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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앤트로픽(Anthropic)이 연봉 4억 카피라이터를 뽑는 이유

쓰는 건 AI가 하지만, 풀어내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에요

2026.05.26 |
from.
Kwangseob

들어가며

구독자님, 지난주 흥미로운 채용 공고가 하나 올라왔어요. AI 기업 앤트로픽이 카피라이터를 찾고 있는데, 연봉이 최대 32만 달러예요. 한화로 약 4억 4천만 원이에요.

그런데 같은 회사에 최근 합류한 안드레이 카파시[1]​는 불과 두 달 전, 미국 342개 직종의 AI 대체 가능성을 분석한 도구를 공개했어요. 거기서 카피라이터의 노출도 점수는 10점 만점에 8~9점. "AI에 가장 취약한 직업군" 중 하나였죠.

AI가 대체할 거라고 평가한 직업에, 같은 회사가 역대급 연봉을 제시하고 있어요. 이건 모순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역설의 답은 '쓰는 능력'과 '풀어내는 능력'이 전혀 다른 기술이라는 데 있어요.

🔍 같은 회사에서 나온 두 개의 신호

올해 3월, 카파시는 미국 노동통계국(BLS) 데이터를 기반으로 342개 직종의 AI 노출도를 0~10점으로 평가한 인터랙티브 도구를 공개했어요. 핵심 기준은 단순했어요. "이 일을 집에서 노트북 하나로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점수가 높아요.

카피라이터, 작가, 편집자는 8~9점을 받았어요. 소프트웨어 개발자(8~9점), 경영 분석가(9점)와 같은 수준이에요. 반면 지붕 수리공이나 미용사는 0~1점이었어요. 화면 앞에서 디지털 결과물을 만드는 직업일수록 AI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그런데 5월 22일, 같은 앤트로픽이 기업 고객 대상 메시지 전략을 담당할 카피 리드(Copy Lead) 직무를 공개했어요. 연봉 25만 5천~32만 달러. 별도로 카피 및 콘텐츠 총괄(Head of Copy and Content) 직무도 열려 있는데, 이쪽은 32만~40만 달러예요. 한화로 환산하면 최대 5억 5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에요.

채용 공고의 자격 요건을 보면 흥미로운 표현이 나와요. "브리프를 받으면 초안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가지고 돌아올 수 있는 사람." "창의적 판단력과 감각(creative judgment and taste)으로 방향을 잡되, 직접 손으로 작업도 하는 사람." 그리고 "브랜드 보이스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여기서 눈에 띄는 건, 앤트로픽이 요구하는 건 '텍스트를 잘 쓰는 능력'이 아니라는 거예요. 복잡한 기술을 명확하고, 구체적이고, 읽히게 만드는 편집적 판단력을 요구하고 있어요.

🧭 프론티어 AI 기업들이 '입'에 투자하는 이유

이건 앤트로픽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올해 4월, OpenAI는 테크 토크쇼 TBPN[2]​을 인수했어요. 2024년 말 시작해 2025년 초부터 매일 생방송을 진행하던 이 프로그램은, 유튜브 구독자가 5만 8천 명에 불과했지만 마크 저커버그, 사티아 나델라 같은 빅테크 CEO들이 출연하는 채널이었어요. 2025년 광고 매출 약 500만 달러, 2026년에는 3,000만 달러를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었죠. OpenAI는 이 회사를 수억 달러 규모로 인수해서 자사 전략팀 산하에 편입시켰어요.

AI 모델을 만드는 회사가 미디어 회사를 사고, AI가 대체할 직업이라고 분류한 카피라이터에게 4억 원을 제시하는 거예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답은 병목의 이동에 있어요. 프론티어 AI 기업들의 기술력은 이미 충분히 높아요. ChatGPT, Claude, Gemini와 같은 성능 차이는 벤치마크 소수점 단위로 좁혀지고 있어요. 이 시점에서 경쟁의 축이 바뀌고 있어요. "더 좋은 모델을 만드는 것"에서 "이 모델이 왜 중요한지를 시장에 전달하는 것"으로요.

앤트로픽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소개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우리는 크래프트[3]​를 중시해요. 손으로 직접 만들고, AI는 적절한 때에 씁니다(We care about craft, making things by hand and using AI when it makes sense)."

AI 회사가 자사의 글쓰기 철학을 설명하면서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게 의미심장해요.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AI가 생성하는 텍스트와 사람이 설계하는 메시지가 다르다는 걸 이 회사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에요.

📐 '쓰는 능력'과 '풀어내는 능력'은 다른 기술이에요

카파시의 AI 노출도 평가가 틀린 건 아니에요. 텍스트를 생성하는 행위 자체는 AI가 매우 잘 해요. 이메일 초안, 보도자료 초벌, 소셜 미디어 문구 등, 이런 '쓰는 작업'은 이미 AI가 상당 부분 수행하고 있어요. 2023년에 한 카피라이터가 "내 일이 이미 ChatGPT로 대체되고 있다"고 밝힌 건 과장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앤트로픽이 4억 원을 주고 사려는 건 그런 능력이 아니에요. 인공지능 서비스를 써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냥 만들어 내거나 비슷한 걸 찍어내는건 인공지능이 더 빨리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채용 공고를 다시 읽어보면, 요구하는 역량의 핵심이 보여요. "캠페인 헤드라인은 백서 서문과 다르고, 백서 서문은 유료 광고 문구와 달라요. 각각에 맞게 조율하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해요." 이건 '텍스트 생성'이 아니라 '메시지 아키텍처'예요.

정리하면 이런 구분이에요:

  • AI가 잘하는 것: 주어진 조건에 맞는 텍스트를 빠르게 생성하는 것. 톤을 모방하고, 구조를 따르고, 분량을 맞추는 것.
  • AI가 못하는 것: 어떤 이야기를 할지 판단하는 것. 복잡한 기술을 비전문가에게 어떤 순서로, 어떤 비유로, 어떤 감정의 결로 전달할지 설계하는 것. 그리고 그 설계를 캠페인, 제품 페이지, 이벤트, SNS라는 서로 다른 표면에서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

쉽게 말하면, 글을 쓰는 비용은 0에 수렴하고 있지만, 글을 풀어내는 판단력의 가격은 오히려 올라가고 있는 거예요.

흥미로운 건 미국 노동통계국의 전망이에요. BLS는 2024년부터 2034년까지 글쓰기 관련 일자리가 4%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전체 직종 평균 성장률(3.1%)과 비슷한 수준이에요. AI 시대에 글쓰기 직군이 줄어들 거라는 직관과는 어긋나는 숫자죠. 이 4%가 의미하는 건, 사라지는 글쓰기와 새로 생기는 글쓰기의 성격이 다르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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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쪽은 명확해요. 정형화된 보도자료, 제품 설명서 초안, SEO용 블로그 포스트처럼 패턴이 정해진 글쓰기예요. 이건 AI가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어요. 반면 비싸지는 쪽도 명확해요. 복잡한 기술을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고, 브랜드의 목소리를 설계하고, 하나의 메시지를 여러 채널에 맞게 변주하는 글쓰기예요. 앤트로픽의 4억 원짜리 채용 공고는 후자에 매겨진 가격이에요.

더 넓게 보면, 이 흐름은 글쓰기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The VC Corner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 중반부터 2026년 초까지 워크데이, 인스타그램, Box 등 10억 달러 규모 기업의 CTO 6명이 앤트로픽에 관리직이 아닌 개인 기여자(IC)로 합류했어요. 임원 자리를 내려놓고 연구원으로 돌아간 거예요. AI 산업에서 가장 값비싼 인재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건, 그 방향에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에요.

앤트로픽의 다니엘라 아모데이 사장은 UC 산타크루즈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어요. 올해 2월 ABC 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AI가 점점 더 많은 일을 수행할수록,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가 더 중요해질 거예요." 그리고 덧붙였어요. "앤트로픽에서 채용할 때 우리가 찾는 건, 뛰어난 소통 능력을 갖추고, 공감 능력이 높고,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문학 전공자가 이끄는 AI 기업이, 글쓰기를 가장 비싸게 사고 있어요. 이건 제가 뉴스레터를 하는 이유이기도하고, 이건 우연이 아니에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현상이 전혀 낯설지 않아요.

기술 전략을 수립하면서 반복적으로 목격한 패턴이 있어요. 기술이 성숙할수록, 시장 확산의 병목은 제품에서 메시지로 이동해요. 초기에는 "더 좋은 기술을 가진 쪽"이 이겨요. 하지만 기술 격차가 좁혀지는 순간, 승부는 "그 기술을 시장에 어떻게 설명하느냐"로 넘어가요.

2000년대 클라우드, 2010년대 SaaS가 그랬고, 지금 AI 시장에서 같은 전환이 일어나고 있어요. 앤트로픽의 4억 원짜리 채용 공고와 OpenAI의 미디어 인수는 이 전환의 가격표예요.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있어요. "AI 시대에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말이 "프롬프트를 잘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앤트로픽이 찾는 건 이야기의 뼈대를 세우고, 하나의 메시지를 여러 채널에서 일관되게 유지하는 사람이에요. 도구 활용이 아니라 글에 대한 감각과 판단력의 영역이에요.

생성의 비용이 0에 가까워질수록, 무엇을 생성할지 결정하는 능력의 가치는 올라가요. 앤트로픽의 채용 공고는 그 가치에 매겨진 가격표예요.

마치며

정리하면, AI가 대체하는 건 '쓰는 행위'이고, 대체하지 못하는 건 '풀어내는 능력'이에요. 어떤 이야기를, 어떤 순서로, 어떤 감각으로 전달할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에요. 그리고 이 차이를 가장 잘 아는 건 AI를 만드는 회사들이에요.

구독자님은 본인의 업무에서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댓글로 이야기 나눠봐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Anthropic, "Copy Lead, Enterprise" 채용 공고, 2026. : 오늘 뉴스레터의 출발점이 된 채용 공고예요. 자격 요건 섹션에서 앤트로픽이 요구하는 글쓰기 역량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어요.
  • Anthropic, "Copy & Content Lead, Launches" 채용 공고, 2026. : 카피 및 콘텐츠 총괄 직무(연봉 32만~40만 달러)의 상세 요건이에요.
  • Andrej Karpathy, "US Job Market Visualizer", karpathy.ai/jobs, 2026년 3월. : 342개 미국 직종의 AI 노출도를 0~10점으로 평가한 인터랙티브 도구예요. 현재 라이브 페이지는 삭제되었지만, GitHub에 오픈소스 코드가 남아 있어요.
  • CNBC, "OpenAI acquires popular tech podcast TBPN", 2026년 4월 2일. : OpenAI의 TBPN 인수 배경과 거래 규모를 다룬 기사예요.

배경 지식

 

 

각주

  1. [1]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 OpenAI 공동창업자이자 테슬라 전 AI 총괄. 2026년 5월 앤트로픽의 프리트레이닝 팀에 합류했어요. 'vibe coding'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해요.
  2. [2] TBPN(Technology Business Programming Network): 2024년 말 시작된 실리콘밸리 중심의 데일리 라이브 테크 토크쇼예요. 존 쿠건과 조르디 헤이스가 진행하며, 2026년 4월 OpenAI에 인수되었어요.
  3. [3] 크래프트(Craft): 여기서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장인정신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돼요. 세부 디테일까지 직접 손으로 다듬는 정교한 작업 태도를 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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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KBMA와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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