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영화를 소유하고 있습니까?

🙋‍♂️안녕하세요. OTT 연구소입니다.

지난 뉴스레터를 보내고 약 한 달 정도가 지났습니다. 그 사이 사회적으로 큰일도 여럿 있었고, 화제가 된 작품 역시 많이 나왔습니다. 우선 <폭삭 속았수다>가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저는 첫 회를 보는 순간 눈물이 폭포처럼 흘렀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끝까지 제대로 작품을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어떤 회차든 켤 때마다 눈물이 나더군요. 우선 쉬었다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보려고 조금 미뤘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블랙미러 시즌7>은 시즌 5와 6에서 느꼈던 실망감과 달리 시즌 모든 회차가 완성도가 있었습니다. '소개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가 블랙미러 시즌 7의 1화를 보면서 '돈을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가 많은데 나는 그 서비스를 온전히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OTT 역시 마찬가지죠.

오늘 뉴스레터는 조금 따분할 수도, 난해할 수도 있는 글처럼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OTT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이를 온전히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leave the world behind)> / 출처 : IMDB

소유한다는 것

※ 법적 권리에 관해 아주 세세하게 논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래 글에 나오는 개념들은 아주 일반적인 법정보 혹은 대중의 상식 수준의 단어들로 이해해 주시면 됩니다.

소유(所有)에는 여러 뜻이 있습니다.

'(어떤 객체를) 가지고 있음' 혹은 '(갖고 있는) 그 물건'을 이르기도 하고, 법률 용어에서는 '물건을 전면적이거나 일반적으로 지배하는 일'을 일컫죠. 그런 면에서 집 매매계약을 통해 집 소유권을 갖기도 하고, 가게에서 물건 값을 지불하고 원하는 물건의 온전히 소유하게 되기도 합니다. 흔히 대출을 끼고 집을 샀을 때 "그 집 사실상 은행 거야."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것도 이러한 소유, 소유권을 비유한 말이죠.

소유의 개념은 우리가 무형의 존재, 서비스를 이용할 때, 더 모호하게 다가옵니다.

🎬 영화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당신에게

무형의 것을 소유하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영화'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봤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예술'

그렇다면 영화를 소유하는 건 뭘까요? 저는 우선 영화나 드라마, 여러 영상 작품을 소유한다고 느끼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나는 대로 적었습니다.

영화 티켓을 사다.
영화 DVD를 사다.
영화에 투자하다.
유튜브에서 영화 결말 포함 몰아보기 영상을 시청하다.
드라마를 몰아보기 위해 OTT 서비스를 구독하다.
영화관에서 놓친 작품을 VOD로 구매해서 보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옛 영화 DVD를 빌려보다.
어릴 적 비디오 가게에서 전대물(ex. 후뢰시맨, 바이오맨 등) 비디오를 빌려봤다.

일부는 경험했을 수도 있고, 일부는 평생 가도 경험하지 못할 일도 있죠. 위에 적은 문장에 적은 행동들을 언뜻 보면 영화를 보고 경험하는 가운데 '영화를 내가 갖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런데 영화라는 예술, 혹은 작품, 경험을 소유할 수 있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우리가 구매하고 소유한다고 할 수 있는 건 영화를 보기 위한 '수단'을 값을 치르고 갖게 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영화, 음악 자체를 노트북, 명품, 자동차와 같은 물건처럼 갖고 있을 수는 없죠.

📺 영화를 갖는다는 것

이달 초부터 하고 싶었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난 52번째 OTT 연구소 보고서 '방송국이 되려는 넷플릭스'에서 다뤘던 SBS와 넷플릭스와의 계약에 관한 내용이었죠. 결과적으로 넷플릭스 이용자들은 SBS 방송국과 넷플릭스 사이에 계약된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20대들은 밈으로만 보던 '야인시대', '여인천하'를 실제로 볼 수 있게 됐다면서 흥미로워하기도 했죠. 저는 그걸 본방으로 봤지만.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지금 볼 수 있다고 내가 SBS 콘텐츠를 다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그저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아닐까?'

대부분 OTT 서비스가 일반적으로 한 달 간격으로 콘텐츠 라이센스 계약을 갱신하거나 종료합니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도 그러하죠.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2025년 4월에 넷플릭스에서 종료되는, 앞으로 OTT에서 영화를 볼 수 없는 작품 목록이 뜬 걸 봤습니다.

과거에 봤던 작품, 걸작선, 평범한 상업영화였지만 나름 울림이 있었던 작품 등 다양한 이름이 그 목록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이제 영화를 한 편 구매해서 영구 소장하는 것도 쉽지 않아지면서 이렇게 상영 서비스가 종료되면 우리는 어떻게 영화를 봐야 할까요?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도 진행하는 서비스인 왓챠의 별점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DVD를 모으는 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처럼 OTT 서비스를 하기 전에 왓챠에 영화는 한 2,500여 편 정도, 드라마는 200여 편 정도 평점을 매기고 한 줄 평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약 3000편 가까이 기록을 해두니 개인적으로 대단한 이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죠. 그런데 오랜만에 목록을 보고 표시해 둔 작품을 둘러보는데 도무지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봤다고 해서 다 내 안에 남는 건 아니구나'라는 문장이 스쳐 갔고 그 자리에서 아이디를 삭제했죠.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 예술과 문학을 '봤다는 사실'을 자랑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영화 DVD를 모으는 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엄청 좋아하는, 영화 관련 일도 했던 세대가 다른 지인 두 명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DVD를 사고 다시 보면서 영화를 즐기고 음미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DVD 가격이 치솟고 있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큰 걱정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전기가 끊기지 않는 한 DVD만 있으면 원하는 작품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다."라고 하며 "내가 사라져도 이 DVD는 내 자손, 혹은 이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이어지지 않겠냐."라는 답을 했습니다. 어쩌면 영화, 드라마를 소유하는 건 이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시청자의 마음이 바탕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의 기억도 유한할 것이고, 우리가 이용하는 영화 관련 서비스는 그 기억보다 짧은 겁니다. 단 한 편이라도 내 마음 속에 기억 남는 작품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작품이 떠오르시나요? 작품이 인상적이어서, 자주 봤기에 바로 장면이 떠오르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나요? 만약 떠오르시는 작품이 없다면 뉴스레터 섬네일로 나왔던 영화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