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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피터 틸 요즘 뭐해? 실리콘밸리의 이론이 국가 단위 실험장을 찾았어요

체스 3등이 된 억만장자의 플랜B

2026.06.03 |
from.
Kwangseob

들어가며

구독자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체스 클럽에서 벌어진 일이에요. 회계사, 대학생, 초등학생들 사이에 낯선 참가자가 끼어 앉았어요. 피터 틸. 페이팔 공동 창업자이자 팔란티어 회장, 순자산 약 110억 달러의 억만장자였어요. 결과는 3등이었고, 같이 경기한 참가자에 따르면 "나쁘지 않게" 뒀다고 해요.

그런데 이건 관광객의 한나절 취미가 아니에요. 피터 틸은 지난 두 달간 밀레이 대통령과 회동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최고급 주택가에 저택을 사고, 자녀를 현지 학교에 등록시켰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건 억만장자의 절세 이민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에서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자유지상주의[1]​가 국가 단위 실험장을 찾은 사건이에요.

개인적으로 재밌게 보는 사람이 피터 틸, 밥 아이거, 짐 매켈비, 잭 도시 등이 있는데요. 일론 머스크나 젠슨 황, 마크 주커버그는 언론의 관심이 많다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언론이 보도를 뜨겁게 하는 방면 앞서 말한 이들은 약간 뒤로 물러났다보니 열심히 안찾아 보면 뭐하는지 잘 안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열심히 찾아보는 편인데 최근 피터 틸이 하고 있는게 재밌어서 이번 레터에서 풀어보고자 해요.

캘리포니아를 밀어낸 힘, 아르헨티나가 끌어당긴 힘

틸의 아르헨티나 행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흐름을 동시에 봐야 해요.

밀어내는 힘부터 볼게요. 캘리포니아에서 올 11월 투표에 부쳐질 '억만장자 부유세법(2026 Billionaire Tax Act)'은 순자산 10억 달러 이상인 거주자에게 일회성 5% 부유세를 매기는 법안이에요. 기준일은 2026년 1월 1일로 소급 적용되고요. 단순히 5%라고 하면 크지 않아 보이지만, 이 세금은 의결권 지분 기준으로 부과돼요. 이중 의결권 주식 구조를 가진 테크 창업자에게는 실질 세율이 훨씬 높아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구글 지분 3%를 보유하지만 의결권 30%를 통제하는 래리 페이지의 경우, 30% 전체에 과세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요.

이 법안이 공개된 직후 벌어진 일이 인상적이에요.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캘리포니아 법인 45개를 폐쇄하고 마이애미에 1억 7,300만 달러 부동산을 매입했어요. 세르게이 브린은 투자 LLC 15개를 네바다로 이전했고요. 마크 저커버그도 플로리다에 저택을 샀어요. 캘리포니아의 추정 억만장자 214명 중 최소 6명이 기준일 전후로 주를 떠났어요. 벤처 투자자 벤 호로위츠는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실리콘밸리 네트워크 효과를 깨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 세금이야말로 내가 본 최고의 전략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캘리포니아에 남겠다고 밝혔고, 에어비앤비 CEO 브라이언 체스키도 마찬가지예요.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의 차이가 흥미로운데요. 대체로 하드웨어·플랫폼 기업의 창업자는 남고, 금융·투자 중심의 자산가가 떠나는 패턴이 보여요. 틸도 후자에 해당하고, 그가 택한 목적지가 아르헨티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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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기는 힘도 만만치 않아요. 하비에르 밀레이[2]​ 대통령 취임 이후 아르헨티나의 거시 경제 지표는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어요. 연간 인플레이션이 2023년 200%대에서 2025년 말 약 32%로 내려왔고, 2025년 GDP 성장률은 4.4%를 기록했어요. 정부 기관 10곳을 폐지하고, 공무원 3만 4,000명을 해고하고, 재정 지출을 30% 삭감했어요. 국가 위험도 지표는 취임 전 2,000bp에서 현재 약 500bp까지 하락했고요. 밀레이 본인은 올해 의회 개원 연설에서 "아르헨티나를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90개 개혁 법안을 예고했어요. 미국과의 자유무역 투자 협정(ARTI)도 6개월 만에 협상을 마무리했고요. 다만 이 수치들의 이면도 있어요. 경제자유도 지수에서 아르헨티나는 오히려 99위에서 104위로 하락했는데, 밀레이 측근의 부패 의혹과 지방 정부 수준의 거버넌스 문제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에요.

밀레이의 각료실장 마누엘 아도르니는 의회에서 틸의 이주에 대해 이렇게 답했어요. "규제가 늘고, 세금이 오르고, 시민을 박해하는 나라에서 도망치고 싶은 전 세계 억만장자는 아르헨티나 공화국, 새로운 자유의 땅에 환영합니다." 정부는 50만 달러 이상 투자자에게 거주 요건 없이 시민권을 부여하는 '투자 시민권 프로그램'을 2026년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설계 중이에요.

해상 도시에서 실제 국가로: 17년의 경로

사실 틸이 '기존 국가 바깥에서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건 어제오늘이 아니에요. 아르헨티나는 17년에 걸친 시행착오의 최신 버전이에요.

2008년, 틸은 시스테딩 연구소(Seasteading Institute)[3]​에 125만 달러를 기부했어요. 밀턴 프리드먼의 손자 패트리 프리드먼이 공동 설립한 이 단체의 목표는 공해(公海)에 독립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었어요. 정부의 규제와 세금이 닿지 않는 바다 위의 자유지상주의 유토피아. 매력적인 사고 실험이었지만, 2017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시도한 프로젝트가 현지 주민의 반발로 좌절되면서 사실상 실현되지 못했어요.

이듬해인 2009년, 틸은 케이토 연구소에 기고한 에세이 <자유지상주의자의 교육(The Education of a Libertarian)>에서 결정적인 한 문장을 썼어요. "나는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리고 자유지상주의자의 과제는 정치 '안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바깥으로' 탈출하는 것이라고 선언했어요. 탈출 경로는 세 가지(사이버 공간, 해상 도시, 우주)였고요. 이 에세이는 실리콘밸리 자유지상주의 진영의 사실상의 선언문이 됐어요.

2022년에는 틸과 가까운 발라지 스리니바산[4]​이 <네트워크 국가(The Network State)>를 출간했어요. 온라인 커뮤니티가 공유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크라우드펀딩으로 물리적 영토를 확보하고, 기존 국가로부터 외교적 승인을 받는다는 구상이에요. 스리니바산은 실제로 싱가포르 인근 섬을 매입해 '네트워크 스쿨'이라는 실험 공동체를 운영 중이고요. 마크 앤드리슨과 틸의 Founders Fund가 출자한 '프로노모스 캐피탈(Pronomos Capital)'은 전 세계 자율 도시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어요.

해상 도시 → 사상적 선언 → 디지털 국가론 → 그리고 이제, 이미 개혁 중인 실제 국가. 이 17년의 궤적을 이어서 보면, 틸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주는 충동적 결정이 아니에요.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이후 밀레이의 규제 완화 장관 페데리코 스투르체네게르의 자택에서 만찬을 했고, 경제부 장관 루이스 카푸토와도 별도 면담을 가졌어요. 지난달에는 대통령 관저에서 밀레이와 직접 만났고, 현지 경제학자·지식인들을 자택에 초대해 아르헨티나 경제사를 논의하다가 대화 주제가 '적그리스도(Antichrist)'로 넘어갔다고 해요. (피터 틸이 즐겨 꺼내는 주제 중 하나예요.)

베타 테스트 국가의 가능성과 그림자

틸과 밀레이의 대면을 밀레이 본인은 이렇게 요약했어요. "무정부 자본주의자가 또 다른 무정부 자본주의자를 만났고, 그 사람은 실제로 무언가를 실현하고 있었다." 이 한마디가 흥미로운 건, 지금까지 자유지상주의 실험이 좌절된 이유가 정확히 여기에 있기 때문이에요. 물 위에 나라를 세우거나 블록체인으로 디지털 국가를 선언하는 것보다, 이미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기존 국가에 올라타는 게 훨씬 현실적이니까요.

밀레이의 아르헨티나는 해상 도시나 네트워크 국가가 갖추지 못한 조건을 이미 보유하고 있어요. G20 회원국의 국제적 위상, 현직 대통령의 이념적 동조, 대규모 규제 완화의 실행 이력,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제도적 인프라까지요.

물론 아르헨티나가 안정적인 실험장인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예요. 한 세기 가까이 군사 쿠데타와 금융 위기가 반복된 나라거든요. 2025년 GDP 4.4% 성장이라는 헤드라인 뒤에는, 농업이 25% 급성장한 반면 제조업은 2.6% 역성장하고 소매업은 3.2% 하락한 '2속도 경제'가 있어요. 2026년 하반기에는 대규모 외채 상환이 예정되어 있어서, IMF도 외환보유고 순증 40억 달러라는 까다로운 목표를 설정해뒀고요.

틸의 친구이자 스페인계 아르헨티나 출신 테크 기업인 마르틴 바르사프스키는 아예 멘도사에 대규모 목장을 매입했어요. 그가 한 말이 이 상황을 압축해요. "중국이 대만을 가져가거나 러시아가 리투아니아를 가져가는 순간,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을 것이다. 문명의 플랜B를 갖는 건 좋은 일이다." 이건 자유지상주의 실험을 넘어, 북반구 리스크 회피라는 더 원초적인 동기와도 맞닿아 있어요.

아르헨티나 국내 반응은 극명하게 갈려요. 밀레이 지지자들은 틸의 이주를 외국인 투자 유치의 증거로 환영하지만, 비판 진영의 시각은 다르죠. 아르헨티나 정치인 엘리사 카리오는 "피터 틸이 하는 일은 끔찍하다"고 썼고, 일부에서는 그가 내년 대선에 개입하거나 팔란티어를 통해 아르헨티나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어요. 틸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저택 맞은편에는 아르헨티나의 유명 배우의 집이 있고, 이웃 나라 우루과이에도 대규모 토지를 매입했는데요. 일각에서는 그 토지에 핵전쟁 대비 벙커를 건설할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어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현상이 단순한 '부자의 도피'라는 프레임으로 읽히는 게 아깝다고 생각해요.

기술 전략을 수립하면서 반복적으로 관찰했던 패턴이 있어요. 초기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요. 시장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쪽과, 불완전한 시장을 직접 설계하려는 쪽. 틸은 명확하게 후자예요. 해상 도시가 실패하니 디지털 국가론으로 선회했고, 그것도 현실화가 느리니 이미 개혁 중인 기존 국가를 택한 거예요.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5]​을 정치 이념에 적용한 셈이에요.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건 두 가지예요. 첫째, 자유지상주의가 더 이상 학술 세미나의 사고 실험이 아니라 실제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이에요. 둘째, 이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국가를 선택하는' 초부유층의 행동 패턴 자체가 21세기 주권 개념을 흔들고 있다는 점이에요.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고, 뉴질랜드·몰타 시민권을 확보하고, 이제 아르헨티나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에게 '국적'이란 정체성이 아니라 포트폴리오의 한 줄이에요.

다만 한 가지 냉정하게 짚을 부분이 있어요. 밀레이 개혁의 거시 지표는 인상적이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아르헨티나인 69%,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35%의 현실은 별도의 이야기예요. '자유의 실험장'이 누구의 자유를 위한 것인지는 계속 물어봐야 할 질문이에요.

마치며

정리해 볼게요.

피터 틸의 아르헨티나 이주는 세 겹의 의미를 갖고 있어요. 캘리포니아 부유세라는 즉각적 동기, 밀레이라는 이념적 동지, 그리고 17년간 이어진 자유지상주의 '탈출 프로젝트'의 가장 현실적인 착지점. 이건 억만장자 한 명의 이사가 아니라, 기술 엘리트 계층이 국가와 맺는 관계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예요.

다음에 이 주제를 다시 다룬다면, 그 반대편 자국을 떠나는 부유층 때문에 세수가 줄어드는 국가들의 대응 전략을 이야기해 볼게요. (원하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구독자님은 '국적을 고를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직접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목격한 사례가 있다면 댓글로 들려주세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각주

  1. [1]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정치 철학이에요. 세금, 규제, 복지 지출 축소를 핵심 의제로 삼아요.
  2. [2]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2023년 취임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에요. 스스로를 '무정부 자본주의자'라 칭하며, 정부 기관 폐지와 급진적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이에요.
  3. [3] 시스테딩 연구소(Seasteading Institute): 공해(公海)에 독립적인 해상 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2008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예요. 기존 국가의 법과 규제가 미치지 않는 새로운 사회 실험을 지향했어요.
  4. [4] 발라지 스리니바산(Balaji Srinivasan): 코인베이스 전 CTO이자 실리콘밸리 투자자예요. 2022년 『네트워크 국가』를 출간하며, 온라인 커뮤니티가 물리적 영토를 확보해 새로운 형태의 주권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5. [5]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 특정 제품이 시장의 실제 수요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상태를 가리키는 스타트업 용어예요. 여기서는 자유지상주의라는 '제품'이 아르헨티나라는 '시장'을 찾았다는 비유로 사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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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KBMA와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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