚고 올라간다. 스님의 모습을 통해 속세와 분리된 수행자의 고요한 일상을 그린다. 특히 석양을 배경으로 한 스님의 모습은 원림의 풍경을 종교적 수행의 경지로 이끌 정도로 경건하다. ‘문암귀승’의 시경을 읽는다.
朝見從巖下(조견종암하): 아침에 바위 아래에서 보이다가
暮看扶杖登(모간부장등): 저녁에는 지팡이를 짚고 올라가는 것을 본다.
箇中蕭灑色(개중소쇄색): 그 속에 홀가분한 멋이 있어
最是夕陽僧(최시석양승): 가장 아름다운 것은 석양 속의 스님이다.
조록방우(竈麓放牛)은 산기슭에서 소를 놓아기르는 풍경이다. 산기슭에서 소를 방목하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저 푸른 초원을 노니는 여러 소들이 어슬렁댄다. ‘산기슭에는 끝없는 푸르름이 있고, 여기저기 몇 마리 소가 있다[阿無限綠, 點點幾家牛]’라는 표현은 목가적 경관을 차경하여 자연과 인간 활동의 조화를 보인다.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소박한 여유와 만족을 담았다. 마땅히 배부르고 쉬어야 하는 게 풍요로움이고 충만한 삶이다. ‘조록방위’의 시경은 다음과 같다.
山阿無限綠(산아무한록): 산기슭에는 끝없는 푸르름이 있고
點點幾家牛(점점기가우): 여기저기 몇 마리 소가 있다.
隨意生涯足(수의생애족):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충족하니
應須滿腹休(응수만복휴): 마땅히 배불리 먹고 쉬어야 한다.
치암 남경희의 「반계12영」은 반계정 원림의 아름다운 원림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당대 지식인의 원림 경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적 사유를 반영한다. 각 영(詠)에 나타난 차경의 활용과 그를 통해 형상화된 다채로운 의경은 한국전통정원의 조영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경관과의 교감을 통해 심미적인 경험과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얻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