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요즘 어딜 가도 시끄럽지 않나요? 피드도, 대화도, 뉴스도. 뭔가를 계속 내뱉고 만들어야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은 세상이랄까요. 극내향인인 저마저도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릴스를 찍어내고 있거든요.
저는 가끔 고요함이 그리워요. 마음이 지칠 때면 모든 연락을 무시한 채 침묵의 잠수를 택할 때도 많아요. 더 많이 떠들고 더 쉼 없이 움직여야 유능하다고 믿는 세상 속에서, 고요함이 빛을 내고, 인정받는 때가 오기를 내심 바라고 있어요.
6월이 시작되는 이번 주만큼은 구독자님도 주변의 소란을 잠시 꺼두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평온한 시간을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 이렇게 사용해요
깃털 같은 소음보다 밀도 있는 침묵이 좋다.
말이 많으면 유능하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백을 두고 고민하는 것보다 영양가 없는 말 한마디 더 하는 것이 더 높게 평가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라도 더 떠들어야 한 명이라도 더 들어주는 알고리즘 안에서 살고 있으니까.
알맹이 없는 외침들 속에서 같이 꽥꽥거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침묵의 무거움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다. 불합리한 소리에 웅숭깊게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은 약해서가 아니라 강해서다. 오랫동안 봐온 것, 들은 것, 몸에 닿은 것들이 켜켜이 쌓여 만든 침묵이 돌면 공기는 무거워진다. 몰라서, 관심이 없어서 텅 비어버린 공기와는 다르다. 이는 침묵의 품격. 손과 발, 혀를 현란하게 움직이면서 알맹이가 없는 텅 빈 공간을 가리려는 노력과는 다르다.
소란이 클수록 침묵의 밀도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고요함은 어떻게 빛날 수 있을까.
웅숭깊은 사람이 이기는 방식,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사실 이번 주 글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를 막차로 관람한 뒤 쓰게 되었습니다. 미란다(메릴 스트립)가 등장하는 순간,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존재감에 전율이 확 돌더라고요.
영화의 시작 부분부터 전반적인 메시지가 드러납니다. 실수로 대중의 질타를 받으며 추락할 뻔한 Runway를 살린 건 저널리스트 앤디의 글이었어요. 20년간 저널리스트로 쌓아온 시간이 녹아든, 화려하지 않지만 웅숭깊은 글. 요란하지 않은 진지한 사과문을 시작으로 앤디가 쓰는 글들은 조회수가 높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묵직하게 펀치를 날립니다.
광고주의 불합리한 요구 앞에서, 예산 삭감과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대주주 앞에서 미란다는 말을 아낍니다. 그 자리에서 가장 많은 해야 할 사람이 가장 적게 말해서 무능한 리더로 오해를 사기도 하죠. 물론 미란다가 완벽하지 않은 리더이긴 하지만, 미란다의 침묵은 통찰이자 전략이었어요. 반면 미란다의 자리를 노리는 자들은 충분한 평판도, 무게감도 없습니다. 두 진영이 나란히 놓이는 순간, 무거움과 가벼움이 선명하게 갈립니다.
1편보다 화려하고, 1편보다 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번 2편이 제게 훨씬 더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이 '무거움의 힘' 때문인 것 같아요. 온갖 얄팍한 말들이 나를 증명해 준다고 믿는 세상에서, 앤디의 글과 미란다의 침묵은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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