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나무
온형근
산목재 내려 가기 전 굵고 통직한 나무 만난다. 주변 보다 여러 끗 우월한 나무이다. 나는 재 위에서 우람 늠름하게 내려다 보며 언덕을 사로잡는 이런 주인되는 나무를 재나무라 부른다. 떡갈나무이든 리기다소나무가 되었든 가운데 정갈하게 자리잡았든 조급 비켜 서 있든 좌우지간에
재나무에 기대 앉는다. 눈부신 가을 햇살이 임천으로 속속 들어찬다. 촉촉한 숲의 비의를 건드리는 작란에 머문다. 젖은 속살을 상큼하게 익은 가을볕에 말린다. 소심하게 나무젓가락 장단이라도 맞출 판이다. 비에 젖어 차마 내비추지 못한 속셈 끄집어 낸다. 임천을 파고 드는 저 찬란하고 은밀하여 강렬한 가을볕 판에 드러눕는다.
버들잎 흔들어 대며 어깨를 들썩인다.
시작 메모
가을 산길을 따라 걷는 것은 산행이 아니라 산책이라 여긴다. 어느 순간부터 굵고 통직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 나무들은 단순하지 않다. 주변의 다른 나무들보다 더 우월하고, 마치 언덕의 주인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들을 '재나무'라 부르기로 했다. 떡갈나무든 리기다소나무든, 그 나무들은 중심을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때때로 이 재나무에 기대어 앉는다. 가을 햇살이 숲속으로 스며드는 장면은 참으로 멋지다. 마치 자연의 비밀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촉촉했던 원림의 비밀스러운 분위기는 햇살에 의해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이 넘실댄다. 이러한 경험은 시의 감정적 기초가 되어 내면의 평화와 고요함으로 다가선다.
가을볕 아래에서 나무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춘다. 그것은 하나의 가락이며, 놀이처럼 즐겁다. 비에 젖어 숨겨졌던 내면의 생각들이 가을볕에 드러나고, 나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이러한 경험을 찬란하고 은밀한 가을의 빛으로 형상화한다. 버들잎이 흔들리며 어깨를 들썩이고, 나는 그 리듬을 따라 걷는다. 원림에 완전하게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