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다'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정신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일컫습니다. 하지만 '넌 요즘 뭐에 미쳐 있어?'라고 묻는 광고도 있고 '맛이 미쳤다' 식의 표현 또한 경각심 없이 쉽게 사용됩니다. 정신이상의 의미로 '미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오히려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정신이상의 개념은 우리와 격리되어 있습니다. '웰컴 투 동막골'처럼 동네에서 미친 사람을 접하는 게 요즘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정신이상이라는 게 과연 내 삶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자신에게 정신이상이 없음을 증명하는 게 가능할까요? 정신이상이 뭘까요? 애초에 우리는 정상,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긴 한 걸까요? 이런 의문을 해결하고자 진행된 실험이 있습니다. 1973년 심리학자(정신의학자가 아닙니다) 데이비드 로젠한이 저명한 '사이언스' 지에 발표한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라는 연구입니다.
이 실험에는 여덟 명의 실험자가 참가했습니다. 실험자들은 가명을 쓰고 정체를 숨긴 채 정신병원을 방문하여 "쿵, 비었어, 공허해(Thud, empty, hollow)"라는 환청이 들려온다고 거짓 진술했습니다. 정체를 숨기기 위한 거짓말과 꾸며낸 증상을 제외하면 그들은 실제 생활 그대로 답했습니다. 꾸며낸 증상만 있을 뿐 다른 부분에서 정신적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신병원들은 이 거짓 증상 하나만을 근거로 모든 가짜 환자에게 정신질환 진단을 내렸습니다. 단 한 명만 조울증으로 진단받았고 나머지는 조현병으로 진단받아, 평균 19일간 입원했습니다.
입원한 뒤 실험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의료진에게 자신이 정상임을 설득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환청이 들리지 않는다 얘기했고, 정상적으로 보이게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이미 그들을 정신질환자라 결론을 내린 채 보고 있었고 그들을 내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연구를 위해 실험자들이 병동에서 벌어지는 활동들을 기록해도 간호사들은 "환자가 글쓰기 행동을 하고 있다"라고 기록할 뿐이었습니다. 항정신제를 먹을 필요가 없는 이 가짜 환자들에게 처방된 알약은 2,100개에 달했습니다. 오히려 일부 환자들만이 그들이 진짜 환자가 아님을 알아챘습니다.
이 연구에 대해 알게 된 한 병원에서는, 자신들은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로젠한은 이 병원에 3개월 내에 실험자를 투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병원 직원들에게 3개월간 입원하는 모든 환자들에게 이들이 진짜 환자일지 가짜 환자일지를 가늠해 보게 했습니다. 193명의 입원자 중 41명의 환자가 한 명 이상의 직원에게 가짜 환자로 의심받았고, 23명의 환자가 그중에서도 정신과 의사에게 의심받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로젠한은 이 병원에 실험자를 투입하지 않았습니다.
연구가 나타내는 사실은 명확했습니다. 정신의학이 정신이상을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연구는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법정에서 변호사들은 이 연구를 인용하며 정신과 의사의 증언의 신뢰도를 공격했습니다. 정치가들은 여러 정책을 통과시켜 정신병원의 수를 급격하게 줄여 나갔습니다.
위기에 빠진 정신의학계는 더 과학적인 새 진단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모호한 어휘와 진단 기준을 제거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들을 바탕으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진단 기준을 세웠습니다. 로젠한이 다시금 같은 조건으로 실험을 진행한다면 어떠한 정신병원에서도 입원할 수 없을 만큼 엄격하고 정밀한 기준을 세워냈습니다.
그런데 연구가 발표된 지 40년도 넘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반전이 나타납니다. 이 연구엔 의심스러운 구석이 너무나 많았던 것입니다. 환청을 제외하면 거짓 진술을 하지 않았다는 로젠한의 말과 달리, 구리 냄비로 들려오는 소리를 막으려 애썼다거나 자살을 생각해 왔으나 용기가 없어서 실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등 정신과 의사로서는 입원시킬 수밖에 없는 진술이 있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논문에는 '의사들이 하루 평균 6.7회 병동에 출석했다' 등 정량적 수치가 제시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실험자들은 의료진의 행동의 횟수를 세서 로젠한에게 보고한 바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실험자들의 정체도 몇 명을 제외하곤 모호했습니다.
로젠한의 연구는 정신의학계를 궁지에 몰아세울 만큼 세상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정신의학을 더욱 굳세게 재탄생시키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구가, 사실은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 조작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수재나 캐헐런으로, 기자 출신이면서 조현병으로 오진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할 뻔 했던 경험이 있는 저널리스트입니다. 캐헐런이 로젠한 실험을 추적하고 쓴 책이 국내에는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판사 북하우스를 통해 작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오늘 페퍼노트도 이 책을 참고하여 작성하였는데요, 감사하게도 출판사 북하우스에서 페퍼노트 구독자 분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래 링크의 안내에 따라 간단한 이벤트에 참여하시면 다섯 분을 선정하여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를 선물로 보내 주신다고 하니 구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당첨자 선정을 비롯하여 이벤트 진행은 북하우스에서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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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곰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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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plotl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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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이벤트 마감하여 당첨된 분들께 책 발송하였다고 북하우스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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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
헉 늦었네요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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