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개발자였어요!'
이제는 먼저 밝히지 않으면 개발자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2018년 3월 말에 퇴사를 했으니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그만둔지도 어느덧 3년이 되어갑니다.
요즘 개발자는 무척 핫합니다. 뉴스에서도 보면 전 직장의 연봉 몇 배, 스톡옵션 등을 뿌리면서 뽑습니다. 가만히 보면 직원을 뽑는 게 아니라 모셔간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거의 모든 업계에서 개발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과거에 개발자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그만 뒀냐고.
확신이 없었어요.
직장에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보통 불안감은 복합적이죠. 적성에 맞지 않거나, 미래가 그려지지 않거나, 사람이 맞지 않거나.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짬뽕되서 불안의 제대로 된 실체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발 일이 적성에도 맞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좋았습니다. 단 미래가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상사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모습이 내 미래라면 난 만족할까?'라고 스스로 물었습니다. 몇 날 며칠 생각해봤지만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때론 일 잘하기로 유명한 상사분을 보며 '내가 저만큼 일에 많은 시간을 쏟고, 그리고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했습니다. 이 질문에도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스스로 내린 질문에 긍정적인 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답변을 했다면 그만 둘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 대답 조차 망설여지더라고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만 두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물론 실제 퇴사를 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만두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확신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글 잘 쓰고 모임을 운영하는 개발자였을 뿐입니다.
그만두는 해에 저는 스물 아홉이자 4년차 사원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대리를 달았을 테고요. 서른이 되었을 겁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대리가 되고 서른이 넘으면 더 퇴사하기 힘들 것 같다'
이게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만약 다른 회사로 이직을 계획했다면 대리라도 달고 나가는 게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리를 달면 쌓아온 게 아까워서 내려놓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퇴사하고 1년 3개월동안 갭이어 시간을 가졌습니다. 말이 좋아 갭이어였지. 벌어놓은 돈 까먹으면서 열심히 놀았습니다. 퇴사를 결심하고도 고민했던 이유 중 하나가 '퇴사하고 후회하면 어쩌지?'도 있었어요. 괜히 섣불리 나갔다가 망망대해에 표류하게 된 나머지 괜히 나왔다고 생각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신기한 건 현재 일하고 있는 작은 스타트업에 들어오기까지 불안감은 여러 번 느꼈어도 단 한 번의 후회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대리를 달고 여전히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면 후회하면서 일하고 있었을텐데 말이죠.
퇴사하고 저는 다음 노선이 정해지기 전까지 내가 느꼈던 불안을 기록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남긴 기록은 브런치북 <스물아홉에 쓰는 퇴사일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종종 과거에 남긴 기록을 읽어보곤 합니다. 정제된 글도 좋지만 일기를 썼던 WF를 통해 찬찬히 살펴봅니다. '아, 이때는 엄청 불안했구나', '이때는 일이 잘 풀렸나보네' 등을 유추하며 기록을 회고 합니다. 몇 년 뒤에는 또 오늘 남긴 기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죠?
퇴사했던 2018년에 남겼던 일기를 뉴스레터 구독자 분들에게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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