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문득 다가오는 것들

🐴💃🐕🍷 :: 고립, 언어, 독서

2021.10.18 | 조회 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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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밋

동갑내기 30대의 좌충우돌 각자도생 일주일 취재기

🐴 안다정보스 동호수와집 💃🐕 멋장이미식가 Kelly 🍷 게으른개미 비언어 🤎 그리고 당신, 구독자


🐴 다른 어떤 그런* 화양연화

  오랫만이다. 집이 아닌 외부의 공간에서 공부를 한 건. 이사를 온 이후 나는 내가 있는 거주지를 표현할 때 '고립됐'다고, 그리고 이런 곳을 '시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늘 시내에 나오게 된 건 2차 백신을 맞기 위해서였다. 애석하게도 오늘은 1차때 전혀 들어온지도 모르게 주사를 놔줬던 의사말고 나이 있으신 의사가 아프게 놔줬다. 뽀로로 반창고를 붙여주지 않은 건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들어올 땐 아팠지만 다행히 한 시간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 다른 증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병원 앞에 알아두었던 카페에서 글을 쓰는 중이다. 산미 없다시피한 커피는 향도 맛도 좋고, 아점으로 시킨 크로플도 맛있었다. 이런 곳이 집 근처(라고 하기엔 걸어서 30분 이상 걸릴텐데..! 라는 생각에 조금 어색하고마는 어쩔 수 없는 서울러)에 있어서 다행이지만 글쎄, 오늘 아니고서야 또 올지는 모르겠다. 나는 소위 말하는 집공러이기 때문이다.

  집공러는 집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사를 오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거실에 큰 책상을 두는 거였다. 그 책상에서 나는 아침을 시작하고, 밤을 맞이한다. 거창하게 말하지만 그냥 거기에 엉덩이 붙이고 되든 안 되든 공부를 하는게 요즘의 주된 일과란 소리다. 가끔 공부가 하기 싫거나 집중력이 떨어질 땐 유투브를 틀고 공시생 브이로그를 검색해서 봤었다. 의지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생겨 역효과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에 이어 유투브, 카톡을 지웠다. 내게는 이럴 시간도 많지 않다는 걸 자꾸 까먹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속상하고 조바심 내게 하는 것들을 없애고 필요한 곳에 집중하기로 했다. 물론 이런 마음이 흔들리는 날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 시기를 통해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싶다는 소망이 더 간절하기 때문에, 그래서 잘 마무리하고 싶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단을 내렸다. 이젠 밥을 먹거나, (운동이라 쓰고 산책이라 느끼는)바깥 활동을 할 때 주로 단어를 외운다. 유튜브를 지웠으니 이젠 빼도 박도 못하고 더 단어장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기쁘진 않지만 많이 속상하지도 않다.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도 이런 생각을 하며 잠들 거다. 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이러한 시간엔 반드시 끝이 있다고.

* 단어의 기능에 따른 품사 분류 중 '다른, 어떤, 그런'은 관형사와 형용사로 모두 쓰인다. 이 둘은 활용 여부와 서술성 유무 등으로 구별한다. 여기서는 관형사로 쓰였고 글쓴이의 공부 복습용으로도 이용(?!)되었다.

💃브루브로스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쓴다🐕

  브루브로스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쓴다. 맛이 변화하는 흐름은 바람이 없는 날의 부드러운 파도와 같고 레몬, 감의 시트러스 풍미와 들꽃 같은 플로럴, 박하와 민트가 엉겨있는 클린컵은 침대 안에서 못 나오고 있던 사람을 다독이는 손길이었다. 이렇게 사람의 심정에 맞닿는 맛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아 맛이 나와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쳤을까. 이 모든 감동과 감사하는 마음, 기쁨과 즐거움은 그러나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어긋나고 상처가 될 것만 같다.

  며칠 전 다음 술집을 찾아가다가 동행이 타로를 보고 가자고 이끌었다. 어느 집이나 그렇듯 타로와 사주를 보는 곳은 내일이라도 사라질 듯 단순한 기물만 놓고 있는 허전한 몰골로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2~3년 사주가 3만원, 평생 사주가 5만원, 타로는 질문 1개에 만원. 구변이 좋아 말로 먹고 살아야 하고 마케팅, 디자이너 같은 업을 가지면 좋다, 올해 좋고 내년과 내후년에 인간관계에서 내가 말을 함부로 놀려 구설수가 있고 말썽이 있으니 말조심하라, 만사에 일을 잘 해놓고 말로 까먹는 사주다. 만약 사주 볼 일이 있고 핵심만 툭툭 말하는 사람이라도 상관 없다면 메일로 알려주시면 공유 가능. 왜냐면, 아니라 가족까지 총 5명의 사주를 봤는데 다 정확히 핵심을 짚었다. 모든 지점을 꼼꼼히 짚어준 건 아니지만 내가 고민하는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 책도 읽고 강의도 듣고 상담도 받아봤지만,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고 조정해 나아가는 시공간 속 내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가 내게 남아 먼지가 되어 맴돈다. 상대가 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내가 남긴 언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내게 남겨지듯이 상대에게도 상흔처럼 남아 문득 이런 사람이지 참, 하고 흉터가 가려워지듯이 떠오른다.

  내 롤 모델은 주로 할머니다. 박막례 님, 윤복희 님. 타인의 제안에 늘 열려있지만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는 않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에게 불쾌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나를 문득 생각했을 때 피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기를 바라고 나와 같이 일하는 걸 특별히 싫어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감정이 쉽게 넘친다. 나는 여전히 너무나 많은 버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이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대화 속에서 당신이 하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다. 나는 듣고, 질문하며, 당신의 이야기를 넘어 당신의 심정에 공감하고 싶다. 오늘 이 맛있는 커피가 내게 온 것처럼 많은 과정이 필요할 테니 심호흡을 한다. 척추를 하나씩 쌓아본다. 정수리부터 내려가는 호흡으로 몸을 바르게 세운다. 세우려고 한 번 더 시도한다. 매일이 그렇다.


🍷 도서 취향 아니고 독서 취향 말입니다

  지방에 있는 친구네 놀러 갔다 왔다. 이동수단은 KTX. 읽고 싶은 책을 사고도 시간이 나지 않아 한 장도 넘기지 못했는데, 길지 않은 시간이니 외려 읽기엔 좋겠다 싶어 굳이 책을 챙겨간다. 오전의 기차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빈 옆자리 덕에 –안 좋은 자세라는 건 너무 잘 알지만- 다리를 한쪽으로 꼬곤 비스듬히 창가 쪽에 기대앉아 책을 폈다. 책 너머의 풍경은 시시때때로 달라졌다. 커다란 역사 내부를 지나고, 도심을 가로질러 달리다, 한강을 지나고, 얼마간은 산을 지나고, 터널을 지나다, 논밭을 내달렸다. 나는 조심히 책을 펼쳐선 그 모든 풍경을 배경 삼아 글자를 읽었다. 차창 밖의 풍경이 달라질 때마다 종이 위로 내려앉는 빛의 온도가 달라졌다. 따스한 햇빛이었다간, 터널의 쨍한 빛이 됐다. 그러다 물 위를 반사하는 자잘한 빛이 되기도 했다. 독서가 지나치게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만큼 입체적인 평온은 잘 잊히지 않으니, 나는 이 작은 책을 오래도록 기억하겠구나, 싶었다.

  직업 때문이 아니라,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취미는 독서. 그 고루한 말이 내겐 아주 오래도록 적용됐다. 사춘기 때엔 지적 허영도 포함되어있었지만, 사춘기 이전부터도 나는 독서를 즐겼으니 내 가장 오래된 취미인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즐거움을 목적으로 독서를 하다 보니 읽는 책들도 제멋대로였다. 자서전, 자기계발서, 경제서를 넘어 과학서, 문학, 비문학을 아우르는 잡식독서. 그러나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책 구기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는 것이다. 내게 새 책은 –새 책이 아니라 내가 가진 대부분 책의 경우- 펼쳤을 때 각도가 100도에서 120도를 넘지 않는 것들을 말한다. 책은 글자의 가장 안쪽까지만 보일 만큼 펼치는데, 덮었을 때 책이 다시 새것처럼 착 누워야 만족스러워진다. 유난이라는 얘기는 종종 듣는다. 하지만 나는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느껴지는 새 책의 촉감을 포기할 수가 없다.

  여유가 있다면, 포크를 사용하는 한 입 거리의 간식과 커피 한 컵 –주로 나는 스타벅스 시티컵을 이용한다- 가득을 두고, 간접조명을 켜고선 굳이 눈을 밝혀 책을 읽는다. 간접조명에 비친 종이는 아주 부드러운 색을 가진다. 때론 그 빛이 안경 닦는 천처럼 부드럽고 얇아서 종이를 넘기는 손까지 조심스러워진다. 숨도 못 쉬게 강렬한 소설을 읽을 때는 종종 커피가 식긴 하지만, 대개는 절반을 읽기 전에 커피와 간식을 다 먹어치운다. 후반으로 가도 입이 궁금한 정도면 내 정서에 맞지 않는 책인 것이다. 재밌는 책들은 대부분 후반으로 가면 두어 모금 남은 커피나 혹은 찬장에 남아있을 간식 같은 것들을 떠올릴 틈도 주지 않는다.

  어느 날엔가 나는 책을 위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자주 가는 카페나 항상 읽는 내 식탁이 지겨워져서 장소를 바꾸고 싶었다. 한참 검색하고 수소문해서 찾은 그곳은 -손바닥만 한 밭과 돌담을 넘어 바다가 보이는- 창가의 앉은 자리가 매력적인 곳이었다. 애초에 생전 가져본 적 없는 창가 자리여서 삼박을 묵는 내내 나는 일정 시간 동안 그 창가에 몸을 구겨 앉아 책을 쌓아두고 읽었다. 바깥의 빛으로 읽는 책만큼 생동감 있는 것은 없다. 시간에 따라, 날씨와 계절에 따라 종이의 느낌과 색이 변화하고 심지어는 그 질감마저 달라진다. 같은 책을 매번 같은 장소에서 읽는다고 해도 읽는 내겐 영원히 다른 책이 될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젊은 여자작가의 단편집과 다른 작가의 장편소설과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여행수필을 읽었다. 손에 잡힐 것 같이 감각들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런가 하면 일상에서는 단말기를 이용하는 일도 적지 않다. 내게는 두 개의 단말기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각종 수당을 모아서 산,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레마 사운드다. 외부의 버튼 키가 있어 굳이 화면을 터치하지 않아도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인 단말기이다. 다른 하나는 B에게서 받은 크레마 그랑데인데, 사운드에 비해 액정도 크고 몸집도 크다. 한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데다가 페이지를 넘기려면 액정을 터치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랑데 쪽을 더 많이 사용한다. 갱지 같은 액정의 질감과 부드럽게 박힌 전자잉크의 글자들이 그랑데 화면에서는 한층 더 가득 차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B는 공부가 끝나면 돌려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랑데를 애용하는 나를 인지하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B보다 내가 이 단말기를 훨씬 많이 사용할 것이라는 걸. 물론 모든 책을 이북리더기로 읽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전자잉크를 사용하고 종이의 질감을 구현해 냈다고 해도, 실제 종이의 책보다는 몰입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내 전자책장엔 소설만 한가득하다. 즐겁거나, 슬프거나, 엄청난 이야기들이 있어야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었다. 전자책의 액정 위로는 어떤 빛도 먹히지 않지만, 조명 온도를 조절해서 찬 종이의 액정 또는 따스한 종이의 액정을 만들 수 있는 점은 좋다. 더군다나 몇백 페이지가 되는 책도 거뜬하게 단말기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은가. 내 손목을 지켜주는 몇 가지 아이템 중 단연 돋보이는 역할을 한 셈이다.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한 취향보다도 독서에 대한 취향이 조금 더 예민해 굳이 먼저 이야기 해본다. 나뭇잎 그림자 사이로 내려오는 따스한 봄볕에 돗자리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던 어느 봄날을 떠올리며 취미로만 가득 찬 나의 독서에 대해 곱씹어 본다.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가장 좋은 취미가 독서라는데, 나에겐 왜 이렇게 많은 스트레스가 산재한 걸까, 의문을 품으며.


✒ 이달의 편집자 🍷

👀추운 초겨울 날씨, 두터운 이불 애인과 뒤집어쓰고 김서린 창 닦아 바깥 구경하는 상상을 해보며😉
날이 쌀쌀해졌다고 말하기 무색하게 초겨울의 날씨네요. 불안한 마음에 매일 저녁 테라플루를 타마시고 잘 판입니다. 좋아하는 것도 쓸쓸한 것도 섬세한 것도 많은 한 주였지만 모두 건강과 자기 자신의 일상 만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노리밋에서는 두 명이 일주일에 한 번 한 주를 살며 경험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구독자님, 다음 주에도 같이 놀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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