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일리아스] Part 1. 왕은 왜 도둑질을 하는가

권력과 공포의 상관관계

2026.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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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무기가 될 오피스 폴리틱스(Office Politics) 전략서


전쟁터와 사무실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둘 다 인간이 어른인 척 하면서도, 사실은 원시적 충동—서열, 소유, 굴복, 복수—에 의해 움직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트로이 평원에서 쇳내 나는 바람을 맞으며 창을 겨누던 자들과, 형광등 아래에서 KPI를 읊조리며 회의를 장악하려 드는 자들은 서로 다른 시대의 의상을 입었을 뿐, 같은 종류의 결핍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결핍은 흔히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권위가 부서질까 봐 떨리는 공포”로 나타난다.

호메로스는 그 공포의 형태를 너무 정교하게 박제해 두었다. 《일리아드》는 영웅담인 척하지만, 실은 조직정치의 교과서다. 그 첫 단어부터가 폭로다. 시인은 “분노를 노래하라”고 말한다. 그 분노는 단순한 성질머리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메니스μῆνις (mēnis)—라 불리는 그것은, 사소한 짜증이나 일시적 화가 아니라, 존재론적 모욕에서 발생하는 신성 모독급 격노다. 인간이 “나를 이렇게 취급해도 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자아가 찢어질 때, 거기서 솟는 불꽃.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퇴사 결심을 굳히는 순간도 대체로 이 범주에 속한다. 월급이 아니라 모욕이 사람을 떠나게 한다.

이제 장면을 보자. 아가멤논. 왕. 총사령관. 현대적으로 번역하면 “본부장 겸 프로젝트 오너 겸 회의실의 태양” 같은 존재다. 그는 전리품을 요구한다. 전쟁은 약탈을 정당화하는 가장 오래된 회계 시스템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가 요구하는 방식이다.

아킬레우스는 전리품으로 브리세이스를 얻었다. 여기서 많은 독자가 유치하게 오해한다. “여자 때문에 싸운다.” 문학을 읽으면서도 삶을 가십으로 축소하는 인간들의 전형적 버릇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여자는 본질이 아니다. 여자는 표지(sign)이고, 진짜 쟁점은 티메τιμή (timē)—즉 명예/가치/서열의 가격표다. 티메는 “내가 이 조직에서 얼마짜리 인간으로 취급받는가”를 뜻한다. 오늘날의 ‘직함’, ‘성과의 인정’, ‘발언권’, ‘보상 구조’가 바로 현대판 τιμή다. 한 마디로, 티메는 인간의 자존심을 숫자처럼 표준화해 거래하는 장치다.

아가멤논의 티메가 손상된다. 그의 전리품인 크리세이스를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 “왕이 빼앗긴다.” 이건 단순한 손해가 아니라 상징적 재난이다. 조직에서 무능한 상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상사 위의 상사든, 외부 고객이든, 심지어 팀원들이든) 앞에서 자신이 통제력을 잃는 순간. 그때 그들은 능력으로 회복하지 못한다. 능력은 애초에 부족했으니까. 대신 그들은 권위의 연출로 회복하려 든다. 즉, “내가 여전히 왕이다”를 증명할 가시적 희생양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것을 빼앗는다.

이건 “여자가 필요해서”가 아니다. 왕이 성욕에 휘둘리는 통속극이 아니다. 오히려 훨씬 차갑고 계산적인, 권력의 병리학이다. 그는 가장 강한 부하의 소유를 침탈함으로써 자신의 손상된 티메를 복구하려 한다. 왜 하필 아킬레우스인가? 약한 자의 것을 빼앗아선 증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도 똑같다. 무능한 상사는 대개 팀에서 가장 유능하고, 가장 존경받고, 가장 성과를 내는 사람을 은근히 눌러버린다. 칭찬을 가로채고, 성과를 “팀의 성과”로 흐리고, 결정권을 뺏고, 보고 라인을 복잡하게 만들어 숨 막히게 만든다.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건 실적이 아니라 상대의 위신을 훼손해 자신의 위신을 상대적으로 올리는 것이다. 이것이 권력이 품는 가장 고약한 진실이다. 권력은 종종 창조가 아니라 절도에 의해 유지된다.

여기서 조직심리학은 고대 서사시를 현대의 현미경으로 비춘다. 아가멤논의 행동은 지위 위협(status threat)의 전형이다. 지위란 실제 능력보다 인정의 합의로 이루어지며, 그 합의가 흔들릴 때 사람은 공황에 빠진다. 특히 권위를 “성과”가 아니라 “자리”에서 얻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복종당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존경이 사라지면 그들은 복종을 강제한다. 강압적 권력(coercive power), 즉 벌과 박탈로 질서를 세우는 방식이 튀어나온다. 능력 있는 리더는 위협을 설계로 흡수하지만, 불안한 리더는 위협을 사람에게 전가한다.

아가멤논이 저지른 강탈은 일종의 “조직 내 공개 처형”이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아킬레우스조차 예외가 아니다.” 이것은 규칙이 아니라 공포로 운영되는 조직의 서명이다. 규칙으로 운영되는 조직은 일관된 절차로 사람을 움직인다. 공포로 운영되는 조직은 예외를 통해 사람을 길들인다. 예외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잘 순종한다. 예외는 예측 불가능성을 만들고, 예측 불가능성은 심리적 안전감을 파괴하며, 파괴된 안전감은 사람들이 서로를 감시하게 만든다. 그렇게 조직은 스스로 ‘작은 트로이’가 된다.

이제 아킬레우스의 메니스(μῆνις)가 왜 그렇게 치명적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단순히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그는 “내 τιμή가 찢겼다”고 느낀다. 자신의 가치가 공개적으로 훼손되고, 그 훼손이 조직의 질서로 선언되는 순간, 인간은 존재의 기반을 공격받는다. 그래서 아킬레우스는 전투를 거부한다. 현대 직장인의 언어로 번역하면, “성과를 내주지 않겠다. 너희 KPI를 무너뜨리겠다.”이다. 그는 회사를 파괴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키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파괴는 자기 방어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왕은 왜 하필 ‘도둑질’을 택하는가? 왜 설득이나 협상이나 능력의 증명이 아니라, 가장 원초적인 약탈로 돌아가는가?

답은 잔인할 정도로 간단하다. 권력은 공포를 먹고 자라며, 공포는 가장 빠른 해결책을 찾는다. 설득은 시간과 이해를 요구한다. 능력은 땀과 학습을 요구한다. 반면 절도는 즉각적이다. 즉각적인 박탈은 즉각적인 쾌감을 준다. 그리고 그 쾌감은 불안을 잠시 마취한다. 불안한 리더가 사람을 괴롭히는 이유는, 그 괴롭힘이 순간적으로 자신을 안정시키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실상 타인의 위신을 담보로 자신의 자아를 연명하는 기생자다.

여기서 클레오스κλέος (kleos)—가 등장한다. 클레오스는 “명성”이라는 번역으로는 모자란다. 그것은 타인의 입에서 반복되는 이름, 즉 ‘소문으로 영생하는 방식’이다. 아킬레우스는 클레오스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자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노래될 것을 안다. 그런데 아가멤논은? 그는 클레오스를 소유할 수 없다. 그가 가진 것은 직위뿐이다. 그래서 그는 타인의 클레오스를 질투한다. 오늘날 무능한 상사가 가장 싫어하는 직원이 누구인가?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성실한 사람도 아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르는 사람, 즉 팀의 비공식적 ‘클레오스’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 존재가 옆에 있으면, 직위의 권위는 늘 비교당한다. 비교는 왕을 미치게 만든다. 그래서 왕은 훔친다. 훔쳐서라도 상대의 빛을 가린다. 빛을 꺼뜨리면 자신이 덜 어두워 보이니까.

그러니, 3,000년 전 트로이의 총사령관과 현대 사무실의 무능한 상사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둘 다 능력의 결핍을 권위의 폭력으로 대체하고, 손상된 티메(τιμή)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강한 자의 것을 침탈하며, 타인의 클레오스(κλέος)를 질투해 불안을 진정시키려 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메니스(μῆνις)를 깨운다. 그 메니스가 조직을 어떻게 불태우는지는—호메로스가 이미, 잔인하게, 끝까지 보여준다.

요컨대, 왕이 도둑질을 하는 이유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권력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통제’가 아니라 ‘박탈’로 해결하려 한다. 그리고 박탈은 늘 가장 빛나는 것을 향한다. 왜냐하면 공포는 어둠 속에서만 왕좌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파트에서는 메커니즘이 어떻게무능한 상사의 회의 운영”, “성과 가로채기”, “희생양 만들기같은 현대의 의례로 변형되는지, 그리고 어떤 조직은 트로이가 되고 어떤 조직은 스파르타(혹은 냉정하게, 로마) 되는지 차이를 해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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