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년, 미국 남부의 의사 새뮤얼 카트라이트는 루이지애나 주 의학회 연례 회의에서 한 가지 질병을 발표합니다. '드라페토마니아(Drapetomania)'라는 이름의 정신질환이었는데요, 그리스어로 '도망 노예'를 뜻하는 drapetes와 '광기'를 뜻하는 mania를 합친 말이었습니다. 이 정신질환은 미국의 흑인 노예들에게만 발병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원인 없이 시무룩하고 불만스러운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주인의 농장에서 도망치려는 충동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이 논문은 New Orleans Medical and Surgical Journal에 정식으로 게재되었습니다.
노예제는 흑인의 삶을 엄청나게 개선했습니다. 성경에도 함의 저주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에 따르면 흑인들은 복종해야 할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도망치려는 욕구가 생기는 것 자체가 성경과 어긋납니다. 복종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흑인들이, 엄청나게 개선된 삶을 포기하고 도망치려 하다니 정신질환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카트라이트는 이 병에 대한 예방법과 치료법도 제시했습니다. 노예를 아이처럼 대하되 음식과 의복을 적절히 제공하고 과도한 가혹행위와 과도한 친절 모두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전조 증상이 보이면 채찍질로 노예에게 깃든 악마를 쫓아내야 합니다. 이미 도주를 시도한 노예는 양쪽 엄지발가락을 절단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물리적으로 도망칠 수 없게 만들면 병도 낫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셨을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이건 병이 아닙니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노예들에게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니, 이것이야말로 제정신이 아닌 생각입니다.
발표 당시에도 이미 미국 북부에서는 이 논문을 조롱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도망치는 것도 정신병이냐는 풍자가 저널에 실렸습니다. 계약하고 일하는 백인 하인들도 도망치는데 왜 흑인 노예한테만 정신병 운운하느냐는 반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부에서는 이 이론이 수용되었습니다. 1914년 Stedman 의학사전에까지 이 용어가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카트라이트 본인을 노예로 잡아 농장에 가두었다면, 그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이 일화에 대해 드는 가장 무서운 생각은, 카트라이트가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은 게 아니라 진심으로 노예들이 탈출하려 하는 걸 정신병이라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인간은 악의 없이도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 걸까요? 자기 세계관이 너무나 확실한 나머지 '아니, 이 좋은 걸 왜 거부하고 도망쳐?'라고 생각하며 채찍질과 신체 절단을 치료라고 부를 수 있었다 생각하면 섬뜩함에 소름이 끼쳐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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