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라클 지구, 👌 그럴 수 있다 ㅇㅋ, 💃🏻🐆 멋장이미식가 Kelly,
🤎 그리고당신, 구독자
🌎_당근
이번주는 당근마켓 거래를 많이 했다. 실은 너무 많이했다. 몇 년 전 몇주 전 당근마켓 앱을 다시 설치하게 된 것은 아마 옷 때문이었다. 질 대비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예전부터 헌옷, 아니 구제, 아니 빈티지 의류를 많이 사입었는데 이제 이용하던 빈티지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찾을 수 없는 현대적인(…) 겉옷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주간의 눈팅이 이어졌고….
역사적인 이번의 첫 거래품목은 생활한복이었다. 참 현대적인 의복이지….
작년에 모 SPA브랜드가 유명 생활한복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으로 내놓은 세탁이 쉬운 소재의
여름용 긴 로브인데 이제 도포같은 디자인를 곁들인. 이 물건은 집에서 자주 안가본 방향으로 걸어서 40분 가량 떨어진 동네의 매물이었다. 판매자는 나보다는 연령대가 낮아보이는
젊은 여자분이었는데 실내복에 후리스 윗옷과 벙거지 모자만 걸친 듯한 차림으로 나와 깔끔한 종이 쇼핑백에 담아 준비해둔 물건을 건네주었다. 옷의 상태가 사전에 거래글을 통해 알아본 바와 다름이 없는지 확인 후, 모바일
송금으로 거래 완료. 판매자는 집앞까지 와주어 고맙다고 인사하며 나를 보냈다. 처음 판매가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받아온 옷은 판매자가 미리 고지했던 대로 살짝 틑어진 부분이 있었는데 1분 정도 걸리는 간단한 바느질로 고친 후 다림질을 해두었다.
두번째 거래품목은 고궁박물관 문화상품인 조선왕실등 키트였다. 몇 년 전 큰 히트를 치고 지금까지 인기상품인 이 물건… 작년에 고궁박물관에 전시를 보러갔을 때 구입을 시도했으나 지금 재고가 없고 온라인에서 사라고 하더라. 그대로 마음이 시들해져 이날까지 가지지 않은 채로 있던 정가 3만원의 이것, 포장 뜯지않은 신품이 22000원에 올라와있는 걸 분명 보았는데 어느날 판매자가 20000원으로 가격을 내렸고 나는 그제야 마음을 굳혔다. 이번에도 앞선 거래장소 방향의, 내가 별로 가본적 없는 동네였다. 이번에는 지하철역에서 만났다. 거래자는 이번에도 실내복 위에 대충 모자와 겉옷을 걸친 듯한 차림의 나보다 연령대가 낮아보이는 젊은 여자분. 내가 개찰구 바깥으로 나가지 않은 채 대합실의 허리높이 펜스 너머로 대화와 물건을 주고 받았다. 사온 물건은 상자를 열어 속을 확인했을 뿐 아직 조립은 하지 않았다. 방을 좀 치우고 조립해 창가에 달아두려고 한다. 내용물 중 등을 매다는 데 쓰는 끈은 색상이 일정하지 않고 랜덤인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받은 키트의 비닐 속 끈은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세번째 거래품목은 가격이 좀 나갔다. 쏘니의 오디오. 씨디 플레이어다. 사실 나는 아직도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산요의 커다란 오디오를 내 방에 방치해두고 있다. 전면엔 카세트 테이프 재생기, 윗면에는 씨디롬 재생기, AM/FM 라디오 선국은 다이얼을 돌려서
수동으로 맞추고 길게 쭉 빼는 안테나가 달린, 씨디 크기만한 동그란 스피커가 좌우로 있는 묵직한 스테레오
오디오. 안테나는 12년쯤 됐을 때 또각 부러졌다. 카세트테이프 안쓴 세월이야 말할 것도 없고, 10년 전부터는 씨디
재생만 간간히 했는데 최근엔 영 맥을 못췄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가끔 신곡 앨범 씨디를 사고 있고(사유:아이돌)… 발매 당일에
정시에 무선인터넷으로 접속해 이어폰 구멍도 없는 휴대폰으로 재생하지만 그래도 씨디로 틀어서 가사집 손에 들고 듣고 싶단 말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커다란 기존 오디오를 고칠 엄두도 안나고, 좀
더 날렵한 오디오를 갖고싶어 여러해 모색했으나 괜찮아보이면 가격이 너무 비싸고 가격이 좋으면 너무 허술해보여서 결국 사지는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당근에서 발견한 것이다. 전에 알아봤었지만 비싸서
안샀던 그 몇 년전 그 모델이 현재 신품 판매가보다 훨씬 싸게 나와있는 것을. 이번의 거래장소는 그래도
자주 가봤던 방향의, 집에서도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동네였다. 이 정도면 사실 걸어서 가는 걸 선호하지만 가는 길이 심하게 언덕져있어서 도보로도 자전거로도 이동하기 싫었다. 거래자는 나보다는 위지만 부모님 뻘보다는 낮은 듯한 연령대의 남자분. 사실
판매자의 다른 판매품목에서 짐작한 바였다. 반면 거래자는 나를 보고 조금은 놀란 듯 보였다. 나는 낯선 사람, 특히 내 나잇대 여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만만해보일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딱딱하고 정돈된 말투만 쓰기 때문에 젊은 여자일줄 몰랐다는 식의 반응을 받는 건 익숙하다.
이 경우에는 품목도 기계류였고 거래자 본인이 남자였기 때문에 더 그런 인식이 있었겠지. 아무튼
이 거래도 빠르고 정확하게 끝났…으나, 아, 물건에 이상이 있었다. 씨디를 틀려고 산 물건인데 씨디 재생이 되지
않았다. 지금 쏘니 서비스센터에 기계를 맡기고 온 상태다. 무슨
문제인지는 다음 주중에 연락드리겠다고 한다. 거래자 아저씨한테 이 얘기를 어떻게 꺼내나 근심이 깊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기를 이렇게 싫어해서야… 어른이 덜 됐다. 이미 서비스센터까지 오디오를 가져가고 집에 돌아오는데 내 기력과 시간을 추가로 들였고, 구매자에게 다시 연락하는 게 저항감 생긴다고 A/S비용을 조용히
내가 다 부담하는 건 또 깝깝하고, 아예 당근거래 자체를 무효화-반품을
하려니 그럼 잘 잡았다고 생각한 새 (헌) 오디오가 없어졌을
때의 허무감을 생각하면 세상 모든 일이 귀찮다 싶어져서 싫고.
결국 내키지 않는 손가락을 움직여 거래자와 다시 연락을 했다. 다행히 별 갈등 없이 거래자
쪽에서 A/S 비용만큼 오디오 가격을 에누리해주기로 했다. 하기
전에는 너무너무 싫었으나 저지르고 나니 놀랄만큼 침착하게 말이 잘 나오더라. 아이고. 한 번 움직임을 시작하는 데에 너무 큰 심력이 소모된다. 관성의
법칙인가…?
네번째 거래품목은, 드디어, 현대의류에 다다랐다. 전통취향, 전통취향, 아날로그-디지털 과도기에 보낸 사춘기에 대한 물적 상징에 대한 정신적 헌신 끝에. 그것은 바로바로, 봄버자켓. 브랜드 의류인데 그래서 그런지 디자인이 예뻤다. 재질은 바람과 약간의 비도 잘막아줄 것 같고, 색이 어두워서 더러움도 안탈 것 같고, 도톰해서 따뜻할 것 같고, 사이즈는 잘 맞을 것 같고. 거래장소는 예전에 살던 동네와 가까워서 가는 길을 미리 알아보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크게 인상 깊을 일 없이 재미없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거래자를 만나서 마주보자 약간의 재미가 발생했다. 나와 그 사람의 눈 높이가 족히 머리 하나 정도 차이났던 것이다. 초면인 사람과 둘이서 거래를 위해 대화해야 한다는 어색함 이상의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거래자에게서도 나 자신에게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내 나잇대 여자들 중에선 꽤 키가 큰 편이기는 한데, 거래자도 상당히 체구가 작은 분이었다. 아마 나보단 그분이 걱정됐을 것이다. 너무 박시해서 몇번 못 입고 방치했던 옷이라곤 해도 과연 이 170따리 사람한테 맞을까? 싶지 않으셨을까. 물론 옷은 내가 예상했던 사이즈였고 우리는 쿨거래를 했다. 채팅 연락에서 거래까지 1시간 컷. 워낙 속전속결이었던지라 나는 조금 에누리해주실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다. 내가 한 것치고는 꽤나 변죽좋은 짓이었다. 거래자는 애초 거래가의 10%나 덜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 분의 당황이나 어색함을 이용해 거래를 내게 더 이익이 되도록 수를 쓴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미 지난 거래니 그만 생각하려한다. 이런 마음가짐 자체가 하수라는 증거같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아무튼 이번주도 나는 어떤 성장을 이뤘다.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당근이 되는 것으로… 말이야.
👌_휴재 (w.Covid-19)
다음주에 건강히 뵈어요🎠
💃🏻🐆_켈리는 나야 둘이 될 수 있지
나는 늘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다. 나 홀로 내가 유일무이하다는 확신을 얻을 수 없으므로 그러한 감각과 확신은 타인의 인정에서 온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이란 10명의 사람을 가정했을 때 그 중 1명만 할 수도 있고 7명만 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10명 전원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나는 일의 경중 파악과 업무 범주 설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구분 속에서 헤매게 된다.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고 내 방향성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보다 당장 주어지는 타인의 인정이 달콤하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은 나의 착각과 감각, 혹은 공상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타인의 의견이란 무수한 맥락 속에서 그 정도와 내용을 달리한다. 나는 언제든 둘도 백도 천도 될 수 있으며 특정한 목적을 가진 그룹 속에서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으며 지워질 수 있다. 내가 다른 생명체에게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사랑으로 기억되는 방법.
그리고 사랑은 상호적일 때 성장하고 지속된다.
나는 사랑을 하고 있을까?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을까? 내 사랑은 상호적인 상태가 아니다. 아직 나는 언제든 둘이 될 수 있는 존재다.
✒ 이달의 편집자 💃🏻🐆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