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를 실제로 해버린 축구 선수

난 축구 선수지만 공을 차진 않아

2025.04.05 | 조회 1.57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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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덕담으로 유행하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정말 모두의 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할 수만 있다면 노래는 안 하는 락스타라든가 경영은 안 하는 재벌 총수 같은 게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1분도 뛰지 않은 축구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브라질의 카를루스 카이제르(Carlos Kaiser)인데요, 그는 1963년생으로 1979년부터 10년 넘게 여러 축구팀과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한 경기도 뛰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가장 출전에 가까웠던 날은 워밍업 중에 퇴장당한 날입니다.

카를루스 카이제르. 축구 선수인 것 같기도...?
카를루스 카이제르. 축구 선수인 것 같기도...?

카이제르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축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밝힙니다(저도 그러고 싶네요.). 그의 전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짧은 계약 맺기: 팀과 짧은 기간의 계약을 맺어 빠르게 이적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음 팀으로 이적하면, 이전 팀이 곧 그의 경력이 되었습니다.
  • 부상 핑계 대기: 팀에 합류하면 "경기 감각이 떨어졌다"며 몇 주 동안은 체력 훈련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체력 훈련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 햄스트링 부상 연기: 다른 선수들과 함께 훈련해야 할 때가 되면 햄스트링 부상을 연기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꾀병을 알아내기 어려웠습니다.
  • 치과 의사 협조: 팀이 더 자세한 검사를 원할 때는 치과 의사가 "치아 감염"이 있다고 진단서를 작성해줬습니다.
  • 언론인과 친분 쌓기: 언론인들과 친분을 쌓아 자신에 대한 허위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를 들어,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멕시코 시민권을 제안받아 국가대표팀에 뽑힐 뻔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친화력이 대단했는지, 동료 선수들도 대체로 그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 장난감 휴대전화 활용: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비싸고 귀했기 때문에 모조품을 가지고 외국어로 대화하는 척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이적 제안을 거절하는 연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장난감 휴대전화에 대고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다가 영어에 능통한 팀 닥터에게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2부 리그 가젤렉 아작시오에 합류했을 때에는 팬들과의 훈련 세션이 마련돼 있었는데, 실력을 들통나지 않기 위해 클럽 배지에 키스를 하면서 모든 공을 관중석 쪽으로 차주는 퍼포먼스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프랑스 기자와는 친해졌는지 가젤렉 아작시오의 최고 득점자로 묘사된 기사도 나갔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한 경기도 뛰지 않았습니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방구(정말로 팀 이름이 방구입니다.)에서의 일화입니다. 팀의 스폰서는 카이제르가 돈은 받으면서 출전을 안 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팀이 0-2로 지고 있을 때 스폰서는 감독을 압박했고, 감독은 카이제르에게 몸을 풀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 때는 미리 부상 알리바이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인지, 출전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 때 그는 몸을 풀다 말고 관중석에 난입하여 서포터들과 싸웠고, 당연하게도 퇴장 당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신의 한 수를 두었는데, "우리 스폰서를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라고 싸운 이유를 밝힌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아첨으로 그는 용서 받았고 방구와 6개월을 연장 계약했습니다.

축구에는 '폴스 나인(False ni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스트라이커(주로 9번이라 불립니다.)의 위치에 서면서 스트라이커로서 플레이하지 않는 독특한 포지션으로, 리오넬 메시가 2000년대에 이 포지션에서 활약했던 게 유명합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카이제르야 말로 진정한 폴스 나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포지션은 어쨌든 스트라이커였다는데, 단 한 순간도 스트라이커로서 플레이하지 않았으니까요. 축구의 신과 축구의 X신이 묘하게 통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더 알아보기

Wikipedia, Carlos Kaiser (footballer)
나무위키, 폴스 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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