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뒷걸음질, 반전은 가능할까

서른 두번째 OTT 연구소 보고서 - 개연성과 멀티버스의 덫에 걸린 마블

2021.12.14 | 조회 1.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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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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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OTT 연구소입니다. 올해도 다 지나고 이제 2주 남짓 남았네요. 펜데믹으로 힘든 한 해였지만, 다들 큰일없이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올 한해 수많은 OTT에서 자신들만의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기존에 북미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던 스트리밍 플랫폼 중 일부는 드디어 한국에 정식 서비스를 런칭하기도 했고요.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을 끈건 단연 '디즈니 플러스'였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을 제외하고도 올해 디즈니, 그리고 마블의 스크린 성적은 신통치 않은 편인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들은 15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으로 이를 뒤집을 수 있을까요? 

※ 최근 마블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이유를 먼저 보고 싶은 분들은 가장 아랫부분 항목(개연성과 멀티버스)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21년 12월 15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하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공식 포스터 / 디즈니 공식 홈페이지
2021년 12월 15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하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공식 포스터 / 디즈니 공식 홈페이지

💿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그 후

※ 아래 글에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 일부 디즈니 애니메이션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9년 <어벤져스 : 엔드게임> 이후, 마블의 1차 계획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배우 웨슬리 스나입스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던 <블레이드>, 샘 레이미 감독이 구축한 <스파이더맨> 3부작 이후, 소위 히어로 영화는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2005년부터 시작된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이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는 전례없는 흥행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히어로 장르의 성공이라기보다 놀란 감독 개인의 성과물로 여기곤 했죠. 그리고 마블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등장합니다.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이언맨(왼쪽)과 캡틴 아메리카(오른쪽) / 출처 : <엔드게임> 스틸컷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이언맨(왼쪽)과 캡틴 아메리카(오른쪽) / 출처 : <엔드게임> 스틸컷

 

사실상 시즌 1의 종료와 같았던 <엔드게임>까지 그들의 행보와 계획은 꽤 잘 짜인 느낌을 줬고, 흥행 성적과 평단, 관객의 평가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히어로 영화라는 기존 장르가 'MCU'로 대체했다는 기분마저 느끼게 했죠. 하지만 디즈니와 마블의 작품들을 담은 OTT '디즈니 플러스'의 등장과 함께 마블은 새로운 계획을 발표합니다. 모든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는게 영화시장이지만, 새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역풍을 겪었습니다. 우선 흥행성적에서 참패했습니다. 


🎭 스코어로 보는 성장 둔화와 흥행 참패

영화 <이터널스> 포스터
영화 <이터널스> 포스터

 

※ 월트디즈니 4분기 성적 관련 기사 (2021년 11월 12일, 인포스탁데일리)

월트디즈니는 2021회계연도 4분기 실적으로 매출 185억 달러, 영업이익 16억 달러, 조정 EPS 0.37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6%, 영업이익은 162% 늘었고 EPS도 흑자 전환에 성공했죠. 하지만 시장 기대치보단 실적 전반이 나빴다고 보여집니다. 매출이 1.3%, 영업이익은 15.3%, EPS는 24.3%나 낮았기 때문이죠. 가장 큰 타격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부문입니다. 관련 분야에서 영업이익이 9억5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9% 감소했습니다. 

(디즈니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부문 손익에는 디즈니의 영화, 드라마와 함께 스트리밍 플랫폼(디즈니 플러스) 이익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 스틸컷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 스틸컷

팬데믹 시기인 점을 감안해도 블랙위도우, 샹치, 최근에 개봉한 이터널스까지 예상 외의 저조한 흥행 스코어로 불안감을 키웠죠. 또한, 3분기까지 상승세를 보이던 디즈니플러스 구독자 수도 증가세가 둔화되었습니다. 1억 1810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7370만 명)와 비교했을 때 60% 늘어난 수치이지만 전분기 1억 1600만 명에 비해서는 210만 명 늘어난 것에 지나지 않아 '디즈니 플러스에 가입할 사람은 다 가입했다'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MCU와 마블 코믹스의 마니아 층의 이탈 조짐이 이어지고 있어 디즈니에 비상이 걸린 상태입니다.


🎫 다양성의 문제라기보다 개연성의 문제다

'인피니티 사가(Infinity Saga)'로 불리던 페이즈 3 이후 앞서 언급한 페이즈 4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MCU의 큰 줄기를 이어온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퇴장했습니다. 마블은 스토리의 다양성을 주고 젊은 배우들을 장기적으로 양성하겠다는 계획에서 이들을 자연스럽게 퇴장시켰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출연료 문제가 가장 컸을겁니다.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코코>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코코>

 

Ⅰ. 결국 돈이 문제

아이언맨을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엔드게임> 출연료는 5000만 달러(약 568억 원)고, 캡틴 아메리카 역의 크리스 에반스 역시 800만 달러(약 90억 원)에 이릅니다. 엔드게임에서 퇴장한 또다른 배우인 스칼렛 요한슨(블랙 위도우)도 1000만 달러(약 113억 원)의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토르:다크월드> 이후부터 아이언맨 시리즈 외에도 아이언맨의 수익을 뛰어넘는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위험부담을 안고서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마블에서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케빈 파이기는 '아이언맨의 서사가 이정도면 충분히 잘 그려졌다'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여러번 하기도 했죠. 질릴 때가 우려먹기보다 박수칠 때 떠나보내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익에도 불구하고 출연료로 더 많은 금액이 나간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고려 대상이 될 수밖에 없죠. 다만, 지금까지 결과를 보면 득보다는 실이 크게 느껴집니다. 

 

Ⅱ. 다양성 전략이 하락세의 원인? 글쎄?

마블의 모회사인 디즈니는 픽사와 드림웍스의 활약, 그리고 사회 분위기가 크게 바뀌면서 자신들의 전략을 조금씩 수정합니다. 백인으로 대표되는 천편일률적인 인물의 이미지들을 다양한 인종, 계층, 소수자를 위한 표현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죠. 1995년 <포카혼타스>를 시작으로 디즈니는 장편 애니메이션 주인공과 등장 인물들을 조금씩 바꿔 왔습니다. <뮬란>,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 <모아나>, <코코>를 보면 인종 뿐만 아니라 과거 순종적인 여성상, 전형적인 공주의 모습에서 주도적인 여성으로 변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죠. 

변화의 물결은 같은 디즈니 작품인 마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대표적으로 <엔드게임> 전투 장면에서 원작 코믹스 속 여성 히어로 집단인 '에이포스(A-Force)'를 연상시키는 모습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 여성 히어로를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전략을 공표한 셈입니다. 

원작 코믹스의 '에이포스(A-Force)'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 / <어벤져스 : 엔드게임> 스틸컷
원작 코믹스의 '에이포스(A-Force)'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 / <어벤져스 : 엔드게임> 스틸컷

세상의 변화를 작품에 반영하는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모두가 원하고 인정하는 물결이기에 개인적으로도 당연히 수용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디즈니와 마블이 채택한 방식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여성 히어로와 유색인종 히어로를 내세우는데 그들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이야기를 쌓아가는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대표 인물들을 끌어내리거나 없애버리고 가져다 붙이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향후 어벤져스 집단을 이끌어갈 인물은 배부 브리 라슨이 연기하는 캡틴 마블이 될 전망입니다. 실제 코믹스에서도 캡틴 마블은 상당히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캐릭터입니다. 스파이더맨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기도 하고요. 

 

Ⅲ. 개연성을 말아먹은 서사가 문제

코믹스에서도 '시빌워 2'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캡틴 마블입니다. 아이언맨과 대립각을 세우기 충분한 이야기와 근거,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죠. 그런데 지금까지 MCU에서는 뜬금없이 튀어나오고 갑자기 공석을 차지한 느낌이 큽니다. 드라마 <팔콘과 윈터솔저>에 나오는 팔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그가 아닌 버키 반즈(윈터솔저)에게 방패를 넘겨주는게 당위성에서 더 맞다는 의견이 우세하죠. 물론 이는 드라마의 빌드업을 통해 일정 부분 해소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팔콘과 윈터솔저> 스틸컷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팔콘과 윈터솔저> 스틸컷

<토르 4 : 러브 앤 썬더>에 출연하면서 말이 많은 나탈리 포트만 역시 기존의 MCU 세계관에 불만을 품었다가 여성 주인공으로 섭외된다는 소식에 복귀한 경우라서 팬들은 '자기 입맛대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배우 한명에 국한된 이야기니 넘어가도록 하죠.

차기 아이언맨으로 내정된 아이언하트 캐릭터도 비슷합니다. 흑인 소녀인 리리 윌리엄스가 토니 스타크의 슈트를 고쳐서 아이언 하트로 거듭난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미 <아이언맨3>와 <엔드게임>에서 모습을 보인 할리 키너 캐릭터가 있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 전개와 묘사 없이 굳이 새로운 캐릭터를 가져와야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극중 토니 스타크와 정서적 교류가 없는 인물이 나오는게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다만, '여성 히어로 캐릭터 때문에 마블이 망가지고 있다'라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무리하게 새 캐릭터를 도입하려다가 개연성을 신경쓰지 않았고, 전체적인 세계관과 서사에 악영향을 끼쳤다'라고 보는게 더 정확할겁니다.

이는 몇 해 전부터 코믹스를 중심으로 진행된 서사입니다. 일부 팬들은 다양성 서사의 확장이 마블을 망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2017년 3월 31일 ICv2와 인터뷰한 마블 코믹스의 영업 및 마케팅 담당 수석 부사장인 데이빗 가브리엘(David Gabriel)의 기사를 인용하곤 합니다. 

코믹스 <인빈시블 아이언맨>과 마일리 모랄레스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코믹스 <인빈시블 아이언맨>과 마일리 모랄레스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그는 인터뷰에서 "독자들은 더 이상 여성 캐릭터를 원하지 않는다는 소매상들의 의견을 들었고, 그것이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부진한 판매량이 입증하고 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이후, "유색인종, 여성 히어로 캐릭터가 마블을 망치는 것이냐"라며 반론이 거세게 일었고 당시 편집장이었던 액슬 알론소를 비롯한 마블 담당자들은 "오해에서 비롯된 말"이라면서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의 서사를 이어갈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코믹스에서의 부진은 <시크릿 워즈> 판매가 진행되고 부터 꾸준히 이어오던 흐름입니다. 그리고 각종 게임,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주 나오는 '올 디퍼런트 마블 나우(All-New, All-Different Marvel Now)'라는 말이 무색하게 무색무취의 이야기로 팬들을 대하고 있죠. 오히려 마이티 토르(여성 토르, 이번 토르 4편의 원작), 인빌시블 아이언맨(아이언하트), 마일리 모랄레스의 스파이더맨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시리즈가 기존의 책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 개연성과 멀티버스

팬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게 코믹스나 영화 모두의 성패를 좌우할 열쇠가 될 것입니다. 기존 서사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축을 뺀 대신 다른 기둥을 세워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당위성이나 논리에 있어 애매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의견이 꽤 있습니다. 

앞서 말한 차기 캡틴 아메리카의 의견도 그렇고, 이미 만화에서 큰 실패를 맛본 <시크릿 워즈>를 영화 서사로 가져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더해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검증된 캐릭터를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특징을 살리고 대립하며 그만의 캐릭터성을 구축하면 모두가 납득할만 한데 이러한 과정없이 무작정 새로운 캐릭터를 세워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만족할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보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로키>에서 시작된 멀티버스 세계관
드라마 <로키>에서 시작된 멀티버스 세계관

개인적으로 현재 매출이 급감하고 많은 팬이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 기존 서사의 중심을 구성하던 인물이 빠지고 이를 채우는 과정에서 생긴 공백.
  • 기존 인물을 새 인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그려왔던 서사를 배제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덧붙여 생긴 애매모호함.
  • 코믹스에서 큰 실패를 맛보았던 <시크릿워즈>처럼 복잡하기만 하고 알맹이는 없는 이벤트성 서사를 재탕하는 듯한 느낌.
  • 히어로 영화 특유의 휘발성 강하고 영웅 중심의 세계관과 서사에서 벗어난 조금은 어색한 작품 구성.
  • 멀티버스라는 양날의 검을 꺼냈는데 이게 잘 사용될지 미지수.

 

예전부터 거대한 세계관을 유지하는 영화 시리즈들은 그 세계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변용이 이뤄져 왔습니다. 최근에 다시 만들어진 스타워즈가 <로그원>을 제외하고, 욕이란 욕을 다 얻어먹은 것도 바꿀거면 잘 바꿔야하는데 이도저도 아닌 걸 만들어 낸 것에 대한 반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블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이유와 함께 뭐만 하면 "멀티버스니까 다 돼. 멀티버스니까 이해해"라고 말한다면 점점 팬은 떨어져 나갈게 뻔합니다. 코믹스와 달리 영화는 우선 한 작품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충분히 이해가야 하니까요. 아무리 공부하면서 콘텐츠를 보는 시대라고 하지만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는 역풍으로 다가올겁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판권 행사에 걸림돌을 줄이려고 '멀티버스'라는 치트키를 꺼낸건 좋지만, <베놈 2 : 렛 데어 비 카니지>처럼 망가진 모습을 보인다면 그게 디즈니건 소니건 참패를 맛볼건 뻔합니다. 관객은 물론, 골수 팬일수록 더 냉정한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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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재밌는 정보와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OTT 연구소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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