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왜 잘나가는 작가님이 왜 굳이 요즘 제일 사양산업인 잡지 사업에 뛰어드시겠다는 거예요?"
“마음건강 월간지가 하나도 없어서 만드신다는 취지는 좋은데요 작가님... 근데요. 아무도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2024년,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 창간을 준비하던 저에게 대부분의 VC(벤처 투자자)들이 우려 반, 답답함 반으로 건넸던 질문입니다. 이미 상담가로, 심리학 도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충분히 알려져 있고 벌 만큼 벌면서, 왜 더 어려운 길을 자처해서 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그냥 하던 것만 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며 애정 섞인 만류를 하곤 했어요. 심지어 창간 목표가 “몇십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는 게 아니라, 전국의 도서관에 비치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때는 한숨을 푹푹 쉬며 되묻는 분도 있었어요.
“작가님, 그럼 전국에 도서관이 1000개소라고 칩시다. 정기구독해서 연에 10만 원씩 받아요. 그럼 딱 1억이에요. 연 매출 1억짜리 회사를 왜 만드십니까. 혼자서 책 쓰고 방송 출연하셔도 그것보단 더 버시잖아요. 애당초 말이 안 된다니까요? 돈 자체가 안되는 비즈니스에요. 아니면 커머스(제품 판매)라도 붙여서 마음건강 영양제 쇼핑몰이라도 같이 하세요.”
그럴 때마다 저는 늘 웃으며 말했지요.
“아니요. 쇼핑몰 같은 건 안 해요. 전국 도서관에 다 비치되고 나면 저는 더 바랄 거 없어요. 그냥 시민들이 돈 안 내고 읽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러면 대표님 말씀이 맞아요. 돈은 안되죠. 근데 전 이게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돈은 안되고 세상에는 필요한 일, 돈 머리 없는 딱 저 같은 사람이 해야지 않겠어요?”
그렇게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 편집장이라는 새로운 이름표 하나를 달고 어느덧 사계절이 지나오면서, 저는 느낍니다. 한 권의 잡지를 만든다는 일은 한 권의 단행본 저서를 만드는 일과도 또 전혀 다르더군요. 매달 일상에서 지친 누군가의 마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작은 벤치 같은 쉴 틈 하나를 마련하는 일... 뭐랄까요. 출판이라기보다는 돌봄의 다른 형태로 보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제가 상담실을 나와 편집장이 되는 길을 선택했던 이유와 맞닿아 있었더라고요. 상담이라는 행위는 세상에 꼭 필요한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일이지만 상담만으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벽이 있었거든요. 제가 상담가로 살던 때 늘 강조하던 것이 있습니다. 제 앞에 찾아오신 내담자께
"땡땡 님은 그래도 희망이 있어요. 마음이 아픈 사람 중에서는 상위 10%라고 전 생각 해요. 세 가지 허들을 넘어오셨잖아요."
라는 말을 자주 건넸는데요. 그러면 다들 늘 뭔 소리야 힘들어 죽겠는데.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지만, 제가 설명을 드리면 이내 고개를 끄덕 끄덕하세요. 첫 번째는 인지의 허들입니다. 마음이 아픈데도 아프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두 번째는 인정의 허들입니다. 내 마음이 힘들다는 것을 알아차려도 그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합니다. 마지막은 결심의 허들입니다. 이제는 정말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하는 단계인데, 전문가를 찾아가기 두려워서, 주변인에게 알리고 도움받기엔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이 문턱에서 멈추는 분들이 가장 많았지요.
저는 이 세 가지 허들에 걸려 상담실까지 올 수조차 없는 분들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 어떻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 늘 마음에 걸리곤 했습니다. 그때 제 멘토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장 선생, 접었던 작가 활동을 다시 해보면 어때요? 사람들이 정신의학과 문을 열고 들어가긴 어려워하지만, 교보문고에는 가잖아요. 도서관에는 가잖아요.”
그렇게 한동안 접어두었던 펜을 집어 들고 저술을 시작했지요. 번아웃의 원인과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습관 20여 개를 제안했던 ‘마이크로 리추얼’, 학교도 가고 출근도 하기에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아무와도 연락을 하지 않는 사회적 고립을 다룬 ‘리커넥트’ 두 권 책이 권장도서로, 베스트셀러로, 전 세계에 번역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저는 다시금 깨달았지요. 결국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문턱이 낮은 연결고리’라는 것을요. 쉽게 접할 수 있고, 부담 없이 손을 뻗을 수 있는 것 말이죠. 그런데 책이라는 건, 작가인 제가 아무리 애를 써도 1년에 한 권을 내기도 쉽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잡지를 만들게 된 겁니다. 매달, 마치 나의 쉼터처럼 언제나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가면 거기에 있어주는 어떤 존재. 월간 산, 월간 낚시처럼 그냥 마치 삶의 습관이자 라이프스타일처럼 마음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것.
돌아보면 이렇게 ‘문턱이 낮은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상담가 시절에도 늘 있었던 것 같아요. 2020년으로 기억하는데요. 국무조정실 산하의 청년정책 조정위원회가 출범하고 청년 기본법이 만들어지던 때 저는 청년 당사자이자 현장 전문가로서 그 과정에 참여했었답니다. 그때 제가 가장 강조했던 건 바로 "마음건강"이라는 단어였습니다. 행정 언어 속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시민 정신건강 치료 정책’ 이런 단어들을 ‘국민 마음건강 돌봄 정책’이런 식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내고 이게 조금씩 시행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일부에서는 농담처럼 저를 ‘마음건강이라는 단어를 널리 퍼뜨린 산파’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제가 말을 하면서도 당시의 저는 이렇게까지 빠르게 이 단어가 우리 사회 전반에 자리 잡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상적인 기사 제목에도, 정책 문서에도, 사람들의 대화에도 자연스럽게 "마음건강"이라는 말이 오르내립니다. 그만큼 우리는 이 주제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실제로 모두가 마음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그걸 담아낼 언어와 제도, 그리고 접근성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 너무 부족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해외로 시선을 돌려보아도 우리 사회랑 그다지 다르지 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영국은 ‘외로움 장관’을 임명하면서 마음의 돌봄을 국가적인 의제로 끌어올렸고, 일본 역시 ‘고립, 고독 특명 담당 대신(장관)’을 매 내각마다 의무 임명하도록 법안을 만들었답니다. 물론 핵심은 법안이나 직책을 하나 더 만드는 게 중요한 건 아니고요. 다만 이러한 시도들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꺼내어 말하지 않았던, 터부시 된 마음의 일을 공공연히 나누고, 또 문턱을 낮추는 시작점을 만들겠다는 의지이자 선언으로 느껴지죠.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 시작점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계속 작은 실험을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분기부터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 버전의 마지막 장에는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 연락처를 싣기 시작했습니다. 독자가 책장을 덮기 직전 순간에, 적어도 바로 걸어볼 수 있는 전화번호 하나만이라도 손에 남겨서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하진 않지만, 언젠가 필요한 순간에 이 번호로 전화하면 누군가는 내 얘기를 들어줄 거야.”라는 마음을 지니도록 하고 싶었거든요. 또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의 동굴에 들어가 있을 때, 내가 전화번호 하나를 알고 있다면. 웹사이트 주소 하나를 알고 있다면. ‘정신건강복지센터’라는 공공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 작은 연결고리가 실제로 사람을 살려낸 순간을 저는 여러 번 목격했단 말이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누구나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던 28살 청년은 어느새 불혹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중년기에 접어든 저에게 때때로 사람들은 다음 스텝을 궁금해하며 질문을 합니다. 얼마 전엔 한 언론사 국장님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학벌 되고, 경력 되고, 나이도 찼고... 작가님 이제 딱 정치하시겠네.”
완전 무례하죠? 다 안다는 듯한 그 표정, 태도. 그 사람 말은 이거에요. 어느 정도 이름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겠다, 방송에도 많이 나왔겠다, 정책에 참여한 경험도 있겠다... 딱 대변인부터 시작하면 좋은 그림이라나요. 너 같은 젊은 애들 많이 봤다는 듯한 그 오만한 어른의 발언에 저는 정색하지 않고 꺄르르 웃으면서... 뭐라고 멕였(?)는지 아세요?
“어머! 국장님, 문턱을 낮추는 게 평생의 목표인 사람한테 높으신 분이 되라고요? 이게 무슨 어불성설이람. 제 팬이라고 하시더니? 저에 대해서 너무 모르시는 거 아니에요? 실망이야. 그리고요, 미안한데 저 이미 초선 국회의원보다는 훨~씬 많이 벌거든요? 어유 증말 국장님 속물 속물.”
저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활동은 더욱 열심히 치열하게 슈퍼스타처럼, 행동은 언제나 옆집 이웃처럼!”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마음을 꺼내 보일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에 그런 사람이, 그런 제도가 더 많이 생겨나고 확산되도록 저는 세상 속의 연결고리로 앞으로도 살아가려고 합니다. 도서관과 복지관, 학교와 지자체 어느 곳에서나 ‘마음 스테이션’ 같은 가벼운 상담부스가 상시로 열려 있는 도시. 네이버 지도에 카페, 음식점, 주차장 말고 마음쉼터 탭도 생길 수 있는 도시. 그리고 도서관에서 누구나 월간 낚시, 월간 미술, 월간 산을 읽든 일상적인 행위로 월간 마음건강을 집어 드는 도시. 그런 도시를 그리며 저는 앞으로도 사람들 사이에 작은 다리를 놓는 일을 하려 합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연말연시가 다가오겠지만 저는 늘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할 거예요.
지나간 한 해, 세상의 문턱은 조금 낮아졌을까?
다가올 한 해, 무엇을 해야 조금 더 낮아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어 가다 보면, 사람들이 늘 걸려 넘어지던 세 가지 허들—인지, 인정, 결심—이 조금씩 사라지고 언젠가 “허들이 없는 세상”이 당연해지는 날이 오겠지요? 올 한 해 함께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PS. 다음달 레터는 편집장 장재열이 아닌, 사람 장재열의 마음 연말정산으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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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하루
글에서 재열님의 마음이 저며들어 가슴이 먹먹해져요. 이 매거진을 만나고, 재열님과 수많은 에디터님들의 글을 만나며 제 삶에 마음건강이라는 단어가 절로 스며들었습니다. 사실 삶에서 많이 멀었던 단어였음에도 말이죠. 항상 감사합니다. 늘 잘 읽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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