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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모로 애매한 - MBTI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때로는 지겨워져버린 질문입니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이 말에 저는 한창 유행하던 초기에는 한가지, 작년까지는 두세가지, 현재는 다시 한가지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한 입 갖고 세 말을 하게 된 걸까요?
처음 테스트를 했을 때 INTP가 나왔습니다. 이상하더라고요. 지금이야 그때만큼 INTP스러웠던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했고, 부정도 오래 했습니다. 타인에게 공감할 줄 몰라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지켜보면서 기억해둬야 하고, 정말 좋아하는 분야 또는 사람 외에는 무관심한데, 기본적으로 인간보다는 사회적 현상에 관심을 두는 편이고, 상황의 인과 관계를 따지려고 하는 성향이라고 하더라고요. 결과가 나온 뒤 이런저런 글들을 찾아보면서 제 성격과 행태가 삐걱거리는 이유에 대해 알게 되어 흥미롭기는 했지만, 내가 남들 앞에서 생각보다 더 삐걱거렸을 거라는 생각에 걱정을 더 많이 삼켰었습니다. 더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맞는 것만큼 안 맞는 것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4가지 특성 모두 비율이 45%와 55% 사이에 위치했었습니다. 순혈(?) INTP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죠. 저는 INTP답지 않게 굉장히 감정적인 편이고, 타인에 의한 감정전이가 빠른 편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도 좋아했고요. INTP이라고 하기에는, 사람에 의한 영향을 크게 받았어요. 그래서 이 시기에는 친구들이 MBTI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꼬박꼬박 해주면서도 늘 그 결과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티를 내고는 했죠.
스스로의 성향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게 오래 간 탓에 또 언젠가는 테스트를 수 차례 해봤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거의 분기마다의 행사처럼 테스트를 새로 했었고, 한 번 할 때도 한두번씩 다시 하고는 했었죠. 나왔던 것 중 기억나는 건 ISTP입니다. 특성 딱 하나 바뀐 것 뿐인데 평가가 확연히 다르더라고요. 그게 좀 부럽기도 했습니다. 글자 하나가 바뀌었다고 사회생활 모르는 로봇에서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바뀌니까요. 개 중 또 언급하고 싶은 건 INTJ였습니다. 한창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일 때였기에 조금 더 계획적인 성향이 강해졌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또 특징들을 찾아보니 유능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로 소개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시기의 저는 스스로를 ISTP/INTJ로 소개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진짜 ISTP/INTJ 에 비하면 저는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10% 차이로 바뀌는 결과였기에 결과를 있는 그대로 신뢰할 수 없었던 거죠.
이후로 저는 다시 INTP이 되었습니다. 테스트를 다시 해보지는 않았어요. INTP이라기에는 INTP같지 않고, 아니라기에는 INTP 같은 제 애매한 성향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왜냐하면 이 평가도 결국 저의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누군가가 보기에 저는 뼛속부터 INTP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제가 스스로를 INTP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처럼요. 이 테스트 결과도 결국은 한쪽의 성향이 더 뚜렷한 것이지, 그 한 쪽의 성향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걸요. 저는 어쩔 땐 I인 척 하는 E, N 같은 S, T 성향 강한 F, P로 둔갑한 J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인거죠. 뭐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또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그만큼 많아졌거든요.
지금까지 저는 INTP로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 마디가 더 붙습니다. 4가지 모두 50%에 근접해 있어서, MBTI로 나를 가늠하기에는 나조차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하죠. 다시 처음의 결과로 돌아왔지만,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제가 또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결과에 수긍하지 않고 있지만, 이제는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이랄까요.
어떤 사람은 MBTI 결과 하나로 타인이 자신을 단정 짓는 것이 싫다고 해요. 그 말에 동의하는 한 편, 누군가의 어떤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포용력를 갖는 데 도움을 준 면에서 MBTI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과 같이 배타적이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사회에서 그러한 포용력은 사회를 유지할 작지만 소중한 힘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 다합에왔다합
다합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떠나보냈습니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는 이곳에서 처음 듣고, 또 자주 들었던 노래인데요. 이 곡만큼 다합 생활에 잘 어울리는
노래가 또 있을까 싶어요. 정말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웠거든요.
프리다이빙 세션이 끝나고, 시나이산을 다녀오고,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하며 이런저런 일상을 보내오던 중, 또 다른 버디였던 서우가 떠나는 날이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짧게 다합에 머물고, 먼저 떠나는 터라 본인도, 다른 사람들도 많이 아쉬워했어요. 그래서 티켓을 찢거나 미루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습니다. 떠나기 전 날까지도 다합에 남으면 숙식을 해결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을 정도였어요. 당일 새벽까지도 고민하는듯 하던 서우는 그럼에도 결국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고요.
가는 것이 아쉬워 서우, 성우, 미르주, 그리고 지환오빠까지 다섯이서 라이트하우스에서 마쉬라바까지 산책을 했습니다. 다합의 배스킨라빈스라고 불리던 아이스버블에서 마지막 아이스크림도 먹었고요. 함께 팔찌도 맞추었어요. 모두가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약속을 하면서요. 가장 한국에 늦게 입국하는 사람이 저인지라, 내년 8월까지는 온전히 팔찌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단순한 끈 팔찌라 버텨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장 열심히 다이빙을 다니던 지환오빠의 팔찌는 벌써 원석 색이 빠져 하얀색에 가까워져 버렸고, 제 팔찌도 자꾸만 풀려가고 있거든요.
산책에서 돌아온 후에는 꼭 다시 만나서 여행을 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게 어디든지 상관없이요. 여행하면서 어디를 가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하는지 라는 생각을 자주 했거든요. 많은 후보지가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미르주의 강력한 주장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가기로 했습니다. 함께 울릉도에서 다이빙을 하기로 했어요. 이 날부터 미르주의 배경 화면 한 모퉁이에 ‘울릉도 가기!’가 자리 잡았습니다. 내년에는 미르주의 ‘할 일 목록’에서 체크되어 없어지기를 바라요.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이 시간을 보내다 결국 서우를 보낼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누군가를 보낼 때 항상 그러하듯, 모두 모여 사진을 찍고 버스 타는 곳까지도 함께 걸었습니다. 걸어가면서도 여권을 뺏거나, 버스표를 염소 먹이로 줘야 된다는 농담을 하면서요.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면서 짐을 싣고, 포옹하며 작별 인사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륵주륵 흐르더라고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의 의지와는 다르게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서우는 “야, 너 왜 울어?!” 하며 당황해했는데, 정작 우는 저조차 이유를 몰라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몇 번 생각해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아요.
다합의 시간은 밀도가 달라요. 더 응집되어 있는 듯 조금만 함께 시간을 보내도 쉽게 정이 들고, 쉽게 소중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하우스에서 살다 보면 매일 아침 부스스한 얼굴부터 잠자기 전의 풀린 눈까지 계속 마주하게 되니까요. 다이빙도, 요리도, 저녁도 함께, 거기에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며 새벽까지 새어 있는 날들을 생각하면 정말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셈입니다. 그런 와중에 서우는 제 버디이면서, 처음으로 떠나보내는 정든 사람이었고요. 하필이면 떠나는 시간이 밤이고, 버스를 타고 떠난다는 것도 눈물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낮이거나, 하우스 앞에서 택시를 태워 누군가를 보낼 때는 감정이 그만큼 북받치는 일이 덜하더라고요. 그리고 서우는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라 다시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리스본에서 옆 방에 살던 몰도바 친구, 율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나 속으로 곱씹으며 걸어왔습니다. 그가 저에게 ‘여름방학 캠프에서 만나 헤어지는 친구’처럼 군다고 이야기했었거든요. 낯을 가려서 함께 있는 동안에는 데면데면하게 굴다가, 떠날 때면 자기도 모르게 쌓인 정에 울 정도로 아쉬워하는 그런 친구 같다고요. 어쩜 그렇게 저를 딱 알아챘는지… 율의 말대로 저는 낯도 가리고, 속마음도 잘 내비치지 않아 친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표현하지 않은 마음들이 쌓여 나중에 한 번에 쏟아져 버리는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그래서 저도 모르게 울게 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다 보니 저번 레터에서도, 또 이번 레터에서도 울었다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데요. 저 울보는 아닙니다!😶 이 다음부터는 잘 울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울지 않으면 서운해할 친구들 때문에 누군가 떠나는 날에는 “양파를…준비해야 하나…” 하며 장난을 치기도 할 정도로요. 다합의 양파는 써는 주변에만 있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매웠거든요.
이후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비슷한 시기를 보냈던 이들 중에는 제가 거의 마지막으로 다합을 떠나는 일정이었던 탓에, 8월 초에는 하루에 한명 꼴로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천천히 이별에 무뎌졌어요.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보내는 일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요. (사실 울려고 해도 옆에서 “야 우냐?” 하며 장난치는 탓에 울지 못했던 것도 있습니다!) 몇몇 사람은 사람을 보내는 일에 지쳐 사람들과 거리를 두거나,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정을 주지 않으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무뎌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누군가가 떠나면 항상 울어주던 정 많은 사람이 있었거든요. 모든 마음이 이해가 가요. 방식이 달라도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와의 이별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언제까지나 쉬워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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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짱🌈 : 이 세상의 귀여운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제토🧚 : 주로 갓생을 추구합니다. 밖으로 쏘다니는 외향 인간.
주민💎 :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고양이가 우주 최고입니다.
온다🫧 : 직업은 트래블러, 취미는 여유와 낭만 사이에서 유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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