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0으로 지면 다 죽는 거야

기묘했던 프리킥 수비 뒤에 있었던 독재정권의 그림자

2026.06.19 | 조회 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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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서독 월드컵, 브라질과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경기 후반. 브라질은 프리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라질 선수가 프리킥을 하기 전에 자이르 선수 한 명이 수비벽에서 뛰쳐나와 공을 멀리 걷어차 버립니다. 초등학생 선수도 모를 수가 없는 규칙을 어긴 것입니다. BBC 기자는 이 모습을 보고 "아프리카스러운 무지가 드러난 기묘한 순간"이라는 차별적 코멘트까지 남겼습니다. 자이르 선수는 당연히 카드를 받았습니다.

7:35부터 전설의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선수, 사실은 규칙을 몰랐던 게 아닙니다. 그가 공을 걷어찬 이유는 무지가 아니라 공포였습니다.

자이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레오파드(표범)'라는 별명을 단 이 팀은 대륙의 자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 자이르는 모부투 세세 세코라는 독재자가 정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독재 정권이 다 그렇듯, 그는 대표팀을 자기 체제를 빛내줄 선전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그는 선수들을 관저로 불러 축하하고, 전원에게 집과 차를 안겨주기까지 했습니다.

또 모부투는 선수 경비를 위한 상당한 규모의 자금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독재 정권만 문제였을 리가 없죠. 동행한 정부, 자이르 축구협회 관리들은 선수들의 임금과 보너스가 포함된 이 자금을 완전히 바닥낼 때까지 빼돌렸습니다.

첫 경기였던 스코틀랜드전을 0-2로 패배한 뒤, 대회 기간 받기로 한 보수와 보너스까지 받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을 안 자이르 선수들은 열심히 뛰어야 할 의욕을 잃어버렸습니다. 분노한 선수들은 두 번째 경기인 유고슬라비아 전에 출전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기에 나서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질 것이라는 협박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경기에 임했습니다.

그들은 사실상 태업에 가까운 경기를 펼쳤습니다. 결과는 무려 0-9 참패였습니다. 이 경기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한국이 헝가리를 상대로 패배했던 것과 함께 월드컵 역사상 단 두 번 뿐인 0-9 경기입니다.

참패 후 모부투는 격노했습니다. 호텔로 대통령 경호대를 보내 선수단을 직접 협박했는데 그 내용이 섬뜩합니다. 마지막 브라질전에서 0-4 이상으로 지면 아무도 살아서 귀국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은 브라질이었습니다. 브라질은 세 골을 넣고, 경기 막판 프리킥 찬스까지 얻었습니다. 이 프리킥 찬스마저 골로 연결된다면 자이르 선수들은 살아서 가족을 만날 수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비수 음웨푸 일룽가는 브라질이 프리킥을 준비하는 동안 수비벽에서 뛰쳐나와 공을 인플레이 전에 걷어찼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려는 계산이었습니다. 일룽가는 레드카드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합니다. 돈을 가로챈 사람들은 관중석에서 보고 있는데 돈을 빼앗긴 자기는 목숨을 걸고 그라운드에 남아 뭘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옐로카드만 받았습니다.

일룽가가 흐름을 끊은 덕인지, 자이르는 브라질전을 0-3으로 막아냈습니다. 모부투가 정한 한계선을 넘기지 않은 덕에 선수들은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3전 3패, 0득점 14실점.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귀국 후 모부투는 대표팀에 대한 재정 지원을 완전히 끊어버렸습니다. 선수들은 앞서 받았던 집과 차마저 박탈당했고, 상당수가 빈곤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대륙 최초로 세계 무대에 섰던 '레오파드'의 도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이후 자이르 축구는 오랜 침체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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