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구독자님은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보셨나요? 한국 웹툰 유미의 세포들과도 꽤 닮아 있지요. 주인공 라일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기쁨, 분노, 슬픔, 소심, 까칠, 불안, 권태 등 다양한 감정이 의인화되어 존재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 친구들 중 누가 메인 핸들을 잡냐에 따라 주인공이 표출하는 감정이나 성격이 바뀌지요. 사람의 감정변화를 아주 재치 있게 표현한 작품을 보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나누었던 대화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야, 너는 뭐가 메인 감정인거 같아?"
"나? 나는 기쁨이? 너는 불안이 아니야? ㅋㅋㅋ"
구독자님은 어떠세요? 마음속 여러 가지 감정 중에 가장 빈번하게 리더 역할을 하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저는 한동안 불안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요. 최근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 정서 가장 밑바탕에 은은하게 깔려있는 기본 감정은 슬픔이더라고요. 그 사실을 알게 된 계기는 별다른 일이 아니었어요. 문득 아무런 사건도, 별다른 일도 없는 텅 빈 시간에 내가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지요. 그럴 때마다 제가 엉엉 운다는 뜻은 아니고요. 노스탤지어라고 할까요? 애수의 감정을 자주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특히 노을을 바라보면서요.
텀벙.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제가 다섯 살 되던 어느 여름 저녁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일 거에요. 사고로 남동생을 떠나보낸 날이거든요. 저는 다섯 살, 남동생은 두 살이었지요. 당시 저희집은 다른 집보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어요. 아직 보일러가 집에 없었지요. 샤워를 하려면 물을 끓인 후, 찬물과 섞어서 씻어야 했어요. 사나흘에 한 번 정도 샤워를 했던 것 같고, 그날이 바로 제대로 씻는 날이었지요. 엄마는 부엌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 화장실에 두고 식사를 준비하러 갔고 저는 고등학생이던 막내 이모가 머리를 감겨주는 대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이모는 제 머리를 열심히 감고 있었고요. 안방에서 곤히 자던 두 살배기 아기가 낮잠에서 깨어나 화장실 쪽으로 기어 오고 있다는 걸 아무도 보지 못한 채로요.
모두가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있는 그 짧은 찰나, 아기는 엄마가 끓여둔 물 대야에 풍덩 빠지고 말았어요. 화장실 바닥이 거실 바닥보다 30센티 정도 낮았거든요. 마치 반지하처럼요. 첨벙 소리와 함께 1초 정도 지났을까. 아기의 울음소리가 집안 가득 퍼졌어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저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지요. 다만 엄마가 혼비백산해서 옥색 담요로 아기를 감싸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장면과, 달려가는 엄마의 모습 너머로 유난히 빨간 노을이 지던 것만은 마흔 살이 된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나요.
다섯 살에 '사별'을 경험한 저에게 슬픔과 그리움이 합쳐진 애수라는 감정은 아마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지금도 유달리 빨간 노을을 보면 묘한 마음이 들어요. 너무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또 그날의 장면들이 떠오르지요. 어린 시절에는 그래서 노을 보는 것을 무척 싫어했어요. 애써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슬픔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도 자꾸만 부정하며 명랑한 척을 했지요. 저는 가난하다는 사실과 슬픔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숨기고 싶어 했어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제일모직이라는 패션회사를 들어갔을 때에도 "쟤는 집이 사나보다"라는 말을 듣는 게 썩 나쁘지 않았어요. 사실은 어느 정도 노린 면도 있었지요. 사람들의 시선에서 왠지 미술 전공자, 패션계 종사자는 중산층 이상의 자녀일 것만 같은 인식은 여전하니까요. 티 없이 사랑받고 자란 척, 넉넉한 가정에서 자란 척, 별로 삶의 고민 없이 살아온 척하며 살아가고 싶었어요. 마치 기쁨이가 감정의 중심축인 것처럼 연기를 했지요.
하지만 그런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작년 가을 즈음, 아마 <마이크로 리추얼 : 사소한 것들의 힘>을 한참 집필 중이던 시기였을 거에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파트였는데 '더 이상 남동생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무리 기억해 보려 해도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슬픔과 기억을 애써 잊으려 노력하다 보니 결국 정말로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 거죠. 그런데 그토록 잊으려 애쓰던 그 애를 막상 진짜 잊어버리고 나니, 이상하게도 텅 빈 기분이 들었어요. 한참을 생각했어요. 왜일까. 오히려 더 헛헛해진 이 마음은 뭘까... 하고요.
한참 지나간 세월을 되짚어보고, 들여다보며 세 시간쯤 지났을까. 제가 내린 결론은 '슬픔'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는 거에요. 제 마음 한켠에는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았다면 아기가 화장실로 기어 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살릴 수 있었을까' 라는 마음이 늘 있었더라고요. 그렇기에 청소년기에는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옅은 죄책감이 있었어요. 엄마아빠에게 아들 두 명 몫의 기쁨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그것은 때로는 스스로 만들어낸 압박감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또래보다 뛰어난 성취를 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기도 했어요. 성인이 되어서는 유독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지요. 동물 학대, 어린이 병동, 보육원 등등 제 눈길이 오래 머무르는 것들은 언제나 작고 약한 것들이었어요. 그리고 세월이 더 지나, 저는 이 슬픔을 기반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됐지요. 결국 슬픔이라는 감정은 나의 삶을 형성하고, 성장시키고, 때로는 제일 귀한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는 데까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지요. 그래서일까요? 요즈음은 노을을 보는 것도, 그 붉은 빛 사이로 남동생의 흐릿한 얼굴이 떠오르는 것도 피하지 않게 되었어요. 슬픔이 내게 준 것은 결코 아픔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거든요.
구독자님에게도 피하고 외면해 왔던 감정이 있나요? 자신의 소심함일 수도, 까칠함일 수도,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어른이니까 이래선 안 돼, 이것은 부정적 감정이니까 자제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어왔던 감정 말이에요. 오늘은 잠시 그 감정을 꺼내어 곰곰이 바라보면 어떨까요. 모든 고정관념이나 사회적 시선들을 잠시 꺼두고, 그 감정이 내게 준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정말로 모두 나쁜 것들이었는지 가만히 응시해 보는 겁니다. 분명, 생각지 못한 '내 감정이 준 선물들'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이번주의 추천
::옥상달빛 - 그대로도 아름다운 너에게
글을 쓰는 내내 이 노래가 떠올랐어요. 뮤직비디오 속에 나오는 모든 모습들을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그 누구도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무엇도 바꾸지 않아도 괜찮음을 여러분께도 말하고 싶었어요. 엄마 아빠의 뱃 속에 있을 때 부터 우리는 완전했다니, 정말 믿기지 않지만 믿고 싶은 한 마디 아닐까요? 그대로도 아름다운 우리 모두, 우리의 감정들을 위해 이 노래를 전합니다.
월간 마음건강 소식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 vol2. <나다움에 관하여> 출간
벌써 10월 한 달도 훌쩍 지나갔네요, 제2호 매거진의 제목은 <나다움에 관하여>라고 이름 붙여 봤습니다. 월간 마음 건강을 창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요즘은 영상밖에 안 보는 시대인데 유튜브 방송을 해야지." "글을 점점 안 읽는 시대에 역행하는 선택이지 않을까?" 저도 흔들렸지요. 아시는 분들도 꽤 있겠지만 저는 유튜버 1세대로서 2015년부터 이미 인기 크리에이터였던 과거가 있었던 지라, 다들 '영상을 찍어라' '쇼츠를 해라' '잡지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많이들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저는 여러분과 '글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분명 글은 글만이 가진 힘이 있고, 그중에서도 잡지라는 '여럿이 쓰는 글 모음집'이 가진 힘도 있다는 걸 분명히 알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글로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가장 행복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인생의 많은 선택지 앞에서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결론 내리곤 했나요? 그 각각의 기준들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모두에게 각기 다른 선택의 기준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결국, 가장 좋은 선택은 나다운 선택"이라고요. 이번 달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을 읽는 시간은, 조금 더 나다움에 대해 생각해 보며 음미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스 24, 알라딘 등에서 구입하실 수 있고요. 밀리의 서재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brand story
장재열의 월간 마음건강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레터는 매거진, 워크숍, 컨설팅을 통해 스스로 온전히 멈출 수 있는 마음의 자생력을 기르는 브랜드 오프먼트 offment의 뉴스레터입니다. 뉴스레터에 소개된 다양한 가치를 다양한 매개체로 개발하고, 전달합니다. 더 많은 정보, 문의 사항은 아래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세요.
댓글 1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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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디
저는 제가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최근에 알게되었어요. 어릴 때 놀이터에서는 잘 놀지 않던 저에게 엄마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신발에 흙이 들어가는게 싫어서 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예민한 아이어서 그랬던 거더라고요. 사실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예민한 사람이라는 어감이 좋게 느껴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최근에 검안을 받다가 예민하고 긴장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꽤 설렜어요.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장재열의 오프먼트
혜디님의 예민함은 분명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에 영향을 주었을 거에요. 그런 혜디님이라서, 할 수 있는 생각과 말들이 분명 있을거라는 걸 저도 믿고 있답니다. 진심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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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지난주 토요일부터 기다리고 있던 레터라 오늘은 퇴근길에 차에서 레터를 열었어요 그리곤....... 마음이 먹먹해져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숨을 깊에 들이쉬기를 여러번 반복했네요 정말 꺼내기 쉽지 않았을 너무 소중하고 아픈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이제는.. 조금은.. 마음의 상처가 아물었기에 나눠주신거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내가 큰 슬픔을 느끼는거 조차 재열작가님에게 예의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가다듬어봅니다 재열작가님의 슬픔이 이제 더이상 아픔의 슬픔이 아니기에 지금 모습이 더 빛이 나는게 아닐까요? 이제는 재열작가님의 마음속 리더 자리를 다른 감정들에게도 골고루 나눠주시를 바래봅니다 10월동안 아프셨다고 했는데 이제 10월도 다 지나가네요~! 11월은 아프지마시고 더더더 행복한 한달되시길 제가 응원합니다😚
장재열의 오프먼트
그럼요! 지금 제겐 동생이 슬픔이라기보다 하나의 보석이 되어서 제 마음 안에 있은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 아이 덕에 이렇게 저는 마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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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댄서
글을읽고 제 안에 숨겨져있던 슬픔이 올라왔어요. 본인의 이야기를 한다는게 쉽지않은데 이렇게 용기내서 이야기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러면서 저또한 내면에 숨겨진 제 상처들을 다시 돌이켜보는 계기를 갖게되었습니다. 죄책감 안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아무 잘못도 없으니깐요. 솔직한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고생하느라 그동안 애쓰셨어요
장재열의 오프먼트
맞아요. 지금은 죄책감 보다는 아스라히 그리움만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꺼낼 수 있는 건 아마 슬픔에서 졸업을 해서일거란 생각이 저도 문득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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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는 프로도
지금까지 저도 제 메인 감정은 불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재열님의 글을 보고 슬픔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ㅜㅜ가 항상 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이모티콘이라고 느끼고 있었다는 것도 지금 깨달았어요. 어째 지금까지 몰랐을까 싶네요. 알고나니 안아주고 싶은 슬픔이랍니다. 덕분에 편안한 밤입니다 :)
장재열의 오프먼트
ㅎㅎ 알고나니 안아주고싶은 슬픔. 참 좋은 알아차림이네요. 제가 레터를 쓰고 싶었던, 여러분이 느껴주셨으면 하는 바로 그 감정을 프로도님이 느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전해진 것 같네요 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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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하
저도 슬픔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상처를 지울 수는 없는 것 같더라구요 재열님처럼 슬픔의 다른 의미는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장재열의 오프먼트
발견하려 애쓰지 않아도, 어느날 문득 '내 슬픔도 이유 있고 역할이 있었음을' 깨닫는 날이 오실거에요. 분명 그러면 슬픔도 조금은 감사히 품어줄 수 있더라고요. 진심으로 그런 날 오시길 기도할게요 오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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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저의 외면은 기쁨이와 예민이이고, 내면은 슬픔이네요. 글을 읽어보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남들한테는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즐거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요. 살아온 생활환경을 돌이켜보았을 때 아주 순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았기에 잠식되어 있는 슬픔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인사이드아웃의 장면처럼 어쩌면 기쁨이가 슬픔이는 지금 필요하지 않다며 계속 외면했던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인사이드아웃 1,2를 모두 보면서 둘다 눈물을 흘리며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이제 내면의 슬픔이한테 나와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ps. 항상 음악선곡을 참 잘하시네요. 마치 장DJ같으셔요~ 항상 노래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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졔
솔직한 레터에 마음이 울컥합니다. 어린시절 겪은 커다란 슬픔이 결국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나아가 타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기반이 된 여정을 솔직하게 들려주신 용기가 참 대단하세요. 깊이 있는 내용에 답변이 쉽게 떠오르지 않고, 생각이 많아지는 레터입니다. 저의 메인 감정은 아직 잘 모르겠네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불안감, 호기심, 자유의지, 서글픔 등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그리고 양가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문뜩 11살때 느꼈던 생명에 대한 죄책감도 떠오릅니다. 죄책감 이전에 슬픔이 먼저 있었구나, 그때 꽤 슬펐었구나라고 성인이 된 지금 깨닫는 것도 참 아이러니합니다. 내가 외면하고 싶은 감정이 가져오는 아픔과 더불어 선물을 온전히 함께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감정 역시 나의 소중한 부분으로 여겨질 것 같네요. 위안과 울림을 주는 레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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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
아...담담히 말씀해주시는 재열님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옵니다. 그 자리에 계셨던 재열님, 그리고 어머님의 아픔은 잊을 수는 없겠지만 아픈 자리에 새 살이 돋아있길 바랄게요. 저는 제 깊은 감정을 꺼내는걸 두려워해서, 상담치료를 한 번 해봤는데 두시간동안 빙빙 다른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온 적이 있었거든요. 오늘 재열님의 글을 보면서 밖에서는 대문자 E의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저 또한 저를 그렇게 생각했지만, 안에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슬픔들이 있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조금 커졌으니 덮어놓았던 제 감정을 살짝 들춰보고 바람도 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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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캔두잇
제 메인 감정은 ‘무기력함’이에요. 이 기력없는 상태는 ‘우울감’과 연결되어 있어요. 저는 밖에선 상당히 밝고 잘 웃고 농담도 잘하고 분위기도 잘 띄우지만 혼자 있을땐 되게 어두워지는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릴적 부터 저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활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동경하곤 했었어요. 그런 사람을 늘 그리며 20대 내내 내외적으로 노력했더니 실제로 어느 순간 그런 사람이 되어있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활기가 넘치는 이 모습또한 진정한 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말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건강한 에너지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려는 저를 발견하곤해요. 덕분에 남들이 보기엔 자기관리를 참 잘하는 사람으로 비춰지지만 저 스스로는 하루에 수많은 루틴으로 일상이 빼곡히 채워진 사람이기도 해요. 피곤할 때도 있어요. 스스로에게 완벽하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역으로 저는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사람의 ’무기력’한 감정이 갑자기 전이되어 부정적인 느낌이 들 때 상당히 질색하곤 해요. 얼른 그 자리를 뜨고 싶어하죠. 그 상대방이 내가 기필코 쌓아올린 이 상태를 무너뜨리는 것 같다고 느껴요. 과거 우울하고 초라했던 나를 자꾸만 환기시키거든요. (상대방의 숨겨진 감정을 잘 읽는 편이어서 더 그런것 같아요) 아무튼 ! 뉴스레터 덕분에 제가 숨기고 싶어하던 메인 감정에 대해서 이렇게 들여다보고 용기내어 글도 써보고 일주일 동안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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