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아무리 훈련해도 뇌는 멀티태스킹을 못 한다

연습하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통념, 새 연구가 정면으로 반박했어요.

2026.03.17 |
from.
Kwangseob
오즈의 지식토킹의 프로필 이미지

오즈의 지식토킹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주로 기술, 인문학,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들어가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오스왈드의 지식토킹이에요.

오늘은 심리학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멀티태스킹"이라는 단어, 한국 직장인에게는 거의 생존 스킬처럼 여겨지죠. 슬랙 메시지 확인하면서 회의록 정리하고, 이메일 쓰면서 다음 미팅 자료를 훑어보는 일상. 이게 가능한 이유가 '숙련'이라고 믿는 분들이 많아요. 실제로 인지심리학[1]​에서도 오랫동안 "충분히 연습하면 두 가지 작업을 거의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주류였어요.

그런데 올해 발표된 한 연구가 이 30년 된 믿음을 정면으로 뒤집었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리 오래 훈련해도 뇌의 '병목'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발견은 단순한 학술적 호기심을 넘어서, AI가 인지 노동[2]​을 대체하기 시작한 지금 시점에 꽤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어요.

12일간의 훈련, 그리고 무너진 '완벽한 시간 분할' 가설

첨부 이미지

이번 연구는 독일 할레-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 대학교의 토르스텐 슈베르트(Torsten Schubert) 교수팀이 수행했어요. 하겐 페른대학교, 함부르크 메디컬 스쿨과의 공동 연구로, Quarterl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에 게재되었죠.

실험 설계는 꽤 직관적이에요. 참가자들에게 시각-수동 과제(화면에 잠깐 나타나는 원의 크기를 오른손으로 표시)와 청각-음성 과제(동시에 들려오는 소리가 높은지, 중간인지, 낮은지 말하기)를 동시에 수행하게 했어요. 서로 다른 감각 채널을 사용하는 두 가지 과제인 셈이에요.

핵심은 훈련 기간이에요. 참가자들은 최대 12일간 이 이중과제[3]​를 반복했어요. 결과적으로 반응 속도는 빨라졌고, 오류도 줄었어요. 여기까지는 기존 연구와 동일한 패턴이에요. 과거 연구들은 이 현상을 "거의 완벽한 시간 분할(virtually perfect time sharing)"이라 불렀고, 뇌가 두 작업을 진정으로 병렬 처리[4]​할 수 있게 된 증거라고 해석했어요.

하지만 슈베르트 교수팀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갔어요. 훈련 후에 과제의 응답 선택 단계(response selection stage)[5]​ 소요 시간을 인위적으로 변경한 거예요. 쉽게 말하면, 잘 훈련된 루틴에 아주 작은 변화를 주었어요.

결과는 극적이었어요. 짧은 과제의 병목 단계를 늘리면 긴 과제의 반응 시간까지 함께 늘어났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았어요. 이건 두 과제가 여전히 하나의 병목을 순차적으로 통과하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예요. 연습이 병목을 '제거'한 게 아니라, 병목 앞뒤의 처리를 워낙 빠르게 만들어서 겉으로 보이지 않게 숨긴 것뿐이라는 거죠.

슈베르트 교수는 이렇게 설명해요. 뇌는 두 과정의 순서를 최적화해서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배열하는 데 뛰어나다고요. 하지만 이 최적화에는 한계가 있고, 상황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인지 체계는 빠르게 지치고 오류가 늘어난다는 거예요.

'잠재적 병목' 모델 — 사라진 게 아니라 숨어 있었다

이 연구가 제안하는 이론적 프레임워크를 '잠재적 병목(latent bottleneck) 모델'이라고 해요. 핵심 개념을 풀어보면 이래요.

인간의 뇌에는 두 가지 과제가 동시에 통과할 수 없는 중앙 처리 병목이 있어요. '응답 선택'이라 불리는 단계인데, "이 자극에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에요. 이 병목은 구조적이에요. 즉, 전략을 바꾸거나 동기를 높인다고 해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오랜 연습은 이 병목 자체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병목 앞단계(자극 인식)와 뒷단계(반응 실행)의 처리 속도를 극도로 단축시켜요. 결과적으로 두 과제가 병목을 거의 동시에 통과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과제 조건이 조금만 바뀌면 — 예를 들어 응답 선택에 걸리는 시간이 살짝 늘어나면 — 숨어 있던 병목이 즉시 다시 드러나요.

이건 비유하면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비슷해요. 차량 흐름이 아무리 최적화되어도 톨게이트의 차선 수는 변하지 않아요. 평소에는 차가 적어서 병목이 안 느껴지지만, 교통량이 조금만 늘면 정체가 시작되죠. 뇌의 중앙 처리도 마찬가지예요.

이 발견은 인지심리학의 오랜 논쟁인 "병목은 구조적인가, 전략적인가"[6]​에 대해 구조적 한계 쪽에 무게를 실어주는 결과예요. 그리고 이전 연구들이 "병목 제거"의 증거라고 해석했던 현상을, 병목의 '은폐'로 재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요.

이 연구가 지금 중요한 이유?AI가 인지 노동을 나눠 갖기 시작했으니까

여기서 잠깐 시선을 돌려볼게요. 이 연구가 발표된 시점이 공교롭게도, AI가 직장인의 인지 노동을 실질적으로 분담하기 시작한 2025년이에요.

McKinsey는 AI의 장기적 생산성 증가 잠재력을 4.4조 달러(약 6,400조 원)로 추산하고 있어요. ActivTrak의 2025년 직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의 58%가 이미 AI 도구를 업무에 사용하고 있고, 이는 2022년 대비 107% 증가한 수치예요.

그런데 같은 보고서에서 흥미로운 데이터가 나와요. AI 도구 도입 이후 협업 시간은 27% 증가했고, 멀티태스킹은 5% 늘었지만, 집중 효율(focus efficiency)[7]​은 65%에서 62%로 오히려 떨어졌어요. 생산적인 시간은 2% 늘었지만, 집중 세션의 평균 길이는 8% 줄었어요.

이 데이터를 슈베르트 교수팀의 연구와 겹쳐 보면, 한 가지 불편한 그림이 그려져요. AI가 업무의 일부를 자동화해주면서 "비어진 인지 자원"을 다른 작업에 투입하는 방식 — 즉, AI 보조 멀티태스킹 — 이 생각만큼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AI가 보고서 초안을 써주는 동안 다른 작업을 하면 생산성이 두 배가 될 거라는 기대. 이건 "연습하면 병렬 처리가 가능해진다"는 가설과 구조적으로 같은 전제에 기반하고 있어요. 하지만 잠재적 병목 모델이 맞다면, 우리 뇌의 응답 선택 단계는 AI가 아무리 도와줘도 여전히 한 번에 하나의 결정만 처리할 수 있어요.

함부르크 메디컬 스쿨의 틸로 슈트로바흐(Tilo Strobach) 교수는 이 연구의 안전 연구 함의를 강조해요. "우리의 결과는 운전 중 통화처럼, 일상에서 루틴화되었다고 생각하는 멀티태스킹이 왜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요. 항공 관제사나 동시통역사처럼 여러 과제를 병렬로 수행해야 하는 직업군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돼요."

오스왈드의 시선

우리가 늘 하는 가장 큰 실수를 만들어낸 패턴이 있었어요. "이 팀은 숙련되었으니까 동시에 두 개 프로젝트를 돌릴 수 있을 거야"라는 판단이었어요. 숙련된 팀은 실제로 두 프로젝트를 돌리는 것처럼 보여요. 리포트도 나오고, 미팅도 하고, 마일스톤도 찍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 클라이언트가 예상 밖의 요구를 하거나, 시장 상황이 급변하거나, 팀원 한 명이 빠지거나 — 작은 변수 하나에 전체 퍼포먼스가 무너지는 걸 봐왔어요. 이 연구가 말하는 "잠재적 병목이 드러나는 순간"과 정확히 같은 구조예요.

제가 주목하는 건 AI 시대의 업무 설계에 대한 시사점이에요. 지금 많은 조직이 "AI가 반복 업무를 처리하니까 사람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전제로 업무를 설계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 연구가 보여주듯, 인간의 인지 병목은 작업의 난이도가 아니라 작업의 수에 의해 활성화돼요. AI가 아무리 인지 부하[8]​를 줄여줘도, 두 가지 의사결정을 동시에 하는 건 여전히 불가능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봐요. AI 시대에 진짜 생산성 향상은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한 번에 하나의 일에 더 깊이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에요. AI의 가치는 멀티태스킹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데 있어요.

마치며

정리하면 이래요. 첫째, 아무리 훈련해도 뇌의 중앙 처리 병목은 사라지지 않아요. 빨라질 뿐, 없어지지 않아요. 둘째, 멀티태스킹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는 병목이 제거된 게 아니라 은폐된 것이고, 작은 변수에 즉시 무너져요. 셋째, AI가 인지 노동을 분담하는 시대일수록, 업무 설계의 핵심은 "더 많은 일"이 아니라 "더 깊은 집중"이에요.

다음에 슬랙 알림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기획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한번 떠올려보세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뇌 어딘가에서 톨게이트 앞에 두 대의 차가 줄 서 있다는 걸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각주

  1. [1]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 인간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예요. "우리 뇌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실험으로 밝히는 학문이라고 보면 돼요.
  2. [2] 인지 노동(Cognitive Labor): 신체가 아닌 두뇌를 주로 사용하는 업무를 뜻해요. 데이터 분석, 보고서 작성, 의사결정, 전략 수립 같은 지식 노동이 대표적이에요. AI가 대체하기 시작한 영역이 바로 이 인지 노동의 일부(요약, 초안 작성, 패턴 인식 등)예요.
  3. [3] 이중과제(Dual-Task):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실험 방식이에요. 일상적으로 "운전하면서 전화하기"가 대표적인 이중과제예요. 연구에서는 두 과제의 감각 채널(시각/청각)이나 반응 방식(손/목소리)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설계해서, 간섭이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정밀하게 측정해요.
  4. [4] 병렬 처리(Parallel Processing): 여러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는 방식이에요. 컴퓨터에서는 멀티코어 CPU가 여러 프로그램을 진짜 동시에 돌릴 수 있지만, 인간의 뇌는 특정 인지 단계에서 이게 불가능하다는 게 이번 연구의 핵심이에요. 반대 개념은 순차 처리(한 번에 하나씩 처리)예요.
  5. [5] 응답 선택 단계(Response Selection Stage): 자극을 인식한 뒤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지 과정이에요. 예를 들어,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는 걸 눈으로 인식(자극 인식)한 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판단(응답 선택)하고, 실제로 발을 움직이는(반응 실행) 세 단계 중 가운데에 해당해요. 이 연구에서는 바로 이 단계가 병목의 핵심 위치라고 봐요.
  6. [6] 구조적 병목 vs. 전략적 병목 논쟁: 인지심리학에서 이중과제 간섭이 뇌의 물리적 구조에서 오는 것(구조적)인지, 아니면 사람이 자발적으로 한 과제를 먼저 처리하려는 전략에서 오는 것(전략적)인지를 둘러싼 30년 넘은 학술 논쟁이에요. 이번 연구는 구조적 한계 쪽을 지지하는 결과예요.
  7. [7] 집중 효율(Focus Efficiency): ActivTrak이 사용하는 지표로, 전체 업무 시간 중 방해 없이 하나의 작업에 몰입한 시간의 비율이에요. 예를 들어 8시간 근무 중 5시간이 집중 시간이면 집중 효율은 약 63%예요. 이 수치가 높을수록 딥워크(deep work) 시간이 많다는 의미예요.
  8. [8] 인지 부하(Cognitive Load): 어떤 작업을 수행할 때 뇌에 걸리는 정신적 부담의 크기를 말해요. 쉬운 작업(익숙한 길 운전)은 인지 부하가 낮고, 어려운 작업(처음 가는 곳에서 내비 보며 운전)은 높아요. AI 도구는 반복 업무를 대신 처리해 인지 부하를 줄여주지만, 이번 연구에 따르면 인지 부하가 줄어도 '동시에 두 가지를 결정하는' 병목 자체는 해소되지 않아요.
첨부 이미지

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KBMA와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오즈의 지식토킹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오즈의 지식토킹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주로 기술, 인문학,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뉴스레터 문의newsletter@oswarld.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