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 Milano!

밀라노에서 보낸 편지, Da. Milano!

7월 셋째 주 수요일 편지

2024.07.17 | 조회 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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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umma in Milan

밀라노에 입성한 한국 아줌마의 유쾌한 생활밀착형 밀라노 이야기

1. 땀 흘리며 걷는 일

30도를 웃도는 여름이다. 예년에 비해 조금 시원한 여름인가 싶었는데 7월 중순이 되니 아니나 다를까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한낮 기온은 35도 가까이 올라간다. 이런 날엔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나는 가장 더운 오후 3시즈음에 주섬주섬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양말에 운동화까지 신고 집을 박차고 나간다. 가장 더울 때 걸어야 땀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집 앞 공원을 힘차게 걷는다. 팔을 앞뒤로 흔들며 열심히 걷는 내 곁을 벌개진 얼굴로 빠르게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헐떡거리며 달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경외심을 느낀다. 저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뛰는 것일까? 

 

 

요즘 한국에 사는 세 언니들(진, 연, 정)과 남동생(윤)이 러닝에 빠져다. 첫 시작은 나보다 두 살 많은 셋째, 정이 언니였다. 2년 전, 형부의 직장과 아이들의 학업을 위해 서울 강서구에서 인천 영종도로 이사를 간 정이 언니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서 외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다 지역 러닝 동호회에 들어가 매일 뛰더니, 형부를 끌어들였다. 언니가 뛰는 범위는 점점 넓어졌고, 급기야 여러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아이들과 함께 또 가끔은 혼자서 뛰던 언니는 러닝 중독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뛰지 않으면 우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울한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정이 언니는 더 열심히 달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뛰러 나가는가 하면, 5킬로는 기본이요 10킬로를 뛰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정이 언니는 작년에 당뇨 경계선에 있었다. 임신성 당뇨가 있었기에 관리를 하지 않으면 만성 당뇨 환자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러닝을 한 후 언니의 당뇨 수치가 안정되어 갔고, 뭘 해도 빠지지 않던 살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러닝과 식이조절을 병행하더니 최근엔 5킬로그램 이상이 빠졌다. 언니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러닝 전도사"가 되어 달리기를 널리 전파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2살 어린 남동생, 윤이는 소방공무원으로 일반 사람들보다 불규칙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동생 역시 당뇨 수치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 정이 언니로부터 "러닝 복음"을 전해 들었고,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동생도 매일 달리기를 시작했다. 큰언니, 진이 언니도, 둘째 언니 연이 언니도 정이 언니의 전도 대상자들이었다. 정이 언니는 아침마다 어디를 얼마나 어떻게 뛰었는지 카톡으로 인증을 하며 두 언니를 전도하기 시작했다. 

 

"언니들, 달리기할 때 이건 꼭 있어야 해. 핸드폰 들고 뛰면 힘들어. 허리띠 하나씩 사서 넣고 뛰어야 해." 

"누나 나도 하나 살래. 사이즈 뭘로 사야 할까?"

"넌 라지로 사야지. 언니들은 살 거야?"

"그래, 나도 뱃살 때문에 라지로 사야 하나?"

"내가 내 몸매를 과소평가했나 봐. 엑스스몰을 샀더니 허벅지에서 안 올라가."

"허벅지에 핸드폰 넣고 뛰어." 

"뉴발란스 어플이랑 스트라바 어플 연동해서 달리면 포인트 줘. 포인트 모아서 운동화 살 수 있어. 다들 어플 깔아봐." 

"선량이 너도 거기서 뛰어. 우리는 가을에 마라톤 나갈 거야. 윤이 너 나갈 거지?"

"그래, 누나. 나도 접수할게." 

 

아무래도 이 무리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도 뛰어야 할 것 같았다. 언니의 말은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정이 언니가 설파한 어플을 깔고, 허리띠 대신 팔띠를 하나 샀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핸드폰을 이두박근에 고정시킨 후 달리기 시작했다. 10분, 15분, 20분을 뛰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난 더 이상 뛰지 못하고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겨우 2킬로를 뛰었다. 

도대체 정이 언니는 10킬로미터를 어떻게 뛰는 것일까? 뛰는 건 나랑 맞지 않다. 언니의 러닝복음 전도는 실패했다. 

 

그날 이후, 난 뛰지 않고 걷고 있다. 팔을 앞뒤로 흔들며 파워워킹을 하는 날 보며 남편은 좀 부끄럽다며 멀직이 걷는다. 굳이 팔을 그렇게 앞뒤로 흔들어야 하느냐며 묻는다. 한국 아줌마라면 이 정도의 파워는 장착하고 걸어야지. 팔을 앞 뒤로 흔들어야 추진력이 붙는다구. 

 

뜨거운 태양 아래 홀딱 벗고 잔디밭에 누워있는 아저씨들이 보인다. 그 옆에 비키니만 입은 아줌마, 할머니들이 누워있다. 그들의 벌게진 피부를 보며 나는 경탄한다. 그 옆에 한 커플이 누워있다. 분명 두 사람인데 몸은 하나인 듯, 아주 가지런히 겹쳐져있다.  여자의 가슴에 남자의 얼굴이 파묻혀 있는 게 보인다. 그들을 힐끔거리던 아저씨와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들 곁을 파워 워킹으로 지나친다. 등줄기에서 땀이 송골송골 흘렀다. 

 

내가 걷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2. 비키니를 입을 용기 

남편의 휴가는 8월 중순에 있다. 한국이었으면 길어야 3박 4일이겠지만, 여기는 여름휴가가 2주나 된다. 8월은 그야말로 바캉스의 계절. 밀라노 시내의 가계는 대부분 문을 닫는다. 관공서 역시 마찬가지. 8월은 일을 하지 않는 달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번 여름에 우리는 이탈리아 남부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미 5개월 전에 소렌토와 카프리 섬에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휴가 기간이 다 되어 숙소를 잡으려면 두 세배의 숙박비가 들기 때문이다. 

포지타노 바닷가에서 4일 정도 지낼 거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옷장 안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꽃무늬 비키니를 떠올렸다. 이번엔 기필코 저 비키니를 입어보리라! 

비키니라고 말하니, 위와 아래만 가려지는 마치 속옷과 같은 수영복을 상상하시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내가 그정 도로 자신감이 넘치진 않았.... 그저 위와 아래가 나누어져 있고, 그 사이로 내 뱃살이 보이는 정도의 비키니이다. 

원래는 작년 여름에 함께 호수로 놀러 가서 입으려고 산 수영복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내가 자궁 수술을 하는 바람에 밀라노로 돌아오는 일정이 2주 정도 늦춰졌다. 게다가 배꼽을 뚫어 복강경으로 수술을 했기에 배꼽 상처에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다. 그래서 비키니 수영복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 아랫배에 자리 잡고 있던 자궁을 떼어냈으니 자궁의 부피만큼 배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 이치 아닌가? 게다가 자궁 주위에 붙어있던 그 소보로 빵처럼 생겼던 근종 역시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는데 어찌하여 뱃살은 수술 전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일까? 마치 2~3킬로나 되는 아이를 낳았음에도 몸무게가 그대로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큰 아이를 3.9kg에, 둘째를 4.1kg에 낳았다. 아이들의 무게와 태반, 양수가 사라진 다음 날 5kg이 줄어 있었다)

자궁 수술 후 나는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무리한 운동은 피해야 하며 쭈그리고 앉거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행동을 삼가하라는 수술 후 주의 사항을 착실하게 지켰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내 뱃살은 자궁 수술을 하기 전보다 더 두꺼워지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곳이 이탈리아라는 사실이다. 

이곳 사람들의 여름 의상은 그야말로 "중요 부위만 가리고 다니는" 의상이다.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상관없이 자신들이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몸매가 좋은 사람도, 보기에 뚱뚱해 보이는 사람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이 나라의 이런 분위기는 내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아무도 내 똥배에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배가 좀 나왔더라도 그게 뭐 어때서?" 

나는 슬금슬금 반바지에 크롭티를 입기 시작했다. (크롭티라고 해봤자 배가 살짝 보이는 정도의 짧은 티셔츠이다) 그런데 이런 의상에 아이들이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닌가? 

"엄마, 배가 보이는데?" 

"엄마, 그렇게 입어도 괜찮아?" 

"엄마 그건 좀..... 좀 그런데....." 

아니 이 무슨 유고 걸, 유고 보이 같은 소리란 말인가?? 

"야, 여긴 밀라노야. 아무도 엄마 뱃살에 신경 안 쓴다니까. 엄마는 괜찮은데 왜 너희들이 신경을 쓰고 그래. 신경 꺼." 

"에이, 엄마 그래도 신경이 쓰여." 

딸아이가 내 짧은 티셔츠를 아래로 잡아당겨 내 배를 가리며 말했다. 아니, 자기는 숏팬츠에 크롭티를 매일 입고 다니면서....

 

이번 여름, 바닷가에 가서 비키니를 입고 나타나면 아이들이 뭐라고 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아이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난 지금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이 자유가 난 무척이나 좋다. 

 

8월, 포지타노 해변에서 비키니 입은 제 모습을 기대해 주세요. 

그때까지 열심히 파워워킹을 하여 뱃살을 조금 더 빼보겠어요!! 

 

3. 선량한 사람들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 책을 함께 쓴 진아 작가님과 함께 펜팔을 하고 있어요. 저는 밀라노에서, 진아 작가님은 대구에서 살고 있는데요, 경상도를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작가님과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 나라 저 나라 떠도는 제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엄마로서의 이야기를 나누는 서간문이랍니다.

처음엔 부담 없이 글을 쓰고 싶어서 작가님께 제안을 드렸어요. 작가님과 함께 글을 쓰던 지난 시간이 참 좋았었거든요. 기획이나 주제 없이, 그저 나에게 오는 편지에 기대어 답장을 쓰다 보니,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그리고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쓰게 됩니다.

 

여러분은 펜팔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광주로 전학한 후에 시골 친구들과 종종 편지를 주고 받았었어요.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오직 우표가 붙은 편지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수단이었지요. 그때 친구들과 나눈 편지를 고이 간직해두었었는데 이 나라, 저 나라 떠도는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시절의 저와 친구들이 가끔 그리워지곤 해요. 

당시 정이 언니는 중학생이었는데요, 언니는 미국에 사는 캐빈이라는 남자아이와 펜팔을 하고 있었어요. 당시엔 영어공부의 일환으로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과 펜팔을 하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정이 언니는 그때나 지금이나 유행을 참 잘 타는 것 같네요. 

캐빈은 언니에게 자신의 증명사진을 보냈었어요. 마치 얼마 전에 유행한 "미국식 졸업사진"과 같은 증명사진이었지요. 사진 속의 캐빈은 꽤 멋있어 보였습니다. 정이 언니와 캐빈이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ABCD를 중학교 가기 2달 전, 겨울방학 때 처음 배웠으니까요.... 

제 두 번째 펜팔은 20살 때였습니다. 군대 간 교회 오빠가 선임을 소개시켜주었는데, 저보다 1살 많은 경주 사는 남자였어요. 저는 또 착실하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써서 보냈답니다. 그 남자의 사진도 받았고요, 제일 예쁘게 나온 제 사진도 보내주었어요. 그 사진을 보고 그 선임은 너무 좋았던가 봐요. 저에게 매우 적극적으로 연락을 했고, 전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삐삐가 있었거든요. 경주에 오면 경주빵을 사주겠다느니, 곧 제대이니 만나러 오겠다느니.... 

아주 순진했던 저는 그 말을 정말 믿었습니다. 그가 제대한 후 몇 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부터 편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전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어요. 걱정을 했더랬죠. 그런데.....

저는 군인과 민간인의 차이를 그때 알았답니다. 

 

제 세 번째 펜팔은 네팔에서였어요. 한 달 교제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남자 친구와의 편지였지요. 저는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아 8개월 정도를 네팔에 더 머물러야 했거든요. 그때도 참 열심히 편지를 써서 국제 우표를 붙여 보냈습니다. 당시엔 네이트온과 스카이프가 있었어요. 아직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었지요. 편지로도 모자라 네이트온으로 채팅을 하고 스카이프로 화상채팅을 했습니다. 

늦은 밤, 그와 스카이프로 대화를 하는 중에 남자 친구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누나, 해 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제 네 번째 펜팔입니다. 펜팔 기한은 따로 정해두지 않았어요. 매주 1편씩 답장을 쓰고, 올해는 계속 써보자고 했지요. 

그런데 그 전엔 글이 그렇게 안 써지더니, 진아 작가님과 편지를 쓰기 시작하자 글이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의 편지가 기다려지기 시작했어요. 물론 제가 답장을 쓰는 일도 즐거웠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글이 도저히 안 써지면, 함께 써야 한다는 사실을요. 

 

글을 쓰고 싶은데 너무 안 써지신다면, 누군가와 함께 써보세요. 

부담스럽던 글이 조금은 즐거워질 겁니다. 

 

<진아 작가님과의 편지 글은 아래 링크에 있어요.>

 

그럼 다음 한 주도 모두 즐겁게 보내세요. 

Buona settim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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