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OTT 연구소입니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극장에 가는게 전보다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에 맞춰 볼만한 작품도 많이 개봉하고 있고요. 그 와중에 넷플릭스에서는 <오징어 게임>의 뒤를 이을 작품으로 연상호 감독의 <지옥(Hellbound)>을 공개했습니다.
연 감독의 작품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데요. 그의 작품과 이번에 공개된 지옥을 통해 그가 구축한 세계관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연상호가 바라보는 세상
연상호 감독의 최근 극장가 성적과 작품에 관한 평가를 보면 꽤 박합니다. 대부분 <부산행>으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관객들이 '전작에 비해 못하다', '흥행 한 번 하더니 뭔가 느낌이 달라졌다' 등의 반응을 쏟아내고 있죠. 이번 작품에서도 반응은 극적으로 갈립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달리 보고 있어요. 이번 작품이야말로 감독 특유의 성향과 기존에 써왔던 글,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등에서 선보인 여러 모습과 세계관이 잘 구현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독의 세계관을 바라볼 때 어디에 집중해서 보는게 좋을까요?
📼 그의 전작들
연 감독은 단편 애니메이션과 만화 작업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실사 작품으로 만든 <지옥>의 단편 애니 <지옥 - 두 개의 삶>을 비롯해 <돼지의 왕>, <창>, <사이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과 부산행의 시퀄 <서울역>, 애니메이션 <졸업반>, 평단과 관객의 평이 극명하게 갈렸던 <염력>과 <반도>,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지옥>까지 그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사건을 특이한 시발점을 통해 바라보면서 사건을 관조합니다.
그는 사건의 해결보다는 말도 안되는, 혹은 있을 수 있지만 쉽게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 일들을 벌이면서 그에 반응하는 사회와 사람들의 태도에 주목합니다.
그의 작품은 비슷한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좀비의 등장, 수몰 지역에 나타난 사이비 교회, 초능력을 얻은 철거민, 미지의 존재가 사람들을 살해하는 현상까지 설명할 수 없거나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상현상을 맞닿뜨린 사람들은 저마다 삶과 가치관, 이익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죠.
누군가는 이상현상을 고난으로 여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축복으로, 다른 이는 징벌로 여깁니다. 때로는 그저 해결해야할 문제로 보기도 하죠. 그러는 와중에 사람이 개입됩니다.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도,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것도, 이를 해결하는 것도, 사건이 진행되면서 다른 이를 해하는 것도 모두 '사람'이죠.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가보다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고 사건이 진행되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의 해결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무리에 집중하기보다 전개과정에서 볼 수 있는 인간군상을 더 중요하게 다루는 느낌을 지울 수 없거든요.
그가 항상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희망과 대책이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인물들이 하는 대사와 행동이 헬조선에서 모든걸 포기한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작품을 진행하는 상황이 너무 강력하다보니 인물은 평면적이거나 전형적인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아쉽네요.
🔥 그리고 <지옥(Hellbound)>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기존에 그가 이어온 세계관과 비슷한 면모를 보입니다. 인간의 실수로 발생한 사건이 감당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거나 과학적으로 설명이 힘든 자연 또는 초자연 현상을 사회가 겪으면서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지옥> 시즌 1을 감상하고 든 생각은 ‘한국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철학의 부재이고 이것이 도덕적인 신념과 정의를 시험하는 상황과 맞닿으면 무너질 수 있다’ 였습니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종교를 가지고 있는 국민 비율이 50%를 넘지 않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종교가 모든 이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종교가 갖는 철학, 심리적인 위안의 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죠. 우리나라에서는 종교 철학이 약세인 데 반해 이를 대신할 국가 철학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민주화 운동, 독립 운동 등 여러 영향으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찌보면 삶의 기준을 세울만한 철학의 영역이 적기에 ‘정의’를 부르짖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때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불티나게 팔렸던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가 말했던 정의와는 먼 지점에 서있기도 하고요.
드라마 초반부를 이끄는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은 이 점을 파고듭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채 20여년을 살아온 그는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세상에 초래될 혼란을 값진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현상을 조작하려고 합니다.
“너희들은 정의로워야 한다. 더 정의로워져야 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결국 한국 사람들의 가장 약한 고리인 믿을만한 구석을 교묘하게 노린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는 동시에 익명성과 비밀이라는 보호장벽을 걷어내버리면서 사람들의 신념을 더욱 약화시키죠. 약한 고리에 망치질을 가하자 사람들이 갖고 있던 이성의 고리는 끊어지고 맙니다. 새진리회가 한국의 국교처럼 행세하는 모습도 그렇고, 그들이 권력을 쥔채 중세 가톨릭처럼 활보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죠. 사람들의 이성을 공포와 감정으로 채운 게 성공한 셈입니다.
새진리회 제2대 의장인 김정칠이 PD인 배영재와 그의 아내 송소현 사이에 태어난 갓난아기가 시연의 대상이 되었다는 걸 알고 이를 막으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감정을 기반으로 한 공포 통치는 이성이 끊어졌을 때, 단 하나의 의심도 없을 때 완성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 속에 의심이 피어난다면 그 믿음과 두려운 감정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중세 교회 권력이 십자군 전쟁과 르네상스 이후 무너지기 시작했고, 과학혁명 이후 전세계의 여러 종교는 철학과 생활의 영역에 국한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정치, 미디어 모두 같은 양상을 보입니다. 죽음마저 생중계되는 모습은 우리가 항상 TV와 인터넷을 통해 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21세기의 인간에게는 잊혀질 권리도, 죽음을 숨길 권리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죠. 어쩌면 알고리즘과 미디어, 정치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바 역시 의도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진석 의장이 말했던 ‘더 정의로워져야 한다’라는 말처럼 말이죠.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지옥>의 감상평은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들은 최근 종교와 극단적인 정치 성향, 인종차별이 더해지는 유럽과 미국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것을 믿고 의지하는건 그리 낯선 일이 아닙니다. 대신 이로 인해 발생한 역사적 폐해가 많아 항상 경계하고 있죠. 나치를 추종하는 극우정당, 극단적인 종교론자, 미국의 큐어넌 등 수많은 광적 인간들을 드라마와 비교하면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념이 미싱링크(Missing Link)처럼 작용하는 우리나 그 신념으로 인해 채찍질을 당하는 외국의 상황 모두, 연상호 감독이 상상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그 속의 인간군상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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