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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復讐)아닌 복수(複數)의 정치: 핵추진 잠수함 유감

2025.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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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모모

평화와 서로 배움의 이야기, 피스모모의 이야기를 전해요. (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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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하고 하루 늦은 모모레터를 띄웁니다. 혹시, 모모레터가 늦어지는 것을 알아차리신 독자님이 계셨다면,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해요! 요즘 레터를 자주 띄워야 해서 피로감이 있으실까 발송주기를 조정했거든요. 약속을 어기게 된 것에 대해 부디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셨어요. 피스모모 아영입니다. 지난 APEC에서 트럼프에게 금관을 선물한 한국정부가 핵추진잠수함 도입이라는 빅딜을 해냈다는 보도가 연일 나옵니다. 오늘 오후 레터를 틀에 앉히는과정에 이재명 대통령의 한미간 팩트시트 관련 브리핑이 있었어요. 디테일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고, 국익만이 영원하다고 말했는데요. 

한국 정부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과정을 살펴보며 의아했습니다.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오는데, 이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관련한 의사결정과정에 나의 권한은 어떻게 행사되었는가?  흔히 탑-다운(Top-down)이라고 말하는 이런 결정들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집행될까요? APEC에서 핵추진잠수함 도입관련 딜을 할지. 혹시 구독자님들은 아셨어요? 저는 몰랐어요. 저만 모른 건 아니죠? ㅎㅎ

한국정부가 핵추진잠수함 도입 시도를 해 온 역사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정부의 숙원이었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 숙원을 실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마주하며, 민의는 과연 어떻게 반영되는 것인지 갸우뚱하게 돼요. 

 

핵무장이 정해진 수순인 것처럼 

지난 11월 첫 주에는 피스모모의 동료 대훈, 가연과 함께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공동주최한 한반도 미래 시나리오 빌딩 워크숍에 참여했는데요. 그 워크숍에는 미국과 유럽의 한반도 전문가라는 분들이 다수 함께 했습니다. 토론이 진행되면서 일부 미국, 유럽연합 쪽 전문가들이 대한민국의 핵무장은 곧 도래할 미래라는 단정적 의견들을 제시하더라고요. 그래서 질문할 수 밖에 없었어요. 어, 그래? 깜짝이야, 나는 몰랐는데 혹시 언제 정해진 거니? 나도 모르게 정해졌다고? 

단정적인 의견들에 동의하기 어려웠던 저는 이견을 공유했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핵무장이 예견된 미래처럼 이야기하는지 궁금하다. 근래 진행되었던 몇몇 기관의 설문조사를 근거 삼는다면 설문지의 설계부터 분석까지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후 진행된 설문조사들이 핵무장을 선택할 경우, 겪게 될 경제제재에 대한 정보를 설문참여자들에게 공유했을 때,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현저히 줄어들었던 사례도 있다. 대한민국의 핵무장을 단일한 결론처럼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알고 싶다. 나는 그런 근거가 없다.

제 이견에 대해서 두 명의 전문가가 자신이 접하는 정보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핵무장을 희망하다는 강력한 수치를 보여준다고 응답했습니다. 그 정보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국가의 의사결정이라고 하는 과정에 민의가 반영되는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핵추진 잠수함 사업처럼 국가의 안보·군사 정책결정이 국민의 실질적 의사와 얼마나 일치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심층적인 재검토를 필요로 합니다. 핵무장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겠지요. 말해 뭐해요. 

그런데, 핵무장과 관련한 국가의 의사결정이 APEC에서 빅딜로 진행된 핵추진잠수함처럼 진행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의민주주의는 표면상 국민 전체의 선택과 대표를 바탕으로 작동하지만, 현실의 대의제는 기대처럼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놓을 수 없는 

직접민주주의 실현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채택한 차선으로서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의의 과정에서 대의하는 존재의 자의와 대의하는 존재들의 개별 및 집단적 이해관계가 개입하면서 필연적인 왜곡을 수반합니다.  그 과정에서 참여와 숙의의 약화, 정책결정 과정의 불투명성, 이익집단과 엘리트 중심의 조정, 밀실 결정들이 발생하게 되고, 대의를 위해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들의 의사와 결과로서의 정책적 결정이 괴리되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정치참여와 공적 숙의의 ‘실질적 장’ 마련의 부재가 현대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짚기도 했죠. 정치적 공공성과 참여의 실질은 무엇일까. 국민에게 있다는 그 주권의 행사는 얼마나 정당하게 이행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찾아본 논문 중에 흥미롭게 읽은 글이 있었어요. 2012년에 쓰여진 논문인데요.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근거로 “민주적 정당성”에 대해 검토한 논문입니다. 전체 내용을 공유할 순 없지만 일부를 인용해요. 논문의 저자인 허완중님은 민주적 정당성을 기능적-제도적, 조직적-인적, 실질적-내용적 민주적 정당성의 세 가지 층위로 분류하여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민주주의원리의 관점에서 민주적 정당성이 어떤 방식으로 실현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국민이 국가권력 행사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 다른 말로 적정한 정당성 수준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  민주주의의 핵심요소로서 인정되는 국민주권은 군주주권에 대항하는 항의적 투쟁적 이념으로서 출발하였던 것이고 이제는 대부분 국가질서의 중심이념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역사적 임무를 끝마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국민주권은 국가질서의 정당성에 대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정당성을 부여받은 국가권력이 명목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국민을 주권자로 대우하도록 요청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규범적 의미를 지닌다.  ... 주권자인 국민은 직접 주권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주로 창설한 국가권력을 통해서 자기 의사를 실현한다. 따라서 국민주권에서는 민주적 정당성이 중심내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용어는 자주 거론되지만, 정작 민주적 정당성이 무엇이고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거의 논의가 없었다. 이것은 민주적 정당성 그리고 나아가 국민주권을 제대로 이해하였거나 논의하였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한다. … 따라서 …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민주적 정당성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허완중. (2012). 민주적 정당성. 저스티스,, 132-153.

 

핵추진잠수함을 마치 하이브리드 자동차처럼 바라보는 시선과 역내 게임체인저(game changer)라 추앙하는 시선들 사이에서 민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질문합니다. 자주국방과 해양안보 강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설명되는 국가의 이 결정은 과연 누구의 결정이었나요? 

11월 1일 뉴욕타임즈의 최상훈 기자(Chae Sang-Hun)는 트럼프 행정부의 승인으로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하게 된 것이 한국 외교의 방향이 ‘균형자’에서 미국 중심의 동맹국으로 완전히 이동했다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미중 경쟁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자율적 외교 공간을 확보하려 했지만, 이번 결정은 그 여지를 좁혔다는 것이죠. 이번 결정으로 한국의 선택지는 사라졌고, 새로운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한국이 외교적 자율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담겨 있었습니다. 안보딜레마가 완화될 가능성은 난망하죠.(뉴욕타임즈 기사가 유료여서 관련 국내 보도도 링크해요)

또, 트럼프가 아니었으면 이번 합의가 가능했을까 질문해봅니다. 불과 1년 반 전인 2024년 6월, 바이든 행정부의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아시아안보회의)에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론에 ‘지금은 미국이 수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부정적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바 있습니다. 오스틴 장관은 한국이 핵잠수함 건조 지원을 공식 요청한다면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은 지금 호주와만 핵추진 잠수함 협력을 시작했으며, “가까운 미래에 이를 한국으로 확대하는 것은 매우 회의적”이라고 답변했거든요. 

 

고르디우스의 매듭, 풀 것이냐, 자를 것이냐

트럼프라는 파시스트가 민주적 절차로서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상황을 냉소하면서도, 한반도 상황의 변화를 중심으로 보면, 민주당 정부보다 트럼프에게 기대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던 저는 저의 이중성을 인정합니다. 어려운 문제에 있어서는 ‘딜’을 통해 해결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는 거죠.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찬찬히 풀다 영영 못 푸느니, 그래, 알렉산더왕처럼 와서 대뜸 끊어버려라! 이런 생각. 난제에 대해서는 저의 민주적 권리 행사를 유보하겠다는 그런 무책임한 입장이잖아요.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두고 국내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라 평가하는 목소리가 큰 것 같은데요.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반드시 불안을 확대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긴장 악순환을 유발할 조건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부는 35년 묵은 과제를 해결했다고 얼마나 더 신중해야 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충분히 획득했는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핵잠수함이 도입되면 군비 경쟁이 심화되고 불안정성이 증가한다’는 단선적 논리로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군사력의 증강은 동맹 관계, 국내 여론, 경제 상황, 기술 혁신, 외교적 신호 등 다양한 요인과 얽혀 있으니까요. 

또한, 핵추진잠수함(원자력 동력)과 핵무장 잠수함은 법적으로 엄연히 구분되고, 한국이 추진 중인 모델은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고, 추진력만을 위해 핵연료를 사용하는 것이므로 국제 비핵화 원칙에 반한다고만 비판할수도 없죠. 그러나 기후위기의 상황과 생태적 조건들을 고려했을 때, 한국정부의 이번 결정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들의 실존적 조건을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라는 결정을 내릴 때, 단순히 안보적 측면만이 아니라, 해당 결정이 가지는 생태적·기후적 파급까지 포괄적으로 따져봐야 하니까요. 군사 활동과 대규모 무기 체계는 디젤·화석연료 기반만이 아니라, 원자력 등 다른 에너지원을 쓸 때조차 생산·운용·폐기 전체 과정에서 중대한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과 방사성 폐기물 문제를 동반합니다. 핵추진 잠수함도 운항 과정에서는 탄소 배출이 적을 수 있지만, 우라늄 채굴·정제·핵연료 제조, 사용 후 연료의 처분과정에서는 상당한 환경 부담이 발생합니다. 사용 후 핵연료의 장기 저장과 방사능 누출 위험, 관리 비용 등은 아직도 인류가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과제이고요. 

 

환영하지 못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한국정부의 핵추진잠수함 도입 결정을 환영하지 못합니다. 그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이 평가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국가안보를 둘러싼 결정들이 대부분 그렇게 진행된다는, 안보의 예외주의. 늘 국가 안보 앞에서 멈추어서는 민주주의. 안보를 둘러싼 국가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해 더욱 질문해야 한다고, 이건 ‘반대’의 차원이 아니라, 권력의 근거와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매우 정당한 문제제기라는 점을 짚어두고자 합니다. 

국가의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면, 모두의 생존권, 평화롭게 살 권리로서의 평화권을 고려했을 때, 안보에 대한 의사결정은 더욱더 많은 이견들로부터 도전받아야 합니다. 군비경쟁을 심화하는 복수(復讐)의 정치가 아니라 다수성과 혼종성을 전제로 한 복수(複數)의 정치가 필요해요. 이것봐, 분단상황이잖아! 정신차려! 라는 윽박지르는 목소리가 있다면, 저는 우아하게 아렌트의 말을 내밀어볼까 해요. 

 

행위의 근본조건은 다원성으로서 인간조건, 즉 보편적 인간(Man) 이 아닌, 복수의 인간들(men)이 지구상에 살며 거주한다는 사실에 상응한다. 인간조건의 모든 측면들이 다소 정치에 관련되어 있지만 특별히 다원성은 모든 정치적 삶의 필요조건일 뿐만 아니라 가능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절대적 조건이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중에서

 

이견들을 마주하고 조율하려는 애쓺은 다양한 행위자들과 얽혀 살아가는 모두의 몫이지요. 너무 힘든 일이기는 해요. 힘들어도 어쩔 수 없는, 견디며 조율해야 하는 차이의 아름다움에 가끔은 기절할 것 같은 심정으로 늦어진 11월의 모모레터를 띄워보냅니다. 모두 감기조심하시길! 

 

달라도 괜찮아, 안괜찮아, 아니 괜찮아, 

피스모모 아영 드림 

 


국가안보 앞에 멈추지 않는 민주주의를 원하신다면, 피스모모와 함께해요! 

 

참고자료

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7b0ec2c7a0db2613ffe0bdc3ef48d419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603430

https://www.nytimes.com/2025/11/01/world/asia/south-korea-china-us.html

https://www.khan.co.kr/article/202511051616011

https://www.news1.kr/world/usa-canada/5962095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511071524001

https://www.news1.kr/nk/politics-diplomacy/5968353

https://ipus.snu.ac.kr/blog/archives/conference/9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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