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 다시 온 지 3개월이 되어간다. 드디어 다음 주엔 집으로 들어간다. 3개월 동안 숙소를 네 번 옮기며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고, 다시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험난할까?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돌고 돌아가는 기분이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같기만 하다. 배를 타고 한 달만 가면 되는 거리를 올림푸스 신들에 의해 10년 동안 돌아가지 못했던 오디세우스. 고향 이타카로 가는 길에 만난 수많은 역경과 고난은 그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나는 감히, 우리가 밀라노에서 보낸 이 몇 달을 오디세우스의 여정과 비교하고 싶다. 바로, '밀라노 오딧세이'이다.
작년 10월 중순에 밀라노에 온 후 비자가 나오지 않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비자를 발급 받는 과정에서 생긴 여러 가지 문제와 상황은 이미 쭘마인밀란 구독자님들이 잘 아실 터. (모르시는 분은 쭘마인밀란 과거 매거진을 읽어주세요.)
한국으로 돌아가 3개월을 보내는 동안 언니들 집, 동생 집, 친정집, 숙소 1, 숙소 2, 숙소 3을 떠돌았다. 마침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기라서 가족들 집에 있을 수가 없었고,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였다. 날마다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했다. 밀라노로 가는 것이 맞는지, 비자를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
다시 돌아오면 모든 길이 꽃길일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로 힘겨울 줄 몰랐다. 아이가 화상을 입었고, 내가 응급실에 갔으며, 갑자기 숙소를 빼야 했고, 급하게 숙소를 알아보았으나 남는 숙소가 없었다. 밀라노 근교로 나가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학교에 가야 했다. 하지만 일주일간의 몬차 생활은 꽤 좋았다. 오랜만에 자연을 만끽했고, 친절한 숙소 직원들 덕분에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숙소가 점점 좋아지네? 마지막 숙소 기대된다."
"마지막 숙소가 제일 좋아. 넓은 테라스가 있거든. 집에 들어가기 전에 푸욱 쉬고 가면 되겠어."
자연과 함께 보낸 몬차 숙소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밀라노 시내로 들어왔다. 몬차에 있는 숙소가 너무 좋았지만,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남편 출퇴근과 아이들 등하교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름휴가가 가까워지면서 밀라노 물가는 더 올랐고, 그것과 함께 시내 숙소 비용도 더더 올랐다. 학교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는 아예 예약 가능한 숙소가 없었다. 그나마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곳, 그중에서도 괜찮은 숙소를 예약했다.
부킹닷컴 사이트에서 본 숙소는 꽤 럭셔리 했다. 그중에서도 넓은 테라스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 한잔 마시며 책도 읽고, 글도 쓰면 딱일 것 같았다.
숙소를 옮기기 하루 전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숙소 주인이라고 하며 테라스를 리노베이션 중이니 이틀만 다른 숙소로 옮겨준다는 내용이었다. 그 정도야 뭐.... 괜찮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새로운 숙소로 옮겼다. 그런데 우리가 예상했던 테라스는 없었다. 공사 중인 곳에선 쿵쿵쿵, 찌이잉~, 쿵쿵쿵 찌이잉~ 소리가 들려왔다. 테라스로 향하는 블라인드를 올리자 리노베이션의 현장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저기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기는커녕, 창도 열지 못할 수준이었다. 아름다운 테라스가 있는 에메랄드 아파트는 없었다.
남편은 부킹닷컴에 있는 연럭처로 전화해 항의해보았지만, 그 사람도 중간 관리자라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한국 부킹닷컴에 전화해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건 사기 아닙니까? 사이트에 떡하니 다른 사진 올려놓았잖아요. 문도 열 수 없고, 소음도 장난 아니에요. 지금 당장 옮길 곳도 없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남편은 전화로, 이메일로, 계속 항의했다. 그때 문자 메세지가 왔다.
'핸드폰 로밍 요금 10만 원'
현지 번호로는 자꾸 전화가 끊겨서 한국 심카드를 넣고 전화를 했더니 요금 폭탄을 맞고 말았다. 이것도 저것도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울컥 눈물이 났다. 왜 우리는 이렇게 덜컥 거리는 걸까. 왜 한 번에 되는 일이 없을까?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마지막은 아니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가는 길에는 세이렌이 사는 바위가 있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은 그 소리에 유혹되어 스스로 물에 몸을 던지고 만다. 오디세우스는 그 유혹을 이기기 이해 돛대에 자기 몸을 꽁꽁 묶고 부하들은 귀마개를 한다. 기지를 발휘해 그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내고 다시 고향으로 향한다.
나의 마음속엔 세이렌이 산다. 자꾸만 이제 그만 가라고 유혹한다. 이렇게 힘든데 뭘 그렇게 기를 쓰고 가려고 하느냐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그 길은 네가 갈 길이 아니라고. 세이렌이 노래한다.
그 유혹에 몸부림을 친다. 남편을 원망도 했다가, 자책도 했다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가, 망연자실 넋을 놓는다. 침대 모서리에 앉아서 짐 가방을 둘러본다.
다행히도 나에겐 나를 돛대에 꽁꽁 묶어줄 줄이 있다. 그 줄로 나를 꽁꽁 묶고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낸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나의 길을 간다.
이 고비를 넘기고 계약한 집에 들어가 안정된 생활을 하면 과연 모든 것이 평화로울까? 아무런 고민도, 걱정도, 근심도 없어질까?
이타카로 돌아간 오디세우스는 행복했을까?
오디세우스가 집을 비운 사이, 그의 집에는 그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자들이 몰려들어와 그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었다. 돌아간 고향에서 오디세우스는 새로운 어려움과 직면한다.
걱정 없는 삶은 없다. 한 고개 넘으면 또 한 고개가 나온다. 그게 인생이란 걸 아는 순간, 마음을 턱! 놓게 된다. 다행인 것은 모든 고개가 높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가끔은 술렁술렁 걸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토요일에 드디어 계약한 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인도에서 가지고 온 살림살이가 아직도 한국에 있다. 부족한 살림살이로 그 집에서 어떻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지 기대가 된다.
그가 나를 보며 웃는다. 나도 그를 바라보며 웃는다. 우리의 웃음이 무엇인지 그도 나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으이구, 왜 이렇게 짠하냐."
"자기도 마찬가지야."
절대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건 멘탈이 갑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해탈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멘탈이 나간 것일까?
며칠 전부터 목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식도인지, 갑상선인지, 기도인지... 셋 중 하나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덜컥 겁이 났다. 큰 병에 걸린 거 아니야? 이 상태에서 몸까지 아프면 안 되는데.....
혹시나 하고 커피를 다시 끊어보았다. 벌써 세 번째다. 커피를 끊었다가 다시 마시기를 반복하면서 지난날들을 견뎠다. 그런데 이번엔 진짜 끊어야 할 것 같았다. 커피를 끊었더니 편두통이 생겼다. 주기적으로 편두통이 있긴 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하필 주말이라서 두통약을 살 곳도 없다. 나는 주말 내내 목의 이물감과 두통에 시달렸다.
이런 내가 심하게 걱정되었나 보다. 나를 짠하게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싫지 않다. 이런 약한 모습을 더 많이 보였어야 했나....
증상을 검색해보니 역류성식도염 같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커피, 술, 매운 음식,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을 경우에 나타난다고 한다.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커피와 술, 매운 음식, 밀가루 음식, 탄산음료 등을 먹지 말아야 한단다.....
뭘 먹어야 할까....
지금껏 스트레스를 덜 받는 줄 알았다. 남의 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다. 툭하면 긴장하고, 툭하면 가슴이 두근거려 약을 먹기도 한다. 나는..... 스트레스가 생겨도 잘 넘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점심때 샐러드 시켜 먹었는데 좀 챙겨다 줄까?"
웬일로 내 먹을 것을 챙기는 행동이 왠지 좋다.
"나한테 좀 잘해줘. 내가 잘해주는 것 보다 쫌만 더 잘해주면 돼. 그러면 내가 또 잘해줄게. 그러면 자기가 그것보다 쫌 더 잘해줘. 그럼 된 거야. 그러다 보면 좀 힘든 것도 잘 이겨낼 수 있게 돼."
함께 힘든 일을 겪다 보니 동지애가 생겼다. 왠지 안쓰럽고, 짠하고, 애달프고 긍휼한 마음.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사랑일까?
요즘 우리는 이탈리안 부부 행세를 한다. 한국 부부와 이탈리안 부부의 차이점은 꽤 극렬하다. 한국 부부는 데면데면하다. 뭔가 드라이한 면도 있다. 이탈리안 부부는 커플 같다. 스킨십도 자유롭고, 부부 같지 않은 부부의 모습 같달까.
출근하는 남편을 꼭 안아주었다. 입술에 뽀뽀도 해주었다. 아이들은 보지 못했다. 봤다면 분명 야유를 했을 터!!
이런 달달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나도 모른다.
다음 호에는 한바탕 싸우고 죽네 사네 할지도.
하지만 지금은 힘든 와중에 달달함을 누려보겠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쭘마인밀란의 선량입니다.
드디어 이번 주말에 집으로 들어갑니다~ 작년 7월에 뉴델리를 떠난 후 집을 갖게 된 게 1년 만이라서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됩니다.
아직 집엔 인터넷 설치가 안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이 설치될 때까지 쭘마인 밀란 발행이 어려울 것 같아요. 잠시 휴식기를 가진 후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찾아뵐게요. 되도록 빨리 인터넷을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워낙 느리다 보니..... ^^;;;
<선량한 글방 소식>
1. 쓰담쓰담 글쓰기 4기 2주째가 되었습니다. 열여섯 분과 함께 하고 있는데요, 와~ 이분들 정말 대단하세요. 열여섯 분 모두 매일 쓰기를 하고 계십니다. 이번엔 열 여섯 분 모두에게 선물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2. 슬로우리딩 5기가 다음 주에 시작됩니다. 이번엔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이란 책으로 슬로우리딩 하는데요, 열세 명의 멤버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기대가 되네요.
3. 얼마 전에 출간 된 안아조 작가님의 전자책 '마음속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요'가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네이버 책에 등록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예스 24 전자책 에세이 부문에서 25위를 했습니다. 너무 감격스럽네요.
4. 두번째 일대일코칭 책의 초고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따뜻한 스피커 '김문영' 코치님의 책인데요, '셀프 코칭으로 나의 성공 스피치 완성하기' 입니다. 이 책은 부크크 종이 책으로도 출간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제가 일대일 코칭을 시작한 이유는 사람마다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다르고, 쓰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책 쓰기 강의를 통해 한 두 달 안에 책을 쓰기도 하지만, 전 그것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문체를 가지고 자신의 속도에 맞게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고를 쓰는 일이 가장 어려운데요, 그걸 쓰고 나면 한 고개 넘게 된답니다.
전자책일대일코칭이 필요하시면 선량 작가를 찾아주세요. ^^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댓글 달기가 힘들다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래서 구독자 게시판을 다시 열었습니다.
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구독자 게시판에 남겨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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