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1.
기본적으로 남을 위한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나의 재미를 위해서, 혹은 나의 성장을 위해서란 이기적인 동기만 넘쳐나는 바람에 남의 돈 받고 글쓰는건 포기한지 오래다. 그 증거라 하기엔 뭐하지만, 메일로 ‘에세이 보내드릴게요 구독해주십쇼!’해놓고 반말 써재끼는 꼴 보라지.
2.
이제 슬슬 글을 써볼까, 하고 나선 무슨 이야기를 할지 보다 이걸 반말로 할지 존댓말로 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혼자 속으로 고민해봤자 뭐하겠어요? 내 고민을 누가 알아준답니까? 그래도 고민까지 했는데 이왕이면 알아주면 좋잖아요, 그래서 고민하는 과정을 에세이의 첫 시작으로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머릿속에 정답을 선정하고 글을 쓰기보단 글을 쓰면서 정답을 찾는거. 이게 제가 에세이를 쓰는 가장 큰 이유거든요. 그러니 저는 남을 위한 글쓰기를 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무슨 나이팅게일도 아니고, 제 성장만 골똘하기 바빠요. 늙어 죽어도 죽기 직전까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에세이로 고민할겁니다.
3.
이렇게 써보니까 존댓말도 나쁘지 않네요. 솔직히 약간 슬레이어즈의 제로스 느낌나서 좋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처음으로 돌아가서(처음이란게 있지도 않지만), 남을 위한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죠. 하지만 남들이 읽어줬으면 하고, 사랑도 받고 싶어요. 더 많이 읽히기 위해 메일로 뿌리기까지 하고 있잖습니까. 이 모순은 어찌보면 인디펜던트 문화와 결이 닿아있지 않나 싶습니다. 언더 힙합, 독립 영화, 인디 밴드도 다 그들만의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자본이 들어가고 더 많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못해서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악물고 인디펜던트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은 자들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제가 그들의 사정을 뭐 하나 하나 캐고 다니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저랑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해요. 돈 좀 덜 벌되, 내가 하고 싶은거 마음껏 할 수 있는 시장이다 이거죠.
4.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우디 앨런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도 물론 크지만, 영감 자체를 좋아해요. 가장 닮고 싶은 사람입니다. 큰 투자를 받지 않아요. 능력이 안되니까 못 받는거 아니냐? 하기엔 아카데미 작품, 여우주연, 감독, 각본상을 탄 영감님입니다. 그냥 성도착증 변태 늙은이가 아니에요. 작품성도, 상업성도 두루 갖추고 있는 틀림없는 거장입니다. 하지만 그는 늘 적당한 투자와 적당한 성과를 내는대에 만족합니다. 로우 리스크 미디엄 리턴. 하이 리스크를 안고 부딪치는 삶도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지만, 저는 이미 충분히 부담스러운걸요. 망해도 확 망하는것도 아니고, 성공하더라도 지나치게 성공하길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레셔널 맨>이나 <매직인더 문라이트>같은 영화가 있는 반면, <애니홀>이나 <미드나잇 인 파리>같은 영화도 만들어지지요. 궁금하지 않으셨겠지만, 저는 <맨하탄 미스테리>같은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뭐 또 지만 아는 이야기 하냐 싶지요? 그래서 처음부터 얘기했잖아요. 난 남을 위한 글을 쓰지 않는다고.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메일 주소까지 남겨주며 읽어주시는 여러분들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저를 위한 글을 쓰되, 제가 아닌 누가 읽어도 재밌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사실 진짜 나를 위한 글이라면 유머는 꼭 필요 없을지도 몰라요. 내가 나를 웃겨서 뭐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봐준다는 압박이 글에 유머를 더하는 계기가 되어줍니다. 여기까지 써보고 나니 드는 생각인데, 결국 소재가 윤동규일 뿐인 평범한 에세이일수도 있겠다 싶네요. 윤동규의 생각을 쓴 에세이와 윤동규에 대해서 쓰는 에세이는 달라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치더라도, 윤동규가 본 영화 이야기가 아닌 영화를 본 윤동규와의 대화에 가깝습니다.
6.
이쯤 쓰고 나니깐 솔직히 말아먹은 것 같습니다. 나름 구독까지 해가며 쓰는 에세이가 이런 퀄리티라면 두번 다시 제 글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럼 공짜 에세이로 인기를 끌다가 서서히 유료화를 하고, 멤버십 금액을 점차 늘리고 에세이 책도 내고 강연도 다니면서 섹션 TV 연예통신에도 출연하는 제 꿈은 물거품이 되는겁니까? 다행히 한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 에세이를 두 섹션으로 나누는겁니다(이 아이디어 때문에 섹션 TV 얘기 꺼낸 것은 아닙니다). 파트 1은 이렇게 저의 쓸데없는 이야기로 이루어지고, 파트 2는 독자 여러분들이 보내주시는 사연을 다루는 코너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하나의 사연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다룰수도 있고, 또 라디오 코너처럼 짤막하게 여러 사연을 훑고 지나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사연이 있어야 말이죠!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사연을 써주세요. 그래도 일단 사연을 보내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에 대한 예시는 있어야겠네요. 어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던 질문글 중에 하나를 가져와보겠습니다.
7.
파트 1은 이렇게 끝나는거냐구요? 죄송합니다. 다음 편엔 더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Part 2
1.
일단 저를 특정하여 고민을 털어놓는다는건, 저라는 사람의 성향이나 사고방식에 도움을 받고 싶다는 뜻이라 해석하는 편입니다. 제가 평소 그렇게 상냥하거나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닌 것을 알기에, 거리낌 없이 마구잡이로 답해달라는 뜻으로 해석하겠습니다. 솔직히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애정어린 시선으로 답하겠어요.
2.
일단 제가 말하고 싶은건, 질문과 고민은 구체적일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선생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게 없는 저로서는 지금 단서가 너무 없습니다. 이정도 단서는 코난 김전일도 범인 못 잡아요. 육각촌 살인사건도 이것보단 친절합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추리해봅시다. <요즘들어>. 몇 없는 단서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이군요. <아무것도 안했는데>. 네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고 무기력해요>. 안구 건조증을 얘기하고 싶은 건 아닐건데, 감정적인 눈물로 보기엔 주어진 상황이 너무 없습니다. 무기력 또한 건강의 문제인지 심리적인 문제인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저에게 건강 문제를 털어놓을 리 없으니까 심리적인걸로 치고 넘어갑니다. <어떻게 하면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이럴수가 솔루션을 줘야 하는데 주어진 단서가 너무 없습니다. 최대한 열심히 대답하려고 가져온 질문인데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말이 있죠? 메세지를 공격할 수 없으면 메신져를 공격해라. 이런 식으로 질문 주시면 곤란합니다!
3.
그러나 파트2는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이 되어보려고 합니다. 단서는 없지만, 어쨌든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무기력한 상황이라는 점. 그걸 이겨내고 싶다는 점은 잘 알겠습니다. 제가 추천하는건 이겁니다, 지금부터 셰프의 킥이 들어가는데요. 이유 없이 슬프다면, 그 이유를 만들어내라 이겁니다. 진짜 내가 슬픈 이유, 무기력한 이유를 찾아내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가짜 이유라도 만들어내는겁니다. 해결은 못해도 해결하는 기분은 느낄 수 있습니다. 혹시 외로워서 그런게 아닐까? 사람을 만나보고. 몸이 너무 허한건 아닐까? 괜히 한강도 달려보고. 요즘 일상이 너무 지루해서 그랬나? 여행이라도 다녀보고, 쇼핑도 해보고 도박도 해보고 은행이라도 털어보세요. 중요한건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닌 정답을 찾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치유를 받을 수도 있고, 혹은 아무것도 해결되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괜찮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뭐 어때요. 어차피 가만 있으면 무기력하게 울고만 있었을거잖아요.
4.
제 경우엔 그게 영화 <아멜리에>였습니다. 저의 슬럼프는 퀄리티가 떨어지는 시기가 아닙니다. 퀄리티가 어떻든, 하고 싶지 않아지는 시기가 슬럼프에요. 그렇다면 하고 싶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대학교 2학년때부터 슬럼프가 찾아오면 <아멜리에>를 틀었습니다. 귀신같이 힘이 나고 신이 나고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요. 이유는 아마도, 쟝 피에르 쥬네의 연출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저런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 하는 동기 부여가 된게 아닐까 하는데, 정확하진 않습니다. 무조건 명작을 보고 힘이 난다고 치기엔 <어둠 속의 댄서>같은 영화는 반대로 슬럼프를 안겨주었거든요. 난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건 못 만들어, 하구요. 아 상관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하고요 보단 하구요를 더 좋아합니다.
5.
그러니 선생님도 자신만의 <아멜리에>를 만들어봐요. 저는 너무 많이 봐서, 약빨 떨어질까봐 어지간한 슬럼프는 그냥 꾹 참는 지경이지만, 아직 자신만의 슬럼프 해소법이 없다면 이 참에 만들어보는게 어떨까요? 이왕이면 DVD로 소장하고 있는 것도 좋습니다. 꼭 영화를 틀지 않아도 타이틀을 손에 꼭 쥐는 것 만으로도 힘이 날 수 있으니까요. 같은 의미로 서울에서의 첫 자취방에는 아멜리에 포스터가 걸려 있었습니다. 2011년인가? 아멜리에 재개봉때 부산 국도 영화관에서 사정 사정해서 얻어왔는데, 이사 하면서 사라졌어요. 점점 사연을 빙자한 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는 것 처럼 보이니까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사연을 보내주셨지만 주간 윤동규에 쓰일지는 모르셨을 아무개님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잘 헤쳐나가시길 바라면서, 24주차 주간 윤동규를 마칩니다.
6.
주간 윤동규에서 다뤄줬으면 하는 사연이 있으면 아래 링크를 눌러 적어주세요. 할 이야기가 많은 사연이라면 다음 편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밤 되세요. 아니 다 쓰고 나니깐 새벽이네. 내일 아침에 보내는게 나으려나.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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