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박스쿨 뉴스를 접하면서 깊이 반성했습니다. 피스모모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더 체계적으로 했어야 했는데! 하면서요. 하지만 동시에 알았습니다. 피스모모는 리박스쿨처럼 할 수 없어요. 그런 것을 할 수 있었다면 피스모모는 피스모모가 될 수 없었겠지요.
대선결과가 나오면서 20대 남성들의 극우성향에 대한 분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원인을 이대남을 키운 엄마에게 귀속시키는 글을 보고 아연실색하기도 했는데요. '이대남'이라 불리는 20대 남성의 극우 성향은 경제적 불안과 젠더 갈등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현상입니다. 단순화는 이 상황에 대한 분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불확실한 미래만큼이나 실제로 불확실한 지구의 미래, 그 속에서 살아가는 불안감은 군 복무 등으로 자신들만 희생한다는 10-20대 남성들의 인식과 맞물려, 여성할당제나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반감, 즉 '역차별' 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으로 번졌습니다.
주지하고 있다시피, 이런 피해의식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정치권의 영향으로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인 익명의 온라인 공간은 극우적 담론을 강화하는 '에코 챔버(Eco Chamber, 반향실)’ 역할을 했고, 이준석과 윤석열 같은 정치인들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 '갈라치기' 전략으로 이 갈등을 이용했어요.
여기에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유튜버들과 현대사 교육의 부재,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같은 심리적, 구조적 요인이 더해지면서 20대 남성의 극우적 정체성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개인의 성향이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얽혀 만들어진 결과물인 셈입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하나의 씨앗, 바로 ‘나라사랑교육’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7월의 모모레터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대적으로 펼쳐졌던 이 교육이 지금 20대 남성들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이대남의 청소년기와 나라사랑교육
2025년 현재, 20세부터 29세 사이의 남성들은 대략 1996년생부터 2005년생까지를 말합니다. 이들이 박근혜 정부가 집권했던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어떤 시기를 보냈는지 한번 헤아려볼까요?
1996년생이라면 2013년에 이미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에는 21세가 되어 대학생이거나 군 복무를 시작했을 나이입니다. 2000년생은 박근혜 정부 시작과 함께 중학교 1학년이 되었고, 정부가 끝날 무렵엔 고등학교 2학년이었죠.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2005년생도 2013년에는 초등학교 2학년, 2017년에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이들이 보낸 학창 시절은 나라사랑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기와 정확히 겹칩니다. 특히 초·중·고등학생은 나라사랑교육의 주요 대상이었고요. 그렇기에 이들은 학교에서 혹은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이 교육을 접하고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나라사랑교육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6년 동안 총 50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거든요. 이는 국가보훈처 박승춘 처장이 "6년간 500만 명 교육 실시"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한 결과였습니다.
나라사랑교육의 핵심은 아주 단순해요. ‘우리 편’과 ‘적’을 명확히 나누는 것, 흑백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죠.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애국이 곧 ‘우리’가 아닌 ‘타자’를 혐오하는 것과 등치되었습니다. 지금 2025년 기준으로 20대 남성들, 즉 대략 1996년생부터 2005년생인 분들은 박정희 정권 이후, 국가가 노골적으로 주도하는 안보 교육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첫 세대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전쟁 직후, 군사독재정권의 승공, 반공 교육이 박근혜 정권에 와서 부활한 것이니까요.
당시 국가보훈처 박승춘 처장은 2011년 3월 이미 존재하던 교수·교사 등 전문 강사진 100명 외에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 자유총연맹, 성우회 등 5개 보수 민간단체 출신 강사 322명을 별도 선발절차 없이 추가했고요. 이들 민간강사들의 활동이 전체 교육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으며, 2012년의 경우 민간강사 강의 횟수가 2,134회로 전문강사진의 367회보다 6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리박스쿨은 이미 이 때 만들어졌다고 봐야해요.
정확한 데이터로 증명하기에는 더 자세한 준비와 조사가 필요하겠으나, 국가가 큰 예산을 들여 대대적으로 주도한 안보교육인 ‘나라사랑교육’이 당시 어린이 청소년이었던 20대 남성들의 가치관 형성에 구조적이며 문화적으로 개입했다는 정황은 충분합니다.
이런 경험이 절대적으로 한 존재를 완성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훗날 그들이 극우적인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거나, 반페미니즘 혹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정치를 지지하는 심리적, 문화적 토대가 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꽤나 합리적이지 않은가요?
네크로필리아와 애국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고정된 질서와 권위에 매혹되는 심리를 ‘네크로필리아(죽음에 대한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나라사랑교육’은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고정된 존재로서 ‘우리’와 ‘적’을 전제해두고, 이를 주입했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서, 우리와 적은 선명하게 나뉘지 않지만, 그 복잡성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삶에서 ‘강한 나라’, ‘철통같은 안보’, 그리고 ‘명확한 적’이라는 아주 단순하고 강력한 ‘답’이 존재하는 교육은 현실의 복잡성으로부터 벗어날 쉬운 도피처가 될 수 있습니다. 명확하지 않은 나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무엇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고요.
주디스 버틀러는 수행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젠더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반복적으로 행해짐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군대에 가는 것이나 안보교육을 받는 것은 단순히 의무를 넘어,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나라사랑교육’은 ‘강하고 굳건한 남성’이라는 국가적인 이상형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과정이었지요.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적’의 범위가 북한이나 외부 세력에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리’를 강조하는 만큼,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심리가 생겨났어요. 때로는 여성, 때로는 성소수자, 때로는 외국인 등 우리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타자’들이 ‘적’과 비슷한 위치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일부 20대 남성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성이나 소수자들을 지목하고, 혐오와 배제의 언어를 쓰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경쟁이 심화되고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박탈감과 분노가 다른 대상을 향한 혐오로 전이되는 심리적인 경로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국가가 만들어낸 ‘강한 남성’의 이미지가 결국 ‘약한 존재’에 대한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섬뜩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달까요. 지난 겨울, '광장'의 다른 한 편에서 넘쳐나던 혐중의 언어들은 또 어떻고요. 애국과 타자혐오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이 현실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면 좋을까요?
미워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기
박근혜 정부의 나라사랑교육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50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특히 2016년에는 1만 727회의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2017년 7월 관련 부서가 전면 폐지되고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사실상 중단되었지요.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그 악순환의 고리는 끊었을 지언정, 역대 정권 중 최대 규모의 군사비 증대와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전투기에 탑승하는 남성성을 과시함으로써 또 다른 ‘힘 센 남성’을 선망하도록 만들어 온 책임과 그 한계 역시도 함께 성찰해야할 부분으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피스모모의 동료 대훈이 해 주었던 이야기가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는데요. “그 많은, 나쁜 교육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고요. 미워하기 보다는, 더 나은 대안을 찾는데 힘을 쏟고 싶은 요즘입니다.
미워하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법을 함께 터득해가는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피스모모’에 후원으로 함께해주세요. 박근혜 정권이 나라사랑교육을 통해 5백만명을 만나는 동안 피스모모는 최선을 다해 11만명을 만나왔어요. 리박스쿨보다는 피스모모에게 더 많은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여러부운!!
나중에 후원해야지 말고, 지금 후원해주세요. 피스모모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자의식과잉 같은 거 아니지만, 피스모모가 존재하는 편이 이 사회에 더 낫다고 생각하신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아래 후원하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한 분, 한 분의 후원과 지지가 피스모모의 활동에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앞으로 후원을 더욱 열심히 요청드리려고 해요. 각성한 아영을 기대해주세요?
7월의 모모레터, 이렇게 마무리 해볼게요. ;-)
시간과 마음 내어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2025년 7월 3일,
피스모모 아영 드림
참고자료
혐오와 혐오가 만날 때: 온라인 커뮤니티에 나타난 정치 혐오 및 사회 혐오 키워드의 결합에 대한 분석
한국정부의 평화교육, 그 미끄러지는 기표- 가운뎃점으로 표상되는 평화와 통일의 상관관계에 대한 비판적 검토 -
인간, 동물, 로봇 그리고 바이오필리아(biophilia)의 법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사상을 중심으로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5032115520249177
https://newstapa.org/article/r05Fu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16628
피스모모 논평: 나라사랑교육 전면 폐지 및 공교육의 평화교육 확대 실시 촉구 논평
피스모모 이슈브리프: [이슈브리프] Vol.8 나라사랑교육 평가 리포트 1: 나라사랑교육의 과거와 현재를 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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