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9, 마켓과 나

🌎 미라클 지구, 💃🏻🐆 멋장이미식가 Kelly, 👌 그럴 수 있다 ㅇㅋ, 

🤎 그리고당신, 구독자

🌎_알바후기

고백한다. 나는… 몸매가 좋다. 한국 여자로 태어나 몸매 별로라는 소리를 한 번도 안들어본 게 내가 남의 외모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점잖은 사람이라 내 곁에도 그런 사람들만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착각은 이미 예전에 갖다치웠다. 흔히 파는 옷을 사입을 수 있고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상업적인 매체에 등장하는 선별된 사람들의 말쑥한 모습과 너무 달라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현저히 적은 삶이었다.

물론(물론?) 나는 내 외모를 완벽히 좋아하지 않고, 이전에는 꽤 심하게 싫어했다. 여자애들의 성장환경이 보통 그렇지. 반드시 외모에 신경쓸 것을 강요당하는 동시에 절대로 자기 자신의 외모를 좋게 평가하지 않을 것을 강요당하는.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나의 경험에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다 자라고 난 뒤 미디어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유행하는’ 몸들을 보면서 너도 저렇게 되어야 한다는 강요가 아니라 너도 저래도 괜찮다는 격려를 받았다는 것일테다. 성장기 때는 내가 동경하던 주변 여자아이들과는 달리 살집이 없고 키가 크고 어깨가 네모난 내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 어색함이 내가 불량품이라는 증거 같았다. 기준에 미달하는, 부적절한 인간이라고. 하지만 내 눈이 세상 물정에 뜨여가던 시기와 발맞춰 미디어가 팔다리 길고 머리통 작고 삐쩍 마른 인체를 칭송하는 정도도 심해져만 갔다. 얇고 팽팽한 젊은 피부에 팔과 어깨에 뼈가 톡 불거져 나온 화보를 보며 ‘아니 이게 예뻐?’ 하는 마음은 지금도 있으나… 나는 시류에 영합해 나 자신의 몸뚱아리를 용납했다. 이렇게 생겨도 괜찮구나. 가끔 즐기기도 했다. 다른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에 살았다면 나는 소화가 잘 되지않는 고열량 고단백질 음식을 엄청나게 먹고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해서 몸을 불리며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됐다.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가끔 거울이나 사진 속의 내 몸을 보고 너무 삐쩍 곯아 보여서 놀라고 싫을 때도 있지만 그걸 탈피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많은 우연과 불행과 다행의 덕으로.

이런 방면의 이야기를 별로 안 친한 사람들하고 하게 되면 “내가 그런 몸이면 이런 옷도 입고 저런 옷도 입을 텐데” 식의 말을 많이 듣는데(친한 친구들은 이딴 말 안한다.) 정작 ‘그런 몸’인 나는 이런 옷 저런 옷들을 많이 입지 않는다. 난 패션 시장의 좋은 고객이 아니다. 일단 제일 먼저 돈도 없고, 일상에서 튀는 것도 불편한 것도 안 좋아하고, 막상 막 꾸민다고 하면 또 독특한 걸 좋아해서 소위 ‘하위문화’로 불리는 분야의 패션이나 구제옷에 관심이 많다. 관심만 있을 뿐이다. 제일 큰 이유부터 앞에 썼다. 정직하게.

그렇다. 돈.

돈…의 문제로, 얼마 전 나는 친구의 지인에게 알바비를 받고 피팅모델 비슷한 것을 하게 되었다. 3*살 나이에….

얼굴 안나오고, 전문 모델처럼 화보 느낌으로 찍히는 어려운 거 아니고, 온라인 거래 페이지 하단 상세사진 부분에 사람이 직접 입은 착용샷으로 나오는 거, 부동자세로, asos느낌. ‘asos느낌’이라는 건 날 찍는 실무담당자 언니가 처음 만난 날 실제로 한 말이다. 비전문가로서 모델이 되어 몇번의 촬영을 겪고 나니 사실 옷을 사람이 입어야 태가 더 나고, 실제로 입었을 때 어떤 느낌인지 소비자가 더 잘 알고, 이런 것보다는 실무자 언니가 혼자서 마네킹에 옷을 일일히 입히고 자세를 바꾸고 사진을 찍고 하는 것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하나 고용해서 스스로 옷을 입고 자세를 바꾸게 하는 게 훨씬 덜 힘들고 싸게 먹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공장에서 막 받아온 새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 미세한 섬유먼지가 온몸에 붙는다. 방진효과 최고를 찍는 방역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고 있어야하는 지금의 일상이 다행으로 여겨진다. 남이 내 몸에 옷을 걸쳐주며 이런 몸이니까 이렇게 입혀도 저렇게 입혀도 폼이 나네 해주는 말을 듣고 있으면 뭐 의기양양해지지도 않고 과연 이게 누굴 위한 옷이고 누굴 위한 사진인가 싶기만 하다. 그래도 회의는 걷어놓는다. 실내에서 서너시간 옷 갈아입고 사진찍혀서 *만원 받으면 남는 장사지. 양말에 신발까지 계속 갈아신고 부동자세로 앞면 반측면 옆면 뒷면 전신 사진찍다 보니 종아리가 퉁퉁 붓고 집에 가서 샤워할 때 보면 정강이 피부에 실핏줄이 터진 빨간 점이 몇 개 생겨있지만, 괜찮다. 여기까지는.

내가 찍혀있지만 내가 아닌(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상의 시에서 따온 구절 같네) 사진은 인터넷에 올라갔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제품 화보와 제품 상세샷 아래에 붙은 그 사진을 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도움이 될까 싶은 거다. 내 체형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건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촬영한 옷의 타겟층은 대부분 나 같은 체형이 아닐 것이라는 것은 나를 고용한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기여하고 있는 부분이 사업 전체에 어떤 큰 의미가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시간제 알바의 과업이 아니다. 하지만 패션시장의 소비자이자 이 사회의 구성원인 나는 또 의견이 있을 수 밖에.

아무튼 나는 저번에 인터넷으로 바지를 샀을 때, 훤칠한 미남미녀 모델이 멋진 표정으로 나란히 서있는 화보 사진보다는 바지를 평면에 펼쳐놓고 찍은 사진, 안쪽 바느질 부분을 보여주는 사진, 체구가 작은 직원과 보통 키에 풍채가 약간 있는 직원과 키 크고 보통 체중인 남자 직원이 각자 다른 사이즈를 입고 찍은 사진에서 그 바지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 과연 이게 누굴 위한 옷이고 누굴 위한 사진인가 하는 생각을, 살짝 치워둘 수는 있어도 안할 수는 없다.

💃🏻🐆_맺고 끊기와 다투기

느리다. 지금 앉아 있는 이 카페 음료 제조 속도가 느리다. 이미 제조해 둔 음료를 뜨겁게 한 다음 위에 크림만 올리는 건데 느리다. 하지만 나도 일할 때 더 느린 경우가 많다는 걸 떠올리며 심호흡을 한다. 그래요, 메뉴만 4장인 카페에서 일하면 더 신중해지는 거죠. 나는 콘센트가 있는 곳을 찾아 앉은 거지만 내 옆자리 벽에는 아비정전 포스터가 걸려있다. 왜 아비정전일까, 이렇게, 정말 친한 배우 친구들끼리 모여서 있는 듯한 순간을,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눈물이 묻어나는 순간을 걸어 놨을까. 지나가며 길에서 보이는 카페와 내부에 들어와 경험하는 카페가 너무 다르다. 지금 쓰려고 하는 말처럼.

나는 열린마음닫힘이다. 늘 내가 타인에게 보내는 모든 언어가 무섭고 타인이 내게 보내는 대부분의 언어가 무섭다. 그래서 나는 늘 열려있고 늘 닫혀있다. 맺고 끊는 문제는 오히려 열려 있을 때만 가능하다. 관계를 맺어야 끊어내는 거고 관계를 끊어내려면 내가 매듭을 끊기 위해 개입해야 하는 거니까. 나는 나를 사랑하고 경멸해서 누구에게나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 내가 기대하는 나의 모습만 보이기를 열망한다. 더 유연하게 실행하는 사람, 이해력이 좋은 사람, 소통이 잘 되는 사람, 잘 듣는 사람, 신중한 사람,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이런 모순에 대한 다양한 이론, 분석, 상담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말 동료의 말처럼 나는 모순 덩어리라 이런 나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동시에 이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싶기도 하다. 요가 선생님이 언젠가 하신 말씀처럼 고집이 강하고 그런 나를 좋아한다.

동물을 길러 다행이다. 강아지와 함께 살면서 상대가 무엇이든 존중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내 안의 모순에 휘둘리는 나 같은 동물에게 강아지가 선물해준 가장 큰 원칙이다. 물론 닫힘 상태에서도 울컥해서 말을 뱉는 무수한 순간들처럼 그러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본성도 있지만 늘 멈추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얼마 전에 들은 나의 결혼 논쟁도 스쳐가는 바람조차 되지 못했다.

시발점은 지하철역에서 나가던 중 길을 물어봤던 사람이었다. 종교권유로 착각하고 빠르게 가려는데 정말 진지하게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어서 나도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감사의 의미라며 선 자리에서 사주를 봐주었다. 연초에 본 사주와 이야기가 다 맞아떨어져서 이야기를 계속 듣던 중 결혼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하자 활짝 웃으며 나는 결혼을 늦게 해야 하니 잘했다고 아주 기뻐하니 내가 정말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듯 느껴져 나도 감사하게 됐다. 잠깐 감사함이 솟아오르지만 그건 샛길로 빠지는 거니까. 그 이야기 후 다른 곳에 가서 10분 정도만 더 이야기하자고 하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단 같이 갔지만 이미 많이 해봤기 때문에 거기서 헤어졌다. 그리고 미용실에서 그 이야기를 하자 그 쌤은 쌤 대로 촉이 좋아서 애 낳으면서도 일하며 잘 지냈을 상이라고 했는데, 물론 사실 내 포인트가 그건 아니었지만 역시 감사한 마음 퐁퐁, 주변 어르신들은 어르신들대로 내 결혼에 진지하다. 날씨를 묻듯 묻는 분들도 계시지만 넘기고. 결혼을 하면 새로운 행복을 만날 가능성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행복이 내 인생에 없을 수도 있다. 내가 마주칠 행복은 수천 수만가지이니 그 안에 꼭 결혼이라는 카드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맞는 사람도 아니다.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다.

외국 소설을 보면 그런 경우가 있다. 노인이 될 때까지 미혼인 숙모, 고모, 이모가 갑자기 유산을 상속해주거나 돌아가셔서 유산이 상속되는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에서 노인이 될 때까지 미혼이고 유산이 있는 여성 친척이 되고 싶다. 날카로운 연애의 기억은 있지만 내 재산과 내 가족과 나를 온전히 지켜내는 그런 삶. 마음이 조금 다쳤다면 노인이 되면서 그 자리에 울퉁불퉁한 새 살이 돋아 더 크고 더 건강한 그런 노인. 그래서 나는 늘 할머니가 됐을 때를 더 많이 떠올리고 기대하는 모양이다. 지금 내 마음은 너무 작고 작아 매 순간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까.

                                                                        마음이 불안한 사람은 몸이 힘들어도 상대의 기대에 부응해 호감을 얻고 싶어 한다. 기대를 외면해 미운털이 박히거나 나쁜 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127쪽, 가토 다이조 저, 장은주 역, 도서출판 길벗, <비교하지 않는 연습>)

                                                                           자기멸시가 심하면 당연히 남보다 우월해지는 것에 집착하고 이는 곧 열등감과 연결된다. 열등감은 불필요한 경쟁을 자극한다. 그것은 때론 완벽주의로 나타난다. 자신의 완벽함을 상대에게 보여 우월해 보이고 싶은 것이다. (142쪽, 가토 다이조 저, 장은주 역, 도서출판 길벗, <비교하지 않는 연습>)

                                                                        어떤 일을 잘해낸다는 것과 상대보다 잘해낸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전혀 다르다. ‘상대보다 잘해낸다’는 것은 신경증적 야심이지 자기실현을 위한 노력이 아니다. (143쪽, 가토 다이조 저, 장은주 역, 도서출판 길벗, <비교하지 않는 연습>)

👌_힘 빼자

글이 막혔다.

원하던 출판사에서 컨택이 왔고, 덕분에 금손 일러스트레이터 분들을 추천받아 기분이 들떴고, 원하던 출판사에서 컨택이 올 만큼의 무연 성적이었으니 당연히 독자들의 반응도 재밌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아주 좋은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은 출발? 없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 글이 막혔다.

라이브 연재는 피 말리는 것이기에.

런칭 일자까지 비축을 쭉쭉 뽑아내 거의 완고에 가까운 분량을 들고서 런칭을 하고 싶은데, 글이 막혔다. 안 나온다.

왜일까, 글 쓰는 환경이 달라지기라도 했나? 아니다 똑같다.

생각보다 독자들 반응이 너무 좋았다.

재밌다는 댓글이 막 달릴 때는 ‘와 신난다. 그래 이거지.’하며 좋아했는데.

막상 이어서 글을 쓰려고 보니까 ‘독자들이 캐릭터의 이 점을 좋아했는데, 이후 내용도 이 특징을 살려서 써야겠지?’ 등등.

독자들의 칭찬이 이제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원하던 대형 출판사와 연을 튼 것은 좋은데 말이지.

이 출판사, 대형인 만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들이 다수다.

그런 출판사에서 내 글의 상업성을 높이 쳐서 출간 제의를 주었으니 참 기쁘긴 한데 말이지, 네임드 작가가 아닌 쩌리 작가인 나는 좀 쫄았다.

무연 분량까지만 재미있고 그 이후는 노잼이면 어쩌지.

네임드 작가들은 한 번 런칭하면 수익을 어마어마하게 낼 텐데, 나는 그러지 못 하면 어쩌지.

우리 담당자님 허벅지 치면서 후회하는 것 아닐까.

아…….

그냥 벽 보고 혼자 쓸 때가 속 편하고 즐거웠다.

그럼 부담감 때문에 꽉 틀어막힌 내 글을 어찌 뚫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 속으로 “나는 쩌리다.”를 수백 번 외치고 있다.

내가 쩌리인 걸 인정해.

네임드 작가님들이랑 비교하지 마.

네임드 작가들 기대치를 내게 적용하지 마, 되겠냐.

독자 반응 생각하지 마, 생각한다고 그렇게 써지겠냐.

그냥 혼자 벽 보고 쓸 때처럼, 내가 쓰고 싶은 인물, 쓰고 싶은 장면 쓰자.

그래서 런칭 성적 안 나오면 뭐… 신작 갈기는 거지 뭐.

그럼 된다.

✒ 이달의 편집자 💃🏻🐆

노리밋에서는 두 명이 일주일에 한 번 한 주를 살며 경험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구독자님, 다음 주에도 같이 놀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