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얼마 전, 제 워크숍을 들으신 한 수강생분이 인스타그램으로 긴 메시지를 보내오셨어요. 사회적 기업 대표님이셨는데요. 분명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너무 많은 요구와 부탁 속에서 허덕이기 일쑤라는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함께, 주변의 눈부신 성취를 바라보며 종종 마음이 작아지곤 한다는 진솔한 마음, 그 사이에서 좀처럼 균형을 잡지 못하겠다는 구체적인 고민이 담겨 있었어요. 그 이야기를 읽고 가만히 앉아 답장 편지를 쓰다가 문득, 여러분과도 이 주제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말과 연시 사이의 어딘가에 서 있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졌거든요.
사실 저는 그분의 사연에 답장을 쓰는 데 한두 시간을 넘게 썼던 것 같아요. 제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참 많은 순간들과 닮아 있었거든요. 제가 이렇게 매거진을 만들고, 작가가 되어 마음의 이야기를 전하게 된 그 시작점이자 가장 큰 뿌리인 ‘청춘상담소’ NGO 활동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분명 누군가에게 손 내밀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는 아주 개인적인 삶의 경험이 세상 곳곳의 필요와 맞닿아 정말 보람된 활동으로 탈바꿈했었지만요. 10년 넘게 이어오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버틸 수 없이 괴로운 순간들도 꽤 많았습니다.
비영리 조직의 특성상 성장의 한계는 분명했고, 도와주는 고마운 동료들이 있었지만 모두 자원봉사자이고 비상 근자인지라 결국 매일매일을 붙잡고 꾸려가는 건 온전히 저 혼자였으니까요. 주변을 보면 창업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기업을 매각해 40살이 채 되기도 전에 200억, 300억에 이르는 막대한 자산을 가지게 된 동창들도 있었고, 사옥을 올려 자산이 몇 배로 뛴 대표들도 있었어요. 분명 20년 전에는 함께 라면 끓여 먹고 하하 호호 웃던 친구들이었는데, 나와는 아주 다른 경로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몇 번이나 위축되곤 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좋은 일을 한다고 많은 분들이 격려해 주셔도 그 말이 하루하루의 고민과 책임을 덜어주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제 대학 시절 멘토님이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수백억 매출을 올리는 대표님들도 대단하지만, 삶을 포기하려던 한 사람을 다시 살게 만든다는 건 가치로 치면 얼마일까요? 재열 작가, 계산 한번 해볼래요?”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저는 지나온 순간 만나온 수많은 ‘씨앗’들이 떠올랐어요. 은둔 청년, 자립준비 청년, 공황과 우울, 번아웃을 겪는 분들까지... 숫자로 세거나 자산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그분들과 함께 버티고 지나온 시간 속에서 적어도 열 명 정도는“저 사실, 그때 죽으려고 했었어요. 재열 님 만나기 직전에요.”라고 말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 통장에 바로 찍히지 않을 뿐, 분명 세상 어딘가에 남아 있는 가치들. 그걸 인식하고 나니 더 이상 제가 작아지지 않더라고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참 존귀한 일이구나.’ ‘나는 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피부에 와닿듯 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깨달음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존귀한 일을 하는 나는
대체 왜 나 자신을 존귀하게 대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귀한 손님을 모실 때 왜 ‘의전’에 민감하잖아요. 높으신 분, 귀하신 분, 어렵게 모신 분일수록 어떻게 잘 대접해야 할지 한참 고민하며 시간을 씁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나 자신에게 그런 ‘의전’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아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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