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ㅅㅇㅁ] 불안을 기록해보기로 했습니다

2021.02.23 | 조회 7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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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세모오네모

찰나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저 개발자였어요!'

이제는 먼저 밝히지 않으면 개발자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2018년 3월 말에 퇴사를 했으니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그만둔지도 어느덧 3년이 되어갑니다. 

요즘 개발자는 무척 핫합니다. 뉴스에서도 보면 전 직장의 연봉 몇 배, 스톡옵션 등을 뿌리면서 뽑습니다. 가만히 보면 직원을 뽑는 게 아니라 모셔간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거의 모든 업계에서 개발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과거에 개발자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그만 뒀냐고.

확신이 없었어요.

직장에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보통 불안감은 복합적이죠. 적성에 맞지 않거나, 미래가 그려지지 않거나, 사람이 맞지 않거나.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짬뽕되서 불안의 제대로 된 실체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발 일이 적성에도 맞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좋았습니다. 단 미래가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상사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모습이 내 미래라면 난 만족할까?'라고 스스로 물었습니다. 몇 날 며칠 생각해봤지만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때론 일 잘하기로 유명한 상사분을 보며 '내가 저만큼 일에 많은 시간을 쏟고, 그리고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했습니다. 이 질문에도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스스로 내린 질문에 긍정적인 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답변을 했다면 그만 둘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 대답 조차 망설여지더라고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만 두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물론 실제 퇴사를 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만두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확신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글 잘 쓰고 모임을 운영하는 개발자였을 뿐입니다.

그만두는 해에 저는 스물 아홉이자 4년차 사원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대리를 달았을 테고요. 서른이 되었을 겁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대리가 되고 서른이 넘으면 더 퇴사하기 힘들 것 같다'

이게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만약 다른 회사로 이직을 계획했다면 대리라도 달고 나가는 게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리를 달면 쌓아온 게 아까워서 내려놓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퇴사하고 1년 3개월동안 갭이어 시간을 가졌습니다. 말이 좋아 갭이어였지. 벌어놓은 돈 까먹으면서 열심히 놀았습니다. 퇴사를 결심하고도 고민했던 이유 중 하나가 '퇴사하고 후회하면 어쩌지?'도 있었어요. 괜히 섣불리 나갔다가 망망대해에 표류하게 된 나머지 괜히 나왔다고 생각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신기한 건 현재 일하고 있는 작은 스타트업에 들어오기까지 불안감은 여러 번 느꼈어도 단 한 번의 후회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대리를 달고 여전히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면 후회하면서 일하고 있었을텐데 말이죠.

퇴사하고 저는 다음 노선이 정해지기 전까지 내가 느꼈던 불안을 기록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남긴 기록은 브런치북 <스물아홉에 쓰는 퇴사일기>가 되었습니다.  

 

퇴사 후 남긴 글은 운이 좋게도 2019 서울국제도서전 브런치 부스에서 소개되었다 :)
퇴사 후 남긴 글은 운이 좋게도 2019 서울국제도서전 브런치 부스에서 소개되었다 :)

 

지금도 종종 과거에 남긴 기록을 읽어보곤 합니다. 정제된 글도 좋지만 일기를 썼던 WF를 통해 찬찬히 살펴봅니다. '아, 이때는 엄청 불안했구나', '이때는 일이 잘 풀렸나보네' 등을 유추하며 기록을 회고 합니다. 몇 년 뒤에는 또 오늘 남긴 기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죠?

 

미리 경계하거나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보다는, 한 번 가볍게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또 가볍게 자기한테 더 좋은 방식을 찾아가는 게 어떨까 싶어요.

책 <일상기술연구소> 中

 

퇴사했던 2018년에 남겼던 일기를 뉴스레터 구독자 분들에게 보여드립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살면서 꽤 여러 차례 들었던 이 질문에 나는 어떤 명쾌한 대답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니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 흘러가면서 누군가가 방향을 살짝 틀기라도 한다면 심하게 요동친다. 인생의 조타를 쥐고 있다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남에게 맡긴 채 무신경하다보니 무조건 빨라야한다.

2018.03.16 / 퇴사하기 전 

행복할 때는 나를 보지만, 불행할 때는 남을 본다.

2018.07.13

종종 판교CGV에서 영화를 볼 때면 미리 카페에 와서 원고를 쓴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교육열이 강한 판교다보니 카페에 학부모들이 오면 대부분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보통 우리 아이는 너무 공부 안한다느니, 어느 학원을 보내야 한다는지 신세 한탄이나 정보성이 있는 대화가 많지만 오늘 근처에 앉은 학부모들은 조금 달랐다. 한 어머니가 며칠 전 아이가 뉴스를 보고 했던 말을 듣고 감탄했다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울 쪽으로 오던 태풍이 진로를 틀어서 동해안으로 빠져나간다는 뉴스였다고 한다. 아이가 그 뉴스를 보더니 혼잣말로 '태풍은 진로가 정해져 있어서 좋겠다...'라고 한 것이다. 아이들이 가끔 정말 놀랄 정도로 참신한 이야기를 한다고 아이들한테 배울 게 참 많다는 취지의 대화였다.    

2018.08.29

올해 WorkFlowy 기록한 내용을 살펴봤다. 연초에는 거의 기록이 없다가, 퇴사 후부터 열심히 기록한것이 눈에 띈다.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과 기록하지 않았다면 삶에서 사라졌을 뻔한 기록까지 톺아보는 시간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일기가 참 좋다. 그 당시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겨 있다. 때론 다짐보다 이렇게 회고를 통한 피드백이 하고자 하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20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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