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iling#74 | 이어지는 이야기

오늘도 시덥잖고 시시골골한 『편집인의 말, 말, 말』#3

2022.09.06 | 조회 7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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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링Oiling

독립음악 프로덕션 오소리웍스의 아티스트들이 직접 만드는 인디팝 문예지, 오일링Oiling 입니다. 프로듀서 단편선과 아티스트 천용성, 전복들, 전유동, 후하, 보일, 소음발광, 선과영이 함께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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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오일링은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휴간합니다. 2주 후에 만나요.
편집인의 말

🐮창밖에는 비오고요

몇 달 전 고무 장화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비 올 때 발 젖는 게 싫어서요. 올 여름엔 비가 많이 왔고 그래서 무척이나 보람이 있었지만, 또 너무 보람 있으니까 살짝 그렇더라고요. 사람의 마음이란 역시. 장화도, 발이 보송한 것은 좋은데 양말을 신지 않으면―여름에 목 긴 양말을 신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복숭아 뼈랑 종아리께가 쓸려서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세상에 마냥 좋고 그런 것은 잘 없나 봐요. 이번 추석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휴일도 있고 좋았는데 그 앞에 초대형 태풍이 딱 오지를 않나.

🐮천용성


오늘도 시덥잖고 시시골골한 『편집인의 말, 말, 말』 #3

🐮이어지는 이야기

지난 화, 그러니까 『편집인의 말, 말, 말』 2화에서 말했던 돈까스 집은 한동안 가지 못했습니다. 8월 초부터 쭉 문이 닫힌 상태였거든요. 가게 문에는 "에어컨이 고장나서..."라는 종이가 붙어 있고 아래는 일수 명함이 잔뜩 쌓여있습니다. 역을 갈 때 마다 일부러 그 집 앞을 지나쳐 가는데요. 혹시나 문을 열지 않았을까 해서요. 하지만 문은 거의 한 달째 굳게 닫혀 있습니다. 앞에서 허탕을 치고 돌아가시는 분도 자주 보이고요. 

오기 같은 것이 생깁니다. 꼭 먹고 말겠다, 하는 마음이요. 아직 충분히 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장기 휴업을 해버리니까. 그곳에는 네 종의―갈비, 치즈, 옛날, 생선―까쓰를 파는데요. 저는 아직 치즈돈까쓰를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딱히 취향은 아니라 어디를 가도 치즈 돈까쓰는 잘 안 시키지만, 언제 또 이렇게 문을 닫을지 모르니까 다음에는 꼭 그것부터 먹어봐야겠습니다.

복잡한 마음입니다. 보통은 이런 식으로 생각이 돌죠. "아니, 장사를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뭔 일 생겼나?"👉"내가 무슨 남 걱정이냐"하는 식으로요. 사장님의 캐릭터를 멋대로 상상하기도 합니다. 여름만 되면 어디론가 떠나는 자유로운 타입일지도 모른다면서요. 마침 에어컨이 고장 나니까 "그래 이거다"하고 멀리 가버린 거죠. 실제로 에어컨 수리가 밀려있을 것도 같습니다. 폭우로 여기저기가 침수되던 딱 그때부터 문을 닫았거든요.

돈까쓰 튀기는 실력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맨날 하던 일도 며칠 쉬면 감이 살짝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저씨가 복귀해도 바로 가지 않고, 며칠 있다가―튀김 실력이 다시 올라오면―갈까 생각 중입니다. 버려지는 음식을 걱정한 적도 있어요. 저렇게 오래 쉬면 가게 안에 있는 깍두기며 김치며, 고추, 쌈장, 단무지 다 버려야 될 텐데하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갑자기 자괴감이 듭니다. 한국인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너무 많지. 나는 참 관심이 많구나.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거기다가 저는 하지 말라면 너무 하고 싶어지는 타입―하라 그러면 하기 싫어지는 타입―이라서요. 별 생각이 없다가도, 그렇게 간절히 바라지 않았다가도, 내가 안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없어서 못 하게 되면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물건 살 때도 그래요. 잘 없거나 품절 된 것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있을 땐 안 사다가.

다시 돈까쓰 얘기로 돌아가면, 그곳의 시그니쳐 메뉴인 갈비돈까쓰에선 정말 갈비 맛이 납니다. 갈비 양념에 며칠 재워 둔 고기를 사용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갈비향이―김치와 치즈처럼―다른 음식을 침공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갈비 만두 같은 것도 그래서 좋아하지 않고요. 훌륭한 것은 전에 말했던 생선까스와 옛날 돈까쓰입니다. 얇은 돈까쓰를 잘 하는 집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만드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그것을 진지한 음식으로 대하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음식이 몇 가지 있죠.

얇은 돈까쓰를 맛있게 하는 집으로는 흑석동의 사과나무 돈까쓰가 있습니다. 점점 달아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곳 만한 곳이 없어요. 포장이 안 되는 가게라 직접 가서 먹어야만 하는데, 그것만 먹자고 가기에는 좀 멀다 보니 벌써 안 간지 몇 년이 되었네요. 지난번 보수동 쿨러랑 흑석동에 갔을 때 몰래 먹고 올 걸 그랬습니다. "저 잠깐 볼 일이 있어서요. 먼저 가 계세요" 하고서. (보수동쿨러랑 한강 간 이야기는 여기에)

흑석동 하니까 지금은 없어진 동해해물칼국수와 이름 없는 튀김집이 생각납니다. 동해해물칼국수도 문을 자주 닫는 편이었어요. 명절이면 앞뒤로 이어서 일주일 정도 쉬고 명절 아닐 때도 쉬고. 저는 허탕을 칠 때 마다 속으로 "아휴, 복지가 좋은 가게네", "아휴, 여기는 프랑스네" 같은 말을 했죠. 튀김집은 마트 앞에 있던 노점이었는데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단골이 엄청 많은 가게였는데도요. 사라진 가게를 생각하니 청국장이 맛있던 솥뚜껑삼겹살도 생각나고요.

돈까스 집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지난 화에 했던 이야기들을 역순으로 다시 하려고 했어요. 돈까쓰집 근황으로 시작해서 최근에 만들고 있는 노래 이야기까지. 근데 글이 너무 길어졌군요. 그래도 아쉬우니 간단히 말을 하자면, 지난 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새 곡을 쓰고 있습니다. 제 앨범에 실을 것은 아니고요 이번에도 역시 컴필레이션에 실을 곡입니다. 이번엔 '평화'가 주제예요.

곡 제목은 'Paz'입니다. 원래 제목은 Paju였어요. '파주'에 대한 이야기라서요. 왜 한글로 파주가 아니고 영어로 파주나면, 파주의 특산품(?)이 안보관광과 DMZ이다 보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표지판을 많이 볼 수 있거든요. DMZ와 떨어진 곳에도 이런 저런 전적지나 기념비들이 많고요. 그런 곳에 쓰여있는 Paju라는 글씨를 볼 때마다 항상 재밌었습니다. 전쟁과 평화의 맥락에서 파주를 불러오고자 한 것도 이유고요. 

근데 왜 제목이 Paju에서 Paz가 됐냐면요. 이 사업이 강화군의 지원을 받아 하는 것이다 보니, 그래도 강화도 돈을 받는데 제목이 파주면 좀 그렇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저는 주제가 평화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무튼 그래서 피읖과 지읒으로 시작하는 다른 말들을 찾다가 Paz가 스페인어로 평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 이거다" 하고. 그걸 못 찾았으면 '편지'가 될 뻔했어요.

음악은 대략 김민기 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들으시면 어떻게 느끼실지는 모르겠지만. 김민기 다움의 많은 부분은 그 저음에서 오는 것이다 보니 저음이 없으면 아무리 비슷해도 비슷해지지 않는달까요. 철망을 주제로 한 노래의 대를(?) 이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발해를 꿈꾸며의 대를 이을까도 생각했는데, 댄스는 조금 어려운 몸이다보니.

그럼 다음 화에 좀 더 구체적인 곡쓰기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안녕!

🐮천용성


[이주의 추천곡] Pa.je - 0g RAVITee

🔥특보🔥

🍔오소리웍스 오소소한 일상

보일 이야기부터 해보죠. 보일을 마지막으로 본 게 재미공작소 X 팝업스토어 준비할 때니까 7월 말. 물품(이를테면 천용성 등신대) 챙겨 재미공작소로 출발하기 직전에 CD랑 머그 같은 것들을 짊어지고 왔습니다. 조금 초췌해보여서 요새 어떤지 물어보았는데요, 새로 시작한 카페 아르바이트가 상당히 힘든 것 같더라고요. 하기는 머그컵 같은 거,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쌓이면 무겁죠.

얼마 전에는 보일이 데모를 하나 보내왔습니다. 연주곡의 데모라고. 어떤 걸 하고 싶은지 확 들어오지 않아 그대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별로 풀죽어보이진 않았습니다. 풀죽으라고 한 이야기가 아니니 다행. 연말 쯤 뭔가 하나 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면 곧 연락이 오겠죠?

후하도 실물 본지 오래되어 가물합니다. 생각해보니까 천용성도 그러네요. 후하는 지난 싱글 작업할 때, 천용성은 지난 불우의 명곡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네요. 실은 올해 여름, 후하의 첫 번째 정규앨범을 내기로 약속했었답니다. 저하고만 약속한 거면 상관 없는데 다른 곳, 아마 라이브 같은 데서도 올해 낼 거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는 듯. 그러나 생업과 음악을 병행하는 후하에게 앨범을 만들만큼의 트랙을 쌓아두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무리하면서까지 모두들 납득할 수 없는 음반을 내는 것보다는 준비를 잘 해서 내년에 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모아졌습니다. 후하는 이렇게 1년을 벌었죠. 그렇다면 내년 여름에는 앨범이 나오는 것일까요? 9개월 후에 공개됩니다.

천용성은 늘 대뜸 얘기하는 타입인데 저도 워낙에 대뜸 얘기하는 타입이라 서로 그러려니 합니다. 한번은 전화가 오더니 그러더군요. 전유동 언제 나와요? 음, 글쎄. 내년 봄 쯤? 그러면 단편선은 언제 나와요? 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일단 겨울에 작업을 하긴 할 거 같은데. 그럼 저는 ○○○○○○에 낼래요. 에, 곡은 있어요? 이제 쓰려고요. 그래요, 뭐. 언제나 이런 식이라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달까요. 서로 간에 감정적이지 않은 관계가 주는 쾌적함이 있습니다.

전복들은 이상하게 다사다난합니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안 다사다난 해도 되는데 어쩌다보니 다사다난 해진달까. 그렇다고 대단한 사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음원을 준비하고 있다가 코로나에 걸린다던지, 공연을 해야하는데 아침에 아내랑 싸웠다던지, 컨디션이 안 좋아 조금 쉬어야한다던지, 뭐 그런 것들. 하기는 밴드 이름처럼 한번에 전복되는 것보다는 덜컹덜컹 가더라도 가긴 하는 게 낫죠. 며칠 전에는 7~8월 중에 전달해주기로 한 데모가 왜 아직도 안 나오냐며 채근했습니다. ○○○○○○를 듣고 싶은데, 왜 안 가져오냐고 타박했습니다. 가끔은 타박하는 게 윤활유가 되기도 할테니까.

앨범 제작 후반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프로듀서가 성격이 개차반인 탓이죠) 선과영과도 후반부에는 티격태격 했습니다. 대단한 싸움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자잘하게 이런저런 상하는 일들이 있는 거죠. 뭘 해야하는데 안 했거나, 뭘 안 해야했는데 했다거나, 이런 것들. 하지만 지나가면 다 별일 아닌 것들입니다. 선과영과 쇼케이스 관련해서 논의를 해야하는데 이번 주는 정말 아예 시간이 없는 거 있죠.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모든 날 모든 스케쥴이 다 있는 경우도 있잖아요. (아닌가요?) 새벽에는 자야하니까 이번 주는 어렵다, 하니까 복태가 “쇼케이스때까지만이라도 우릴 잊지 말어”라고 메시지를 보내더군요. 혹여 복태가 이 글을 읽는다면 오해를 풀었으면 합니다. 의도와는 관계없이 모든 날 모든 스케쥴이 있는 주라는 것도 정말로 있는 법이니까요.

전유동과는 드디어 뭔가를 깨작깨작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은 언제나 초반이 가장 재미있습니다. 아이디어들을 늘어놓기만 하면 되거든요. 수습도 나의 몫인 탓에, 중반부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쳐내기 바쁘죠. 하지만 앞단의 이 대책없는 늘어놓기가 잘 되어있어야 쳐내도 남는 게 있는 법입니다. 한동안 묘하게 기운없던 유동도 조금은 기운을 차리고 있는 모양이에요. 이 결과물은 이제 조금씩 확인하실 수 있겠죠.

별 이야기 안 썼는데 분량이 이게 무엇? 인 것이에요. 짧게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남깁니다. 올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작은 축제를 정말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도 죄다 9~10월에 몰려있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전혀 페스티벌 피플이 아닌데 도대체 인생 뭐람, 이러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일도 수입도 조금은 줄여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원래 돈을 많이 안 쓰는 타입이라서, 그냥 당분간은 좀 덜 벌어도 될 것 같아서요. 오랜만에 음악에 집중이라는 걸 해보고 싶어졌어요. 운전면허도 따야하고, 요리를 약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인생 삼모작, 이제는 준비할 때가 된 것 아닌가 싶기도. 참, 얼마 전 음악일하는 친구들과 도모도모무도회라는 DJing 파티를 했는데 많은 분들이 와서 잘 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많은 분들이 조금 부담스러워 하신 것 같기도 해서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분들이 부담없이 놀만한 뭔가를 만들고 싶은데, 잘 될까요.

글을 쓰는 월요일, 그리고 발행되는 화요일 사이에는 태풍이 몰아칠 것이라 해요. 모두들 무탈하길 기원하면서, 소소한 이야기들을 마치면 될까요.

🍔단편선 특파원


📺오소리뉴스📺

🐮천용성 @000yongsung

[공연] 9. 14(수), 18:00, 게토얼라이브, 아리랑 TV '라이브 온'

[공연] 9. 30(금), 19:30, 인천문화예술회관, '살롱콘서트 휴'

🐤전유동 @jeonyoodong

[공연] 9. 16(금), 20:00, 클럽헤비(대구), 안희수 단독공연

[공연] 9. 23(금), 19:30, 카페 몰입(부산), '바다와 파랑새 : 해변지하와 전유동'

[공연] 9. 24(토), 16:30, 초필당(양평), '두물머리 동네정원 축제'

⚡소음발광 @soumbalgwang_official

[공연] 9. 16일(금), 20:00, 오방가르드(부산), 'OVGD LIVE : B - Sonic Wave'

[공연] 9. 18일(일), 15:00, 축제거리(홍대), 'The Sub'

🪐선과영 @boktea @haha_hangun

[음반] 9. 15(목), 선과영 1집 《밤과낮》 발매

[공연] 9. 17(토), 19:30, 재미공작소, '코멘터리룸'

[공연] 9. 24(토), 14:00, 우보농장(양평), '그레잇테이블X우보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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