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하는 법

'오즈마 문제'. 외계인에게 왼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2026.04.24 | 조회 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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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시보 메시지'라고 들어보셨나요? 지구에서 외계를 향해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1679비트, 그러니까 1679개의 0과 1을 전기 신호로 보내는데요, 1679는 23 * 73으로 소인수분해되기 때문에 가로 23칸, 세로 73줄로 배치하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나옵니다.

첨부 이미지

즉 전파를 잡아낼 수 있는 문명이 1679를 소인수분해할 수 있다면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대충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셈입니다.

아주아주 멀리 떨어진 별을 상상해 봅시다. 우리와 공통으로 관측할 수 있는 대상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이요.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의 외계인에게도 0과 1만을 이용해서 우리는 상당히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외계인들에게 왼쪽과 오른쪽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아래와 위를 구별하는 건 쉽습니다. 외계인들의 행성에도 중력은 있을 테니까요. 물건을 놓으면 떨어지는 쪽이 아래고 그 반대쪽이 위입니다. 앞과 뒤도 어렵잖게 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왼쪽과 오른쪽은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심장이 있는 쪽이 왼쪽인가요? 외계인들의 심장은 오른쪽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주 쓰는 손이 오른쪽인가요? 외계인들은 왼손잡이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위의 아레시보 메시지처럼 그림을 그려서 알려주면 되지 않느냐고요? 위의 그림은 1679개의 비트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나열해 그린 그림입니다. 외계인들은 어쩌면 비트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열해 그림을 그릴지도 모릅니다. 그 경우 우리가 애써 보내준 그림은 뒤집혀 있을 것입니다.

수학, 과학 저술가 마틴 가드너는 이 문제에 '오즈마 문제'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이름은 외계 지적 생명체 탐색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오즈마'에서 따온 이름이고,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오즈마 공주에서 따온 것입니다.

오즈마 문제를 다시 정리하면, '공통된 관측 대상이 없는 외계 문명에게 '왼쪽'과 '오른쪽'의 개념을 오직 신호만으로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만약 외계 문명이 우리와 같은 별을 보고 있다면 그 별들의 위치를 가지고 왼쪽, 오른쪽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이런 공통된 물리적 구조가 있지 않다면 왼쪽, 오른쪽을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들조차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은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른바 '패리티(parity) 보존 법칙'이 전우주에 적용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실험이든 이 세계에서 일어난 일은 거울에 비친 세계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1956년, 컬럼비아 대학의 이론물리학자 리정다오(李政道)와 양전닝(楊振寧)이 패리티 보존이 약한 핵력에서는 깨질지 모른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검증할 실험까지 제안했습니다. 같은 학교의 실험물리학자 우젠슝(吳健雄)이 실험을 통해 패리티 보존이 깨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본격적인 물리학을 이 글에서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이제 외계인에게 왼쪽을 설명하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코발트-60을 준비해서 자기장으로 핵 스핀을 한 방향으로 맞춘 다음, 베타 붕괴에서 전자가 많이 튀어나오는 쪽을 보세요. 그 쪽이 바로 우리가 '왼쪽'이라고 부르는 방향입니다."

결과가 나왔을 때 물리학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볼프강 파울리는 "신은 왼손잡이가 아니다"라며 끝까지 믿지 않다가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고 합니다.

리정다오와 양전닝은 이듬해인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리정다오는 당시 30세였습니다. 그런데 우젠슝은 수상자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우젠슝은 이후 23번이나 노벨상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끝내 받지 못했고, "물리학의 퍼스트 레이디"라는 별칭만 남겼습니다. 성차별의 피해자라고 보기도 하고, 수상자 3인 제한, 이론가를 우선하는 관행 같은 복합적 요인도 함께 거론됩니다. 어느 쪽이든 과학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논란입니다.

저는 어릴 때 신발 방향이 항상 헷갈리곤 했습니다. 번번이 왼발, 오른발을 잘못 집어넣어 어른들에게 "그렇게 신으면 안 불편하니?"하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요즘은 나중에 제 아이가 크면 어떻게 신발을 안 헷갈리게 신길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왼쪽, 오른쪽은 이렇게 아주 어린 나이에 배우는 개념인데요, 이걸 외계인에게 알려주려고 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문제가 됩니다. 가끔은 가장 쉬운 질문이 가장 어려운 질문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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