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5,

💃🏻🐆 멋장이미식가 Kelly, 👌 그럴 수 있다 ㅇㅋ, 🌎 미라클 지구,

🤎 그리고당신, 구독자

💃🏻🐆_감사를 기르는 자가격리

오늘이다. 바로 오늘. 자가격리에서 풀려나는 날!

지난주는 미세먼지가 심한 주간이었다. 최악과 아주 나쁨을 오가며 일관적으로 공기가 안 좋았고 일요일에 미세먼지가 심한 날처럼 목이 아프고 콧물이 좀 흘렀을 때도 나는 내가 음성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 내 방에 나를 격리하긴 했지만서도. 월요일에는 출근 전에 회사 주변 병원에 들러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이번에도 역시 음성이라고 확신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출근을 준비했다. 작업을 위해 노트북을 들고 온 것도 마찬가지. 핸드폰으로 업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양성. 실감이 안 나니 우울할 틈도 없었다. 양성 결과를 받고 처방전을 가방에 쑤셔 넣은 뒤 선별진료소로 향했다. 선별진료소에 줄을 선 채 상사에게 연락하고 동료에게 자료를 부탁했다. 언제 PCR을 받을 지 모르는 채 대기하면서 여기저기 연락을 남기다가 검사를 받기 전에 회사 메신저에 공지까지 마쳤다.

검사를 받고 격리를 위해 집으로 이동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 사람들은 전부 음성. 토요일에 함께 식사했던 사람들도 모두 음성. 그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한 채 버거킹에 들러 햄버거를 산 뒤 약을 처방 받아 귀가했다. 다음날 오전 PCR까지 양성 판정을 받고 완벽한 격리 판정. 이번주는 현장을 많이 뛰어야 하는 주간이었다. 그래서 초조한 마음도 있었지만 키보드를 산 직후 주말처럼 핸드폰에 무작정 쌓아 놨던 자료를 하나씩 털어내기도 하고 일찍 자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히려 업무에 목숨을 건 것처럼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분명 이렇게 많은 불안 속에서 느긋해질 수 있었던 건 주변 덕분이다.

일단 커피랑 디저트 너무 맛있었고요. 딸기 선물 엄청나게 적절했고요. 방에서 가만히 갇혀 있게 식사부터 생활까지 도와주신 부모님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 중간 중간 푹 쉬고 오라는 멘트를 보내준 동료들과 업무 관련해서 문득 문득 공유해주신 대표님 덕분에 한 주 잘 버텼습니다. 한 주 방에 가만히 있어 보니 앗 맞아, 정말 감사합니다, 정도의 마음이 계속 커지고 명확해진다.

그래도 한 주라 다행이었고 앞으로도 한동안 조심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러 간다는 것도 좋고 내 발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더 많은 걸 직접 선택할 수 있다니 내일이 기대된다.

그런데 정말 어디서 감염되었는지 전혀 예측이 안 되는데다 증상도 거의 없었으니 다들 마스크 잘 쓰시고 엥 조금 이상하다, 하고 불안해지면 바로 병원 가세요.

👌_너 친구 몇 명 남았어?

“너 친구 몇 명 남았어?”

같이 밥 먹던 친구가 대뜸 저리 물었다.

“난 세 명 남았는데 너는? 그보다 많아?”

“….”

나는 곧바로 대답 못 하고 잠깐 침묵했다.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려면 몇 가지를 점검해봐야 했다.

일단 저 친구가 말하는 ‘친구’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가 가장 우선순위에 놓였다.

아주 좁은 범위의 친구인지, 바다처럼 광활한 범위의 ‘친구’를 일컫는 건지.

그래도 세 명 남았다는 걸 보면 비교적 좁은 범위의 친구인듯 싶었다.

두 번째는 서로가 서로를 좁은 범위의 친구로 여길 때의, 서로 합의가 끝난 쌍방합의 ‘친구’인지 아니면 나만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일방향 ‘친구’인지였다.

친구는 질문에서 별로 정보를 주지 않아, 그건 유추가 어려웠다.

그리고 또….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은 것 같기도.”

확인할 게 많았지만 일일이 물어보기가 귀찮았다.

그래서 대충 저리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밥 한술을 입에 떠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

“적지 않냐? 너나 나나.”

세 명이면 적은가? 평균인 거 같은데 싶었지만 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밥 먹느라 대화가 귀찮았다기보다는 꼬치꼬치 딴지 걸고 싶지가 않았다.

세 명이라 말하는 친구의 얼굴이 좀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남은 친구들 잘 지키면 되지.”

저리 대답하며 밥을 떠먹었다.

친구가 직접 해준 육회비빔밥이 참 맛났다.

비빔장도 직접 만들어 준 거였는데, 그게 참 시거나 짜지도 않고 고소했다.

허여멀건 내 비빔밥을 보며 친구가 비빔장을 한 술 푹 떴다.

“야, 너 안 싱거워? 내가 비벼줘?”

“아니. 난 이게 좋아. 간 딱 맞아 지금.”

친구가 날 쳐다보는 눈빛이 ‘얘는 참 맛없게 먹는단 말야.’라는 것 같았다.

아… 직접 해줬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그리고 실제로 진짜 맛났다. 친구는 요리 실력이 월등하다.

부러 더 맛있다, 맛있다 말하며 비빔밥 한 그릇을 곱게 비워냈다.

20대까지만 해도 친구에 대해 물을 때.

“넌 친구 많아? 친한 친구 몇 명이야?”

라는 식으로만 물었지, 몇 명이 남았냐는 식으로는 묻지 않았던 것 같은데.

30대가 되니 서술어가 바뀌었다.

20대까지만 하더라도 친구의 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유동적인 것 중 하나였는데, 적어질 수도 있고 늘어날 수도 있는.

30대가 된 지금은 더 늘어날 일은 없을 것 같고, 지금 이 숫자를 지켜내거나 더 적어지거나 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난 세 명이면 충분히 많다고 생각한다.

더 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친구가 몇 명 남았냐는 질문을 했을 때 내 친구가 사라진 누군가를 떠올리며 저 질문을 했는지 느낌이 와서.

충분히 많다, 라는 말은 끝까지 못 했다.

한 명 사라지니까 너무 자리가 크다.

🌎_우동

3월 첫째주, 바람이 아주 심하게 불었다. 건조한 날씨와 겹쳐 경북 울진과 강원 지방 산불이 크게 번진 큰 요인이었다고 한다. 기온은 그래도 3월이 되었다고 꽤 높아졌는데. 그날, 낮 기온에 맞춰 조금 덜 겹쳐입고 외출했던 옷차림이 저녁이 되니 춥게 느껴졌다. 모처럼 혼자만의 외식을 위해 찾은 식당은 불경기 탓인지 단축영업.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걸어가서 몇 달 전부터 궁금했던 식당에 가보자 싶어 발을 옮겼으나, 아뿔싸. 여기도 저녁장사를 하는 날이 아니었다. 뱃속은 비었고, 날은 쌀쌀하고. 길 건너편 노르스름한 조명이 드리운 우동집 간판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였다.

일본풍으로 꾸며진 미닫이 나무문을 열어보니 기대했던 가게 풍경 대신 위층으로 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의외의 구조였다. 미닫이 문조차도 나무 데크로 짜여진 서너칸의 계단 위에 있었다. (나는 걷거나 계단오르는 데에 무척 자신있는 사람이지만 휠체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물을 보면 점수를 깎는 습관이 있다.) 다른 통로 없이 우동집의 인테리어가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자 여닫이식 문이 하나 더 있었고 그 안이 식당이었다. 들어오자 마자 주방이 들여다 보이는 계산대를 지나자 긴 실내공간에 주방을 ㄴ자로 둘러싼 바와 2인석 테이블 서너개가 있었다. 작은 접시로 요리가 빨리빨리 나오는 일본식 선술집처럼 세로쓰기 나무 이름표에 하나하나 메뉴 이름이 적혀서 벽에 주르륵 붙어있었다. 메뉴 가짓 수는 그렇게 많지 않은데 똑같은 목록을 사방에 연거푸 붙여놓아서 처음에는 파악이 어려웠다. 제일 싼 메뉴는 기본 우동 4500원. 어묵우동이나 튀김우동은 5500원. 지역이 아주 번화가는 아니고 동네 장사일 것을 고려해도 우동만 전문으로 한다는 진지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비해 분식집 수준으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 전에 오래 공복이었던 상태라 많이 먹지 못할 것 같아 유부초밥이나 튀김, 고로케 등 끌리는 사이드메뉴들을 제쳐놓고 일단 카키아게우동(튀김우동)을 하나 시켰다. 그냥 보리차는 아니고 결명자나 둥글레 같이 쌉싸름한 맛을 내는 재료로 끓인 듯한 미지근한 마실 물과 따뜻한 물수건이 나왔다. 싸늘해진 손에 알코올이 든 손소독제를 사용한 뒤라 따뜻한 물수건이 유독 반가웠다.

주문한 음식은 꽤 금방 나왔다. 하긴 우동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밑준비를 해둔 전문점에서는 그 정도 속도로 나올 것 같다. 국물, 면, 약간의 건더기와 고명. 남자 사장님이 감자로 만든 야채튀김이고 튀김을 적당히 흩트려 국물에 적당히 적셔서 먹는다는 식의 간단한 설명을 해줬다. 튀김의 바삭함에 별로 미련이 없는 편이라(바삭함이란 핑계로 튀김옷이 입 안을 긁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튀김에 맛있는 국물이 스며드는 것을 즐겁게 누렸다. 면도 국물도 어디 이상한 부분 없이 딱 좋았다.

나 말고 다른 손님들은 거의 2~3인의 남학생들이나 어린이 동반한 가족 손님이었다. 가격대 때문이 클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솔직히 누가 와도 좋을 것 같았다. 연어회 한 접시나 사케 한 잔, 여러 브랜드의 맥주 메뉴도 있어 인테리어에서 받았던 ‘일본식 가벼운 술집’이라는 인상에도 부합하는 듯 했다. 다음에 오면 뭘 먹어볼까 생각할 때쯤 나는 식사를 마쳤다. 평소엔 국물을 잘 안먹고 건더기만 건져먹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마지막 튀김 조각을 떠먹고 나니 그릇 안에 우동 국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동, 사실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은 아닌데… 그래도 분식집이나 휴게소 등에서의 경험으로 많이들 어떤 ‘인상’은 가지고 있는 음식이 아닌가 싶다. 따끈함, 굵은 면의 식감, 짭쪼롬한 국물이 혀를 자극없이 감싸주는 느낌, 뭐 그런 거. 그런 구체적이지 않은 인상을 소독약 냄새나 밀가루 비린내로 훼손시키는 맛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존맛 짱맛 둘이 먹다 하나가 죽을 맛인 맛집도 많이 없겠지만 이런 감점없는 적절함을 마주하는 경험이 의외로 드물다. 계산하고 가게를 나설 때 잘 드셨느냐, 입에 맞으셨느냐는 인사를 받았는데,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내 대답이 어땠을지는 물론 그 말이 얼마나 진심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겠지. 여름이 되면 메밀국수를 먹으러 가볼 생각이다. 물론 여름이 오기 전에 또 가보고 싶다.

(소근)응암초등학교 앞 히카리우동.

✒ 이달의 편집자 💃🏻🐆

노리밋에서는 두 명이 일주일에 한 번 한 주를 살며 경험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구독자님, 다음 주에도 같이 놀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