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력자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황금가면’
김동률의 콘서트는 빅밴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어쿠스틱 공연을 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콘서트 1년도 훨씬 전부터 멤버를 섭외하고, 연습하여 공연을 진행한다.

“(그는) 작곡, 작사 뿐만 아니라 모든 사운드 메이킹 쉽게 말해서 음표 하나, 쉼표 하나 악상 기호 하나까지 전부 다 본인이 컨트롤이 가능한 사람이다.”
조정현(트럼페터)
"(그는) 엔딩까지 전부 완성된 (편곡된) 악보를 주는 유일한 아티스트다."
박은찬(드러머)
사실 세션들의 면면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함께 일을 한다는 것, 그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그가 만든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혹은 음악성이 뛰어나다의 측면에서 인정받는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건 그 꾸준한 걸 32년째 했다는 것이다.
이번 콘서트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데뷔 때부터 자기는 소위 말하는 성공의 길을 걸었고, 그로 인해 내 앞에는 더 이상 오르막이 아닌 내리막만 있겠구나 싶다고 했다. 어찌 보면 그러한 염려가 그에게 완벽주의 성향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줬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실수하거나 모자라면 지금 얻은 걸 모조리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 누가 불안하지 않겠는가?
“저는 먼지 같은 디테일이 모여 ‘다름’을 만들어낸다고 믿어요.”
김동률(2025 김동률 콘서트 '산책' 중에서)
잠깐 본업으로 돌아오면 우리 인간의 달팽이관은 저주파수 대역에서는 주파수의 변화(소리의 변화)를 잘 감지한다. 하지만 고주파수 대역에서는 주파수의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는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구간까지는 변화를 잘 감지하다가 어느 순간 그 차이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70점 정도의 점수를 받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대부분의 사람은 그 70점 정도의 점수를 가진 사람을 전문가라 느낀다. 근데 여기에서 1점씩 점수를 올리는 건 지금까지 쌓아온 것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 달성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혼란도 느끼고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기도 하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조금씩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히 사람이 또 겸손해지는 것이고.
이렇듯 인고의 시간을 보내 본 사람만이 저 사람이 '진짜'인지 '사이비'인지를 판별하는 눈을 갖게 된다. 진짜들이 인정한 '진짜'다? 그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엄청난 디테일이 긴 시간에 걸쳐 쌓여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나 역시 다름을 만들기 위해 '디테일'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편이고, '완벽주의'를 지향한다. 물론 이를 구현하는 시간이 고생스럽지만 난 기꺼운 마음으로 '진짜'가 되기 위해 이 시간을 맞이하고 있고,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멀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나의 ‘동반자’
사실 김동률을 처음 알게 된 건 굉장히 시덥잖은 이유에서였다. 학창시절 또래 친구들의 노래방 애창곡은 대부분 플라워, 야다 등 락발라드 가수들의 노래였다. 근데 변성기가 일찍 찾아온 탓에 ‘고음 불가’였던 나는 노래방에 가면 부를 노래가 없어서 항상 박수만 치곤 했다. 그러다가 찾게 된 노래가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였고 그러면서 '김동률'이란 가수를 알게 되었다.
멋모르던 미성년자 시절을 지나 대학에 입학하면서 사랑도 경험하고, 이별도 경험하면서 어찌 보면 감수성의 폭이 더욱 넓고 깊어진 그 즈음. 김동률의 'Monologue'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내가 느꼈던 추상적인 감정을 언어로 풀어내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를 그때 처음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때부터였다. ‘김동률’이라는 아티스트가 좋아진 것이.
“난 또 어제처럼 넘실거리는 순풍에 돛을 올리고, 끝없이 멀어지는 수평선 그 언젠가는 닿을 수 있단 믿음으로”
'고독한 항해'(1집 The Shadow Of Forgetfulness, ,1998) 중에서
달리 방법을 몰라 열심히만 했던 20대 시절. 잘하고 싶은 마음도 가득했지만 어느 누구 멘토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대학을 늦게 간 탓에 선배들도 대부분 나이가 어리거나 나이가 같았고, 집안에서도 맞이여서 항상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에 익숙했다.
그럴 때마다 김동률의 노래와 공연은 분야는 다르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외로운 여정을 먼저 가 본 사람의 입장에서 내게 말을 건네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저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멋진 사람이 되어 있겠지?’하는 마음을 먹게 해줬다고나 할까?

그의 노래는 내게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나의 10대, 20대, 30대의 추억을 부르는 매개체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가 내놓는 노래들을 내 생애 주기에 맞춰 공감하면서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큰 행운으로 느껴질 때가.
’동행’하며 외로운 여정을 더 멀리 더 오래

한때 위의 멘트에 공감을 많이 했다. 내가 유명해지기보다는 내가 만들어낸 것들이 더 유명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조금 바뀐 건 있지만, 여전히 나를 드러내는 걸 잘 못하는데, ‘나’라는 사람보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큰 탓인 것 같다.
아무리 AI 시대가 오고 콘텐츠를 만드는 게 너무도 쉬워진 시대임에도 그를 쉬이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본질을 놓칠까 봐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뭔가 꾸준히 만들어내고 결과물이 쌓이면서 생기는 보람도 물론 있지만, 그게 ‘과연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인가?’를 계속 의심하는 건 성격 탓인 것 같다.

내 서비스를 돈을 받고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고민의 연속이다. 콘텐츠 하나 만들어 내는 일 자체도 버거운데, ’내 서비스의 타깃은 누구인가’부터 해서 가격을 얼마로 정해야 할지 어떻게 팔아야할지 여러 고민을 하다 보면 내 중심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고서는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의 연속이란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해 보면 꽤나 고리타분하고 유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국어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트렌디함을 쫓을 만한 분야는 아니니까.
‘파리스피치연구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스피치를 가르치기 시작한 건 이제 1년 정도 되어 간다. 그 전에 강사로서의 활동은 내게 의뢰를 받은 내용을 잘 정리해서 전달을 하고 왔다고 한다면, 지금은 내가 전하고 싶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담아 전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매 공연마다 새로 편곡하는 그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같은 수업이어도 계속 자료를 보완하는 습관(?)이 있다. 어차피 하던 대로 해도 다른 수강생이니 상관이 없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냥 그게 체질적으로 잘 안 되는 것 같다.
피곤하게 사는 거고 일을 같이 하는 상대도 피곤함을 느끼겠지만 난 그 과정이 좋다. 그 과정에서 하는 고민이 앞서 말한 1점을 차근차근 올려 갈 수 있는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과정이 고독하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 이를 알아 봐 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는 것이 재미있다. 모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무엇 하나 쉬이 만들어 내는 게 더 어려워지긴 하지만, 나의 잘난척에 힘쓰지 않고, 내 콘텐츠와 수업을 소비하는 분들께 더 잘 닿을 수 있는 내용을 담아 오래오래 잘 가고 싶은 마음이다.
“언젠가 무엇이 우릴 또 멈추게 하고 가던 길 되돌아서 헤매이게 하여도 묵묵히 함께 하는 마음이 다 모이면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을까.”
'동행'(6집 동행, 2014) 중에서
어쨌든 김동률이 내게 응원이 되었듯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길 소망한다.
-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조금만 더 해 보자’라는 마음을 먹게 만드는 사람,
- 세상에 덩그러니 나만 혼자 있다고 느껴지지 않게 해 주는 사람,
- 먼지 같은 디테일을 쌓아가는 과정이 헛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마음을 간직하고 나의 본질을 놓치지 위해 이렇게나마 기록을 해 마음에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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