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 말을 걸던 아이, 그리고 우리 안의 제제"

파나마시티의 8월 마지막 토요일, Libro Puentes는 처음으로 카페와 와인바를 벗어나 도시 속을 함께 걸었습니다. 한-파 우정의 탑 앞에서 두 나라의 인연을 되새기고, Bio Museo의 색색깔 지붕 아래에서 이 땅의 자연과 역사를 눈에 담은 뒤, 식당에 둘러앉아 이번 달의 책을 펼쳤습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참가자 대부분에게 이 책은 학창 시절 필독서 목록 어딘가에 꽂혀 있던 희미한 기억이었습니다. 동화 같았던 이야기, 나무와 대화하는 귀여운 소년 정도의 인상. 그런데 수십 년 만에 다시 펼친 페이지 위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제에게 쏟아지는 폭력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훈계도 체벌도 아닌, 어른이 아이에게 가하는 날것의 폭력. 어릴 때 읽었을 때는 그저 "불쌍한 아이"로 스쳐 지나갔던 장면들이, 이제는 아이를 키워본 어른의 눈으로, 혹은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눈으로 읽히니 숨이 막혔습니다. 그 폭력 속에서 제제가 선택한 위로의 방법이 바로 라임 오렌지나무 "밍기뉴"와의 대화였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세계에서, 말 못 하는 나무 한 그루가 가장 솔직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어설프게 공감하려 애쓰는 사람보다,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존재가 더 깊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제제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포르투가를 만납니다. 현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제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친구"가 되어준 어른. 제제가 나무에게만 열던 마음을 사람에게 열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리는 너무 짧았습니다. 포르투가는 철도 건널목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제제는 화해도,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혼자 남겨집니다. 이 상실 이후 제제는 심하게 앓아눕고, 밍기뉴와도 더 이상 대화하지 않습니다. 기차가 그저 기차로, 나무가 그저 나무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동심이 사라지는 그 장면 — 그것이 "철이 든다"는 것의 진짜 의미였을까요.
깊이 있는 토론까지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참가자들 사이에 조용한 공감이 흘렀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섬세하고 외로운 아이 하나쯤은 품고 살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는 나무 한 그루, 혹은 포르투가 같은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9월, 또 하나의 조용한 저항 — 한강 《채식주의자》

제제는 나무에게 말을 걸었고, 포르투가의 죽음 앞에서 침묵했습니다. 9월에 만날 영혜는 어느 날 고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언어를 시작합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설명이 아닌 거부로, 세상에 조용히 질문을 던지는 사람. 방식은 다르지만 제제와 영혜 사이에는 묘한 공명이 있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대로 살지 않겠다는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이 가족과 주변을 흔들어놓는 파장.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이해받지 못하는 아이"의 이야기였다면, 《채식주의자》는 "이해받지 못하는 어른"의 이야기입니다. 2024년 노벨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인 이 소설을 통해 한강 특유의 아름답고 불편한 문체를 함께 경험해 봅시다.
- 일시: 2026년 9월 11일 (금) 저녁 7시
- 선정 도서: 한강 《채식주의자》 / La vegetariana
- 구매 안내: 한국어 전자책 — 교보문고, YES24, 리디북스 / 스페인어 전자책 — Amazon Kindle España, Casa del Libro, Kobo
- 장소: 추후 공지
- 참가 문의: WhatsApp 6104‑1004
다 읽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한 챕터만 읽어도, 한 문장만 마음에 남아도 충분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