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단상

핀오크

0007.만남과 그이후

2024.11.20 | 조회 83 |
from.
茶敦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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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조경헤리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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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핀오크 식재지 - 여주자영농고 
남은 핀오크 식재지 - 여주자영농고 

[#나무 단상]0007 - 핀오크 - 대왕참나무

-만남과 그 이후

 

🎋프롤로그

'핀오크와의 만남'이 2007년부터 2015년까지의 10년을 정리하는 콘텐츠와 맥을 같이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지금 학교에 울창하게 자리잡은 핀오크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핀오크와의 만남에서 지금까지를 다룰 필요가 있다. 최근 10여년 핀오크는 가장 빛나는 청춘을 보내고 있다. 그것도 수령 23세의 가장 날렵한 청춘이다. 그 사진만 보아도 푸른 기운이 소름 돋듯 어질하다. 그러나 미리 밝히지만, 이 글을 남기고자는 의념과 달리 맥락은 건너 뛸 수밖에 없다. 아마 글은 심하게 요동치다가 갑자기 벼랑 아래로 떨어져 에필로그에 다가가 있을 것이다. 순수한 의도에 맞지 않게, 어서 글을 마쳐야겠다는 의무감에 사로 잡혀 스스로를 구원하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나는 내가 한 지난 일들을 되살려 이야기 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어제의 일도 오늘 다시 말하는 것을 태생적으로 피한다. 그러니 내가 하는 작년의 수업과 올해의 수업도, 어제의 수업과 오늘의 수업도 방식은 같지 않다. 그게 지금까지 나를 움직인 동력이다. 어쩌면 내가 전공한 분야의 수업이 늘 1개 학급을 전제로 했기에 가능할 것이다. 유일하게 여주자영농고 90년대에 5학급을 같은 학년 같은 교과를 지도하였다. 물론 그때로 학급별로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그러니까 학급 분위기와 그때의 현장감으로 다르게 전개한 듯 하다. 그래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와 내가 너무 다르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아직도 나는 어제와 내가 다르다. 그래서 늘 하루가 새롭다. 새로운 마음이다. '핀오크와의 만남'도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시도다. 쓰고 나면 툭 털고 잊고 말 일이다. 내 속 응어리 하나 내려 놓기 위함이다. 그러나 핀오크는 여주자영농고에서 영원히 남아 빛날 것이다.

1993년 3월이다. 핀오크를 파종한 건

핀오크 종자를 수입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였던 한 해가 있었기에 10 드럼통의 핀오크 종자를 준비할 수 있었다. 10 드럼통의 도토리만한 핀오크 종자가 모두 몇 개인지를 알기 위하여 간단한 산수를 하였다. 1미터 床(bed)에 가운데 1개 양쪽 3개씩 7개를 파종하고 앞 뒤 간격을 10센티미터로 결정하였다. 그러니 총 종자 알 수와 파종량이 계산되어지고, 면적에 맞는 묘포 설계가 가능해진다. 이때의 설계 경험과 전임지 이천에서의 설계 및 구획, 파종, 재배치 식재 등의 경험이 아직까지 내게 가장 큰 재산임에 틀림없다. 아무나 이런 직접적인 고민과 실천이 가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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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묘포장에 육성되고 있었던 나무들을 이식해야 한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는 묘포장은 삽목상, 파종상, 육성묘, 조경수 규격 도달목, 묘포장 경관을 돋보이게 해주는 주도로 주변의 조경수 성목까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몇 군데를 이식하고 고쳐서 파종할 일이 아니다. 전체를 옮겨 심고 전체에 핀오크 파종을 하고자 함이다. 힘든 일이고 지난한 과정이 예고 된 것이다. 서른 살 전반기의 경력 7년차에 접어드는 물불 가리지 않는 나무에 대한 정열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교내 곳곳에 조경으로 필요한 성목을 먼저 옮겨 심고, 일부는 훗날을 도모하기 위하여 학교의 빈 땅을 찾아 줄 맞춰서 육성목으로 식재하였다. 관목과 파종묘들도 임시로 가식장을 만들어 멀찌감치 가식하였다. 이렇게 자리를 비우는 공사에 매달리며 지쳐갔다.

바쁘고 긴박하게 움직였다.

식재 간격에 맞춰서 심은 육성목들이 그 후에 조경 업자들에게 많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93년도에 2학년이고 3학년이었던 내게 조경을 배우는 학생들은 너나없이 굴취, 운반, 식재 과정에 함께 하였다. 벅차고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었지만 내 열정과 의지 가득한 확신은 살아 움직이는 생동의 아이템이었고, 학습 콘텐츠였다. 이것이 학생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학생들도 눈이 빛나고 있었다. 과연 경제성이 있는가를 의심하는 학생들에게 틀림없이 터진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시대에 필요한 나무를이 개발하여 준비하는 것은 나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예측이며 자신감이다. 지금 그때의 움직임과 콘텐츠를 되살려 다시 하라면 이미 변해버린 많은 상황들로 시작조차 못하고 삐걱댈 것이다. 그러나 여전한 것은 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내 안에 유전자처럼 심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핀오크 종자는 도토리 크기였다.

파종방법은 교과서에 산파, 조파, 점파가 나와 있는데, 도토리 크기인 핀오크는 점파로 파종한다. 파종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순서대로 준비하여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다. 동시다발적이어야 한다. 볏짚과 새끼줄을 준비하였고, 개나리 울타리에서 흙꽂이용 가지를 전정가위를 풀어서 만들었다. 핀오크 파종을 위하여 기존 육성목을 모두 이식한 텅 빈 밭은 평소보다 4배 이상 더 넓어 보였다. 트랙터가 신나게 로터리를 친다. 경운 후 쇄토와 정지를 하는 과정을 힘 좋은 트랙터로 반복 쇄토로 밭은 정리한다. 하기야 지금도 그렇지만 힘 좋은 트랙터로 소위 로터리질만 잘하면 로터리 전과정과 후과정이 생략된다. 그만큼 밭이 오랫동안 묘포장으로 단련이 되어 돌도 없고 밭흙이 착착 감길 정도로 좋았다. 2회 반복만으로도 흙살은 순종적이었다. 무엇이든 발아들일 수 있는 순응의 자세로 다소곳해졌다.

기존의 양묘장과 성목을 이식한 후 핀오크 파종상으로 교체 작업
기존의 양묘장과 성목을 이식한 후 핀오크 파종상으로 교체 작업

내친김에 관리기를 꺼냈다.

아직 사용 전인 신제품이 있다길래 사용하기 했다. 관리기로 1미터 이랑을 만들었다. 고랑은 50센티미터로 하였다. 관리기가 잘 로터리된 흙살을 사쁜하게 즈려밟고 뽐냈다. 보통 학생들과 줄을 띄워서 삽으로 1열로 서서 이랑과 고랑을 만들던 것을 관리기로 대신하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때 나는 사진을 찍었다. 아직 찾지 못한 그때의 사진으로 지금 답답하다. 아마 인화된 사진을 찾아야 할 것이다. 파종상만 면적 전체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 주도와 부도를 내어 차량 통행과 리어카 등의 운반도구가 통행되도록 하였다. 무엇보다도 학생 실습 현장 수업에서 설명하고 시범 보일 때, 정렬하여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정도의 폭을 곳곳에 배려하였다. 봄가뭄에 먼지가 입안 가득이다. 파종 준비와 파종까지의 기간 내내 '파종 후 비'가 오라는 주문을 날리며 돌아다녔다.

파종 후 바로 비가 내렸다.

속마음으로 뛸 듯이 기뻤다. 짚을 한 뭉치씩 잡고 꺼풀을 벗겨낸 속살 드러난 짚을 1미터 床에 짚 밑단이 양쪽으로 향하게 두 줄씩 겹쳐 덮었다. 가지런히 같은 두께가 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곳곳에 내 손길이 따라 다닌다. 마무리와 정리는 내 몫이다. 거친 것을 거칠지 않게 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 바람에 날리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새끼줄을 세로로 길게 늘어뜨린다. 2줄로 늘어뜨린 것을 3-5미터 간격으로 새총가지 만들어 놓은 것으로 꾹 눌러서 고정한다. 짚을 안정시키는 일이다. 새총가지는 2열 교호식재 방식으로 배치한다. 학생들에게 2열 교호식재에 대한 설명을 놓치지 않는다. 실습 중에 하는 중요한 학습 콘텐츠가 많다. 칠판에서 1시간 설명할 것도 현장에서는 5분안에 마칠 수 있다. 직접 시범을 보고 해 보는 수업이다. 

이번에는 새쫓기에 나섰다.

묘포장 전체가 노란색 선명한 속살의 짚이 가지런히 같은 두께로 정연하게 깔려 있고, 그 위로 2줄의 새끼줄이 새총가지에 의해 2열 교호식재처럼 배치되어 있으니 얼마나 보기 좋은가. 그 큰 면적 전체가 내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출근과 동시에 밭으로 나가 번질나게 돌면서 관찰하는데, 언제부터 새가 밭을 점령하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는가. 도토리 같이 전분이 많은 종자니까 까치까지 달라 붙는다. 까치에게 종자를 파내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새쫓기 전략이 수립되고 '새'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여 '새' 이야기로 하루를 마감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새가 야속했다. 쉬는 시간에도 수시로 묘포장을 들락댄다. 새머리라고 하던데, 그렇지 않았다. 내가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도 수업이라 없는 시간에는 기막히게 강탈을 한다. 누가 새머리라고 놀리는가. 그래서 본능이다. 파리, 모기에게도 본능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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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세라는 게 있다.

일제히 같은 기간에 싹이 돋아나오는 세력이다. 와 이게 어찌된 일인가 며칠 사이로 핀오크 싹이 돋아나는데, 이건 완전히 소나기 맞고 신나서 펄떡펄떡 뛰 다니던 유년의 어떤 기억처럼 그렇게 신났다. 핀오크의 발아세는 무서웠다. 일찌기 이천에서 4년여를 경험해보지 못한 강한 씨앗이다. 발아율이 90%를 웃돈다. 속에서 환호가 터진다. 교과서에 기재된 사항을 교과서대로 실천하였더니 그대로 싹이 나오는 것이다. 과히 살아 꿈틀대고 움직이는 운동성까지 지닌 교과서였으니 나와 학생들의 자부심은 남다르고 대단하였다. 새싹이 나왔다. 볏짚을 밀어내며 점파한 위치에서 고개를 내민다. 삐쭉삐죽 내미는 싹들이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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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비둘기 울어대다.

여주 북성산에서 멧비둘기가 '꾸우꾸우 꾸꾸' 하면서 깊은 콘트라베이스로 지저귈 때쯤이면 분주하기만 했던 긴 봄철의 밭일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힐 때이다. 이때쯤이면 없던 수심도 어느새 자리잡아 내 안에 들어와 있고, 긴 한숨도 나 모르게 새어 나온다. 얼굴은 타서 뭐하는 사람인지 구별되지 않기 시작한다. 정선율과 발아율을 고려하고 손실을 따져도 6-7만개의 묘목이 생산된다. 내년 이 묘목을 다시 옮겨 심어야 한다. 어디가 좋을지 물색하며 계절을 넘긴다. 다행히 중학교 후문 쪽 과수원 자리가 있으니 거기 심을 수 있다고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지만 말들이 생성되고 있었다. 멧비둘기 지저귐 속에 그나마 마음 한 쪽 편안한 미소가 들어 앉는다.

과수원 자리는 학교 목초지로 이용되고 있다.

목초지 대부분 가축 분뇨를 뿌리고 갈아 엎기를 반복하다가 목초 파종에서 수확기까지 초지로 이용된다. 이용되지 않는 모든 기간은 지속적으로 가축 분뇨를 뿜어 넣고 심경을 한다. 지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분뇨처리와 토질 개량이함께 이루어지는 축산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넓은 면적의 초지인 것이다. 제대로 목장을 운영하려면 사육 두수에 걸맞는 규모의 초지가 필요하다. 초지가 있는 풍경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의 18세기 영국에서 유행하였던 픽처레스크한 풍경이다.

초지를 운영하는 장비와 인력은 만만치 않다.

언제부터 과수원은 과수를 하지 않고 초지가 되었을까. 개간만 하면 곧바로 분뉴를 집어넣고 초지를 조성한다. 개간을 위해 동원된 엔진톱도 무지기수다. 성능 좋은 트랙터는 초지를 위하여 필수적이다. 분뇨탱크 역시 트랙터에 견인하여 시스템으로 운용된다. 그리고 이에 잘 적응된 전담반이 투입되어 꽤 발달된 조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학교 경영의 측면에서 평가했다. 이 모든 것이 원활하게 운영되어야만 하였기에 학교 시스템이 한쪽으로 편중되었다.

핀오크 생산은 살아 있는 교육이다.

특정 나무를 지칭하는 게 아니다. 어느 나무였든, 준비과정에서 파종하여 싹이 트고 가꾸는 모든 프로그램은 같다. 나무마다 조금씩 다른 특성은 있지만 기본 진행 과정의 실천은 대동소이하다. 마치 모든 채소를 다 길러보거나 모든 가축을 다 길러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카테고리별 대표성으로 접근하는 것은 주어진 교육과정 운영의 요점이겠다. 핀오크라는 참나무류 나무를 생산한다는 것이 다른 많은 나무의 생산과정과 연계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자영농 육성이라는 학교 교육 목표에 근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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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산지의 참나무는 크게 2개의 범주로 나눈다. 

이름하여 Red Oak(또는 Black Oak)와 White Oak 이다. 이 2개의 아속으로 분류하는데, 레드오크 또는 블랙오크는 견과피 내면에 털이 있고, 잎은 깊고 뾰족한 열편을 가지며 견과는 2년에 성숙한다. 수피는 일반적으로 검정색이며 깊은 골로 주름이 있다. 반면에 화이트오크 아속은 견과피의 내면에 털이 없으며 잎은 둥근 열편을 가지고 견과는 1년에 성숙하며 수피는 밝은 회색이고 비늘처럼 벗겨진다. 블랙오크의 도토리는 쓴맛이 있고 화이트오크의 도토리는 단맛이 있다. 핀오크의 종자 성장기간은 16-18개월 정도이고 9-10월 중에 성숙한다. 성숙된 종자는 자연히 떨어지게 되므로 이것을 모아 파종할 종자로 사용한다.

단풍나무류와 느릅나무류와 잘 어울린다.

핀오크는 참나무류 중에서 가장 일찍 개화한다. 잎이 1/3 정도 자랐을 때 개화 시작이다. 자웅동주로 서로 떨어져 달리고 웅화는 가늘게 아래로 쳐져서 달리며 노란색이고, 자화는 짧고 붉은 빛이 돈다. 핀오크의 열매는 견과(도토리)로써 작으며 껍질에는 줄무늬가 있고 단단하다. 견과 아래 부분 1/3은 각두(cup)로 싸여 있다. 소지는 처음 부드러운 녹색이었다가 나중에는 홍갈색 또는 적갈색을 나타내며 수피는 엷은 회색으로 얇고 부드러운 느낌이나 성숙목은 암회색으로 골이 얇게 있고 매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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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오크가 조경수로 어울리는 이유는 수형에 있다.

다른 참나무류 보다 가는 가지를 가지고 있다. 수간이 통직하다. 수관폭도 좁다. 수관의 상층부는 위로 향하고 중간부위 가지는 수평으로 되고 하층부 가지는 비스듬히 아래로 쳐지는 통직한 수관폭 좁은 수형이라니, 상상이 되는가. 좌우 대칭의 그 단정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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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쫓기와 가뭄으로 한 계절을 넘긴다.

덮어 둔 짚이 토양 습도를 유지한다. 서서히 짚 몇 개씩 빼내면서 장마철까지 노지 양묘로 일관하였다. 노지 양묘로 충분했다. 보통 포지 선정을 배수가 잘 되고 종일 햇빛이 드는 곳이라 했는데, 이곳 토양은 마사토질이었고 오랜 시간 양묘에 의하여 땅이 충분히 사양토였고 pH 5.5-6.5를 유지하였다. 토양소독과 종자소독은 생략하였다. 수입된 종자의 관리 정도가 믿음이 갔다. 되도록 빠르게 파종하기로 하여 3월말에 파종을 마친 것이다. 

핀오크 종자 알수를 다시 세어본다.

핀오크 종자의 순량율은 국내 상수리나무에 준하여 적용하였다. 90%였다. 역시 발아율도 60-90%였다. 리터당 평균 500알수이고, 20리터들이 드럼통 10개였으니 500알*20리터*10드럼통=10만 개의 종자였다. 100,000*0.9(순량율)=90,000개, 90,000*0.6-0.9=54,000-81,000의 종자가 발아되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범주의 평균치인 67,500 알수로 하여 새 등에 피해 입은 것 고려하여 6만개의 묘목 생산을 목표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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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힘에 기대어 핀오크는 자랐다.

스프링클러나 미스트 없이 노지에서 자연의 힘에 기대어 핀오크는 자랐고, 학생들과 제초 작업을 수시로 하면서 파종 후 유지관리에 충실했다. 흔한 복합비료 한번 주지 않았으나 생장이 빠르게 지상부를 차지하며 깃꼴잎을 펄럭였다. 핀오크 잎은 이국적이다. 잉카 제국의 디자인을 보는 듯 열편이 깊게 패이면서도 좌우대칭의 긴 잎이 잎자루에 매달리듯 아래로 처지며 흔들린다. 

새로운 걱정이 찾아온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을 보내면서 새로운 걱정이 그동안 쏟은 정성만큼의 크기로 스멀대며 찾아든다. 이제 1년생 묘목을 판매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육성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계속 육성하여 더 키운다면 1-0묘를 식재하여 6년 후면 수고 5.2미터, 흉고 5-6센티미터를 만들 수 있다는 자료에 근거하면 94년인 지금 1-0묘를 이식하여 2000년부터는 흉고 5-6센티미터의 핀오크가 조경수로 식재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 6년의 기간에 이 묘목이 서 있을 자리를 찾아야 하는 가장 곤혹스러운 문제가 생긴다. 처음 종자를 수입하여 재배할 때 이미 이런 문제를 제기하였고, 관리자로부터 아무 걱정 마라, 이 학교에 심을 땅은 수두룩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장소를 이제 결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묘목으로 판매하기에는 유통과정이 미성숙하였다.

핀오크에 대한 묘목 시장이 아직 전무하였다. 종묘회사에 납품하여 유통 관련하여 방법을 개척해야 할 일이다. 일반인들에게 유망한 조경수라고 설득하고 나중에 판매처 확보를 위한 단서까지 제공해야 한다. 내 자신과는 걸만한 약속인 바, 일반인까지 걸기에는 다소 무리가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육성묘 양성으로 가닥을 잡는다.

그러자면 파종의 4-8배의 면적이 소요된다. 1제곱미터에 7알*5줄=35주를 생산하였으니, 육성묘 식재 간격을 30센티미터로 하면 3*3=9주, 50센티미터로 하면 2*2=4주가 되니, 30센티미터 간격일 경우 4배, 50센티미터 간격일 경우 8배의 면적이 필요하다. 산수에 근거하여 주먹을 쥐었다 폈다는 하는 일만 애꿎게 되풀이하였다. 지금 파종상 면적의 5배-10배 정도 면적이야 주도로와 부도로(20%)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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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전입 첫 해부터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왔다.

전임 3분 선생님의 실포장을 모두 맡았다. 분재포, 묘포장, 학교정원, 실험실까지 도맡았다. 물론 담임은 당연시 되었다. 2년여를 준비하여 3년째에 핀오크 대량 파종상을 일궈 놓은 것의 결말은 새로운 시련과 시작을 예고한 것이다.

그래서 확보된 곳이 학교 과수원이었다.

핀오크 1-0묘를 94년 봄에 이식할 수 있었다. 새로운 줄을 띄워 상을 만들고 내가 맡은 5학급 학생 모두 봄철 내내 묘목 옮겨심기 실습을 하였다. 식재 완료하니 벌써 5월이었다. 그을린 얼굴 속에서 한시름 놓게 되었다. 뿌듯한 마음을 뒤로 하고 바쁘게 뛰었던 프로젝트를 접고 실습 이후의 이론 정리와 과제 수업에 매진한다. 그럴 즈음에 달려와서 큰일 났다고 알려준 사람은 다름아닌 초지 전담반의 분뇨 처리 당사자였다. 분뇨를 뿌리면서도 아니다 싶어서 내게 알려준 것이다. 고마웠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불협화음과 불통의 연속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핀오크 1-0묘를 식재한 곳에 트랙터 바퀴로 짓밟으면 분뇨를 뿌리게 한 것은 조직 문화가 아니다. 같은 직장에서 도저히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된 것이다. 아무도 그 이후의 일에 대하여 더 문제삼지 않았다. 어찌하다 보니 공공의 목적으로 자영농 육성의 목표로 학교 교육 과정이 운영되는 소위 '동양 최대의 학교'에서 그 일은 내 개인의 일로 외면되었다. 모두들 권력을 가진 사람의 눈치만 보고 외면했다.

수습하고 재식재하는 과정은 산만했다.

눈에 띄지도 않았다. 고운 자식같은 핀오크가 어디에 심겨졌고 누가 얻어 나갔는지 막힌 귀에는 들려오지 않는다. 기록하는 일을 멈췄다. 더 이상의 사진 촬영은 없었다. 그런 비상식적인 일의 몸통은 학교 과수원 소유권에 관련되어 있다. 땅 소유자가 학교가 아니라는 말이 돌았다. 그리하여 땅 소유자의 잇속에 따라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뇨를 뿌리고 초지로는 활용한다? 학교 소유 아닌 땅을 왜 학교 과수원이라 불렀으며, 거기에 초지를 조성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이미 내가 파헤칠 일의 범위를 넘어섰다.

어떤 경로와 방법으로 소유자가 학교에서 개인으로 둔갑하였는지 알 수 없다. 3년차 전입교사에게 사정에 밝은 선임교사들의 침묵은 충분히 폐쇄적 권력 조직을 지향했던 것이다. 당시를 호흡하던 서로의 울타리였을 것이다. 자포자기의 심정과 교사로서의 자긍심이 오버랩되면서 한 시절이 영위된 것일게다. 트랙터 바퀴에 짓밟혀 벗겨지고 부러진 핀오크를 제외한 얼마 남은 나무는 그렇게 학교의 여기 저기에 심겨졌다. 

다시 94년의 과수원을 떠올리다.

그 과수원을 이용하여 핀오크 1-0묘를 식재하라는 것은 결정권자의 지정이다. 핀오크 육성을 위한 밭으로는 접근성이 좋아 수시로 관리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다. 협농 우사와 돈사에서 나오는 분뇨는 트랙터에 탱크를 연결하여 운행된다. 핀오크 묘목이 심겨진 밭, 그것도 3-5월초까지 매달려 심은 핀오크 1-0묘 식재지를 거대한 무게를 지닌 트랙터 바퀴가 짓밟고 다니면서 분뇨를 쏘아 댄 것이다. 뛰어 나가보니 참단함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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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서 분노가 치올랐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위가 공공기관, 그것도 자영농 육성을 목표로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는 학교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 이후의 언쟁과 실망과 낙심은 내 몫이었다. 서른 다섯의 나이에 세상을 다시 배워야 하는 지경으로 되돌렸다. 남은 나무를 수습하는데 주변 교사들이 나섰다. 각자의 실습포장 주변 공터에 귀하게 심고 공간을 활용해 적재적소에 식재하였다. 동료 교사의 낙심을 수습하는 배려였다. 

핀오크 이후 5년을 더 근무하고 전출하였다.

내가 떠날 때 핀오크는 7년생이 되었다. 연구 논문에 따르면 핀오크는 원산지 미국에서 보통 성목으로 자랐을 때 수고 15-28미터, 흉고직경 30-50센티미터로 보고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령 25년생일 때 수고 18.8미터, 흉고직경 22센티미터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6년생에서 핀오크 수고 5.2미터 흉고직경 5.9센티미터라고 임목육종연구소 시험림에서 보고한 기록도 있다. '핀오크(1-0묘)와 루브라참나무(1-0묘), 로버어참나무(1-0묘), 상수리나무(1-1묘) 6년생을 상호 비교하였는데, 상수리나무를 100으로 하였을 때, 핀오크의 수고가 124%, 흉고직경이 113%로 보고되고 있다. 상수리나무의 식재당시 연령이 핀오크보다 1년 더 많은 것을 감안하면 핀오크가 유년생장이 신속한 수종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임목육종연구소 시험림 보고서).

그러니 핀오크가 가장 무섭게 자랄 때를 놓친 셈이다.

다시 여주로 전입한 때가 2007년이니, 그때 핀오크는 15년생이었다. 벌써 국내의 유명 조경회사에서 핀오크를 도시 오피스빌딩 조경에 적용하고 있었다. 아파트 조경으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아마 내가 수입하여 파종할 때쯤 같은 경로와 방법으로 들여와서 성공시킨 경우였다. 한국의 조경계에 핀오크는 대략 8년생부터 식재되어 활용되었다. 6년생에서 벌써 흉고가 5-6센티미터가 나오니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정확하게 몇 년생부터 도시 조경에 식재되었는지는 좀 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2007년에 여주자영농고의 핀오크를 만나다.

여주에 오니 이미 많은 양의 핀오크가 크기별로 굴취되어 조경 소재로 솎아지고, 그 자리는 다시 좁아서 잘 자라지 못하는 핀오크로 대체식재하는 형식으로 재배치되고 있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을 근무하는 동안에 핀오크는 조경식재공사에 쓰기 위해 수시로 구매희망자가 들랐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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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15년에 핀오크를 세 번째 만나다.

여주에 세 번째 근무하게 되었다. 2015년, 올해에도 핀오크를 구하기 위하여 조경식재공사 관련자가 학교를 들렸다. 솎아서 재배치하여 심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자리의 핀오크를 구매하고 아직 좁은 곳에 있는 나무를 그 자리에 심어 재배치 식재하자는 제안이었다. 나무 또한 산업인지라 결정권자에게 의견을 여쭈었다. 그 결과는 의외로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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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심겨진 나무는 가능한 그 자리에 두자. 좁아서 솎아야 하는 나무는 학교 비용을 들여서라도 적당한 공간에 재배치 식재하는 것이 좋겠다. 학교 나무를 더 심지 못할 바에는 빠져나가게 하지 말자."

🎋에필로그

핀오크 이야기를 쓰겠다고 하면서, 핀오크의 탄생과정을 빼 놓을 수 없었다. 중간에 학교를 비운 시간들도 있었고, 그래도 핀오크의 성장을 3번의 근무로 남다르게 볼 수 있었던 게 행운이다. 핀오크 뿐이겠는가. 참 많은 학교 나무들과 인연을 맺었다. 매년 학교림에서 잣나무를 굴취하여 도내 학교에 행사처럼 공급했던 굴취, 운반 실습, 일본 자매학교에 두충나무를 보내주기 위하여 식물 수출을 수행했던 실습, 공동실습소 조성시의 조경설계 및 시공, 전문학교 주변 조경설계 및 시공, 농업기계실 주변, 전망대 주변, 고등학교 주변의 나무 관리 등등. 이 또한 특정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된 추억으로 간직되었을 것이다. 2007년부터 2015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덕에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정리한 셈이다. 빠진 이야기가 너무 많으나, 핀오크에게 미안한 마음만큼은 아직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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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茶敦])

『월간::조경헤리티지』은 한국정원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당대의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습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짧은 단상과 긴 글을 포함하여 발행합니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설계 언어를 창발創發합니다. 진행하면서 더 나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생산하면서 주체적, 자주적, 독자적인 방향을 구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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