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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형 가족 아닌 단수형 가족

4월 10일 :: off레터

2026.04.10 | 조회 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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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장재열

오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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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 거실 한쪽에는 작은 턴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어요. 저는 연초에 LP판 딱 1장씩을 사곤 하는데요. 올 한 해는 이 음악처럼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한 해를 바쁘게 살다 보면 가끔 내가 나답게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을 때, 또는 계획했던 방향으로 너무 흘러가지 않아서 마음이 심란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저는 그 올해의 LP판을 꺼내서 틀어두곤 합니다.

뭐랄까, 그냥 유튜브 뮤직이랑 확실히 느낌이 다른게, 백색소음이 섞이잖아요. LP판은 아무래도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섞여 드니까요. 이상하게 그 소리가 좋을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 올해도 바로 지금이 저런 작은 잡음 같은 시기이고 앞으로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마음을 다독이곤 합니다.

이렇게 매해를 상징하는 음악이 있듯, 10 20 30대 이런 식으로 10년의 세월과 닮아 있는 곡들도 있어요. 다만 이건 시작할 때가 아니라 그 시기가 지난 뒤에 '그때를 상징하는, 또는 그때 들었던 음악 중에 가장 그때와 닮아 있는 노래는 무엇이었을까?' 뒤돌아서 바라보곤 해요. 39살에 30대의 노래를 골라보는 식이죠. 여러분에게도 그런 노래가 있나요?

오늘은 저의 20, 30, 그리고 지금의 40대를 살아가면서 제 마음을 가장 고스란히 담았던 세 곡의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 음악들을 따라가다 보면 쉼 없이 흔들리고 변해온 저의 모습, 그리고 저와 제 가족들이 어떻게 달라지고 또 멀어지고 이어져 왔는지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기도 하더라고요.

 


 

첫 번째로 저의 20대를 상징하는 노래는 이승환 님이 부른 '가족'이라는 노래였어요. 근데 슈퍼스타K에서 홍대광 씨가 불렀던 버전요. 이승환 님의 버전을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슈스케 무대를 보면서 '이 노래가 이렇게까지 좋은 곡이었다고?' 다시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사실 긴장해서 삑사리도 많은데, 홍대광 씨의 목소리 자체도 너무 잘 어울리기도 했었고요. 그 집 어머니와 아들의 절절한 사연을 알고 그 무대를 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10대 때 들었던 '가족'과는 달리 그 가사가 당시 제 상황과 너무 겹쳐 있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사실 그 무렵에 저희 아버지는 회사로부터 명예퇴직을 강요받고 계셨대요. 화장실 앞에 책상을 두는 게 저는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막상 저희 아버지가 그러셨더라고요. 그리고 창고 같은 방에다가 책상을 옮겨서 업무는 안 주고 독후감을 쓰라면서 책을 주기도 했대요. 그 모멸감을 가족들한테는 비밀로 한 채 매일 출근길을 나섰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게 됐죠.

 

저도 저대로 가족들에게 숨기는 것들이 참 많았어요. 당시에 취업에 번번이 낙방하고 앞길이 캄캄했거든요. 하지만 전화를 받으면 늘 "어우, 너무 잘되고 있다", "내일 면접 보러 갈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곤 했죠. 학창 시절에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부모님한테 떼를 쓰면서 삼수씩이나 했으면서, 결국은 그 미술 전공을 살리지도 않고 심지어 취업에는 불리한 소위 '기타 전공'으로 분류돼서 서류 하나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이 부모님께 많이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부모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몰랐고요. 노래 가사처럼 부모님 마음에 드는 자식이 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습니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오가며 나고 자란 탓에 "사랑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너무 어색했어요. 표현도 못 하고 털어놓지도 못하는 그 시간들이 노래 속의 "가족이어도 할 수 없는 얘기", 그 한 줄과 참 닮아있었죠.

 


 

 

시간이 흘러서 30대가 되었을 때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들어왔던 노래는 나카시마 미카가 부른 '내가 죽으려고 했던 것은'이라는 곡이었어요. 우울증이랑 공황장애를 겪고 난 직후쯤이었던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가사를 궁금해하시더라고요. '내가 죽으려고 했던 이유가 뭘까?' 근데 그게 굉장히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신발 끈이 풀려서, 부둣가에 갈매기가 울고 있어서, 꽃이 피어서 죽고 싶다고 하거든요. ? 이게 왜 죽을 이유지?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의 병을 깊게 앓아본 분들, 또는 그런 가족이 곁에 있으셨던 분들은 분명 공감할 겁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지만, 마음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터널이 안 끝날 거야'라는 신호처럼 보이거든요. 고작 신발 끈 하나를 다시 묶을 줄 몰라서 자꾸 풀어져 버리는 모습을 보면, '지난 세월 동안 내가 시도했던 수많은 노력들도 이렇게 수포로 돌아갔고, 간단한 끈 하나도 묶지 못하는 내가 앞으로 무언가를 한들 또다시 풀려버릴 운동화 끈처럼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사실 가족들에게 말하기는 참 어렵죠. 털어놓는다고 도움을 줄지, 타박을 할지, 수치스러워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 당시에 저에게는 그 노래, 그리고 정확히는 그 노래가 업로드된 유튜브 영상의 댓글 창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 주었어요. 그 노래에 정말 많은 우울증 경험자들이 댓글을 남겼거든요. 지금도 남기고 있습니다. 10년이 넘은 영상인데 "2026년에 또 와서 남깁니다"라고 얘기를 해요. 한국인들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등 정말 아시아권 전역의 사람들이 댓글을 남깁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들어가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에 유독 모였냐면, 나카시마 미카가 당시에 청각 장애를 앓아서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로 무대 위에서 절규하듯이 부르는 영상이거든요. 아픔을 겪고 있는 가수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공감하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고,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와서 "나도 여기에 공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 가사에 공감하는 당신, 나만 이렇게 예민한가? 나만 이렇게 나약해졌나라고 자책하지 마세요"라고 수많은 메시지들을 남기고 갑니다. 그리고 "10년 전에 제가 이곳에 와서 죽고 싶다고 남겼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너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댓글을 본 당신이 깊은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당신에게도 터널 끝에 서 있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면, 그냥 지금의 제 댓글을 보시면서 막연하게라도 터널 끝이 있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라는 희망의 글을 남기는 따뜻한 사람들도 있고요. 그 랜선 가족들이 저의 30대를 무사히 지탱해 주었기에, 어느덧 저는 40대가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10년의 노래를 그 시기가 다 끝난 뒤에 고르기 때문에, 40대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게 지금 정해져 있진 않아요. 저는 고작 마흔두 살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유력할 것 같은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매일 아침 알람 소리로 설정해둔 김광진의 '행복을 주는 노래'. 이 노래는 앞의 노래들이랑 분위기가 너무 달라요. 가사도 단순하거든요. "이 노래를 들으면 행복해져요. 아니면 말고요. 근데 아마 듣다 보면 행복해질 거예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오늘도 행복하시고 영원히 행복하세요"라는 단순하고도 다정한 가사가 동요 느낌으로 계속 반복이 됩니다. 그리고 이 노래 뮤직비디오에는요, 김광진 씨가 어린 아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아들 축구 교실에 경기 보러 가고,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서 엉엉 우는 아이를 달래주고... 마치 그 집의 홈 비디오를 우리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근데 그 장면들과 함께 "행복하세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영원히"라는 가사를 듣고 있으면 ', 이 노래 김광진 씨가 아들을 위해서, 그리고 아들 또래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었구나'라는 느낌이 와요. 아직은 천진난만하지만, 앞으로 세상에서 무수한 슬픔과 좌절을 맞이할 내 아이를 위한 아빠의 마음이 전해진다고나 할까요?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부모님이라고 달랐을까?'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하는 머쓱한 아들로 자라났듯이 우리 부모님도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해주는 머쓱한 부모였을 뿐, 김광진 씨의 저 노래 가사처럼 '오늘도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영원히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늘 존재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부모님에게서 벗어나 또 다른 의미로 '가족'이란 단어를 재정의하게 만들어준 노래이기도 해요. 사실 저는 형제자매가 모두 결혼을 했지만 현재 미혼이고, 앞으로도 미혼일 것 같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가끔씩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저에게는 더 이상 내 가족이라는 그룹은 없겠구나. 그럼 그땐 난 오롯이 혼자일까? 내 동생은 그녀의 남편과 그녀의 아이가 있을 테니까.' 이런 생각들로 두려웠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매일 아침 이 노래를 제 자신에게 들려주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어가더라고요. '가족이라는 것은 반드시 복수형일 필요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 자신에게 다정하게 행복을 빌어주면서, 어쩌면 나는 나 자신과 단수형의 가족이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요.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드네요. 20대의 노래, 30대의 노래, 그리고 40대의 노래가 어쩌면 각기 떨어진 별개의 곡들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제 삶 안에서는 적어도 하나로 연결되어 '장재열'이란 사람의 삶이라는 악보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한 악기 파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하모니의 다음 음표가 될 50대의 노래는 아직 감히 상상도 되지 않지만, 어떤 가사일지 이제는 두렵기보다는 기분 좋게 기대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50대가 돼보면 알겠죠? 그동안 남은 40대는 제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노래를 더 많이 들려주면서 뚜벅뚜벅 걸어가 봐야겠어요.

 

여러분의 삶을 지금 지탱하고 있는 오늘의 노래, 올해의 노래, 또는 지난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그때 그 시절의 노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노래는 여러분을 어떻게 살게 하고 지탱해 주었나요? 문득 궁금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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