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날씨와 관련된 안부를 묻는 인사 중 최근에 살면서 처음 들었던 표현이 있습니다. ‘극악무도한 날씨에 건강하신가요?’라는 문장인데요, 그 의미가 그대로 공감될 만큼 참 어려운 날씨네요.
올 여름만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계절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날들입니다. 타들어가는 볕과 숨 막히는 기온, 사우나 같은 습도는 모두를 예민하게 하고야 마니까요. 저의 여름이 동글동글하기를 바라고 있는데요, 구독자님도 이 극악무도한 날씨에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단테의 그럴 수도 있는 생각 일기
사랑받고 싶은 마음
아이건 어른이건 상관없이 우리는 대부분 사랑을 원합니다. 꼭 누군가에게 대단한 사랑을 받는게 아니더라도 감정을 주고받는 인간관계에서 미움보다 사랑을 원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본능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도 놀라울 만큼 저는 어릴 적의 기억이 매우 적습니다. 언제부터 기억하지 못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20대에 기억났던 유년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기억나지 않는 것이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갓 성인이 된 시기에는 스스로도 종종 놀라웠어요.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기억 보관소보다 용량이 되게 작거나 보존기한이 짧은 건가? 생각하거나 기억하기 싫은가 보지!라고 말하며 지냈습니다.
몇 개 없는 어릴 적의 기억은 대부분 어떤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에피소드로 떠오르는 것들은 ‘네가 그때 그랬었어’라는 주변의 이야기들이 모여서 구성된 느낌이라서 스스로도 제 일이었다는 신뢰가 적은 편입니다. 물론, 제가 기억하는 장면에도 왜곡은 있겠지만요.
네 살의 장면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마늘을 먹지 못합니다. 누군가 '한국 사람이 마늘을 못 먹는데 식생활이 가능해?'라고 묻는다면 정확히는 ‘형태가 보이는 상태의 마늘’을 먹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기억이 있는 동안에는 한 번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어릴 때는 어리니까 안 먹었고 크면서는 먹기 싫어서 피했나 보지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힌트를 얻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정 부모님과 저희 부부가 삼겹살을 먹으러 갔었어요. 상추도 고추도 양파도 마늘도, 채소라고는 손도 대지 않는 저에 대해서 무언가 핑계(?)를 대고 싶었던 건지 아빠가 갑자기 신랑에게 말을 하셨습니다.
‘쟤가 원래 안 저랬는데 크면서 이상해졌어~
쟤가 4살 때부터 마늘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다고~’
세상에. 맙소사. 이게 무슨 말이야...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아니. 어떤 4살이 마늘을, 그것도 ‘맛있게’ 먹는답니까. 아빠의 설명으로는 ‘구운 마늘은 맛있어. 밤 같은 맛이야.’라는 말에도 오빠는 절대 먹지 않았지만 저는 무척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느낌이 오시나요? 4 살배기 어린 마음에도 저는 늘 오빠보다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무리해서라도 말이지요. 찰나의 칭찬과 관심을 받고 싶어서 마늘을 먹었던 것도 무수히 많은 발버둥 중에 하나였을 겁니다. 자아가 강해지면서는 단 한 톨의 마늘도 먹지 않을 만큼, 대체 무엇을 참아가며 몇 톨이나 씹어 삼켰을지…그 아이가 가엾고 애처로웠습니다. 그날 아빠의 이야기는 마늘 이슈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기도 했지만 제가 저를 애틋하게 여기게 되는 단서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열다섯의 장면
일상의 저변에 ‘오빠보다 더 사랑받고 싶어’, ‘다른 사람보다 더 눈에 띄고 싶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유년 시절을 꽤 치열하게, 아등바등 지내며 중학생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애쓴 시간에 대한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어요. 노력으로 해결이 되는 지점까지는 이룰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그곳이 제 욕심만큼은 아니었으니 다시 더 노력하고 경쟁하는 끝없는 반복이었지요. 그렇게 사춘기를 맞이했습니다.
엄마는 학구열이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자라는 동안 엄마도 자랐거든요. 강남 부잣집 아이들의 과외 선생님으로 시작해서 곧 제가 살던 지역의 유명한 학원의 원장이 되어 승승장구 했습니다. 마침 머리도 좋았던 친정 오빠가 국제 수학대회에서 수상할 만큼 잘 따라와 주었으니 ‘공부 잘하는 아이’를 키워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엄마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왔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였는지 제가 중학교에 진학하니 버스 타고 다니는 시간도 아깝다며 차로 등교를 시켜주셨어요. 지금이야 놀랄 일도 아니지만, 30년 전에는 참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해를 지내면서 사춘기가 찾아왔어요. 사춘기 시절 불만이란 수십만 개는 되겠지만, 제 주요 레퍼토리는 ‘엄마는 오빠만 예뻐하고!!!’였습니다.
그날은 하굣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목적지까지 도착하지 않았는데 도로변에 차를 세웠던 장면, 서늘하고 눅눅했던 차 안의 공기, 서로를 바라보지 못 한 채 오갔던 대화가 장면으로 남아있어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데! 엄마는 오빠만 중요하잖아!"
잔뜩 짜증을 토해낸 제 말 뒤에 엄마는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전에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잘 들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는데, 더 아픈 손가락은 있더라.
나는 그게 네 오빠야. 그건 그 아이가 타고난 거니까 그걸 이기겠다고 힘 빼지마."
그 말 다음에도 언성을 높이며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것 같지만 기억에 박힌 문장은 저것뿐입니다. 다만, 넌 네가 타고난 다른 복이 있다는 의미의 말들은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곱씹고 돌이킬 때마다 살아나는 감각은 차갑지만 건조하지 않은, 미안함인지 서글픔인지 모를 것이 적당히 섞여 눅눅했던 차 안 공기입니다.
어쩌면 가장 아프게 놓아야 했던 것
예민하고 여리고 감성적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늘 이기고 싶음에 취해있었으니 겉으로 보면 강하고 세고 야무지고, 못된 구석도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성게처럼 뾰족하게 굴었지만 아마 그때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아니야. 엄마는 널 더 사랑해.’ 거나 ‘똑같이 사랑해.’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 제가 원했던 대답이 돌아왔다면 그 다음은 어땠을까요? 상황은 일단락되었을 수 있겠지만 사춘기를 보내는 내내, 어쩌면 성인이 되고 나서도 무언가 서운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자라는 내내 계속해서 오빠를 꼭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 삼고 지냈겠지요. 엄마와 오빠에게 끝없이 상처를 내는 일이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내는 시간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더 아름다운 방향으로 흘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제 모습과 삶에 온전히 만족하다보니 이보다 좋았을리 없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날의 대화는 분명 아팠습니다. 어쩌면 제 인생에서 가장 아프게 놓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엄마에게 마음을 닫고, 갈구하던 사랑을 포기했습니다. 그 일 이후 일종의 멋대로 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반항과는 다릅니다.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했습니다. 잘 보이고 싶어서 하던 행동을 마음 편하게 그냥 안 하는 것과 동시에요. 물론, 잘 보이고 싶어서 하던 ‘공부’도 안 하기 시작했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나빴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유로웠고 신이 났어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 멋에 겨운 시간을 만끽했습니다. 오래 지나 미화된 면도 있고 다 담을 수 없는 학창 시절의 많은 이야기도 있었겠지요.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것은 포기도 단념도 놓아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기나 단념이 실패나 부정의 느낌이라면 놓아주기는 조금 동그랗고 착하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것이 한 번에, 바로, 혹은 한 가지의 방법으로만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포기로 시작될 수도 있고, 단념으로 배울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에는 받아들이는 폭이 넓어지거나 놓아주기가 쉬워질 수도 있겠지요. 시기마다 상황마다 다를 일입니다.
내가 바랬던 사랑은 포기했지만 엄마에게 잘 보일 생각을 단념하니 내 생각을 말하고 요구하는 일이 전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그렇게 '내가 바라는 엄마'를 놓으면서 '엄마가 바라는 나'도 놓을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엄마의 사랑'을 놓으니 '엄마가 주던 사랑'이 보였습니다. 어쩌면 가장 아프게 놓아야 했던 것이 저를 가장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놓아주는 것이 멋진 일이라면 포기하거나 단념하거나 물러서는 것도 똑같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수많은 선택에는 나만 아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남에게 설명하기 위해 표현을 만들어 가두지 않는 자유로움, 그 정도의 '멋대로 살기'가 우리에게 가능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내가 나라는 이유로 죄가 되고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문제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 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를 지키는 사람’뮤지컬 '레드북',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中
우연히 듣게 된 노래에 놀라서 검색을 했습니다. 창작 뮤지컬 ‘레드북’의 대표 넘버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다분히 파이팅 넘치고 전투적인 극의 소재와 이 곡의 강렬한 클라이맥스보다 한 글자 한 글자 눈에 담았을 때 느낀 감상이 참 좋았습니다. (뮤지컬은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다룹니다.) 세상이 문제투성이라면 그냥 오답으로 남고,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얼룩이라도 그대로이기를 선택해서 나를 지키겠다는 노랫말이 요즘 세상에도 정말 멋있는 태도로 다가왔거든요.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나로서 충분해. 괜찮아. 이젠.'뮤지컬 '레드북',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中
곡 말미의 노랫말은 더 그러했습니다. 나의 마음을 돌보고 건강하게 하는 것에서 무척 중요한 한 가지가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놓아주기에는 그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놓아주기의 대상은 나 자신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실패와 좌절을 마주할 때, 누군가 책임을 묻거나 공격할 때 그 순간이 자신에 대한 놓아주기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면서 책임 지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갈 수 있으니까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 실수를 인정하고 해결하는 일. 잘못을 책임지고 대안을 마련하는 일. 그것들을 반복하며 일종의 발전을 하는 거라면 그 사이에 나 자신에 대한 낮잡음이 들어갈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 지점에서 '사회적인 나'를 놓아주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은 '나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장래희망은 카피바라입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이지만 저의 장래희망은 카피바라입니다. 재작년까지는 유니콘이었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실 수도 있지만, 쓸데없는 상상과 가정을 하는 것은 제가 사랑하는 제 모습 중에 하나입니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제법 진지한 꿈입니다.
유니콘과 카피바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니콘은 신화 속의 동물입니다. 뿔이 있고, 날개도 있지요. 심지어 아름답고 화려하게 그려지기도 합니다. 예전에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름답고 능력 있는, 남들이 보기에 화려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그런 모습이 되고 싶었던 적이 분명 있었습니다. 때로는 압도적인 힘으로 주변을 장악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살짝 감춰서 가지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런 삶을 멈추고 다르게 살고싶어졌을 때는 특별히 비유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혼자 하던 여행에서 만난 카피바라에 매료되었습니다. 제가 다가가도 무신경, 새가 날아와도 무신경, 직원이 물을 뿌려줘도 무신경. 거의 무슨 방어막이 있는 것 같았달까요.
돌아와서 SNS에서 카피바라를 찾아다녔습니다. 곧 알고리즘은 매일 엄청난 카피바라 관련 게시물을 보여주더군요. 제가 만났던 그 모습이 그 아이들의 전반적인 모습이더라고요. 주변의 상황이 어떻든, 다른 생물이 어떻든 그 아이들은 그 순간에 자기가 하고 있는 그 행동을 그저 합니다. 짜증을 내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고 말이지요.
날카로운 세상에서 우리는 종종 반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정함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행위에 대응하거나 판단하기 전에 그 말과 행동과 상황을 우선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지요. 한 템포 느리다는 것은 그 느림 동안 객관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일을 흔들림 없이 지속할 수 있고, 타인에게도 상처를 내지 않으면서 다음 행동을 할 시간을 차분히 벌 수 있는 사람. 그런 모습의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날카롭지 않고 소란하지 않은 노곤한 아우라가 주변까지도 평화롭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요.
유니콘도 카피바라도 둘 다 너무나 이루기 어려운 모습인 것은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상처를 주고받으며, 남 탓도 하다가 자책도 하는 평범한 40대의 여자 사람, 엄마, 배우자, 자녀, 직장인이지요.
그렇지만 세상의 오답이든 맑은 시대에 얼룩이든, 매일 변하게 될 모습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저를 충분히 사랑하며 살아보려고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우여곡절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놓아가며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 돌아보았을 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덕분에 따뜻했고, 덕분에 좋았다고 감사를 전할 수 있는 삶이기를 기도합니다.
마치며
구독자님의 일상도 종종 서로를 받아들이고, 가끔은 가만히 놓아주기도 하는 일들이 반복되겠지요? 그 시간들에 편안한 사랑이 깃들어 있기를 바랍니다.
brand story
월간 마음건강 by 오프먼트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 마음건강 뉴스레터와 매거진은 늘 애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과 쉼의 밸런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연구하는 마음건강 예방 브랜드 오프먼트 offment에서 만듭니다. 아래의 홈페이지 버튼을 눌러, 본 아티클 외에도 교육, 워크숍, 공공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오프먼트의 프로젝트를 만나보세요. 그리고 뉴스레터와는 또 다른 깊이가 있는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 버전도 만나보세요. 조금 더 긴 호흡과 깊이 있는 인사이트가 담긴 매거진 전용 아티클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도로시
오늘의 안단테님 이야기는 마치 단편소설을 읽고온 기분입니다. 안단테님의 어렸을 때부터 현재까지를 빠른 속도로 마치 타임랩스처럼 지나온 기분이랄까요? 계속 공감하면서 읽다가 마지막 카피바라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정답이 없기에 흥미로우면서도 어렵기도 하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만족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해 사는 삶! 생각만해도 즐겁습니다^_^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들로 인해 가치관이 계속 변화하는데 오늘의 변화에 한 스푼의 도움이 되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하반기도 잘 부탁드립니다!
안단테
도로시님, 안녕하세요 :-) 잘 지내고 계시지요? 언제나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시고 그 마음을 전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산다는 것은 늘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가도 너무 어려운 것 같은, 참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크기도 깊이도 모양도 알 길이 없으니 그저 마주치는 순간순간의 삶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며 지내보려고 하니 제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 것도 같습니다. 도로시님, 타는 듯한 더위와 쏟아 붓는 비가 유난스러운 이 여름도 마음과 몸이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9월에 또 인사드릴께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여니
오늘의 저에게 참 힐링되기도 하고 제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했던 따뜻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
안단테
여니님, 안녕하세요:-) 짧지 않은 글을 읽고, 여니님의 감각으로 소화해주셔서 마음을 담아 감사드렵니다. 그럴 수도 있는 생각 일기는 말 그대로 그저 한 사람의 아주 개인적인 생각의 조각들이라서 '과연 독자에게 필요한 글일까? 독자가 원하는 글일까?' 종종 고민하기도 하거든요. 여니님이 전해주신 인사에서 충분한 안정감을 얻고 갑니다. 편안함이 가득한 휴일되시길 바라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