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장이미식가 Kelly, 🍷 게으른개미 비언어, 🌎 미라클 지구, 👌 그럴 수 있다 ㅇㅋ,🤎 그리고당신, 구독자
💃🏻🐆_2022년 2월의 불 꺼진 상영관에서,
2021년의 내게 필요했던 건 겁 없이 시도하고 물어가며 실행하는 역할이었다. 2022년의 내게는 신중하지만 겁이 없고, 시도하지만 더 장기적이고 섬세한 부분까지 고려하는 역할이 부여되었다. 이 변화를 눈치챈 건 아주 최근, 하지만 이상하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건 분명 그 전부터였다. 내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이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지금 기승전결에서 ‘승’레벨인 것 같아서다. 작년 말부터 나는 굉장히 예민한 상태다. 수행되어야 하는 일의 수와 투입되어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 자체가 달라졌으니 일을 나눠서 하는 게 당연한데 나는 내 일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불편해질 때가 종종 있다. 내 생각은 나를 정색하게 만들고 그 정색은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기반한다. 이 조직에 내가 있을 필요성이 없다는 추측과 불안. 게다가 최근에는 내가 맡은 일을 수행함에 있어 단 한 번도 빠르게 통과한 적이 없다. 모두 엄벙덤벙하게 완료되거나 전체적으로 고민이 부족해 반복적으로 수정 요청을 받고 있다. 직무에 있어서도 원래 수행하던 역할에 있어서도 나는 발전과 공부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Must도 아니고 Should 상황이다.
설날 즈음부터는 그래서 이것저것 더 많은 다른 일을 시도했다. 낯선 사람과 데이트도 해봤고 등산도 하고 호캉스도 하고 생전 사본 적 없는 비싼 키보드도 쇼핑했다. 최근에는 머리카락도 잘랐다. 놀랍게도 모두 좋았다. 다 성공적이었고 실패한 부분 같아도 내게 남은 결과는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일상은 우울해지고 있다. 결국, 기분 전환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난해와, 지난 시간들과 똑같이 살아가려고 하는 나의 습성과 안주다. 내가 노선을 틀어야 하는 시간이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야 한다.
내가 할 일, 해야 하는 일을 명확히 하고 필요한 공부를 하고, 더 많은 솔루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전까지 주어지는 일을 닥치는 대로 부딪히는 시간은 막을 내렸다. 이미 배우들이 나와 인사를 마치고 앵콜까지 마친 뒤 떠났다는 걸 나만 몰랐다. 마지막 주마등조차 끝나고 객석 청소까지 끝난 자리에 홀로 앉아 있었다. 혹은 상주하는 유령과 함께하고 있었던 거겠지. 과거에 홀로 남아 정말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나는 다음 상영관으로 떠나야 한다.
🍷_지난한 새벽
날이 춥다. 과거 언젠가의 겨울처럼 영하 이십몇도 씩이나 내려가 주지는 않지만, 살갗을 넘어 뼈가 으슬으슬한 정도의 추위가 다른 겨울들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고 있다.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집은 겨울에 취약했고, 나는 추위엔 쥐약이었다. 매일 두꺼운 극세사 이불을 온몸에 칭칭 감고 일어나 따듯한 물을 끓이지 않고는 잠조차 깨지 못하게 되었다. 지긋지긋한 겨울. 지긋지긋한 아침. 멍하게 내내 춥다는 생각만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지금은, 새벽 네 시다.
나는 아침형 인간에 가깝다. 가깝다는 건, 언제나는 아니고 대개의 일상에 아침형이 되기 때문에. 아침형 인간이 올바른 길인 것 마냥 퍼지기 시작해서는 아니다. 본래 그런 집이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아침상을 거하게 차려 먹고 밤이 되면 자정이 넘기 전에 모두 잠자리에 드는 통에 나도 그렇게 길이 들었다. 더군다나 나는 밤만 되면 하지 않아도 될 삽질을 종종 하는 편이기 때문에 잠은 일찍 들수록 좋았다. 회사에 다니고부터는 내 시간에 갈증이 일어 일찍 일어나게 된 것도 있다. 도통 시간이 나야지. 대개의 경우가 아닌 것은 주로 주말이나 공휴일이다. 태생이 게으른지 그런 날에는 몸이 재깍 움직여주질 않는다. 그런 날의 기상 시간은 일고여덟 시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조식 시간이 오기 전에 나는 종종 게임을 했다. 모두 바쁠 아침 시간에 게임을 하다 보면 밤새 게임하는 것보다도 더 달콤한 기분이 든다.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무렵에는 운동시간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몇 년 전부터는 날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엔 어김없이 달리기했고, 그보다 조금 더 쌀쌀해지면 줄넘기를 한다. 새벽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공원을 지나간다. 나는 앞만 보고 달리거나 허공을 보고 줄넘기를 한다.
나의 생산성은 늘어나지 않았다. 아침에 분주한 만큼 저녁 시간은 거의 없었다. 아홉 시부터면 비실거리기는 일쑤고 열 시 무렵이면 잘 자리를 찾아 들어가야만 한다. 그런데도 아직 아침형으로 남아있는 나의 취향은. 글쎄, 이게 취향이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아서. -그런데도 쓰는 것은 친구들에게 그건 분명하게 취향의 문제라고 강력 어필 당했기 때문이다. 나는야 반응형 인간.-
유난스럽게 추운 올겨울엔 야외활동이 거의 없었다. 영상의 기온에선 가만히 요가를 빙자한 스트레칭을. 아닌 날에는 이렇게, 따듯한 허브차를 끓여선 겨우겨우 잠을 깨며 책을 몇 장 읽는다. 알배추 세 장을 잘라 넣은 미소국을 끓여가며 청소년 SF소설을 읽는 아침. 지난한 겨울이 지나고 있다. 덜 분주하고 더 조용한.
🌎_X맨
읽어주시는 당신께, 가위를 사용하는데 불편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지 묻고 싶다. 그냥 내가 궁금하다. 가위질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은 별다른 생각이 없지 않을까?
유치원 때부터 어린이 시절 내내 가위를 사용해 종이 따위를 오리는 활동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늘 잘하는 편이었다. 색칠공부할 때도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밑그림의 선 바깥으로 색이 삐쳐나가는 일이 적었던 걸 생각하면 그 시절 나는 또래에 비해 소근육 발달이 좋은 축이었던 것 같다. 그후로 꽤 오랫동안 가위질이 힘들거나 까다롭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늘 중지 두번째 마디 안쪽에 가위 손잡이에 눌린 자국이 생기긴 했는데… 음. 그게 문제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는 생각은 어른이 되고서 했다.
어른이 되고서는 가위를 학생 때처럼 오래 쥐고 있어야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다양한 장소에 비치되어 있던 가위를 사용할 일이 있을 때만 잠깐 손에 들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럴수록 더 느꼈다. 가위들은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반면 내 주변의 다른 모든 사람-오른손잡이들은 내가 느끼는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오른손잡이라도 가위질을 할 때 다양한 문제가 있겠지. 손잡이가 딱딱하다, 가위가 손에 비해 너무 크거나 작다, 가위가 헐겁다, 가위날이 무디다 등등. 그런데 내 경우엔 거기에 더해 늘 ‘가위날의 방향이 내가 정교하고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손에 쥐고 움직였을 때 자연스럽게 힘을 가하는 방향과는 어긋나 있다’니까. 이 애로사항은 앞에 열거한 것들처럼 짧게 설명할 방도도 없다. 가위날이 무디다, 맞물림이 뻑뻑하다 류의 설명은 짧고, 빠르고, 듣고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왼손잡이라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왼손잡이 신기하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소감을 한다. 나는 별로 안 신기한 부분이라 공감 안되는데 너무 자주 듣게되어 질리는 감이 있다. ‘많은 가위날의 방향은 사실 오른손잡이용이고~’ 사실 가위날의 방향이라는 것도 많이들 생각 안하고 산다. 의식을 할 계기가 있어야 의식을 하지. 아예 그 부분에 대한 감이 전혀 없는 상태인 사람들 경우에는 좀 길게 설명을 해야만 알아듣는다. ‘예를 들어, 우리 책상에 있는 이 가위를 봐. 오른쪽 손잡이에 달린 날이 위쪽으로 간 채 맞물려 있지?’ 그리고 이렇게 길게 설명해도 그냥 그렇구나 받아들여주지 않는 오른손잡이들도 가끔 있다. “그게 불편하면 그냥 가위질만 오른손으로 하면 되지않아?” 딱 사흘만 이 오른손잡이의 오른팔을 묶어놓으면 어떨까 싶어진다. “난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뭐뭐를 잘만 하는데” 사실 양손잡이인 것이니 편리한 체질에 감사하라고 말하고 싶다. 참고로 나는 좌뇌 발달에 대한 야망 및 미래에 왼손만 관절염 걸릴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오른손으로 글씨 쓰기, 오른손으로 젓가락질 하기 등을 연습해 본 적이 있으나 소질이 보이지 않아 금새 그만 두어 집에 세월의 더께가 쌓인 어린이용 에디슨 젓가락(오른손 버전)이 처박혀 있다.
아무튼, 유년기부터 높은 효능감을 가졌던 가위질이라는 활동이 사실 늘 불편했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한 것은 성인이 될 무렵이었고, 나는 그 후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고 해결책을 실행하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된다. 국내 문구 브랜드에서 고급형으로 양손잡이형 가위를 새로 출시했을 때 바로 정보를 듣고 사서 쓰고 있다. 몇천원으로 얻은 평화…. 하지만 이 짓을 안하고 사는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불편한 건지를 생각해보면 약간 열받기도 하다. 나는 가끔씩 꽃집에서 생화 꽃다발을 사와서 집에 장식하곤 하는데, 없는 살림에 기왕 사온 것이니 오래오래 보고싶지 않겠냐고. 해서 매일 꽃병의 물을 갈아주고 물에 잠겨있는 꽃가지 끝을 조금씩 잘라내며 꽃이 오래 싱싱하기를 바란다. 그러다보니 꽃가지를 자르는 가위에 관심이 생겼다. 양손잡이용 가위가 주는 쾌적함에 익숙해진 나는 당연히 왼손용으로 디자인된 꽃가위를 구입하려 인터넷을 통한 구매를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나를 상심하게 했다. 오른손잡이용 꽃가위는 많았고 전문가들이 쓰는 전문브랜드 제품도 만원대부터 상품이 있었지만 왼손잡이용은 찾을 수 없었다. 한 공구판매점 사이트에 왼손잡이용 전지가위 정도나 올라와 있었고. 일본이나 미국 쇼핑몰에서 직구로 살 수는 있었지만 한국 쇼핑몰에서 같은 브랜드 같은 시리즈의 오른손잡이용 꽃가위를 판매하고 있는 가격에 비해 너무 비쌌다. 좋은 구매로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꽃가위는 잊고 살기로 했다. 이것이 2020년 상반기였다. 이건 씁슬한 경험이었지만 다행히 2021년 하반기에 (미련을 못버리고) 다시 검색했을 때 나는 국내 쇼핑몰에서 고급 꽃가위로 유명한 일본브랜드의 왼손잡이용 모델을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난 생일에 선물받고 싶은 물건이 따로 있냐고 물어봐준 친구가 있어 지금 나는 왼손잡이용 꽃가위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일년에 한 두번 사용할까 말까 싶은 물건인데도 접근성 높은 판매처의 저렴한 물건들 중에서는 필요최소한의 조건을 만족하는 상품이 없어 전문가들이 쓰는 고급 브랜드 제품 안에서만 제한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소비자… 음음.
한국 갤럽의 2013년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스스로가 왼손잡이라고 밝힌 사람의 비율은 5%였다고 한다. 일단 해당 설문조사의 신뢰수준이 95%라 조사 리포트 말미에 아예 ‘표본오차는 ±12.7%포인트로 비교적 큰 편’이라고 주의사항이 박혀있다. 표본오차 플러스마이너스 12.7퍼센트 포인트일 때의 5퍼센트. 누가 신경쓰겠냐고. 앞으로도 나는 다수에게 자신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해시켜야만 하는, 이상하게 말이 길고 까탈스러운, 그런 사람일 것이다.
💃🏻🐆_생계의 스위치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고 세계는 내 안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의 나를 모두 응원한다. 모두의 응원 속에서 나는 내 안에 동시에 울려 번지는 수백 수천의 자아를 각 역할과 순간에 맞추어 활동하도록 조정해야 한다. 회사에 있을 때의 나, 친구와 있을 때의 나, 부모님과 있을 때의 나,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관계의 수만큼 조금씩 다른 내가 탄생한다. 그 속에는 다양한 목적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건 생계다.
생계를 이어가는데 있어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나의 미숙함, 나의 무능력함, 나의 어리석음이다. 생명체가 언제나 가지고 있는 욕심 때문이다.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다. 톱니바퀴만 메우는 거라면 언제든 쉽게 대체 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달리 이 일을 이렇게 매끄럽게 처리하는 건 그 사람이 잘하지, 이 관계 속에서 이 사람이라면 더 부드럽게 처리했겠지, 이 일은 저 사람이 잘해, 정도로 기억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요즘 좀 힘들다.
지난주에 이야기한 새로운 스텝에서 전혀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있던 튤립도 다 피고 졌는데 나는 고통스러움만 끓이며 이제 새로운 한 달을 맞이해야 한다. 매사에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지 이번 주에는 감기가 왔다. 처음에는 덜컥 겁먹어서 강아지랑도 접촉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감기였다. 이 고통의 온도를 낮추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다. 스위치를 작동시키는 것. 조금 더 내가 해야 하는 일과 아닌 일, 역할 속에서 내가 꼭 해야 하는 액션과 아닌 액션을 명확히 구분하며 스위치를 껐다 켜면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돌진하거나 도망치는 방식으로 살아와서 이제서야 스위치를 조립하고 있다. 관계에 대한 마음도, 시기하는 마음도 질투하는 마음도, 비교하거나 판단하는 마음도 인정하되 활동하지 않도록 할 수 있도록 매일 조금씩 조립해보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스위치를 타고나는 거면 참 좋을 텐데. 회사와 업무는 결국 내 인생의 일부일 때 가장 아름다운 거니까.
🍷_감사를 전하며
글을 쓰는 것엔 어떤 성취가 있는 걸까. 글자를 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싶으면서도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어진다. 글에는 어떤 힘이 있어서 기록을 남기고 싶어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쓴다.
나의 글에는 역사가 있다. 글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한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문학, 이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각설, 나의 글에는 역사가 있다. 어릴 때는 편지를 썼고 일기를 썼다. 더 지나서는 갖은 글을 썼지만, 나의 글이라고 할만한 건 중고등학교 때 시작된다. 연애를 하면 나는 꼭 단편소설을 하나씩 썼다. 편지를 좋아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읽었던 소설의 스핀오프일 때도 있었고, 나의 옛날 –그러니까, 십 대보다도 더 어린 시절 말이다- 이야기일 때도 있었다. 연애편지를 빙자한 단편소설들은 내게 남아있지 않지만, 나의 글이 시작된 때를 꼽으라면 분명하게 그 시절이라고 말할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나의 글에 대한 취향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글이라고 할 말한 것의 시초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글쓰기의 취향을 이야기할 수 없어서 운을 떼 보았다. 여하간 그런 연유로, 나는 손으로 쓰는 글에 익숙해져 있는 편이다. 물론 악필 –아니 달필-이지만, 펜을 쥐고 종이 위에 글씨는 쓰는 그것부터가 나에겐 생각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글자를 쓰는 것에는 어떤 힘이 있어서, 때론 생각나는 대로 적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문장이 되어준다.
물론 모든 글을 수기로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수기로 작성하는 건 메모나 편지 정도. 그 외의 글은 문장 정도나 수기로 작성하지, 글의 나머지를 채우는 건 키보드의 역할이다. 처음에는 찰칵찰칵 소리가 큰 청축 키보드를 좋아하다간 거의 터치감이 없는 노트북 키보드로 옮겨왔다. 키보드로 글을 쓰는 데엔 분명한 장점이 있다. 정신을 반쯤 놓고도 문장은 만들어지고, 무수하게 쏟아낸 문장들을 금방 지우고 다듬기 편리한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아무 말이나 해도 곱게 편집을 한다면 좋은 영상물이 되는 것처럼. 많이 쏟아낼수록 다듬을 수 있는 글의 소스가 많아지는 셈이니 나는 그냥 내 생각을 이리저리 다각도로 돌려가며 글을 줄줄 쓰기나 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 이 글도 그런 식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도, 아니지. 그러므로, 나는 글감이나 문장들은 수기로, 글자체는 키보드로 쓰는 것이다. 수정이 쉽다는 이유만으로도 문장은 금방 생성된다. 글의 중요도는 내용이라지만, 우선 내용을 잡기 위해선 다채로운 문장이니까. 많이 써본 사람이 잘 쓴다는 말이 이래서 생겼나.
잘 쓰기 위해 -우선 많이 쓰는 놈이 되기 위해- 나는 수필의 시간을 줄여 나의 글을 조금 더 축적하러 떠나보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래왔듯이, 나는 수기로 쓴 몇 개의 문장을 들고 얇고 가벼운 키보드로 글을 쓰고 있겠지. 보이지 않는 동안 나의 취향은 어쩌면 적은 것과 달라져 있을 수도 있다. 이 얇은 키보드를 쓰는 나의 글쓰기 취향도 언젠가 다시 바뀔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충분히 유기적이니 어떤 식으로 변해도, 나의 취향도 나도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그러니 다만, 이런 식으로 잠깐의 나에 대해 기록하게 된 것이 기쁠 따름이다.
✒ 이달의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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