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즈진

케첩, 미국 말 아니었어?

케첩은 생각보다 먼 데서 왔다

2026.02.26 | 조회 21 |
0
|
NCHART의 프로필 이미지

NCHART

특별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N CH_ART와 함께하는 분들에게 나누고 싶은 여러 이야기를 콘텐츠로 제작합니다.

@헤이즈진
@헤이즈진

 

익숙한 소스, 낯선 출발점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사용하는 ‘케첩’.  

프렌치프라이 옆에 놓여 있고, 오므라이스 위에 뿌려지는 이 소스를 두고 굳이 이 소스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예요. 당연히 서양 음식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케첩’이라는 단어의 뿌리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이 익숙한 소스의 출발점이 의외로 아시아에 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단순히 음식이 이동한 이야기가 아니라, 언어와 문화, 교역과 생활 방식이 함께 얽혀 만들어진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 번 풀어보려고 합니다 🙂

 

바다를 건넌 사람들과 음식

16세기,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 이후 유럽인들은 바다를 건너 아시아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향신료와 비단, 차와 같은 물품을 찾아 나선 항해는 단순한 탐험을 넘어 세계의 식문화와 언어를 뒤흔드는 계기가 되는데요. 이 시기 유럽 상인들은 동남아시아에 활발하게 진출했고, 특히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교역 거점을 마련했다고 해요. 이 지역은 해상 교역의 요충지였고, 자연스럽게 중국 남부 지역과의 교류도 이어졌습니다. 물자만 오간 것이 아니라, 사람과 언어, 조리법과 식습관 역시 배를 타고 함께 이동했습니다.

 

케첩의 시작은 해산물 소스!

그 무렵 중국 남부 지방에는 해산물을 발효해 만든 소스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생선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고, 그 과정에서 생긴 진한 액체를 걸러낸 것으로,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일종의 해산물 농축액, 즉 ‘해즙’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이 소스는 신선한 요리를 위한 조미료라기보다는 보존과 이동을 염두에 둔 음식에 가까웠어요. 상온에서도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었고, 소량만 사용해도 음식의 맛을 크게 바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거리 항해와 교역이 일상이던 시대에 매우 실용적인 소스였다고 해요!

 

뜻보다 먼저 건너간 ‘소리’

이 소스를 가리키는 이름은 우리식 한자어로 발음하면 앞서 말했듯이 '해즙'이지만 이걸 광둥어로 발음하면 '케츱' 정도가 되는데요. 유럽 상인들의 귀에는 이 말이 정확한 의미보다는 소리로 먼저 들어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소리는 대략 ‘케찹’이나 ‘케츱’에 가깝게 인식되었을 거예요. 중요한 점은 이때 유럽으로 건너간 것이 정확한 한자어나 정리된 표준 발음이 아니라, 오직 소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외래어는 종종 이렇게 뜻보다 먼저 소리의 형태로 이동합니다.

 

유럽에서 굳어진 이름

이 소스와 그 이름은 네덜란드 상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낯선 발음은 유럽 언어의 규칙에 맞게 조금씩 변형되며 기록되었고, 그 결과 ketchup, catsup 같은 여러 철자와 발음이 공존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케첩’은 특정 음식 하나를 정확히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는, 동양에서 온 정체 모를 소스를 부르는 이름에 가까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때의 케첩에는 우리가 떠올리는 토마토가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생선에서 버섯으로

유럽, 특히 영국에 도착한 케첩은 현지의 식재료와 입맛에 맞게 점차 변형되기 시작했습니다. 해산물을 구하기 어렵거나 기존의 조리 문화와 맞지 않자, 영국에서는 해산물 대신 버섯을 이용해 비슷한 질감과 감칠맛을 가진 소스를 만들어냈습니다. 재료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이름은 그대로 ‘케첩’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케첩은 특정 재료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진하고 감칠맛 나는 소스를 가리키는 느슨한 범주어로 쓰이기 시작합니다.

 

미국에서 토마토를 만나다

첨부 이미지

이 케첩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합니다. 19세기 말, 미국에서는 토마토 생산이 늘어나고 가공식품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데요. 이러한 흐름 속에서 Heinz의 창립자 헨리 하인즈는 토마토를 이용한 새로운 소스를 개발했고, 이 소스에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이름인 ‘케첩(ketchup)’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낯선 신제품에 이미 알려진 외래어를 붙이는 것은 매우 실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붉은 토마토 케첩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이 버전의 케첩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케첩 = 토마토 소스’라는 인식이 사실상 표준처럼 자리 잡게 됩니다.

 

사실은 ‘토마토 케첩’입니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케첩은 처음부터 토마토 소스였던 적이 없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케첩은 중국 남부의 생선·해산물 소스에서 출발해, 영국의 버섯 케첩을 거쳐, 미국의 토마토 케첩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밟아왔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케첩은 단순히 ‘케첩’이라기보다 ‘토마토 케첩’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한 이름일지도 몰라요 :)

 

단어는 이동하며 다른 얼굴을 갖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단어가 어느 나라에서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얼마나 전혀 다른 의미와 이미지를 갖게 되는지 알게 되는데요,  어떤 문화에서는 바다의 맛이었고, 어떤 곳에서는 숲의 맛이었으며, 지금의 우리에게는 감자튀김 옆에 놓인 달콤한 빨간 소스가 되었습니다.

 

케첩은 하나의 단어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나라의 시간과 이동, 그리고 각기 다른 입맛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외래어들 역시 이와 비슷한 여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도착했을 수 있겠죠?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NCHART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6 NCHART

특별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N CH_ART와 함께하는 분들에게 나누고 싶은 여러 이야기를 콘텐츠로 제작합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