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긴 겨울을 지나, 햇빛의 온도가 조금씩 달라짐을 느낍니다. 웅크리고 있던 마음도 천천히 제 자리를 찾는 것 같아요. 이런 계절에는 자연스럽게 상념이 많아지고는 합니다. 오래 마음속에 두었던 장면들이나 켜켜이 쌓인 생각의 형태를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물이 얼어붙으면 팽창하듯이 내 안의 그것들도 겨우내 부풀려졌을지도 모르지요. 바라봄의 시간이 얼음을 녹여 나를 분명히 보여주기를 바라며 구독자님에게도 차갑고 딱딱했던 것들이 말랑하고 따뜻해지는 시간이 오고 있기를 바랍니다.
안단테의 그럴 수도 있는 생각 일기
꿈이라 부르는 것들
꿈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떠올려 봅니다. 듣자마자 떠오르는 것은 ‘장래희망’이라는 의미입니다. 보통 ‘꿈이 뭐니?’를 묻고는 하지요. 그리고 자는 동안 일어나는 현상으로서의 꿈이 뒤따라 생각납니다. 마지막으로는 희망을 꺾는 느낌으로도 한 가지 떠오르더군요. ‘꿈 깨!’할 때의 그 꿈 말입니다.또 다른 무엇이 있으려나 싶은 마음에 어학사전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결국 세 가지가 나오더라고요. 다만 사전적인 의미가 가지는 건조함이 있었습니다.
[꿈]
-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묘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사전의 정의라면 잠잘 때 꾸는 꿈도 완전한 환상은 아닙니다. 그리고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없는 헛된 기대라니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복잡하다 한들 사람의 표현, 그리고 그 표현을 만들어 낸 감정의 미묘함보다 복잡할 수는 없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넌 꿈이 뭐니?”
자라는 동안 수없이 듣는 이 질문은 “커서 뭐 될래?”라고 읽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우리는 대부분 그 질문에 대한 ‘직업’을 찾고는 합니다. 연예인이라거나 개발자, 디자이너, 의사와 같은 직업들이요.
제 꿈은 ( )입니다.
기억하는 한 직업이 꿈이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써 냈던 또렷한 ‘장래희망’은 ‘빵집 주인의 아내’였습니다. 빵집 주인도 아니고 아내라니요...! 빵을 좋아해서 빵집에 살면 실컷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빵집을 차릴 생각은 못 하고 빵집에 ‘시집’을 가겠다니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가족의 가치관을 유추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그다음 꿈은 무려 ‘현모양처’였습니다. 심지어 그 꿈은 꽤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건 엄마와 할머니의 영향이 컸는데요, 엄마는 짧지 않은 시간을 실질적 가장으로 사느라 늘 바빴습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의 매일 할머니 댁을 오갔는데요, 어린 마음에는 언제나 따뜻한 집에서 간식을 만들어두고 기다리시는 할머니가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또 다른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예쁘고 멋진 여자가 되는 것이었어요. 재미있는 것은 이 꿈 역시 할머니에 대한 저의 시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곱고 단아한 ‘현모양처’였던 할머니에게서 ‘멋짐’을 찾을 수 없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만큼 예쁜 여자가 되고 싶은 동시네 엄마만큼 멋진 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예쁜데 멋없는 여자도 싫었고, 멋지지만 예쁘지 않은 여자도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말하는 ‘예쁨’과 ‘여자’라는 단어는 첫째 외모에 대한 기준이 아니며 둘째, 성차별적이거나 성역할을 구분하려는 표현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것은 지금도 유효한 제 오랜 꿈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꾸고 있는 꿈이 있습니다. 인생의 변곡점이 될만한 사건을 지나며 갖게 된 꿈은 ‘좋은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혹은 꿈을 이루었다고 해서 삶이 멈추지는 않습니다. 스물의 곁에도 서른의 곁에도 좋은 어른은 필요합니다. 마흔 그리고 쉰이나 예순이 된다 해도 좋은 어른이 주는 안정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 삶의 모든 생의 위치에서 좋은 어른이 되는 것. 그래서 마주치는 누군가에게 다만 한순간이라도 위로와 안정이 될 수 있다면 그 삶은 참 아름답고 행복한 삶일 것 같거든요.
답을 요구하지 않는, 긴 대화의 여정
우리 사회는 왜 개인의 꿈을 묻는 걸까요? 정말 개인이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 궁금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이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파악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겠지요.
꿈이 무엇인지를 묻는 그 질문 자체는 본질적으로는 철학적이면서도 다정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와 상황은 질문에 의도나 바람을 담아 함의를 만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겠지만 일면 씁쓸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꿈을 묻는 시기와 방식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통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많이 하는 질문이지요. 빠르게 습득하고 사고하며 팽창하듯 자라는 유년기에 이루고자 하는 이상을 묻고 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사회와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일차원적 표면’에 대한 질문으로 끝나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꿈을 묻는 행위에 대한 불편함. 최소한 저는 정말로 내 꿈이 궁금한 건지, 왜 궁금해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 질문에 직업으로 답을 할 수 없었으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늘 답답하고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말하는 꿈의 진짜 이유와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하는 존재가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 여정은 동시에 어른인 나를 키우는 시간이 될 테지요. 백 년을 살아보니 오십 정도까지는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찾는 것으로 충분하더라는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습니다.
직업이나 목표가 아닌 방향과 지향, 희망과 이상을 말할 수 있는 질문이 되기를.
다 큰 어른들의 대화에도 꿈에 대한 이야기가 더 풍성해질 수 있기를.
그래서 꿈을 묻는다는 것이 함께 사유하는 여정의 시작이 되기를.
긴 여정에서 중용이 말하는 정성스러움을 지켜나간다면 매일이 의미를 갖는 오늘이 될 수 있고, 그 매일이 켜켜이 쌓인다면 우리 각자의 꿈이 무엇이든 결국 닿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치며
산티아고를 걷는 동안 오기 전까지 애써 준비했던 일들이 정리되고, 놓고 있었지만 저절로 해결되는 일들도 생기더라는 한 순례자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정성스럽게 하되 욕심은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키워가는 시간으로, 여정의 절반 정도에 닿은 저는 그 방향을 미세조정하며 걸어보려고 합니다.

그 사이 또 무엇이든 어떻게든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오늘의 저는 좋은 어른을 꿈꾸며 다가오는 순간에 정성을 들이는 것으로 그 꿈을 향해 갑니다. 느리지만 분명하고 아름다운, 꿈결같은 삶이기를 바라면서요.
구독자님의 하루와 여정이 언제나 안녕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좋은 꿈 꾸세요.
brand story
월간 마음건강 by 오프먼트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 마음건강 뉴스레터와 매거진은 늘 애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과 쉼의 밸런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연구하는 마음건강 예방 브랜드 오프먼트 offment에서 만듭니다. 아래의 홈페이지 버튼을 눌러, 본 아티클 외에도 교육, 워크숍, 공공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오프먼트의 프로젝트를 만나보세요. 그리고 뉴스레터와는 또 다른 깊이가 있는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 버전도 만나보세요. 조금 더 긴 호흡과 깊이 있는 인사이트가 담긴 매거진 전용 아티클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