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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속에 자란 아이

11월 19일 :: 가장 충만하고도 불완전한 이야기

2025.11.19 | 조회 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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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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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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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민정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이 성큼 다가온 11월 중순입니다. 이제는 손발이 시릴 만큼 공기가 차가워지고, 나무들이 마지막 남은 잎들을 하나둘 떨구고 있네요. 계절은 이렇게 조금씩 비워내며 다음을 준비하나 봅니다.

여러분은 '북적이다'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어떤 경험이 떠오르나요? 어떤 사람에게는 따뜻하고도 당연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풍경으로 기억되기도 할 것 같습니다. 이번 레터에는 그런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외롭고, 너무 북적여서 지치던 시간 속에서 나만의 고요를 찾아가는 여정. 그럼 시작해 볼까요?


 

민정의 가장 충만하고도 불완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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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하교 후 집으로 귀가하면 현관문 너머로 저를 기다리는 건 오직 고요뿐이었습니다. 이혼 후 자식 둘을 홀로 키워야 했던 엄마가 돈벌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거든요. 한 가지 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빠듯해 투잡, 쓰리잡을 뛰었습니다. 주말도 없었고, 명절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어요. 친구들은 크리스마스에 가족들끼리 외식을 하기도 하고, 어린이날이면 놀이동산에 가기도 했지만 저에게는 그런 기억이 전혀 없을 정도로 엄마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이렇다 보니 학교에 다녀온 저를 맞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죠. 아무도 없는 캄캄한 집 안의 불을 켜는 사람은 늘 저였어요. 그 상황이 외롭고 슬프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너무 어려서 그저 해맑았던 건지, 사실은 외로웠지만 애써 그 기억을 잊어버린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다 제가 고등학생이던 무렵부터 집안의 재정 상황이 이전에 비해 안정되기 시작했고, 엄마의 퇴근도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저의 귀가시간은 점점 늦어졌고요. 그러다 보니 집으로 돌아오면 신발장에 엄마의 신발이 놓여있는 날들이 늘어났죠. 현관문을 열면 엄마가 "어~ 우리 정이 왔나" 하면서 반겨주었고, 밥은 먹었냐, 학교는 잘 다녀왔냐 같은 질문도 쏟아졌습니다.

 

누군가의 소란스러운 마중이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요. 저는 엄마가 신발장으로 쪼르르 걸어와 하루의 안부를 묻는 게, 추운 날에는 집에 들어온 저의 두 손을 붙잡고 호호 불며 녹여주는 게, 그냥 현관문을 열었는데 집 안에 누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불편했습니다. 그 당시 저희가 살던 집이 복도식 아파트였거든요? 집에 누군가 있으면 방 안의 불빛이 복도로 새어 나오는데, 저 멀리서 우리 집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들어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어요. 더 이상 집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처럼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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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던 저는 취업과 동시에 독립을 했습니다. 취업을 했기 때문에 독립을 한 게 아니라, 오로지 독립을 하기 위해 취업을 서둘렀죠.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방만이 저를 반겼고, 저는 그 상황이 진심으로 편하고 만족스러웠어요.

 

그러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저희 남편은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제가 친구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늘 저를 데리러 와주는데요. 이상하게도, 그가 저를 기다리고, 반기고, 안부를 묻는 건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수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나니 더 좋았습니다. 일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요.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에 가족끼리 외식을 한다는 게 참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신랑과는 별일 없는 날에도 굳이 우리만의 의미를 부여해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했죠.

 

집 안의 고요는 제가 선택한 게 아니었어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만든 적막이었죠. 어쩌면 어린 저는 혼자서 조용함을 익히는 법을 먼저 배웠고, 그러면서 가족들에게 마음을 감추는 데 익숙해졌던 걸지도 모르죠. 힘든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버티는 아이로 자라면서 고요함이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렸던 겁니다. 그러다 낯선 소란을 마주치자 벽을 쳐버렸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저에게 남편은 소란의 따뜻함을 알려준 사람이었어요. 집 안에서 누군가와 웃고, 떠들고,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마음 편히 공유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가르쳐 줬습니다. 지금의 일상이 이토록 행복한 걸 보면 저는 처음부터 이런 소란을 원했던 아이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 포근함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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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 저는 믿지 않아요. 사람은 변해요. 저는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어떤 사랑은 사람을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바꿔놓기도 해요. 조용히 혼자 귀가해 스스로 어둠 속을 택하던 저에게 누군가의 "왔어?"라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행복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더욱 확신할 수 있죠. 소란한 가족들 사이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했을 그 일상이, 저에게 자연스러워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에요.

 

소란 속 고요. 이 말이 지금의 제 일상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단어인 것 같아요. 겉으론 북적이고 분주하지만, 그 안에서 저는 조용하고 단단한 평화를 느낍니다. 신랑이 깔깔대는 웃음소리, 부엌에서 나는 설거지 소리,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예능 프로그램 배경음, 북적북적 소란한 이 모든 일상 속 소음들이 이토록 평온할 수 있네요. 고요가 꼭 적막해야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소중한 사람과 함께 북적이는 순간에도, 마음 깊은 곳은 누구보다 잔잔하니까요.

 

웃고 떠드는 이 집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가끔 어린 시절의 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 아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떨까요? 엄청 놀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혼자 있고 싶어 하던 아이가, 이렇게 변했을 거라곤 상상도 못할 거예요.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혼자 있는 게 익숙하다고 해서, 꼭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마음을 나눌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은 지금 네가 느끼는 불편함보다 훨씬 큰 따뜻함을 안겨줄 거라고요. 누구에게나 각자의 '소란'이 필요하다는걸, 그리고 그 속에서도 얼마든지 '고요'하게 숨 쉴 수 있다는 걸 그 어떤 어른도 알려주지 않았으니, 지금의 제가 대신 알려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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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리스의 프로필 이미지

    앨리스

    0
    16 days 전

    우와 민정님 오늘 글도 너무 마음 따뜻해지네요 :) 맞아요. 저도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 바뀐 게 아니라 한번도 드러나지 못했던 심연 깊은 곳에 있던 원래의 나를 꺼내주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 민정님을 볼 때마다 사람의 진심어린 사랑이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서 항상 미소짓게 돼요. 두분 보기 좋어요 :) 오늘도 고요와 소란 안에서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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